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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실버 스케일의 개인 선실에서 눈을 뜬 나는 가장 먼저 선실에 배치된 필기도구로 내 강의시간표를 작성했다. 지금은 지구시간으로 따졌을때 한참 농업 미생물학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때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린은리 사저에게 어줍잖게 거짓말을 늘어 놓을 생각은 없었다. 솔직하게 수업을 빼먹었다고 말하고 아야사와 있었던 일을 조금 각색하면 되는 일이다.
원래 감쪽같은 거짓말을 칠할의 진실에 삼할의 거짓을 섞는법.
자까지 대가며 정성들여 그린 시간표를 품안에 갈무리한 나는 이번에는 인벤토리에서 에보니 메이든을 꺼내 들었다. 전생유적(前生遺跡)의 등장으로 너무 바빠진 내게는 부관의 존재가 절실했다. 미노타우르스족인 푸스카는 같은 미노타우르스 언데드들과 영력의 파장이 일치하기 때문에 일개 소대의 미노타우르스 언데드 정도는 자기 수족처럼 부릴 수 있었다.
따라서 인어족 자경대원들과의 모의전투에 관한 일을 모두 일임할 수 있어 나는 전생유적(前生遺跡)을 찾아온 탐험가들을 상대로한 숙박 사업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흑단관구(黑檀棺柩)에 잠들었던
사일런트워커(Slientwalker) 푸스카
묘지기의 부름을 받고 이 자리에 현현(顯現)하라
내 개인 선실 한가운데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소머리를한 전사의 실루엣이 비친다. 조금 질투나는 일이지만 미노타우르스족 특유의 우락부락한 근육을 인고의 노력끝에 날렵하게 다듬은 푸스카의 몸은 달랑 30일동안 속성으로 만든 내 몸 이상으로 엣지가 있었다. 단순히 고위 강령술사로서 살아갈때는 관심조차 없었는데 본 보어 마스크(Bone Boar Mask)를 상대로 주먹다짐을 벌인 뒤로 무투술에 부쩍 관심이 생겼다.
"사일런트워커 푸스카가 주인님을 뵙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안강녕하시다. 너무 바빠서 미칠것 같아. 아무튼 야 푸스카 너 단검술말고 맨주먹 싸움도 좀 하냐?"
"맨주먹 싸움 말씀이십니까? 요인 암살을 위해 위장 잠입을 할때 날붙이의 소지를 제한받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암살자 길드에서 한가닥 배운바가 있습니다만 단검술에 비하면 그 성취가 미약합니다. 거기에 일단 저도 미노타우르스족인지라 박치기라면 거인족들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좋았어. 너 나랑 나중에 대련 한번만 하자. 이번에 내가 주먹질이랑 발재간을 좀 배웠거든? 니가 대련하면서 문제점같은것도 지적해주고 네가 지닌 기술도 선보이면서 무투술에 대한 견식을 넓혀줬으면 한다."
"허나 어찌 제가 감히 주인님의 몸에 손을 댈 수 있겠습니까?"
"계속해서 술사 샌님으로 남아서 다른 놈들한테 얻어터지는것보다는 나을거 같은데."
"제가 에보니 메이든에 있는동안 주인님이 다른 누군가에게 일격을 허용한적이 있었다니 상상조차 못해봤습니다. 필시 간악한 무리들의 함정에 빠지신 탓일터이니 군세를 정비하여 주인님의 몸에 손을 댄 놈들에게 응징을 하도록 하지요."
가만 보면 푸스카는 간신마냥 내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한다. 허나 사령안으로 푸스카의 의중을 단편적이나마 꿰뚫어볼 수 있는 나는 푸스카의 저런 아첨이 진심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푸스카가 간신은 아니지만 그런 듣기 좋은 말을 듣다보면 내가 세계의 중심이라도 된것처럼 우쭐해진다. 세계사를 살펴보면 왕조마다 꼭 한명씩은 있는 우유부단한 왕들이 간신들의 새치혀에 놀아나는 이유를 조금은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우유부단한 왕이 아니였다. 내 현재 위치는 내가 제일 잘 알았다. 부하에게 주먹질이라도 배워서 써먹지 않으면 어디가서 객사하기 딱 좋은 술사 샌님, 그게 바로 지금의 나였다. 영압으로 상대방을 압사시킬 수 있는게 아니라면 최소한 상대방에게 10대를 맞더라도 한 대정도는 묵직하게 명치에 꽂아 넣을 수 있는 깡좋은 술사 건달정도는 되야하지 않겠는가?
"푸스카 솔직하게 말해봐. 전에 VOT 온라인의 세계에 있었을때 그러니까 VOT 시스템의 제어망이 아직 유효했을때랑 비교했면 지금 네 영혼을 권속하고 있는 내 영력은 어떻다고 생각해?"
"그...그것이 말씀드리기 송구합니다만 그때는 정말 영압만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였이었다면 지금은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버틸만 합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한번정도는 주인님의 영력을 뿌리치고 주인님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도 있겠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저는 감히 그런 시도를 할 엄두도 내본적이 없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에보니 메이든에는 워낙 자기 주장이 뚜렷한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하여 주인님께서 그런 부분을 고려하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직언드려봤습니다."
"그래 네가 느끼기에도 내 영력이 많이 약해졌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앞을 막는 적들을 단죄할 다른 힘이 필요해. 그러니까 나중에 내가 대련을 하자고 부르면 잔말말고 무조건 전력을 다해서 덤벼. 그게 날 돕는 길이니까. 잠깐 그러고보니 누시아는 에보니 메이든 안에서도 내 영력 랭크가 하락했으리란걸 미리 알고있었던것 같은데 말이야.
혹시 누시아가 뭐 메시지 보내온거 없어?"
"안그래도 그에 대해서 말씀드리려 했는데 여기 있습니다. 전에 부탁하신대로 선문답같은 소리하지 말고 쉬운 말로 써달라는 말을 누시아님께 전했습니다. 누시아님은 주군은 여전하시구나라고 말하신 뒤 미소를 띈채로 이 편지를 적어주셨습니다."
"아니 그 상황까지 자세히 설명해줄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땡큐."
나는 푸스카가 공손히 내민 편지를 받아들여 살펴보았다. '에보니 메이든에는 주군의 날개가 되어줄 불세출의 인재가 많습니다. 때로는 패왕이 되어 패도의 길을 걷는 자들을 굴복시키시고 때로는 덕왕이 되어 정도의 길을 걷는 자들을 감화시키십쇼. 양립될 수 없는 두길을 동시에 걷다보면 만물이 주군 앞에 고개를 조아릴것입니다.'
나는 푸스카가 보는 앞에서 사정없이 편지를 찢어버렸다. 이 년이 정신을 못차렸네. 어떻게 하면 Ex랭크에서 B랭크로 하락한 영력을 빠르게 복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모자란데 무슨 뜬구름잡는 소리를 하는거여. 내 인생 즐기기에도 바쁜데 만물의 주군같은 중2병 돋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내가 편지를 찢어버리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푸스카에게 나는 한자 한자 힘을 주어 말했다.
"나중에 에보니 메이든으로 돌아가면 누시아한테 가서 이렇게 전해줄래? 한번만 더 개소리를 지껄이면 에보니 메이든 안과 바깥 세상간의 펜팔은 여기서 끝이라구 말이야."
"사일런트 워커 명을 받들겠습니다. 헌데 주인님 제 짧은 식견으로 말씀드리건데 밴쉬 세이지 누시아님은 저 못지 않게 주인님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치신 분입니다. 비록 주인님의 영력이 예전같지 않다고 해도 성심을 다해 옆에서 보좌할겁니다. 누시아님을 이쪽 세상으로 부르시는건 어떨련지요?"
"싫어. 누시아 그년은 사령안을 사용해도 속을 들여다 볼 수 없어서 꺼림칙해. 쓸데없는 사담이 너무 길어졌군. 지금부터 나를 따라오도록 해. 이 쪽 세상에서 내 상급자에 해당하는 여자한테 너를 소개할텐데 깍듯하게 모셔라. 내 입장이 곤란해지는건 둘째치고 니 목이 단칼에 두동강날 수 도 있으니까."
"단칼에... 입니까? 예 알겠습니다. 명을 받듭니다."
용린은리 사저의 집무실은 내 개인선실 바로 앞이였으므로 길안내를 위해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을 부를 필요도 없었다. 나는 일전에 내 명치를 강타한 씁쓸한 주먹맛을 기억해내고 조심스럽게 용린은리 사저의 방문을 노크했다. '들어와' 용린은리 사저가 딱딱한 어조로 입실을 허가하자 나는 푸스카의 무쇠뿔이 문틀을 긁지않도록 주의시키며 용린은리 사저의 방안으로 입장했다.
집무실 책상위의 서류들과 씨름하다가 고개를 든 용린은리 사저는 용린춘 장로 보다 한 수 위인 근육황소를 목격하고도 담담할 뿐이였다.
"용린은리 사저를 뵙습니다. 이쪽은 푸스카라고 해서 지능이 있는 제 언데드 수하입니다. 요즘 일이 너무 많아져서 소환했습니다만 다른 분들이 혹여나 외양을 보고 오해하지 않도록 이 친구의 존재를 공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외양이 문제가 아니라 은린선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은 외부인을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이 포착하면 경계령이 내려질 수 도 있어. 내가 임시로 계급은 하사 직위는 네 부관정도로 해서 등록해둘게. 일단 작전참모니까 그 정도 권한은 있거든. 하지만 월급은 못줘. 고양이 손을 빌리고 싶을 정도의 인력난 속에서 반가운 일꾼이긴 하지만 자금난 쪽이 더 심각하니까."
"월급이라뇨. 그런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뭐 혹시 모르니까 저번에 외눈박이 거인이 착용한 어깨띠 같은걸 착용하도록 해. 우리 병사들이야 산전수전 다 겪은 놈들이지만 인어족 주민들에게는 조금 충격적일 수 도 있으니까. 자 그러면 지구에서의 볼일은 다 끝냈으니까 아바타로 로그인한거겠지? 네 본체가 다니고 있다는 학관의 시간표 좀 줘봐."
내가 품안에서 자필로 쓴 시간표를 꺼내 공손하게 용린은리 사저에게 건내자 푸스카가 움찔하는게 느껴졌다. 왜? 니 주인이 다른 사람한테 공손하게 구는거 처음보냐? 아 정말로 처음이겠구나. 내가 푸스카를 꺼내는 때는 오직 누군가의 목숨을 취할때뿐이였으니까. 나는 중간고사 성적표를 엄마에게 건넨 심정으로 용린은리 사저가 시간표를 훑는것을 지켜보았다. 전 과목에서 딱 한개밖에 틀리지 않았는데 그 당시에는 그게 왜 그리도 죄스러웠는지 모르겠다.
"지구랑 수왕성의 시차는 어느정도 되는것 같아?"
"3시간 정도이려나요? 뭐 그렇게 많이 차이 나지는 않습니다. 대게 지구에 낮이면 수왕성에서도 낮이고 수왕성에서 밤이면 지구에서도 밤이더라구요."
"그러면 지금 너 수업 들어가봐야 하는거 아니야?"
"빼먹고 왔습니다."
"그런 일을 잘도 당당하게 말하는군. 야 옥사건 내가 시간표를 보여달라고 한건 절대 너를 갈구기 위해서가 아니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건 첫인상을 주먹질로 각인시킨 내 탓이긴 하다만 나는 네 본체의 일상생활을 존중하고 싶어. 무조건 수왕성에서의 일 때문에 지구에서의 일과를 희생하는건 내가 바라는바가 아니야. 빙린장성을 건설할때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바람에 네가 너무 고생했던것 같아서 체계적으로 수왕성에서의 일과시간을 잡아줄려고 시간표를 달라고 했던거란 말이야.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배우면서 살아가지. 그리고 그 배움이 계속되다보면 어느순간인가 그 무언가가 그 사람의 업이 되어버려. 내 경우엔 그 업이 무공이였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테지.
만약 이 학문이 네 업이라면 아무리 내가 네 사저이고 계급상 상급자라고 해도 간섭할 권리는 없는거야. 요새 네 덕분에 일이 수월해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빙린장성의 건설기간이 삼분지 일로 줄어든건 물론이고 알인어소년 납치사건 때는 네가 아니였으면 이솔다 공주님께 정말 큰일이 일날뻔했지. 지금 한참 주춧돌을 쌓고 있는 전생유적 탐험가들을 위한 숙소 건설도 네 외눈박이 거인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지.
솔직히 너는 1000VP라는 월급 이상의 일을 해주고 있고 같이 무공을 수학한 진짜 사제관계는 아니지만 나는 너에게 좋은 사저가 되고싶다. 그간 본의아니게 너한테 보통 사람이라면 치명상에 가까운 상처를 두번이나 입혀서 네가 색안경을 끼고 있다는건 아는데 어떻게 그 색안경을 벗길 방법이 없겠니?"
"그거라면 용린은리 사저가 속옷을 벗는다면 자연스럽게 벗겨지지 않을...커억"
집무실 책상에 앉아있던 용린은리 사저가 앗차하는 사이에 내 코앞으로 다가와 멱살을 집어들었다. 내게 그간의 일들을 사과하면서 한결 부드러워졌던 눈빛이 다시 활활 불타오르며 명검과 같은 예리함을 뿜어냈다. 반박자 늦게 상황을 인식한 푸스카가 단검을 꺼내들려 하자 나는 손짓으로 제지했다. 푸스카야 폭풍을 만났을때는 정면으로 대적하는게 아니라 몸을 사리면서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거란다.
"아주 그냥 니가 매를 버는구나. 그냥 앞으로 너를 사제가 아니라 잠재적 성범죄자라고 생각하면 되는 부분이냐? 니 부하 앞에서 한번 먼지나도록 얻어터져 볼래?"
"사저 릴렉스. 릴렉스. 폭력적인 상급자라는 색안경을 제게서 벗기기로 하셨잖아요. 일체의 신체접촉도 없는 부탁하나만 들어주신다면 그 색안경 창문밖으로 던져버리겠습니다."
"후우 후우 후우 좋아. 제길 너 때문에 또 흥분해버렸잖아. 하지만 그 부탁을 들어주는 도중에 내 몸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정말 의절이다. 하지만 신체접촉이나 탈의 행위가 없는 부탁이라면 나 또한 그 무엇이든 들어줄것을 이 용린검 앞에서 맹세하겠다. 잘 모르는것 같아 말해두는데 용린검객에게 용린검 앞에서 하는 맹세란 용린검가의 명예를 건다는 것을 의미해.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이 용린검 앞에서 맹세한 일은 단 한번도 어긴적이 없어."
"아니 그렇게까지 해주실 필요는 없는데. 뭐 용린은리 사저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제가 만류하는것도 실례되는 일이겠죠."
"일단 지금 해야할 일이 산더미니까 그 부탁이란건 나중에 하도록하고 일단 내 말을 잘듣도록해. 그 놈의 전생유적때문에 사방이 난리니까 너도 그 정도는 이해하겠지?"
"물론이죠."
입으로는 '물론이죠'라고 대답했지만 내 머리속에는 벌써부터 용린은리 사저에게 부탁할 응큼한 장난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에보니 메이든에는 거미와 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라크네 일족의 후계자인 시스트린이라는 여자가 있다. 아라크네 일족은 의상제작 분야에서 타고난 재능을 지니고 있는데다 실중에서도 최상위 넘버링 재료에 속하는 아라크네 거미줄을 자체적으로 뽑아낼 수 있었다.
비록 시스트린은 지금 언데드가 되었지만 아라크네 일족중에서도 독보적인 실력을 지녔던 그녀라면 내가 원하는 의상을 얼마든지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기획하고 있는건 일전에 아야사가 내게 보여주었던 거리싸움꾼2의 옥단예 코스프레를 용린은리 사저에게 입히고 춤을 추게 만드는 것이였다. 이거라면 용린은리 사저의 몸에 털끝하나 대지않고 내 눈을 즐겁게 만들 수 있었다. 사실 아야사의 옥단예 코스프레도 살인적인 섹시함을 뽐냈지만 아야사가 서양인인 까닭에 코스프레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치는 싱크로율이 떨어졌다.
하지만 전형적인 동양 미인인 용린은리 사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날카로운 도검과 같은 용린은리 사저의 눈은 옥단예의 그것과 꼭 닮아있던것은 물론 몸매도 꿀리지 않았다. 옥단예는 게임 캐릭터고 용린은리 사저는 실제 사람인데도 말이다.
"옥사건 지금 제대로 듣고 있는거 맞냐?"
"혹시 몰라 주인님을 대신해 제가 기억해두고 있었습니다. 우선순위 순으로 전생유적을 발견한 메키라는 인어족 소녀와 심해에 있는 전생유적 사전답사하기, 이솔다 공주님과 약속했던 대 언데드 모의전투 충실히 이행하기, 전생유적 탐험가용 숙소건설에 외눈박이 거인 투입하기 맞습니까?
저같이 미천한 몸이 여장군님과 주인님의 대화에 끼어들어 죄송합니다만 주인님을 보좌하는 것이 본디 제 역할인지라."
"여장군이라니 뭐야 그 거창한 칭호는. 그냥 작전참모님이라고 불러. 황소 하사 너라도 잘 알고 있으니 다행이다. 네가 니 정신머리없는 주인님좀 옆에서 잘 챙겨. 아참 그리고 옥사건 너 백신마켓에 무법자들의 죽은 시체로 만든 언데드를 짐꾼으로 팔고 있다며?"
"네 그렇습니다. 용돈이라도 좀 벌까 싶어서 말이죠. 목이 없는건 둘째치고 내부적으로 언데드 회로망을 구성하기 위해 한바탕 뒤집어놨기 때문에 예의 무법자들이 구입해서 재활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용린은리 사저가 무법자들에 관한 사안이라면 민감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즉각 변명을 했다. 하지만 용린은리 사저가 지적하고 싶었던 사안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어차피 무법자들은 백신 마켓은 이용하지도 못해. 내가 하고싶은 말은 그게 아니라 이번에 아이스바운드의 해산물들을 포장해서 상품화 시키는데 그 언데드들을 한달에 100 VP정도해서 인어족들에게 빌려주는건 어떨까 싶어서 말이야. 어차피 여기로는 정규 배송함선도 오지 않고 전이술식 배송을 위한 기반도 없어서 언데드들을 팔 수 있는 판로도 딱히 없잖아?
품질 검증도 할겸 인어족들에게 싸게 대여하는건 어때? 혹시 모르지 이솔다 공주가 쓸만하다고 판단하면 영구적으로 사들일지도 몰라."
"뭐 그렇게 하도록 하죠. 솔직히 저도 만들긴 했는데 처치곤란이였으니까. 푸스카 부관 듀라한 짐꾼 대여건까지 해서 내가 해야할 일들을 잘 체크하고 있도록."
"예, 주인님. 아까 방안에 있던 듀라한 두기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주인님께서 번거로울거 없이 제가 인어족들에게 잘 인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쭈 작전참모인 나도 없는 똘똘한 부관이 생겼구만. 옥사건 아주 팔자가 폈어. 왜 진작 안부르고 지금 부른거냐?"
"으음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말이죠.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면 조금 길어집니다."
"나도 너무 바빠서 남의 사연같은거 듣고 있을 시간 없다. 어여 출발해."
나는 용린은리 사저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방을 빠져나와 푸스카와 함께 내 방으로 향했다.
듀라한 두기에게 푸스카의 영혼파장을 기억해두는 명령어를 내리자 푸스카는 익숙한 듯 듀라한 두기를 운용했다. 미노타우르스 언데드 일개 중대까지 운용해본적이 있는 푸스카에게 이정도야 껌이였다. 단순히 이솔다 공주가 부탁한 대 언데드 모의전투를 대행시킬 수 있다는 점을 떠나서 내가 해야할 일을 푸스카가 옆에서 챙겨주자 나는 한결 편한 마음으로 일정을 진행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해산물을 빙결술식이 새겨진 상자에 담아 옮기고 있는 인어족들에게 인어족의 언어로 '나는 성실한 일꾼입니다.'라고 적힌 어깨띠를 맨 듀라한 두기를 인도했다. 인어족들 중 작업반장에 해당하는 사람의 영혼파장을 듀라한 10호기와 11호기에 각각 인식시키고 명령어 전달법에 대해서 상세하게 가르쳐주었다.
한 때는 사흉신교의 두자리 서열자들 중에서는 최고위 서열자였던 그 둘은 휼륭한 역군이 되어 인어족의 미래를 위해 땀흘리게 되었다. 아 언데드는 땀 안흘리지. 지치지도 않으니 24시간 내내 부려먹히겠구만. 그 다음으로는 자경대원들에게 향해 인어족의 언어로 '연습은 실전처럼'라고 적힌 어깨띠를 한 푸스카를 소개했다. 본래 작정했던대로 나는 미노타우르스 언데드 병사 일개 소대를 아이언 메이든에서 소환해 모의 전투에 관한 전권을 푸스카에게 일임했다.
솔직히 말해 너무 압도적인 피지컬을 지닌 거인족들과 싸우는것보다는 푸스카의 체계적인 지시를 받는 미노타우르스 부대와 싸우는게 인어족 자경대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것이다. 그럼 이제 메키라는 인어족 소녀랑 심해에 있다는 전생유적(前生遺跡)을 사전답사하면 끝인가? 아니지 전생유적(前生遺跡) 탐험가용 숙박소 건설 작업도 남았구나.
"아이고 아무리 일을 해도 끝이 없구만."
"혹시 고위 강령술사이신 옥사건 준위님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