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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동물유전정보학 수업이 진행중인 강의실에서 교수님이 타고난 열정으로 명강의를 펼치고 있었다. 아주 바람직한 모습이긴 했지만... 본래 수업종료시간인 2시 45분을 지나 3시에 가까워지는 가운데 도저히 끝날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게 문제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가방을 챙겨서 오리걸음으로 강의실을 빠져나갈 준비를 했다.
뒤뚱뒤뚱
강의실 출입문이라는 고지를 눈앞에 둔 나는 허벅지가 아려오는 고통을 인내하며 오리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허나 강의실 밖 복도를 몇 걸음 남겨두고 교수님이 나를 호명한다. 동물유전정보학 수업을 수강중인 수십명의 학우들이 내게 시선을 집중하게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였다. 아 쪽팔려 차라리 그냥 당당하게 걸어서 나갈걸.
"김사건군 수업종료시간이 지나면 학생은 당당하게 강의실을 빠져나갈 권리가 있다네. 이건 학칙으로 정해져 있는거라서 교수라고 뭐라 할 수 없는 부분이지. 즉 내가 학생들을 수업종료시간이 지나서 붙잡고 있는건 강제가 아니라 부탁이라네. 그러니 자신의 허벅지를 그렇게 혹사시키진 말아주게나. 내가 미안해지지 않는가."
"옙!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VOT 온라인에서야 여기저기 깽판을 아니 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다녔던 나였지만 현실에서 까지 그렇게 철면피는 아니였다. 오히려 그 반대랄까? 안그래도 생명공학 분야의 최고봉 저널인 케루빔에 '심근세포 분석을 통한 피부재생력 강화'라는 주제로 논문을 실은 일로 생명공학과 학생들 중 신입생이나 복학생 할것없이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 와중에 교수님 몰래 오리걸음으로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내 모습을 다른 학우들에게 들켰으니 다가가기 힘든 외곬수 천재 생명공학도에게 그런 인간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어필해서 인기도가 주욱 올라갈리가 있냐!
어찌됬든 주목받는건 사양이였다! 나는 그 길로 한달음에 학교 캠퍼스를 가로질러 내 자취방 근처에 있는 편의점을 향했다. 그리고 바나나 삶은 계란 초코바 이 세가지를 모조리 쓸어 담았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였기 때문에 단발 머리를한 알바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27,250원입니다. 봉지드릴까요?"
라는 사무적인 말로 응수했다.
요즘 지구에 있는 본체의 육체 단련이 부쩍 물이 올라서 이 정도는 먹어줘야만 했다. 알고보니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를 이용해서 자세교정을 할 수 있는건 팔굽혀펴기만이 아니였다. 동작 레코딩 파일만 있으면 다른 자세도 얼마든지 스파르타 방식으로 자세교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 때문에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은 무공의 초식이나 체술을 익히려하는 수련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핫한 수련 장비였다. 백신 마켓 메인 페이지에 올라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겠지. 심지어 용린춘 장로도 개인 선실에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을 하나 장만해두고 있었고 용린검가 본단에서도 3대 제자들에게 초식의 형을 잡아줄때 주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런고로 나는 용린춘 장로에게서 방벽 건설작업이 끝나고 직접 사사를 받는게 아니라 용린춘 장로가 레코딩한 동작 파일을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에 받아서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에 동기화 시키는 방식으로 수련을 하게 된것이다. 물론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로 잡아줄 수 있는건 어디까지나 무공 초식의 형과 체술의 동작이였으므로 내력을 운용하는 묘리까지는 교정해줄 수 없다.
후우후우 정문쪽 강의실에서 후문에 있는 자취방까지 5분만에 주파했네. 확실히 체력이 많이 좋아졌단 말이야.
-LPTM 시스템이 사용자 인증단계를 수행중입니다(1/3)
-LPTM 시스템이 사용자 인증단계를 수행중입니다(2/3)
-LPTM 시스템이 사용자 인증단계를 수행중입니다(3/3)
나는 편의점에서 거의 싹슬이하다시피 챙겨온 바나나 삶은계란 초코바들을 냉장고에 가지런히 정렬한 후 알몸으로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안에 입수했다. 용린춘 장로는 무공이됬든 체술이됬든 결국 내력을 운용하는 묘리를 적용하지 않으면 결국 껍데기에 불과하니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를 너무 맹신하지 말라고 했었다.
하지만 내가 용린춘 장로가 가르쳐준 무공과 체술에 열과 성을 다해 매진하는데에는 단순히 강해지는데에만 목적이 있는게 아니였다. 그 무엇보다 내게 동기부여를 해주는 대상은 바로 나의 식스팩이였다. 맨날 캡슐에 누워서 VOTO(Vaccine Of Things Online)만 하면서 치킨만 먹다보니 내 몸매는 마른비만의 문턱에서 단 한발자국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하지만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 구입하고 단련을 한지 한달째 나는 스타 헬스 트레이너들이 입이 닳도록 떠들던 '한달만에 몸짱되기!'라는 목표를 완수한것이다.
-동작 레코딩 파일을 선택해주세요.(DEFALUT: 스탠다드 팔굽혀펴기)
-스탠다드 팔굽혀펴기.rcd(1/3)
-춘장로의 용린정권(자작 무공+불펌 금지).rcd(2/3)
-춘장로의 용린연환퇴(자작 무공+불펌 금지).rcd(3/3)
나는 가장 먼저 스탠다드 팔굽혀펴기 10회 1세트를 시작했다. 옛날에는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가 내 근섬유를 한땀 한땀 모두 짜낼때까지 팔굽혀펴기를 시키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됬었는데 요즘에는 달랑 10회만으로 끝났다.
물론 그 팔굽혀펴기 10회도 절대 쉬운 일은 아니였다.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가 산소 융화 중수의 밀도를 조정해 지구의 2배 중력이 작용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였다.
170cm에 58kg이였던 나는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 안에서 지방은 태우고 근육은 찌우는 과정에서 60kg이 됬다. 지구의 2배 중력이라 함은 내 근력량은 동일한데 몸무게는 120kg으로 늘어 났다는 소리였다. 한 마디로 팔굽혀펴기 한번이 더럽게 힘들어졌다는 소리였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이 팔굽혀펴기 자세는 엄격히 따지지만 속도는 규제하지 않다는 점이였다.
팔굽혀펴기는 언뜻보면 팔근육만을 단련하는것 같지만 사실 전신 운동에 가까웠다. 괜히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이 팔굽혀펴기를 디폴트 동작 레코딩으로 설정해둔게 아니였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자세로 이루어지는 팔굽혀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이상적인 육체 단련법인지를 나는 하루가 다르게 체감하고 있었다.
전신의 근육이 부들부들 떨리는 가운데 나는 팔굽혀펴기 마지막 1회를 남겨두고 있었다. 내려갈때 수영장 올라갈때 헌팅. 필살 구호를 외치며 아자차차차차!
-스탠다드 팔굽혀펴기.rcd 1세트 완료(10/10)
-춘장로의 용린정권(자작 무공+불펌 금지).rcd 1세트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숨좀 돌리자 인석아. 나는 쓰러지듯 LPTM 캡슐 바닥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용린춘 장로는 내력 운용의 공부가 병행되지 않는 육체 단련은 결국 벽에 부딪힌다고 말했다. 허나 역으로 육체 단련이 병행되지 않는 내력 운용의 공부 또한 벽을 넘다가 자신이 딛고 있는 기반이 무너지는 사태를 초래한다고 한다.
용린춘 장로도 그렇게 말했거니와 나 또한 무협지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용린춘 장로에게 용린기공이라는 내력 축적법을 전수받았다. 내가 요청했던데로 용린기공은 정말 쉽고 단순해서 초등학생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만한 묘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허나 쉽고 단순한 만큼 내력 축적의 속도는 극악하다 못해 암울했는데 이론상 1갑자에 100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단다.
거기다 이 속도는 검림성의 대기에 존재하는 마력 입자 농도를 기준으로 한거고 지구의 마력 입자 농도 아래에선 몇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였다. 그리하여 백신 마켓에서 마력 입자 농도 측정기를 큰 맘먹고 전이 비용 포함 1000VP를 주고 구입한 나는 마력 입자 농도 제로라는 경악할만한 결과를 확인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지구는 마력 원천이 없는 비루한 행성이였던 것이다.
언감생심 의외로 지구의 마력 입자 농도가 높아서 빠른 성취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은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렸다. 백신 마켓에서 구입한 영약따위를 이용해서 내력을 축적할 수 는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한들 내력이 총알처럼 소모품 취급을 받게 된다면 어디 아까워서 무공을 시연해볼 수 나 있겠는가? 소모된 내력을 충전하기 위해서 비싼 영약을 사먹어야 하다니 생각만해도 지갑이 쪼들린다.
후우 휴식은 여기까지 하고 용린정권이나 연습해볼까.
-춘장로의 용린정권(자작 무공+불펌 금지).rcd 1세트를 시작(0/10)
전기 에너지를 마력 입자로 환원시키는 장치가 백신 마켓에 있긴 했지만 전기 요금 누진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지나친 전기 사용기록을 보고 주인아주머니가 자취방에 방문했을때 LPTM 캡슐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였다.
하여튼 수왕성에서 살아가는 옥사건일때나 생명공학도로 살아가는 김사건일때나 돈이 문제인것 이다. 돈이.
나는 시름을 날려버리듯이 골반의 회전을 신체축에 실어 종국에는 주먹으로 내뻗었다. 내가 요청했던대로 용린정권 또한 초등학생이라도 따라할 수 있을만한 동작이 초식의 형을 담당하고 있었다. 허나 용린춘 장로가 말하길 부지런히 용린정권을 익히다보면 상상이상의 파괴력을 낼 수 있다고 한다. 용린정권의 단 한가지 동작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몸에 익히면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주먹이 나간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경지에서 더 나아가 어느순간 정권을 내지른다는 개념자체가 머릿속에서 사라지면 무아지경에 올라 태산을 주먹으로 날려버릴 수 있다고 한다. 뭐 솔직히 말해서 무아지경처럼 뜬구름 잡는 경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어디가서 얻어터지고 다니지는 않을 만큼 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용린정권의 골자인 골반의 회전을 주먹에 실는다는 묘리는 사실 단순한 일이 아니다. 오랜 연습끝에 체득할 수 있는 리듬감이 아니면 골반과 주먹이 따로놀기 십상이다.
-춘장로의 용린정권(자작 무공+불펌 금지).rcd 1세트를 완료(10/10)
처음 용린정권을 수련할때는 얼마나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이 나를 갈구던지. 동작을 틀렸을때 부과된 산수 융화 중수의 밀도 상승이 쌓이고 쌓여 나는 지구 중력의 3배가 적용되는 환경에서 정권을 질러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야말로 뼈와 살이 분리되는 느낌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정권을 내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스파르타 방식이 비신사적이긴 해도 효과면에서는 탁월하기 그지없었다.
군대에 있을때 그 흔한 태권도도 해보지 못했던 내가 어느새 제법 그럴듯한 정권을 10번이나 내지를 수 있게 된것이다. 그것도 지구 중력의 2배가 적용되는 환경에서 말이다. 수련도중에는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의 강압적인 방식에 계속해서 욕이 나올 수 밖에 없지만 기초수련이 끝나고 나면 부쩍 성장한 자신의 모습에 괜히 LPTM 캡슐이 잘팔리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춘장로의 용린연환각(자작 무공+불펌 금지).rcd 1세트를 시작하시겠습니까?
그래, 이번에는 쉬지 말고 이어서 가보자. 용린연환각은 용린춘 장로가 수인들의 체술에서 착안한 무공으로 내공으로서도 휼륭한 무공이지만 외공으로서도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용린춘 장로가 내게 추천한 무공이였다. 총 3초식으로 나뉘어진 이 각법은 각각의 초식이 다른 그 어떤 초식과도 연결될 수 있어 단 3개의 초식으로 무궁무진한 변화를 줄 수 있는 그런 각법이였다.
허나 그런 변화무쌍한 모습을 지닌만큼 각각의 초식을 연계 하는법을 익히기란 쉽지 않았고 이제 겨우 3개의 초식을 각각 독립적으로 구사하는법을 몸에 익혔을 뿐이다.
총 3세트를 완료하고 나서야 나는 LPTM 캡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땀이야 산소 융화 중수가 모두 흡수했지만 튀어나올듯 벌렁거리는 심장과 붉게 달아오른 신체가 격렬했던 육체 단련의 증표가 되어주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다리근육을 간신히 움직여 냉장고에 도착한 나는 처음에 사은품으로 받은 적하수오환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이차로 주문한 적하수오환을 나는 두 알씩 까먹었다.
그 후 미리 편의점에서 구입해뒀던 바나나 삶은 달걀 초코바를 게눈 감추듯 해치워 버리고 나서야 나는 허기짐을 달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