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41화 (41/599)

0041 / 0316 ----------------------------------------------

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이렇게 먹고도 좀처럼 살은 찌지 않았다.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안에서의 맹훈련덕분에 마치 디스크 조각 모음처럼 내 지방세포는 날아가버리고 근섬유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때로는 이런 근섬유 조각 모음이 부담스러운게 여자들은 너무 근육이 울퉁불퉁한것 보다는 어느정도 샤프한 느낌이 드는 근육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근육몬까지는 괜찮은데 괴력몬으로 진화해버리면 수비 에어리어 범위 밖이랄까.

기껏 몸짱이 되서 수영장에 가보니 막상 섹시한 비키니를 입은 여자가 '어머 몸이 너무 좋으시다. 그런데 제 타입은 아니에요.'라고 말한다면 그 자괴감은 이루말할 수 없을것이다. 나는 미니 냉장고위에 있던 달력을 집어들고 침대위로 뛰어들었다. 후우 아직 중간고사는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여름방학이 기다려진다. 지금 딱 식스팩 모양세가 좋은데 말이야. 여기서 더 운동했다가 근육돼지처럼 변하는건 아니겠지?

내 자랑스러운 식스팩을 어루만지며 여기서 육체단련을 그만둬야하나 고민하는데 식스팩을 어루만지던 손의 팔목에 자리잡고 있는 VOT 단말기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실버 스케일 커뮤니티에 새로운 공지사항이 올라왔습니다.

-아이스 바운드 방벽 완공식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동해용궁측과의 협조로 신선한 해산물 구이는 물론 실버 스케일 함선의 저장창고에 보관중이던 포도주를 제공할 예정이오니 간부 및 장병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발두인 실버코인 함장 드림)

결국 그 방벽이 완성됬구나. 내 싸이클롭스 좀비들은 방벽의 기본골격 축조 과정은 물론 대 디파일러 벽돌 반죽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본래 방벽의 완공기간을 반의 반으로 줄여버리는 쾌거를 이룩했다. 물론 나라고 아무 이득없이 자원봉사를 한것은 아니였다.

처음에는 싸이클롭스 2마리를 운용하는것도 벅찬 듀얼코어였지만 어느새 싸이클롭스 8마리로 반은 대 디파일러 벽돌 반죽을 하고 나머지 반은 벽돌을 방벽에 올리는 작업을 할 수 있을정도로 영력 운용 숙련도가 향샹됬던 것이다. 물론 4마리의 싸이클롭스들이 비슷한 형태의 작업을 수행했기 때문에 8마리의 싸이클롭스가를 모두 독립적으로 운용하는 옥타코어라기 보다는 듀얼코어의 응용에 가까웠지만 성과가 없진 않았다.

그 과정에서 영력 랭크가 B로 향상되었던 것이다. 덕분에 에보니 메이든에서 지능이 있는 언데드 크리쳐를 소환할 수 있는 최소사양을 갖춘것은 물론 이매망량의 힘이 몰라볼정도로 강해졌다.

C랭크의 영력으로 운용되는 이매망량이 초등학생 한 학급 정도의 물리력을 지니고 있었다면 B랭크의 영력은 고등학생 한 학년 전체정도의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비약적인 향상을 이루었으니 기존에는 단순히 급소 방어정도 밖에 못했다면 지금은 이매망량으로 전신을 감싸는것은 물론 공격적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다시한번 도철광과 맞붙게 된다고 가정했을때 고등학생 한 명의 물리력 자체는 도철광정도의 무인과 비교해 보잘것없는 힘이지만 그 고등학생이 300명 가량된다면 도철광도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같은 용린검가/실버 스케일 커뮤니티 소속인 용린은리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은린선 간부된지 얼마나 됬다고 빠져가지고 지금 방벽 완공식 시작하기 직전이니까 빨리 튀어와라. 본체가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아침점호도 빼주는데 자꾸 농땡이 부릴래? 물론 니가 방벽 건설과정에서 엄청난 노동력을 제공했다는건 아는데 그러니까 더욱 니가 와서 얼굴을 비쳐야될거 아니야.

p.s 인어족 자경대원들이 고래를 잡아와서 요리하고 있는중인데 오기싫음 말고.

완공식처럼 보여주기식 행사같은건 질색인데 용린은리 사저가 부르니 안갈 수 도 없고. 발두인 함장처럼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사람이 완공식을 이렇게 거창하게 열은데에는 병사들을 배불리 먹여 사기를 진작시키는 목적이 크다는게 내 생각이였다.

즉 굳이 내가 얼굴을 비칠 필요는 없겠지만 통닭신도로서 고래고기가 과연 통닭님의 아성을 뛰어넘을정도의 육질을 지니고 있는가 확인할 필요성은 있을것 같았다.

나는 LPTM 캡슐의 강화유리창을 블라인드 기능으로 가려버렸다. 그러자 외관만큼은 VOTO(Vaccine Of Things Online) 접속 캡슐과 토씨하나 안틀리고 똑같은 물건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무단가택침입같은 상황은 아예 벌어지지 않는게 베스트겠지만 혹시나 누군가 내 자취방에 들어왔을때 LPTM 캡슐이 지구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다면 그만큼 골치 아픈일도 없을것이다.

다시 침대에 뛰어든 나는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를 조작해 지구와 수십억광년이나 떨어진 곳에 있을 내 아바타 옥사건으로 로그인했다. 시야가 아득해지는 익숙한 경험에 이어서 암전된 시야가 다시 밝아지자 내 시야에는 자취방 천장 대신에 목이 없는 언데드 전사, 듀라한 두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야 듀라한 10호기랑 11호기 주인님 오셨는데 인사 안하냐?"

각각 사신흉교 서열 10위, 11위인 도올명과 도철광의 아바타를 기반으로 만든 이 언데드들은 백신 마켓에 한번 팔아볼까 싶어서 제작한 비전투형 모델들이였다. 도올명과 도철광의 아바타를 죽일때 나름 심혈을 기울여서 목위부분만 손상시켰기 때문에 몸덩어리 자체는 굉장히 보존 상태가 휼륭했다.

그럼에도 내가 비전투형 모델로 만든 이유는 지능이 없는 언데드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호위하는 언데드 명령어를 짜기가 어려울뿐더러 혹여나 내가 만든 언데드가 나한테 칼을 들이미는 꼴은 절대 못보기 때문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 듀라한들은 오로지 짐꾼용이였다.

사흉신교 서열 10위와 11위씩이나 하는 무인들의 몸둥어리를 짐꾼으로만 쓴다는게 사실 아깝다고 생각될 수 도 있겠지만 먹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는 언데드의 특성상 짐꾼으로서의 사용법도 무궁무진했다. 게다가 단순히 짐만 옮기는 경우 언데드 명령어를 짜기가 훨씬 편했다.

결정적으로 이제 에보니 메이든에서 지능을 지닌 언데드들을 불러올 수 있는 최소 영력을 달성한 상태이니만큼 이 듀라한 둘을 부하로 삼기도 애매한 일인지라 나름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근데 너희 둘을 사줄 사람이 있을랑가 모르겠다."

일단 교역용 커뮤니티 '언데드 주식회사'를 개설한뒤 백신 마켓과 연동해서 '100년정도의 수명을 지닌 언데드 짐꾼 팝니다.'라는 제목으로 판매글을 올리긴 했다. 하지만 전이술식을 전개할 그 어떤 기반도 갖춰져 있지 않은 나는 정규 택배 함선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는데 지구에도 오지 않았던 정규 택배 함선은 수왕성에도 오지 않았다.

지구는 너무 멀어서 못오고 수왕성은 아직 디파일러 교전 가능성이 존재하는 위험지역이라서 오지 않는단다.

자주방위 능력을 갖춘 일부 교역함이 이솔다 공주와 거래하기 위해 온적은 있었다. 허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위험을 무릅쓰는 대가로 수왕성의 풍부한 수자원과 진주같은 귀금속류를 대량으로 취급하기 위해서 온것일뿐. 달랑 짐꾼 두기는 그들 눈에 안중에도 없을것이다.

언데드 짐꾼의 유용성과는 별개로 디파일러 교전 가능성이 존재하는 수왕성에서 직거래만 가능하다는 글을 보고 과연 누가 찾아와줄련지... 답도없다. 그냥 고래고기나 먹으러가자. 나는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로 내 전담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을 호출했다.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을 플레이 하다가 용린혁 가주님에 의해 실버 스케일에 워프 된지도 한달째였지만 여전히 함선 내부의 길은 내게 미로와 같았다.

*    *    *    *

"자 그러면 앞으로 아이스 바운드로 향하는 육지경로를 디파일러들로 부터 든든하게 지켜줄 방벽 빙린장성 완공식에 와주신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본 완공식을 진행할 사회자인 연단철 대위라고 합니다.

빙린장성은 동해용궁 커뮤니티의 공식 건축물로 지정되어 커뮤니티 레벨을 올려준것은 물론 건설 과정에서 동고동락한 인어족 자경대원과 은린선의 병사들간의 친분을 두텁게 다지는 부수적 효과도 있었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사회자 자리에 올라선 연단철 대위의 연설이 고등학교 시절 학업우수상을 수여하기 위해 나를 조회대 앞으로 부른 교장선생님의 지옥훈화를 떠올리게 했다. 가까이에서 큼지막하게 썰린 고래 고기가 직화로 익어가는데 간부랍시고 맨앞에서 정자세를 취해야하는게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연대위님 사람 한번 살리는셈 치고 연설은 거기까지만 합시다.

"많은 분들의 눈총이 따가워지고 있는 관계로 완공식 마지막 이벤트로 빙린장성의 마지막 벽돌을 발두인 함장님과 이솔다 공주님께서 함께 올리기로 하겠습니다."

벽돌이라면 대형냉장고만한 대 디파일러 벽돌을 말하는건 아니겠지? 초등학생 또래로 보이는 발두인 함장과 전형적인 술사인 이솔다 공주에게 그런 이벤트를 준비했을리가. 아니나 다를까 발두인 함장과 이솔다 공주가 맞들고 있는 벽돌은 빙린장성의 계단에 사용될 벽돌이였다.

빙린장성으로 막아야할 대상이 거대괴수인거지 빙린장성에 오르는 사람이 거대괴수인것은 아니니 계단용 벽돌은 디지털 카메라 정도의 크기에 불과했다.

"발두인 함장, 동해용궁의 지도자로서 아이스 바운드에 살고있는 인어족들의 안전을 위해 빙린장성을 건설하는데 노동력과 자본을 아끼지않고 힘써주신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이솔다 공주님. 가디언 커뮤니티로서 이 정도는 기본이죠. 사실 동해용궁의 커뮤니티 레벨이 이솔다 공주님이 친히 사흉신교의 무법자들과 전투를 벌이신 뒤 한 단계, 빙린장성을 완공하고 나서 두 단계 오른 덕분에 실버 스케일도 적지않은 상여금을 VOT 시스템으로부터 받았습니다.

툭까놓고 말해 대 디파일러 벽돌값은 벌고도 더 남은 상황입니다.

노동력의 경우 물론 실버 스케일 소속의 장병들이 정말 많은 고생을 했지만 인어족 자경대원분들도 적지않은 도움을 주셨으니까요. 결정적으로 옥사건 준위의 외눈박이 거인들이 기중기로도 하기 힘든 일을 척척 해준 덕분에 고생을 많이 덜었습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인어족으로서 은혜를 잊어서는 아니되지요. 이제 동해용궁 커뮤니티가 정식으로 상인 커뮤니티에 해산물과 진주를 납품하게 되었으니 빙린장성 건설비용의 반을 동해용궁측에서 분할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솔다 공주님의 생각이 그렇다면 제가 마다할 이유는 없지요. 사실 실버코인 본가에 계신 어머니께 계속해서 VP를 갖다쓰는것도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였습니다. 어머니께서는 VP가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만... 제 나이도 어느새 12살이 되었는데 어머니께 응석만 부리고 있어선 곤란하니까요."

"그...그렇군요. 이제 막 석방된 알트렙군이 그 의젓함을 본받았으면 합니다. 자 그러면 실버 스케일의 장병분들과 상인 커뮤니티분들은 저희 동해용궁측에서 음식이 남을지언정 모자라지는 않게 넉넉히 만찬을 준비했으니 허리띠를 풀고 술과 함께 이 연회를 마음껏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여기있는 고래고기 다 먹을거야! 간부답지 않은 촐싹맞은 걸음걸이로 나는 직화로 구워지고 있는 고래고기가 있는곳으로 향했다. 그런 내 옆을 티베타르 원사가 짧은 다리로 열심히 쫓아오고 있었다.

"거 술사양반 설마 술도 없이 이 귀한 고기를 먹으려고 한건 아니겠지?"

"음 그게 이 육체는 아무리 독한 술을 먹어도 아마 안취할걸요? 하지만 오늘은 저희가 피땀흘려 건설한 빙린장성이 완공된 기념비적인 날이니 티베타르 원사님이 따라주신다면 깔끔하게 원샷으로 마셔보이겠습니다."

"뭐? 아무리 독한 술을 마셔도 취하질 않는다고? 나참 허세도 좀 현실성있게 부려야지. 술사양반이 농이 좀 지나치구만. 어디 한번 드럼째로 포두주를 마시고 나서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지 봐야겠어."

"하하 드럼째로 마시는것도 좋지만 이 귀한 고래 고기를 먹게되었으니 일단 한 점 맛을보고 포도주로 가볍게 입가심을 하는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보니 내가 이 곳으로 꽁지가 빠질세라 달려온것도 바로 이 고래 고기때문이였는데 주객이 전도될뻔 했군 그래. 어디 한번 맛을..."

티베타르 원사가 바삭하게 구워진 고래 고기를 크게 뜯어 입안으로 가져가는 순간 내 팔목에 자리잡은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가 빛을 토해냈다. 뭐야 뜬금없이? 용린은리 사저가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사저는 안중에도 없이 고래 고기를 먹으러 뛰어갔다고 꾸짖는 메시지라도 보낸건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를 주시하고 있는건 나뿐만이 아니였다. 발두인 함장을 위시한 실버 스케일의 간부들은 물론 이솔다 공주도 VOT 단말기에서 시선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단체 메시지를 받은 모양인데 도대체 무슨?

-동해용궁 커뮤니티 및  동해용궁의 가디언 커뮤니티인 실버 스케일에 알립니다. 동해용궁 커뮤니티 소속자가 전생유적(前生遺跡)을 발견하였습니다. 발견시점으로 부터 30일 동안 전생유적(前生遺跡)의 탐색권한은 동해용궁 커뮤니티의 지도자만이 부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옆에서 해당 메시지를 확인하고 고래 고기를 내려놓은 티베타르 원사가 골치아픈 표정으로 혼잣말을 읋조렸다. 뭐랄까 저번에도 이런 상황 있지 않았어?

"하필이면 이 시기에 전생유적이 발견되다니 과연 복이될지 흉이될지 알 수 없구만. 술사 양반 간부들한테 연회는 물건너 갔수다. 곧 집합 명령이 떨어질테니 준비하쇼."

티베타르 원사의 말이 떨어지고 얼마안가 발두인 함장으로부터 브리핑 룸에 집합하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니 전생유적(前生遺跡) 도대체 뭔데 이렇게 노릇노릇 구워진 고래 고기를 포기해야하는거냐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