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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칼도르프라는 성을 지닌 사내는 아야사의 설교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돌아서서 아야사의 요청에 따라 실험 감독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그의 뒷모습이 마치 '저딴 녀석이 뭐라고 저를 꾸중하시는겁니까'라고 말하는듯해 나는 고소한 기분이 들었다. 내 등허리를 어루만지는 아야사의 손길을 즐기며 기다리는 가운데 운동장만한 실험장의 두터운 장갑문이 개방되었다.
내 등허리에서 손을 땐 아야사가 내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잘 참으셨습니다. 칼로도프는 사건님이 독일말을 할 수 있는지 몰랐던 모양입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친구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하니 사건님이 너그럽게 이해하십쇼. 크로스데일 상속자 리그까지 1년 아직은 쓸모가 있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곧 저 실험장에서 내가 쓸모있는 놈인지 아닌지도 결판나겠군. 안그래?"
"사건님에게는 아직 유능한 생명공학도라는 쓸모가 남아있으니까요. 너무 걱정하진 마십쇼. 물론 그 경우 수석연구원인 칼도르프밑으로 들어가셔야 할겁니다. 아무리 유능하다고 한들 경력의 차이라는게 있으니까요."
"저 자식 밑으로 들어갈바에야 그냥 죽고말겠어."
"그러길래 억대연봉과 함께 제 직속으로 들어오라고 제가 여러번 제안했을때 못이기는척 들어오시지 그러셨어요."
"마치 네가 준비한 테스트에 내가 통과하지 못하는게 기정사실인것처럼 말하는군."
"설마요. 그래도 몸을 섞은 정이 있는데 마음 한켠에 일말의 기대감을 간직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뭐 딱히 필요한 무기라도 있으십니까? 진검에서부터 M16소총까지 구비되어있습니다. M16소총을 들고가신다면 최소한 테스트 1단계에서 떨어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겁니다."
"그딴건 필요없어. 이 문으로 들어가면 되는거지?"
만약 귀갑흑선단을 먹기 전이였다면 권투장갑정도는 부탁했을 수 도 있었겠지만 지금 내 피부는 돌처럼 단단해진 상태였다. 피가 철철나도록 긁은 상처가 아물면서 거무튀튀한 색으로 변한 내 피부를 시험삼아 커터칼로 있는힘껐 긁어봤지만 아작나는건 내 피부가 아니라 커터칼쪽이였다.
굳이 M16 소총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의 나는 상대가 누가라 한들 자신 있었다. 물론 예비군 훈련으로 다져진 내 사격실력을 뽐내지 못하는게 아쉽긴 하지만... 어?
"아니 잠깐만 M16소총이 구비되어 있다고?"
"왜요 갑자기 구미가 당기시나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M16소총이 유효한건 테스트 1단계에서 뿐일겁니다."
"그게 아니라 여기는 한국이라구. 총기규제가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나라들중 한 곳이란 말이야."
"이미 생체병기 자체가 인도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한참이나 규제에 어긋나 있다는 생각은 안하시나요? 이미 세상은 VOT 온라인이란 정체불명의 게임때문에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사로운건 신경쓰지 마시고 큰그림을 보셨으면 좋겠군요. 제 위에 서실 생각이시라면 말이죠."
나는 논리적으로 반발할 말을 찾지 못해 조용히 운동장만한 실험장안으로 입장했다. 천장에는 바깥에 있는 모니터와 연결된 수십대의 카메라가 있어 기분이 찜찜했다. 이래서야 정말로 실험실의 하얀쥐가 된 기분이다.몇십cm는 될벌한 장갑문이 서서히 닫히기 시작하더니 나를 완벽하게 바깥세상과 고립시켜버렸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크로스데일 한국 지점장 아야사 크로스데일이 안내드립니다. 지금부터 크로스데일 한국 지점 지하 연구실에서 제 77회 본 마스크 보어 전투 시뮬레이션을 시작하겠습니다. 보안을 위해 지상으로의 이동수단 및 통신수단은 전부 일시 정지되오니 연구원분들의 양해바랍니다."
"뭐야 내가 처음이 아니였어?"
"인간을 상대로한 전투시뮬레이션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러면 테스트 1단계로 본 마스크 보어 아성체를 실험장으로 들여보내겠습니다. 김사건 테스터는 준비하십쇼."
아야사는 마치 나를 처음본 사람인냥 취급했다.
아까도 느꼈지만 다른 연구원들 앞에서는 나와의 관계에대해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싶지 않은 모양이였다. 사실 그렇게 떳떳한 관계라고 할 수 도 없었으므로 나 또한 아야사의 장단에 맞추어주기로 했다. 어쩌면 아야사의 목숨이 걸린 크로스데일 상속자 리그에 대한 이야기조차 다른 연구원들에게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굳이 자신의 약점을 타인에게 공개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내가 들어왔던 장갑문과 반대쪽에 있는 장갑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네발 짐승 한마리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크기는 일반 멧돼지와 비슷했는데 얼굴 표면에 뼈로 만들어진 투구가 쒸어져 있다는게 특이했다.
그 네발 짐승이 점점 속도를 높히며 내게 돌진해오는 가운데 나는 뼈로 만들어진 투구가 피부와 일체되어 있다는걸 깨달았다. 누군가가 쒸어준게 아니라 저 네발 짐승, 본 마스크 보어(Bone Mask Boar)의 생물학적 특성이였던 것이다. 마침내 코앞까지 당도한 본 마스크 보어(Bone Mask Boar)의 아성체가 내게 몸통박치기를 시전했고 나는 이 흉폭한 네발 짐승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이 네발 짐승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귀여웠다.
물론 외모는 귀여워도 본래 생체병기로 키울 목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 답게 무게는 150kg에 근접한데다 쓰다듬을려고 내민 손을 물어오는 치악력이 보통 억쌘게 아니였다. 물론 귀갑흑선단을 먹고 바위처럼 단단해진 내 피부를 물어뜯진 못했지만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난듯 집요하게 내 손을 물어오는 흉폭한 성질도 생체병기로서 적합해 보얐다. 하지만 그런 흉포함 조차 내 눈엔 귀엽게 보였다.
"본 마스크 보어 아성체는 하이애나, 도사견 그리고 킹코브라를 상대로한 전투 시뮬레이션에서 압도적인 승률 통계를 지니고 있으며 호랑이와는 승패가 비등비등하나 총화기에 대한 저항력은 훨씬더 뛰어난 것으로 보여 본 마스크 보어종의 차세대 생체병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김사건 테스터 진지하게 전투 시뮬레이션에 임해주세요. 왜 본 마스크 보어 아성체랑 어부바 놀이를 하고 있습니까?"
"하지만 멧돌이가 너무 귀여운걸. 뼈 투구 사이로 보이는 눈망울이 이렇게 순진무구한데 내가 멧돌이랑 어떻게 싸우라는거야?"
"그새 이름까지 붙였습니까? 후우 좋습니다. 그러면 1단계는 그냥 통과한셈으로 치지요. 칼로도프 테스트 2단계로 돌입해. 어디 한번 이번에도 귀엽다고 할 수 있는지 보죠. 본 마스크 보어 준성체랑도 어부바 놀이를 할 수 있다면 김사건 당신을 인정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멧돌이는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는게 좋을겁니다.
본 마스크 보어는 동족이라는 개념이 희박해서 준성체가 아성체를 잡아먹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니까요."
"뭐라고? 멧돌이를 잡아먹는다고? 도대체 어떤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이 그런 짓을... 당장 나오라고 그래 아주 혼줄을 내줄테니까."
"지금의 그 호기를 잊지않았으면 좋겠군요."
나는 손을 물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멧돌이를 본래 있던 자리로 돌려보내고 돌아와 실험장 한 가운데에서 다음 타자를 기다렸다. 멧돌이가 들어왔던 장갑문이 닫혔다가 웅장한 기계음과 함께 다시열렸는데 멧돌이보다 10배는 커보이는 네발 짐승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 쿵쿵거리는 소리가 넓은 실험장에 울려퍼진다.
준중형 차종만한 크기의 본 마스크 보어(Bone Mask Boar) 준성체는 나부터가 본게임이다라는 것을 과시하듯 다짜고짜 달려드는게 아니라 여유롭게 걸어왔다.
짐승들이 으레 그렇듯 덩치는 그녀석들에게 전투력 스카우터같은 역할을 한다. 내 덩치를 확인한 녀석은 상대가 별볼일 없다라고 지레 판단한것이다. 덩치가 작은 짐승이 큰 짐승보다 먹이사슬 위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저 녀석들에게는 신성 모독이나 다름없겠지.
나는 저 네발 짐승이 진리라고 밑고 있는 사실을 산산조각 내주기 위해 용린정권의 기수식을 펼쳤다. 뭐 대단한건 아니였다. 골반의 회전을 허리에 전달하고 최종적으로는 주먹에 실는 준비를 하는것으로 태권도 흰띠들도 이론으로는 알고 있는 자세였다. 하지만 그 간단한 원리가 담긴 주먹을 지난 30일 동안 적하수오환을 씹어먹으며 산소 융화 중수안에서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 내가 펼친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나도 잘모른다. 실전은 이번이 처음이니까. 그래서 나는 이매망량으로 내 뒤에 그물망같은 안전장치를 만들어두고 여차하면 웨어러블 아케인 쉴드가 발동될 수 있게 옵션을 설정해두었다.
보험을 2개나 깔아두었고 귀갑흑선단의 효능도 있으니 뭐 어떻게든 되겠지.
"김사건 테스터 지금이 테스트를 포기할 마지막 기회입니다. 만용을 부려 목숨을 헛되이 버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일반 연구원으로 크로스데일 한국 지점에 입사하는건 어떻습니까? 이미 이 크로스데일 한국 지점의 비밀을 목격한 당신을 다른 직장으로 보낼 수 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거 좋게말하면 고연봉 직장이 보장되는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연구소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라는 소리 아니야? 시끄럽고 저 덩치만 큰 녀석이 공격좀 하게 해봐. 지금 자세 잡고 기다리고 있는거 안보여?"
"정 그렇게 나온다면 소원대로 해주지요. 김사건 당신 허세가 심한걸 빼면 나쁜 남자는 아니였어. 그럼 아디오스 편히 잠들길. 칼로도프 본 마스크 보어의 공격적 성향을 증폭시키는 라디오를 재생시키세요."
아디오스는 무슨 아디오스야? 내가 아야사 너랑 배꼽 맞추기전에는 억울해서 못죽어.
굳이 본 마스크 보어가 아니라 인간인 내 귀에도 짜증나게 들리는 고주파음이 실험장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어슬렁 어슬렁 거리며 내 주위를 배회하던 본 마스크 보어(Bone Mask Boar) 준성체도 불쾌지수가 단숨에 최고치를 찍을정도로 신경을 박박긁는 고주파음에 화가 났는지 씩씩거리며 내쪽을 향해 돌진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준중형차만한 덩치가 달려드니 이건 확실히 멧돌이가 달려들때와는 압박감이 차원이 다르다. 나는 보험을 2개나 들어났다는 사실을 되뇌이며 그 압박감을 이겨내고 용린정권을 타이밍에 맞추어 내지를 준비를 했다.
본 마스크 보어(Bone Mask Boar) 준성체의 콧김이 느껴질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을때 나는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 캡슐의 스파르타 교육덕분에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는 용린정권을 내질렀다.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긴장되는 상황에서도 나는 정확하게 골반, 허리 그리고 주먹으로 이어지는 근육의 하모니를 연주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물리력의 충돌에도 불과하고 충격음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충돌의 결과는 단순하지 않았다. 내 용린정권과 정면으로 충돌한 본 마스크 보어의 뼈 투구에 금이가기 시작하더니 파삭!하는 소리와함께 부서져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준중형차만한 네발짐승의 신형이 서서히 기울더니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나 이...이긴건가? 내가 진다고 생각한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쉽게 이길줄은...
"본 마스크 보어 준성체의 심장박동이 정지했습니다. 인간을 상대로하는 첫 전투 시뮬레이션 결과 본 마스크 보어 준성체의 패배입니다. 본 마스크 보어 준성체는 뱅골 호랑이, 아프리카 코끼리, 바다 악어, 아나콘다 그리고 코디악 베어와의 전투 시뮬레이션에서도 승리한것은 물론 아성체보다 뛰어난 방탄력을 지녔고,
당장이라도 교전지역에 실전배치될 수 있을거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만...
재평가가 필요할듯 싶습니다. 하지만 본 마스크 보어 준성체가 어떤 취약점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전투 시뮬레이션 분석을 하기엔 김사건 테스터와의 교전 시간이 너무 짧아 힘들어 보입니다.
일자 20150401 대상 본 마스크 보어 준성체 전투 시뮬레이션 담당자 아야사 크로스데일. 지금까지 녹음된 음성은 제 77회 본 마스크 보어 전투 시뮬레이션에 관련된 기록입니다. 본 마스크 보어 아성체 전투 시뮬레이션 녹음 파일은 소실된 것이 아니라 테스터 김사건의 불성실한 실험태도로 인해 생략되었음을 청취자에게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