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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발두인 함장의 호출을 받고 브리핑 룸에 집결한 간부들의 분위기가 사뭇 무거웠다. 나도 눈치가 있었기에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던 고래 고기에 관한 이야기 꺼낼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한가지 다행인점은 전생유적(前生遺跡)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이솔다 공주가 발두인 실버코인 함장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일단 발두인 함장의 요청대로 예의 전생유적이라는걸 발견한 메키라는 인어를 부르긴 했습니다만 그 전에 전생유적이라는게 도대체 무엇인지 설명해줬으면 합니다."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이전 세대의 VOT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죠."
"이전 세대라 함은?"
"정확한 시기를 헤아릴순 없지만 못해도 동해용궁의 탄생설화가 쓰여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겠지요."
"동해용궁의 탄생설화라니... 천빙패가 인어의 눈물을 머금었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단 말씀입니까?"
혹시 지구에도 전생유적이라는게 있을까? 에이 설마 마력원천도 없는 행성에 그런게 있을리가 없지. 선조세대의 디파일러들도 지구가 너무 산간벽지에 있어서 올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디파일러 교전 가능성도 없는데 정규택배 함선이 안오는걸 보면 말다했지.
아니면 디파일러들은 지구라는 행성이 있다는 사실자체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렇습니다. 저명한 고고학 커뮤니티에서 각 행성의 과거기록을 대조해본 결과 디파일러들과의 전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의견이 제시된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의견이었습니다만 전생유적이 발견된 뒤로 정설로 굳혀졌지요. 우리들의 선조들도 디파일러들의 침공을 받았던 시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VOT 시스템과 유사한 목적으로 우주의 초월적 의지 즉 VOT 시스템 엔지니어가 지적생명체의 멸종을 막기 위해 전생유적이라는 것을 만들었고 전생유적 안에서 미증유의 힘을 손에 넣은 선조들이 그 당시 디파일러들을 패퇴시켰다는게 전생유적을 탐구한 고고학자들의 주장입니다.
뭐 그 당시 선조들이 디파일러들을 이기지 못했다면 지금의 저희가 있을 수 없었을테니 어느정도 합당한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선조 세대의 백신이였던 전생유적이라는 카드를 왜 우주의 초월적 의지 즉 VOT 시스템 엔지니어가 지금 이 시점에 꺼내들었냐는 것 또한 논점이 될 수 있는데요. 고고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복잡하게 생각할것 없이 단순한 재활용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각 행성의 인류를 연결시키는 항성간 네트워크 VOT 시스템 자체도 물론 디파일러들을 상대로 휼륭한 백신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미 디파일러들을 상대로 그 효과를 검증한 백신, 전생유적이라는 카드를 과거의 것이라고 해서 버릴 이유는 없다는 것이겠지요."
발두인 함장이 당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가 없다. 혹시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의 통역 시스템이 고장난걸까? 이솔다 공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발두인 함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나는 중간부터 발두인 함장의 말을 이해하는것을 포기하고 공상을 하기 시작했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워터파크에 도착한 나. 어설픈 운동으로 식스팩의 윤곽이 희미한 놈들과는 다르게 굵은 글씨체로 새겨진 내 식스팩을 뽐내며 워터파크를 주유한다. 누가 더 최소한의 천으로 자신의 중요부위를 가릴까 경쟁하는 처자들에게 보란듯이 다가가서 내 취향의 처자를 골라잡는다. 그리고 서로 껴안은채 워터 슬라이드를 타는 도중에 서로의 뜨거운 숨결을 확인한 둘은 그 길로 호텔의 스위트 룸으로...
'카드 잔액이 부족합니다.'
후욱 후욱 현실의 냉혹함 내 공상을 얼려서 산산조각 내버렸다. 단순히 공상일뿐인데도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얼굴이 뜨겁고 심장이 벌렁벌렁하다. 지금 내 통장잔고가 얼마정도 남았더라? 아 빌어먹을 수왕성에 넘어오기 전에 커스텀 아이템들을 모조리 팔아버리기만 했어도 돈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었을텐데...
나는 그나마 여유가 있는 VP 잔고를 보며 위안을 삼기로했다.
-디파일러 폰(+1 VP) * 437
-디파일러 나이트(+200 VP) * 3
-LPTM(-500 VP)
-실버 스케일 커뮤니티의 세달치 월급 선지급(+3000 VP)
-무법자 현상수배 커뮤니티의 도올명 아바타 현상금 지급(+12000 VP)
-무법자 현상수배 커뮤니티의 도철광 아바타 현상금 지급(+15000 VP)
-적하수오환 128정 SET(-1000 VP) + 전이술식 배송 SERVICE(-500 VP)
-마력입자 농도측정기 R3(-500 VP) + 전이술식 배송 SERVICE(-500 VP)
-37037 VP
전이술식을 이용한 워프 배송 비용에 빌빌되던 그때의 나는 안녕. 무법자 현상수배를 총괄하는 커뮤니티에 도올명과 도철광의 머리를 인증샷찍어서 보내자 직접 고위 전이술사를 보내서 머리를 직접 회수해가더니 무려 27000 VP를 보내온 것이다.
현상수배 커뮤니티의 현상금 총액은 현상범한테 원한이 있는 커뮤니티에서 십시일반 VP를 모은 다음 현상수배 커뮤니티에서 수수료를 가져가고 남은 금액으로 결정된다고 한다.
그 둘이 한조로 뭉쳐서 행동했음에도 도철광 개인한테 특별히 원한이 많은 커뮤니티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도철광의 현상금이 도올명보다 많아진 거겠지. 도철광이 도올명에 비해 약하다고 해도 악명은 높았던 모양이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도철광 이 자식 열받네. 이솔다 공주를 블랙 마켓에 파니 내 여자로 만드니 어쩌니 아우! 반짝이는 은발에 엘프같은 몸매가 정말로 동화속에 나올법한 인어공주님을 감히...
궁기련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도철광을 다시 만나면 제대로 버릇을 고쳐줘야겠다.
지금 내가 이 브리핑 룸에서의 지루한 회의를 버티고 있는것도 어디까지나 비키니에 랩스커트 차림인 이솔다 공주덕분에 눈호강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옥사건 지금 뭘 보고 있냐?"
"이솔다 공주님의 뽀얀 살결이 아니라 전생유적이라는 변수앞에서 인어족의 미래를 계산하고 계시는 이솔다 공주님의 진중한 옆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리더의 참모습이 아닌가 싶어 저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헛소리는 작작하고 내가 분명 말했을텐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솔다 공주님한테 무례한 행동을 하면 거기를 잘라버리겠다고. 어디한 번 거기도 재생이 할 수 있는지 실험삼아 확인해볼까? 이 빌어먹을 자ㅅ..."
"용린은리 소령 묻고싶은것이 있습니다. 용린은리 소령은 기존에 전생유적을 탐험한 경험이 있다는게 사실입니까?"
"아! 예,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절묘한 타이밍에 용린은리 사저에게 말을 걸어준 이솔다 공주덕분에 나는 아랫도리가 오싹해지는 취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무리 암사자같은 흉포함을 지닌 용린은리 사저라고 해도 동맹 커뮤니티의 지도자인 이솔다 공주 앞에선 발톱을 함부로 드러내지 못했던 것이다.
"전생유적의 대략적인 등장 배경에 대해서는 발두인 함장님에게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전생유적안으로 들어가면 어떤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군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용린은리 소령."
"자세한 설명을 드리기전에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전생유적의 궁극적인 목적은 최하층에 존재하는 수호령이 탐색자의 지덕체를 시험해서 자신이 주군으로 삼을만한 자인지를 알아보는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수호령의 주군이 되지 못한다고 해서 탐색자가 아무 이득도 보지 못하는것은 아닙니다.
총 30층으로 이루어진 전생유적을 탐색하는 동안 예상치 못한 기연을 얻는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도 그중의 한명이였으니까요. 하지만 한가지 주의해야할것은 첫 발견자 특전으로 이솔다 공주님에게 단 30장의 입장카드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전생유적은 파티 플레이가 불가능하고 오로지 개인만 입장 가능한데다 한번 입장했던 사람은 다시는 해당 전생유적에 입장할 수 없습니다. 전생유적안에서 지덕체를 시험하는 갖가지 시련들의 난이도도 난이도지만 이런 제약조건들이 전생유적에서 기연을 얻는 일을 곱절로 어렵게 만듭니다.
일단 단순히 무력만 뛰어나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제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저는 검을 들었을때 누군가에게 져본적이 없습니다. 허나 그런 저도 전생유적에 존재하는 30개의 기연중 단 하나를 가까스로 얻어냈을 뿐입니다."
용린은리 사저가 버거워할정도의 던전이라고? 이솔다 공주와 용린은리 사저가 서로 대화하는걸 멍하니 듣고 있던 나는 용린은리 사저가 가까스로 기연을 획득했다는 부분에서 전생유적(前生遺跡)이라는 던전의 난이도가 절대 만만히 볼게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을 플레이하던 시절 사상 최악의 던전인 무간지옥 99층을 클리어 했던 나는 솔직히 전생유적(前生遺跡)이라는 던전을 우습게 생각했었다.
"30일이 지나면 어떻게 되지요?"
"첫 발견자 특전은 사라지고 수왕성에 있는 전생유적의 존재가 모든 VOT 시스템 이용자에게 알려질겁니다."
"그렇다면 수호령이라는 존재의 인정을 받는일과는 별개로 30일이 지나기 전에 30개의 입장카드로 30개의 기연을 얻어내는것이 최선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제일 별볼일 없는 기연 하나를 일부러 취하지 않고 나두어서 관광특수를 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수왕성이 아직 디파일러 교전지역이라는걸 감안했을때 가능하다면 30개의 기연 전부 취하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절대 쉽지 않을 겁니다.
전생유적은 누군가 수호령의 인정을 받은자가 나오거나 30개의 기연이 모두 연자를 찾아갔을때 폐쇠되는데 제가 탐색했었던 전생유적만 해도 폐쇠되는데가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니까요. 그렇다고 중간중간 전생유적 탐험자들의 발길이 뜸했던것도 아닙니다.
첫 발견자 특전기간이 끝나고 전생유적을 들락날락한 탐험가들만 해도 삼십만은 되죠."
"혹시 전생유적 입장카드를 판매할 수 도 있습니까?"
"물론 가능합니다만 첫 발견자 특전 기간 초기에 판매하는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성가신 날파리들이 꼬일 가능성이 있거든요. 특전 기간 막바지에 판매하는건 상관없겠지요. 어차피 특전 기간내에 전생유적 폐쇠조건을 달성하지 못하면 모든 VOT 시스템 사용자들이 알게 될테니까요."
"이 전생유적이 동해용궁의 인어족들에게 복이될지 흉이될지는 오롯이 리더인 저에게 달려 있는것 같군요. 빙린장성이 완성된지 불과 몇시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기 죄송하지만 은린선 여러분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이솔다 공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브리핑 룸의 책상을 쿵하고 내려치며 주위 시선을 환기 시킨 뒤 말을 이었다. 주변 돌아가는 상황을 그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고 있던 나도 깜작놀라 이솔다 공주를 주목했다.
"물론 공짜로 부탁드리는것은 아닙니다. 입장 카드 30장중 10장을 실버 스케일 여러분들에게 대가로 드리겠습니다."
"가디언 커뮤니티로서 무상으로도 얼마든지 도와드릴 용의는 있습니다만 전생유적 입장 카드를 10장씩이나 주시는건가요?"
"용린은리 소령이 가까스로 30개중 하나의 기연을 얻을정도라면 전생유적의 난이도가 대충 어떨지 상상이 갑니다. 솔직히 말해 30장의 입장카드를 전부 인어족 자경대원들에게 돌린다고 한들 인어족 자경대원들이 30개의 기연중 한개나 제대로 얻을 수 있을까요? 참담한 현실이지만 지난번 사흉신교의 무법자들과 직접 맞붙으면서 저는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이 넓은 우주에서 인어족들은 약자에 속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렇다면 차라리 인어족들을 경쟁시켜서 정예 10명을 뽑아 입장 카드 10장을 나눠주는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고로 옥사건 준위 예전에 약속했던 대 언데드 모의전투를 오늘 당장 시작하려고 합니다. 실전처럼 살벌하게 부탁드립니다. 인어족 자경대원들중에서 전생유적에서 기연을 얻어올 옥석을 가려내야 하니까요."
"일단 오늘 모행성에서 본체가 다니고 있는 학교수업은 모두 끝났습니다. 언데드들은 지치지 않으니 원하실때까지 어울려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