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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 Oxogan The Little Mermaid
인간의 오욕칠정따위야 통닭앞에선 다 부질없는 것이다. 적절하게 소금간이 베인 닭의 육질이 입안에서 살살 녹고 있었다. 게다가 연애경험 제로인 내 코가 석자인데 누구 연애사를 돕는단 말인가? 나는 아야사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닭고기 한점 제대로 먹지 못하는 후배를 나몰라라 했다. 통닭앞에선 선후배도 없다. 긴장해라 내가 여기 있는 소금구이통닭 다 먹을꺼니까. 빈말이 아니라 아야사도 몇 점 먹더니 이내 포크를 놓아버렸기 때문에 정말로 나는 소금구이통닭 한마리를 다먹게 생겼다.
"사건은 정말 잘먹는구나. 한국에선 이런걸 두고 정말 복스럽게 먹는다고 하지? 한 마리 더시켜줄까?"
"어, 시켜줘. 이번엔 숯불양념으로."
"사건 선배 얻어먹는 입장에서 너무 당당한거 아니에요? 아무리 그래도 남자 두명이서 여자한테 두 마리 다 얻어먹는건 좀 그러니까 숯불양념통닭은 제가 살게요."
"흑묘백묘! 네가 사던 저녀석이 사던 통닭의 맛은 불변! 나는 닭고기 한점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울테니 계산서가 나오면 너희 둘이 알아서 해결보도록."
나를 질린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우레를 깔금하게 무시한 나는 이번엔 숯불양념통닭을 탐식하기 시작했다. 아 이 맛있게 매운 양념은 밥이랑 같이 비벼 먹어야 하는데. 이모 여기 공기밥하나 추가요! 우레가 책망한느 목소리로 나를 만류했지만 나는 '공기밥은 내 돈으로 살거야'라고 말하며 일축시켰다. 이걸로 든든하게 챙겨먹으면 저녁 밥값도 굳게 되는것이다. 그렇게 예상외로 점심시간이 길어지자 우레가 동아리 예산책정 회의가 있다고 양해를 구하며 먼저 테이블에서 일어 났다.
워낙 책임감이 투철한 우레였기에 맘에 드는 여성을 앞에 두고도 학생회 일을 하러간것은 물론 몇점 먹지도 않은 숯불양념통닭 값을 제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나선것이다. 어느새 산더미같았던 숯불양념통닭이 바닥을 보이자 아야사가 기다렸다는듯이 운을 떼었다.
"내가 전에 말했던 크로스데일 한국 지점 입사건은 생각해봤어?"
"아니 그냥 내 인생 즐기느라 바빴는데?"
"휴학한 1년동안 도대체 뭘한거야? 개인적으로 연구 프로젝트라도 진행한거야?"
"아니 게임했는데. 공부할거면 학교다니면서 하지 뭐하러 휴학중에 공부를 해. 학과 공부에 뒤쳐지고 있던것도 아니였는데."
"학과 공부에 뒤쳐지고 있지 않는 사람이 올 F을 맞아? 흐응 물론 아예 보고서 과제 중간 기말 고사를 모조리 펑크내서 그랬던거긴 하지만... 그래서 무슨 게임에 빠져서 한 학기를 완전히 망치고 일 년동안 휴학한거야? 혹시 VOT 온라인?"
"당연한걸 뭘 물어. 한 사람이 인생을 걸면서까지 파고들만한 게임은 그것 밖에 없잖아."
"사건 혹시 그거알아? VOT 온라인에서 천 레벨을 달성한 사람들 중에서도 돋보적인 랭커들 천 명을 천외천이라고 부른데. 조금 우습지 않아? 그저 남들보다 특출나게 지독한 게임 폐인들일 뿐인데 그렇게 치겨세우다니 심지어 그 천외천들의 수입을 합하면 왠만한 나라의 일년 예산에 가깝다는 통계도있어."
나는 기분 좋은 포만감때문에 아야사의 질문에 적당히 응수해주다 식은땀이 흐를뻔 했다. 뭐랄까 단순히 내 착각일 수 도 있겠지만 아야사의 질문이 유도심문처럼 느껴졌다. 일부러 천외천 랭커들을 모욕해서 진짜 천외천의 일원인 내가 발끈하게 만들려는 그런 유도심문 말이다. 나는 포만감으로 늘어진 긴장의 끈을 팽팽히 부여잡고 짐짓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그냥 심플하게 수요가 있으니 가격이 오르는것 뿐이잖아. 나는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 따지면 축구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참 많지. 그러니까 유명 축구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거 아니겠어? VOT 온라인도 마찬가지야. 그 게임에 열광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천외천같은 유명랭커들의 몸값이 오르는거지.
물론 정확히 따지자면 무슨 구단같은게 있어서 그들을 영입하는건 아니라 그들이 지닌 아이템이나 스킬북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돈을 버는것 뿐이지만. 그게 그거 아니겠어?"
"흐응 사건은 천외천 유저들에 대해서 잘 아는 모양이네?"
"아니 VOT 온라인 하면서 천외천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최소한 너보다는 당연히 잘알지."
"그래도 조금은 억울한 기분이야. 평생 혼신의 힘을 다해서 공부했는데 고작 게임 폐인들 따위에게 클래스가 밀린다는건."
"배부른 소리 하지마! 일반 서민입장에서 보면 다국적 의료장비기업 회장 손녀로 태어난 너도 치트키 수준이라고!"
발끈하면 진다는걸 알면서도 나는 화가나 소리쳤다. 괜찮아. 괜찮아. 방금 대응은 굳이 내가 천외천의 일원이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화낼법한 상황이였어. 내가 크게 소리치자 주변에서 통닭을 영접중인 많은 통닭신도들이 나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이런 그 어느때보다 충직한 통닭신도였던 내가 이런 불경을 저지르다니 나는 그어느때보다 정중하게 주변 통닭신도들에게 사과했다.
"흐응 역시 다른 사람 시선에는 그렇게 보일려나? 실상은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또 재미있는 통계가 하나 더있어. 천외천들 중엔 언론에 공개된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그건 일할에 불과하고 숨겨진 천외천들이 더 많잖아? 밖에서는 위험한 오지 취재도 마다하지 않는 기자 이고 VOT 온라인에서는 위대한 탐험가라 불리우는 엔지 민슨이 그 숨겨진 천외천들이 궁금해서 이리저리 발로 뛰어 다녔다는거야.
그저 유저들의 뜬소문만을 기반으로 열심히 발품을 판 결과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천외천들중 삼할에 해당하는 유저들의 간단한 신상정보를 얻을 수 있었대. 엔지 민슨은 평소에도 집념이 대단한 언론인이였고 그 면모를 드러낸거지. 그런데 그 신상정보를 통계내서 분석한 결과 한국인이 삼할이나 됬다는거야. 물론 우연히 엔지 민슨이 추출한 표본에 한국인이 밀집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사실 표본조사에서 그정도의 오차가 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내 생각엔 엔지 민슨이 밝혀내지 못한 천외천의 일원들 중에도 한국인이 동일하게 삼할정도 섞여 있지 않을까 싶어. 설사 극단적으로 엔지 민슨이 추출한 표본에 있던 한국인이 전부였다고 해도 9푼이야. 전 세계적으로 따지면 1푼의 인구 비율을 지닌 국가가 1할에 가까운 천외천 일원을 소유하고 있다는것만 해도 범상치않은 일이지."
뭐 뭐? 3할 9푼 5리 무슨 초등학교 경시대회 문제 출제위원인가? 나는 중간부터 아야사가 뭐라고 말하든 귀를 닫고 신성한 마음가짐으로 치킨무 정화수를 마시며 통닭을 소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니까 요점은 천외천중에 유달리 한국인이 많다는 소리아니야? 이년은 그 애기를 뭘 그렇게 빙빙 돌려서 애기하는거야.
"그냥 속된말로 종특같은거 아니야? NBA 선수들 중 흑인 선수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거랑 비슷한거잖아. 그리고 아야사 네 의견에 따르면 천외천들은 그저 단순히 지독한 게임 폐인들일 뿐인데 그 게임 폐인들이 한국에 많다는게 뭐가 중요한거야?"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것일뿐 몇 해 전부터 생각 이상으로 천외천 그들의 존재가 중요해졌거든. 아무튼 내가 이렇게까지 말해줬는데 딴소리만 하는걸 보니 사건 너는 정말 푼수거나 그게 아니라면 천년 묵은 여우처럼 영악한거겠지. 나도 빙빙 돌려서 말하는건 지겨우니까 직설적으로 말하겠어. 그러니까 사건 너도 진지하게 들어.
케이스 원이야. 사건 네가 케루빔에 올린 논문 심근세포 분석을 통한 피부재생력 강화가 사건 네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 솔직히 처음 그 사실을 언론에서 들었을때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좀 심층조사를 했거든. 여기서 사건 네가 생명공학 분야에 있어서 굉장한 인재라는 사실이 도출되지. 3학년 2학기때 전과목을 F받은 기록따위는 사실 아무래도 좋은거야.
그러니까 케이스 원의 경우만 하더라도 나는 너라는 인재에 관심이 있어. 그러니까 크로스데일 한국 지점에 들어와. 네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유명 축구선수들처럼 수십억의 연봉을 줄 수 도 있고 남들이 우러러보는 직위에 앉혀줄 수 도 있어."
"너는 내가 무슨 부귀영화에 목매는 사람으로 보이니? 나는 엄연히 논리를 기반으로 진리를 추구하는것을 업으로 생각하는 공돌이라 이 말씀이야."
"그 돈이라면 아마 하루 세끼를 통닭으로 먹는것은 기본이고 네 전용 통닭 전문 쉐프를 고용할 수 도 있지. 아무리 너라도 매일 똑같은 통닭을 먹는것은 질리니까 같은 통닭에 다양한 베리에이션을 주므로써 매일 색다른 통닭을 맛보는거야."
"그...그건 좀 끌리는군. 진지하게 고려해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