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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사건님 간밤에 많이 피곤하셨던 모양입니다. 크로스데일 한국지점을 방문일정은 잠시 뒤로 미룰까요?"
"으으윽 아야사 왔냐?"
"약속시간이 지났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실례를 무릎쓰고 들어왔습니다. 어디 편찮으신데라도 있으신겁니까?"
"아니야 그냥 피곤해서 그런거니까 부촉좀 해줘."
어제 묘지에서 이매망량의 술식을 행하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자취방으로 들어온 나는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안그래도 수왕성에서 탐험가 숙소 건설과 언데드 모의전투때문에 정신적으로 지쳐있었는데 아야사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3시간이나 더 강행군을 했던 것이다. 사실 이 때 잠들기만 했어도 나름 6시간이라는 준수한 수면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었겠지만 묘지에서 주문과 동시에 복용까지 끝낸 귀갑흑선단이 문제를 일으켰다.
처음에는 무슨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듯 온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샌가 피부를 뜯어버리고 싶을정도로 온몸이 가려워졌던 것이다.
몸에 피가날정도로 긁어대는데도 진정이 되지 않아 이러다가 혈관을 건들여 과다출혈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여 나는 이매망량으로 내 온몸을 감싸 손톱으로 긁을 수 없게 만들었는데 아뿔싸 이매망량은 내 의지에 워낙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라 내가 긁으려고 하면 흩어져버렸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수단으로 WAS(wearable Arcane Shield)를 꺼내들었다.
"사건님 정말로 편찮으시면 크로스데일 한국 지점 방문은 오후나 내일로 미루셔도 됩니다. 눈이 충혈되다 못해 시뻘건데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결석계는 빈틈없이 처리해 두었으니 제 팬트하우스에서 안정을 취하시죠."
"필요없어. 내가 말했지? 내가 지닌 카드를 공개한 뒤에는 침대위에서 아야사 너를 죽여버리겠다고. 아 그리고 이 참에 하나 묻자. 어제 밤에 내 자취방에 왔을때 혹시 노...노팬티였냐?"
"설마 그게 궁금하셔서 밤새 한숨도 못자신겁니까?"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아 됐다. 그냥 가자."
아니 이년이 나를 뭘로보고 미치도록 궁금했던건 사실이지만. 아무튼,
처음 묘지에서 배송받았을때 조끼형태였던 웨어러블 아케인 쉴드는 맨몸에 착용하자 흐물흐물거리며 내 피부에 녹아들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착용감이 쾌적하다 못해 아예 입은 느낌이 없는건 좋지만 어떻게 쉴드를 발동해야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던 상황에서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과 처음 조우했을때처럼 자동적으로 웨어러블 아케인 쉴드가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와 동기화되었다.
나는 극한의 가려움을 억지로 참아내며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를 이용해 WAS(wearable Arcane Shield)의 외부충격 반응성을 최대치로 올려버렸다.
그덕분에 내 손톱으로 내 피부를 아작내는걸 막을순 있었지만 극한의 가려움은 새벽 6시까지 지속되었다. 동이터오는 시점이되서야 내 몸은 진정되었고 긁어서 생긴상처가 급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동시에 얼굴을 제외한 몸전체가 거무튀튀한색으로 변해버렸고 핏물을 씻어내기 위해 향한 욕실에서 그 사실을 확인한 나는 귀갑순 영감탱이를 향해 저주를 퍼부울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부작용이 있으면 약관에 명시했어야 할거아니야! 이 꼬라지로 워터파크를 어떻게 가란 말인가? 아 내 한 여름낮의 꿈이여...
"그러면 크로스데일 한국 지점으로 가는 동안만이라도 잠시 눈을 좀 부치십쇼. 도착하면 깨워드리겠습니다."
"안그래도 그럴작정이였어."
차에 대해서 문외한인 내가 봐도 억소리 날정도로 비싸보이는 외제승용차에 아야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탑승한 나는 넓직한 뒷좌석에 다리를 쭉펴고 누울 수 있었다. 이거 내 키가 작은거야 아니면 이 외제승용차가 넓은거야? 하지만 역시 배게가 없어서 인지 목이 뻐근했던지라 나는 앞좌석에 탑승하려하는 아야사를 호출했다.
여자친구가 생기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인데 이 기회에 소원성취좀 해볼까.
"아야사 무릎배게좀 해줘."
"머리는 감으셨습니까?"
"왜 이라도 있을까봐? 내가 평소에 귀찮아서 머리를 잘안감는건 맞는데 오늘은 우연히 피치못할 사정으로 샤워를 해서 겸사겸사 감았으니까 걱정하지마."
"도대체 피치못할 사정으로 샤워를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청결함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질병의 팔할은 예방할 수 있으니 앞으로는 주기적으로 좀 씻으시죠."
"글쌔, 아야사가 욕실에 같이 들어가준다면 생각해볼게."
"김사건 그건 당신의 역량에 달려있어."
순순히 뒷자석에 타서 내 무릎배게를 해준 아야사 크로스데일이 목소리를 낮게깔며 내게 말했다. 오늘은 옥단예 코스프레가 아니라 정장미니스커트 차림인 아야사의 탄력적인 허버지를 검은 레깅스 위로 느끼며 안락함을 느끼던 나는 아야사의 싸늘한 표정에 뒷통수가 따끔따끔해졌다. 뭐 보통 여자가 아니라는것은 진즉에 알고있었지만 저런 표독한 얼굴이 숨겨져 있을 줄은 몰랐다.
만약 내게 믿고 따를만한 역량이 없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버리겠다는 의지가 얼굴 표정과 어조에 묻어났다.
제법 매서운 기세긴 하다만 결국 고양이가 아무리 화를 낸다고 한들 호랑이가 심심해서 한번 으르렁거리것만 못하다. 용린은리 사저의 진심이 담긴 주먹을 몸으로 받아낸 전적도 있는 내게 아야사의 그런 행동은 귀여울 따름이였다. 아 이렇게 무릎을 배고 누워있으니 아야사의 가슴이 유난히 탐스러워 보이는군.
산을 오르는 이유는 산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듯 나도 무심코 아야사의 가슴에 손을 뻗었다.
몰캉몰캉
용린은리 사저의 탄력적인가슴과는 분명 다르다. 마치 마쉬멜로우처럼 말랑말랑한 감촉이 간밤에 극한의 가려움으로 피폐해진 내 정신을 정화시켜준다. 내가 주무르는데로 모양이 바뀌는 점 또한 즐겁기 그지없어 나를 신기한 장난감을 발견하면 좋아죽는 어린시절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렇게 한참을 떡주무르듯 주무르는데도 아야사는 입도 뻥긋하지 않고 묵묵히 정면을 쳐다보고 있을뿐이였다. 삼십분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아야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사건님 즐거우십니까?"
"어... 아니 하나도 안즐거운데 그냥 신기해서 만져보는것 뿐인데."
"그러시군요. 곧 있으면 크로스데일 한국 지점에 도착하니 준비하시죠. 혹시나 싶어 말씀드리는겁니다만 다른 연구원들이 보는 와중에는 이런 남사스러운짓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도 체면이라는게 있고 제 부하들은 곧 사건님의 부하이기도 하니까요. 첫인상 부터 마이너스로 시작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알았어. 나도 그렇게 철면피는 아니야."
"모든 일정이 끝나면 제가 따로 좋은 자리를 마련할테니 그 때 마음껏 즐기시지요. 물론 모든 일정을 수행하고 나서도 사지가 멀쩡하셨을 때의 이야기입니다만 어제밤 그렇게 자신만만해 하셨으니 문제 없겠죠."
뭐...뭐? 무슨 일정이 잡혀있길래 내 목숨이 오락가락하는거야? 곧이어 나는 크로스데일 한국 지점에 도착했고 떨떠름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한채 외제승용차에서 내렸다. 수면부족으로 정신이 약간 멍하긴 했지만 육체 자체는 오히려 강건해진 느낌이였다. 비록 외형적인 부분에서 다소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귀갑흑선단의 효과자체는 발군이였던 것이다.
10000 VP나 주고산 영약이 시원찮다면 당장 사령성이라는 행성까지 쫓아가 귀갑순 영감탱랑 멱살잡이를 해야 했겠지만 다행히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야 아야사 여기 건물 죽이는데? 거의 화랑대학교 도서관급이잖아."
"같은급이라 과연 크로스데일 한국 지점 지하건물을 보시고도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지 두고봐야겠군요. 지점장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으니 일단 따라오시죠."
화랑대학교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대학교지만 그것과 별개로 도서관 건물이 으리으리한걸로 유명했다. 최신설비로 무장한 열람실과 휴식시설이 갖추어진 화랑대학교 도서관을 구경하기 위해 화랑대학교 학생증을 돈을 주고 대여받으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언론에서 그 사실을 보도한 이후로는 총장님이 학생증을 타인에게 대여한 학생은 퇴학시키겠다는 강경책을 펼쳐 외부인의 발걸음은 뚝 끊기고 말았다.
여대 무용학과 학생들이 학생증을 빌려서 화랑도서관을 구경오면 나는 그 놀러온 여대 무용학과 학생들을 구경하러 화랑도서관에 가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는데 안타까운 일이였다.
어쨌든 크로스데일 한국 지점 건물은 화랑도서관에 뒤지지 않는 웅장함을 자랑했고 언뜻보기에 내부설비는 화랑도서관보다 더 고급스러워 보였다. 예를 들면 지하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있는 홍채인식 보안장치같은건 화랑도서관이라고 해도 없는 설비다. 홍채인식을 마친 아야사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붙어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지하로 내려가는데 10분이 지나도 좀처럼 도착하지를 않는다.
뭐야이거 엘리베이터 고장난거 아니야?
"아야사 혹시 이 엘리베이터 CCTV같은거 있어?"
"없으면 무슨 짓을 하시려구요?"
"아니 조금 심심해서 어제 중간에 그만두었던 키스라도 이어서할까하고."
"다른 엘리베이터와 달리 이 지점장용 엘리베이터는 보안상 이유로 CCTV가 없습니다만...사건님은 정말이지 구제불능이로군요. 제가 분명 오늘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따로 좋은 자리를 마련해 드린다고 했을텐데요. 후우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 도 있으니 그 응석을 받아주지요."
"도대체 무슨 일정이길래 내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거야?"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젯밤 사건님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걸맞는 이적의 힘을 사건님이 지니시고 있다면 가벼운 유흥에 불과한 일정ㅇ...우웁 웁"
내 힘을 시험하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를 준비한 모양인데 나도 그럴줄 알고 단단히 준비해왔다고. 나는 아야사를 뒤에서 끌어당겨 품안에 안고 기습 키스를 시도했다. 허락을 받았고 CCTV도 없겠다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어젯밤의 달콤한 꿈이 재현되어 내 입술은 아야사의 연분홍빛 립스틱이 발려진 아담한 입술과 재결합했다.
아야사는 내 기습 키스에도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게 호흡을 맞춰준다. 나를 좋아해서 응수하는 애정어린 키스가 아니라 비지니스차원에서 응수하는 기계적인 키스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황홀했다. 원래 남자는 애정따위가 첨가되어 있지 않은 스킨쉽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 아야사의 경우 비지니스를 위해 자신의 입술정도는 거래품목으로 여길만큼 냉혹한 이성을 지닌 여자였고.
그렇게 서로의 필요성에 따라 성립한 키스는 제법 궁합이 맞아 크로스데일 한국 지점의 지하연구실에 도착한지 5분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아야사가 도착시점으로 부터 오버된 경과시간까지 알려주며 키스를 중단시키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하루동일 엘리베이터안에서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내 키스에 응해줬다는건 혹시 아야사도 기분좋았던거 아니야?"
"헛소리는 좀 자제해 주시겠습니까? 정말로 사건님과의 키스에 빠져있었다면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시점으로 부터 오버된 경과시간을 초단위로 세지도 않았겠지요. 다른 연구원들 앞에서 욕구를 주체못하고 추태를 보이실까봐 아이를 달래는 기분으로 선심을 쓴것 뿐입니다."
"선심쓰는김에 5분만 더쓰지."
"......"
"아 미안 미안 그런 눈으로 노려보지마. 내가 잘못했어."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아야사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나는 이후 순순히 아야사의 뒤를 따랐다. 주위를 배회하던 몇몇 연구원들이 아야사에게 정중한 인사를 건넴과 동시에 나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마음같아선 '제가 아야사랑 키스한 사이입니다'라고 떠벌려서 선망어린 시선을 즐기고 싶었지만 그럴 경우 아야사가 정말로 대노할것 같아 꾹 참았다.
그렇게 아야사의 뒤를 따라 도착한 운동장만한 실험실에는 이미 연락을 받고 많은 연구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완전히 밀폐된 실험실 내부를 수십대의 카메라로 관찰할 준비를 하고 있는 연구원들 중 대표로 보이는자가 일어서서 아야사에게 묻는다.
"저자가 예의 실험체가될 천외천의 일원입니까?"
아니 뭐? 실험체가 어쩌고 저째? 아야사에게만 몰래 속삭이는것도 아니고 대놓고 나를 실험체라고 지칭하자 나는 혈압이 치솟느걸 느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자는 한국말로 말한것도 영어로 말한것도 아닌 독일어로 씨부리고 있었다.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 덕분에 내가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외국저널인 케루빔에 논문을 실은 전적도 있는 나는 영어정도는 무리없이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구태여 독일어를 배운적은 없는터라 VOT 단말기가 없었다면 나는 저 남자가 모욕적인 말로 웃으며 인사를 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독일계 남성은 계속해서 독일어로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고작 게임 폐인놈들이 본 마스크 보어를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한번 지켜보도록 하죠. 그 천외천 놈들이 VOT 온라인에서 주서오는 지식자체는 굉장히 쓸모가 있으니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하지만 팔다리중 어디가 하나 뿌러진다고 해도 VOT 온라인을 플레이하는데는 지장없지 않겠습니까? 증강현실게임이니까요."
나는 저 독일계 남성의 명치에 용린정권 한방을 꽂아넣지 않으면 못배길것같은 기분에 앞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아야사가 그런 나를 제지했다. 아야사는 성난 황소를 달래듯 내 체크무늬난방에 안으로 손을 밀어넣어 내 등을 쓰다듬었다. 다른 연구원들의 시선에는 아야사가 나를 소개시켜주기 위해 등을 떠미는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차갑고 부드러운 손이 척추를 쓰러내리자 나는 힘없이 아야사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이래서 세상을 지배하는건 남자지만 그 남자를 지배하는건 여자라고 하는구나.
"칼도르프 말 조심하고 어서 실험준비나 해. 이 천외천 유저를 섭외하기 위해 내가 어떤 대가를 치웠는지 알기나해? 니가 말했듯이 천외천들이 단순한 게임 폐인이라고 해도 그들이 VOT 온라인에서 획든한 지식은 얕볼 수 있는게 아니야. 본 마스크 보어 또한 그 지식을 밑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새삼 말할 필요는 없겠지?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광부의 대우또한 좋아져야 다른 놈들에게 다이아몬드를 뺏기지 않을 수 있는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