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39화 (39/599)

0039 / 0316 ----------------------------------------------

vol.1 Oxogan The Little Mermaid

눈을 떠보니 병실의 천장이였다는 상투적인 전개가 내게 펼쳐졌다. 아무리 얼티밋 언데드 폼의 육체를 지니고 있는 나라고 해도 고통조차 면역인것 은 아니였다. 용린은리 사저가 혼돈결계를 파쇄할 목적으로  날린 검기가 내 복부를 장기와 함께 두쪽으로 나눠버리는 고통에 나는 혼절해 버렸던 것이다.

척추에 박아 넣었던 언옥타늄 재질의 철심이 아니였다면 나는 장기가 갈리는것에 끝나지 않고 정말로 깔끔하게 이등분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실버 스케일의 의무실로 짐작되는 장소에서 내가 눈을 떴을때 내 육체 자체는 이미 월등한 재생력으로 원상복구 되어 있었다. 하지만 자존심의 상처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물론 용린은리 사저가 검기를 날린 타이밍이 공교로웠고 누구도 나를 보고 왜 고작 용린은리 사저의 검기 한방을 맞고 나가떨어졌나고 뭐라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사흉신교의 무법자들로 구성된 4인 1조를 상대로 두명을 죽이고 남은 두명은 패퇴시켰다는 사실에 발두인 함장은 물론 용린춘 장로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내 머리 속에는

'부질없는 희망의 씨앗을 심진 말아줘'

라고 말했던 궁기련의 마지막 말이 맴돌았다.

지금의 나는 역시 사흉신교를 박살낼만큼 강하진 않은건가? VOT 온라인에서 아크 리퍼(Arc Reaper)란 이름으로 한창 명성을 날릴때 천외천으로만 구성된 10인의 레이드 파티와 네임드 보스 몬스터를 두고 갈등을 빚은적이 있었다. 내가 네임드 보스 몬스터를 잡고나면 어찌된 일인지 네임드 보스 몬스터가 다시 리젠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소울 스톤에 네임드 보스 몬스터의 영혼을 봉인했기 때문에 다시 리젠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네임드 보스 몬스터는 데이터 덩어리가 아니였으므로 복사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누가 뭐라해도 게임상의 컨텐츠는 어차피 유저들간의 경쟁 목표일뿐이다.

당연히 다른 유저를 위해서 경쟁 목표를 양보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결국 천외천으로만 구성된 10인의 레이드 파티와 맞붙었고 압승했다. 뿐만 아니라 만명정도 되는 길드원을 이끄는 천외천 길드장이 꿀 사냥터를 독점하고 있길래 대놓고 길드로 쳐들어가서 만명의 길드원들과 함께 방호시설을 갖춘 길드 건물을 개박살 낸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검기 한방에 만신창이가 되버리는 꼬라지라니."

"그래서 내가 미안하다고 계속 말하잖아! 나라고 내가 검기를 날리는 순간 혼돈결계가 이미 파쇄되고 있는 상태였을지 알았겠냐고! 도대체 언제까지 꽁해 있을건데?"

"용린은리 사저가 가슴 만지게 해줄때까지요."

"미친놈. 혁 할아버지가 쓸만한 술사놈좀 보내달라고 했더니 무슨 색마놈을 보내왔잖아."

"쓸만한 술사였으면 예의 그 검기로 비명횡사했을걸요? "

"정말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나 않지. 내가 잘못한 부분인 인정하지만 니 인생에서 그런 호사는 다시 없을줄 알아! 나중에 장가가서 니 마누라 궁둥이나 긁어. 이미 임자있는 사람한테 추근덕 거리자말고."

"에엑? 사저한테 임자가 있었어요?"

"그래 머리가 파뿌리가 될때까지 함깨한다고 약속한 이 검이 내 임자다, 임마."

"아아... 혹시 그러면 밤일도 그 검이... 크허억!"

용린은리 사저는 내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복부에서 창자를 토해내는 중상으로 병상에 누워 있었던 사람이라는걸 망각한듯 멱살을 잡아끌어 검끝을 내 입속으로 밀어넣었다. 혀에 닿은 금속의 감촉이 소름끼치게 차가웠다.

"야 옥사건 지금 내 남자친구인 용린검이 한번만 더 내 여자친구한테 추근덕거리면 니 이빨을 숫돌삼아서 칼갈이를 하겠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우우우웁 우와우 후우우우... 남자대 남자로 용린은리 사저를 두고 한판 뜨자고 전해주십쇼. 쫄리면 뒤지시던가라는 말도 꼭 덧붙여 주시구요."

"아 그래? 용린검은 뭐 길게 끌거없이 지금 당장 끝장을 보자는데?"

"아 선객이 있었군요 잠시 후에 오겠습니다."

용린은리 사저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남자친구인 용린검을 내 목젖에 겨누고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다름아닌 아이스 바운드에 있는 모든 인어들의 지도자이자 인어소년 알트렙 구하기 작전에 나와 동행했던 이솔다 공주였다.

용린은리 사저도 이솔다 공주앞에서 칼부림을 일으킬 생각은 없는 재빨리 일어나 가볍게 예를 취했다.

"이솔다 공주님을 뵙습니다. 금방 일어나려던 참이니 오셔서 볼일을 보시지요. 야 옥사건 가기전에 혹시나 싶어서 말해두는건데 이번 사흉신교의 인질극 사태에서 네 공로가 크다는건 알지만 그걸 빌미로 이솔다 공주님께 예의에 어긋나는 짓을 했다간..."

용린은리 사저가 이솔다 공주는 볼 수 없는 각도에서 내 고간 부근을 칼로 긋는 제스쳐를 취했다. 단순히 손동작뿐인데도 정말로 거기가 잘려나가는듯한 살벌한 느낌에 나는 양손으로 거기를 가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강렬한 경고를 남기고 용린은리 사저는 실버 스케일의 의무실을 빠져나갔다.

뒤이어 의무실의 빈자리를 이솔다 공주가 채우며 조심스럽게 바나나처럼 생긴 과일다발을 내게 내밀었다.

"별거아닙니다만 병문안에 빈손으로 오는것도 예의가 아닌듯하여 챙겨왔습니다. 마우즈라고 하는 과일인데 달고 부드러워 인어족 아이들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바쁘실텐데 먼 발걸음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우즈라는 과일은 제 모행성에서 자라는 바나나랑 매우 흡사하군요. 모행성에 있을때도 바나나라면 사족을 못썻는데 잘 먹도록 하겠습니다."

"옥사건 준위 어떻게 몸은 좀 나아지셨습니까?"

"흐음 이건 저랑 이솔다 공주님 둘만 있으니 드리는 말씁입니다만 툭까놓고 말해서 제가 지금 이 병상에 누워 있는건 그 도철광을 위시한 사흉신교의 무법자들때문이 아니라 용린은리 사저때문입니다. 도올명이라는 자를 쓰러트리고 궁기련과 혼돈술사를 패퇴시킬때까지만 하더라도 저 완전 멀정했거든요."

"푸훗 아 이런 죄송합니다. 웃을일이 아닌데 과연 사흉신교의 무법자들이 용린은리 소령이 근처에 오기만 하면 알트렙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 이유가 있었군요. 용린은리 소령이 보통의 검사가 아니라는것쯤은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줄은 몰랐습니다. 빨리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인어족을 대표해서 알트렙군을 구출하는데 몸을 사리지 않고 분투해주신점에 대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별말씀을 이솔다 공주님이야말로 마력 과부하 상태까지 겪으면서 분투해주셨는걸요."

"결국 도철광을 쓰러트린건 옥사건 준위였지만 말이죠."

"이솔다 공주님의 빙결술식을 막아내느라 도철광의 호신강기가 약해진 틈이 아니였다면 제 블랙탈론이 도철광의 목을 꿰뚫진 못했을겁니다."

"저 혹시 옥사건 준위가 처음부터 언데드 크리쳐를 소환하지 않았던건 제가 활약할 틈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나요?"

"제가 누군가에게 활약할 틈을 만들어주기 위해 구태여 수고를 사는 타입으로 보이시나요? 절대 아닙니다. 수왕성에 넘어오고 나서 디파일러 폰 2개 중대 병력정도를 상대해본 경험은 있지만 저도 소수정예로 구성된 파티를 상대하는건 처음이였습니다. 제 자신의 힘을 과신해서 제가 지닌 모든 카드를 공개할만한 상황은 절대 아니였다는 거죠.

상대가 무슨 카드를 지녔는지 모르고 자신의 전력을 드러내는 우를 범해 자멸한 휼륭한 예시를 도철광이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상대는 굉장히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파티였고 2명 있을때 3명 있을때 4명 있을때 각각 천차만별의 전투조직력을 보여줬을 겁니다. 도철광이라고 하는 말썽장이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각개격파를 할 수 있었죠. 말이 4명중 1명이지 사흉신교 4인 파티에서 2인자의 힘을 지니고 있었던 도철광의 부재는 본래 사흉신교 4인 파티의 전력을 반감시켰을 겁니다.

즉 이솔다 공주님의 활약은 예의 전투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는 별개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셈이지요. 처음부터 언데드 크리쳐들을 소환해서 상대가 저희를 경시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대응했다면 예의 전투 정말 힘들어졌을 겁니다."

"옥사건 준위는 전투 경험이 용린은리 소령 못지않게 풍부한 모양이군요. 저는 눈앞의 적을 상대하는것에 벅차서 그런 부분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인어족을 이끌고 많은 전투를 주도해나가야할 리더로서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아니뭐 그렇게까지 금칠을 해주시니 제가 너무 부끄럽네요. 그냥 이 수왕성에 넘어오기 전에 제가 하도 여기저기 쌈질을 하고 다녀서 말이죠. 다대일 다대다 다대소 안해본 전투가 없을 정도거든요."

비록 VOT 온라인에서의 전투를 나는 게임으로 인식했지만 그 전투경험이 현실에서 아예 도움이 되지 않는것은 아니였다. 어쩌면 VOT 시스템을 만든 장본인은 대인전투능력이 극히 떨어지는것은 물론 전투경험 자체가 부족한 지구인들을 위해 사전경험을 시켜주기 위해 VOT 온라인을 만들걸지도 모르지.

설사 강력한 신체능력을 지닌 아바타를 부여받는다고 해도 전투경험이 없으면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도철광의 경우만봐도 지닌 힘에 비해 어이없이 죽지 않았는가? 물론 이 경우 도철광의 성격이 그러한 사태를 야기한 주범이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경험부족도 한 몫 했으리라는게 내 생각이다.

이제 깝죽대다가 크게 한번 데였으니까 앞으로는 안그러겠지. 즉 다음에 도철광을 만났을때는 새치혀로 도발시켜서 빈틈을 유도하는게 아니라 진짜 압도적인 힘을키워서 찍어눌러야 한다는 소리다. 사실 지금 내가 병상에 누워있긴 하지만 몸자체는 아주 멀쩡하다 못해 쌩쌩하기 그지없었다.

슬슬 훌훌털고 일어나서 방벽 건설 작업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용린춘 장로한테 부탁했었던 체술과 무공도 배워야지. 뿐만 아니라 발두인 함장으로부터 미리 받은 3달치 월급과 도철광 도올명이 죽으면서 남긴 현상금과 시체도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고민해야만 한다.

한동안은 완전 바쁘겠구만. 이러다 또 다시 전공과목들 다 F받는거 아니야?

"그러고보니 알트렙은 왜 경계수역을 벗어났다고 합니까?"

"그...그게 외눈박이 거인 아저씨한테 밥을 차려주겠다고 고래를 잡으러 나갔답니다."

"고래요? 아아 수왕성에서는 고래가 꽤 흔한 모양이지요? 제 모행성에서는 멸종위기인지라 보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데 고래를 잡으러 나갔다니 참 어린애 다운 발상이군요. 인어족이 타고난 바다 사냥꾼이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알트렙 또래의 인어족도 고래를 잡을 수 있습니까?"

"예의 무인도에서 조금만 더 나가면 심심치않게 꽤 많은 고래 무리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만 최소 자경 대원 1개 분대는 달라붙어야 사냥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튼 동기가 어찌됬든 제 명령을 어긴 알트렙은 태형 15대와 징역 1개월을 선고 받았습니다. 옥사건 준위는 물론 은린선 여러분께도 많은 심려를 끼친 죄가 있지만 나이가 어려 감형된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뇨. 이번 전투에서는 저도 나름 수확이 있었으니까요. 역시 최고의 훈련은 실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긴장감없이 벽돌만 나르다보니 제가 지닌 힘이 어느정도인지 실감을 못했었거든요. 이번 기회에 스스로의 힘을 다듬어서 다음에 도철광을 만나면 입도 뻥끗 못하게 찍어눌러 줘야죠."

"저도 이번 기회에 스스로의 부족함을 통감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옥사건 준위의 언데드들을 상대로 저희 인어족 자경대원들이 모의전투를 할 수 있게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공짜로 해달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지금 당장 해달라는것도 아니고요.

현재 옥사건 준위가 매진하고 있는 방벽 건설작업이 끝나고 나면 모의전투 한 번당 1000VP를 지불하는 뱡향으로 정식으로 계약하고 싶습니다."

"조금 매정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선불입니까?"

"물론 선불입니다. 이게 전화위복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사흉신교의 무법자들과의 싸움에서 VOT 시스템이 제 전투력 평가를 재갱신 하면서 동해용궁 커뮤니티 레벨이 올라갔습니다. 그 덕분에 유명 상인 커뮤니티와 수산물 및 진주 거래의 물꼬를 틀 수 있었습니다. 이제 아이스바운드의 인어족들이 믿고 거래를 맡길 수 있을만큼의 자주방위력을 갖췄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겠지요.

계약금도 받았겠다 이제는 발두인 함장에게 진 빚도 어느정도는 갚을 수 있을것 같습니다. 물론 옥사건 준위가 요구한 선불도 문제 없구요."

"제 한달치 월급을 모의전투 한번에 선불로 주신다는데 저야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미룰것 없이 지금 당장 계약서 씁시다. 이솔다 공주님 나중에 딴소리 하기 없습니다."

"제가 할말입니다. 옥사건 준위."

이솔다 공주가 이번에 상인들에게 배웠다는 VOT 단말기의 홀로그램 계약서를 허공에 출력했다. 딱히 이 홀로그램 계약서에 강제력이 있는것은 아니였지만 VOT 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되어 절대 소실될 일이 없는 계약서였다. 뭐 이솔다 공주와 나 사이에 오리발 내밀 일이 있을리도 없거니와 나는 호쾌하게 옥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서명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