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11화 (11/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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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 Oxogan The Little Mermaid

우레 덕분에 늦지않게 미세생물학 실험 강의실에 도착했고 첫 시간인지라 간단한 과목 설명과 함께 조교가 조배정을 실시했다. 우레는 다른 수업이 있어 중간에 다른 길로 빠졌고 점심을 같이 먹자는 약속을 받아갔다. 내가 아무리 팔푼이 선배처럼 느껴져도 밥정도는 알아서 해먹을 수 있어 우레야. 자취경력만 몇년인데 이 자식이 설마 후배들을 우르르 끌고 오는건 아니겠지? 나보다 학번 높은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텐데 내가 지갑 열어야하나? 더치페이 하자고 할까? 아무리 그래도 선배로서 위엄이 있는데 그럴 수 는...

나는 지갑 사정을 면밀히 살피며 같은 조원끼리의 통성명 타임에는 영혼없이 대답했다. 다들 나보다 아래 학번이어서 그런지 나를 어려워 했다. 아니지 단순히 학번이 높다고 해서 어려워 한다는건 말이 안된다. 가끔보면 우레녀석처럼 고학번 선배에게도 살갑게 구는 녀석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1년 전 케루빔에 논문을 실은걸로 떠들석했다가 다음 학기에 전과목을 F받고 휴학한것 때문에 내게 괴짜이미지 스티커가 붙여진 모양이다.

안그래도 생명공학과는 다른 학과에 비해 총 인원이 적은편이니 학생 한명이 사고를 치면 소문이 안퍼질래야 안퍼질 수 가 없다. 뭐 그렇다고 해서 같은 조원들이 선배인 나를 깔본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첫 수업이 10분만에 끝나자 깍듯이 인사를 한뒤에 강의실을 나서는 것이였다.

멋쩍게 웃으며 손을 흔덜어 같은 조원 후배들을 배웅한 나는 텅텅빈 가방을 집어 들어 자취방으로 귀환하려 했지만 누군가 대놓고 내 가방을 뒤지고 있었다.

"사건 스마트폰 말고 아무것도 담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뭐하러 가방을 들고 온거야?"

미세생물학 실험 과목의 여조교가 내게 친근하게 물어오고 있었다. 아아 그래 나는 이 여자와 일면식이 있었다. 별로 애기를 나누고 싶진 않았는데 역시나 이렇게 되버리는군. 남의 가방을 뒤지는건 좀 그만두지 그래? 내 퉁명스러운 말에도 굴하지않고 딥스카이블루 컬러의 생머리 끝이 스프링 웨이브가 진 여조교는 한술 더떠 내 스마트폰을 가방의 앞주머니에서 꺼내 조사하고 있었다.

심해의 그것과 같은 다크블루빛 눈동자에 내 통화기록창이 투영되고 있었다. 엄마 그리고 시장통닭이 서로 질세라 가득채워져 있는 통화기록창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엄지손가락을 바삐 움직인다. 이 여조교의 이름은 아야사 크로스데일로 화랑대학교에 입학할 당시부터 세계적인 의료장비회사 크로스데일의 회장 손녀라는 점과 동화 속 공주님같은 외모로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화랑대학교가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대학교이긴 하지만 전 세계적인 스케일로 따졌을때 크로스데일의 회장 손녀쯤 되면 더 많은 선택지가 있었을 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크로스데일 의료장비회사의 한국지점장으로 취임하기 위해 한국 학교에 다닌다라나 뭐라나.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더욱 유명해졌고 화랑대학교 총장님이 그녀에 관한 일에 최대한 편의를 봐주라는 암묵적인 지시를 내렸다는 소문도 있었다.

학부생 하나가 케루빔에 논문을 게재한 일정도는 그녀의 존재에 비하면 가쉽거리도 되지 못할 일이였다.

"사건의 세계에는 엄마랑 시장통닭밖에 없는 모양이네. 그런데 가장 최근에 통화했던 기록에 택배회사 번호가 찍혀 있네. 뭐 한거야?"

"내가 왜 그런 사생활을 너에게 말해줘야 되는데? 시끄럽고 빨리 가방 내놔. 점심에 후배랑 약속있으니까."

"남한테 말하기 곤란한 물건이라도 주문한 모양이지? 이를테면 오나홀이라던가."

"하아? 웃기고 있... 아니 네 말이 맞아. 요즘 밤에 적적해서 아주 최고급의 오나홀로 주문했지. 어제 테스트 해봤는데 요새 기술이 발전해서 그런지 진짜 여자랑 하는거랑 다를바 없던데?"

"흐음 그런 싸구려 실리콘 덩어리랑 동급인 진짜 여자는 누구야? 혹시 점심에 약속이 있다던 후배가 그 여자라면 밤기술 교육이 필요할것 같은데. 여자로서 남자에게 실리콘 덩어리 보다 매력적일 수 없다면 확실히 문제가 있는거야. 한국은 성적으로 너무 폐쇄되어 있다보니까 그런 문제가 종종 생기는것 같은데 싸구려 실리콘 덩어리와 동급취급을 받는 여자도 싸구려 실리콘 덩어리가 주는 쾌감에 만족하는 남자도 가엾을 따름이야."

"점심에 약속있는 후배는 남자야 이 자식아! 나를 호모로 만들셈이냐?"

나는 분을 못이겨 아야사 크로스데일에게 소리쳤다. 안그래도 여자친구 한 번 못사겨본 인생이라 서글픈데 한 순간에 나를 호모로 만들다니 억울하기 그지없다. 그녀와의 말싸움에서 이겨보고싶어 없는 오나홀까지 만들었지만 역시 본전도 찾지 못했다. 아야사 크로스데일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같은 학번의 동기들중에는 이 녀석이 단상위에서 입학생 대표 선서를 외치는 모습을 보고 그녀를 동화 속 공주님처럼 생각하며 꿈 속을 헤메는 중생들이 많았다. 허나 내가 보기엔 이 녀석은 동화속 공주가 아니라 마녀였다. 그것도 아주 악독한!

"그 점심약속 나도 끼겟어."

"최소한 내 의사를 물어보는게 예의라고 생각하지 않냐?"

"흐응 사건은 그 남자 후배랑 오붓하게 둘이서 식사하고 싶었던 모양이네. 눈치 없이 연인 사이를 훼방놓는 여자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 여기선 내가 물러설게."

"...점심은 더치페이다. 얻어먹을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지마라."

"더치페이도 좋지만 나 현금이 없는걸. 그냥 내가 카드로 결제하면 안될까? 장소는 사건이 좋아하는 시장통닭집으로 하면 되겠지?"

"나보고 지금 여자한테 얻어먹으라는거냐? 좋아 콜! 거절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샀으니 다음에는 너가 사라는 개수작은 부리지마.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갑 사정이 안좋아져서 삼각김밥으로 연명해야할 처지다."

"최고급 오나홀을 구입하느라 그런거지? 역시 남자는 식욕보다는 성욕의 우선순위가 높은 걸까나."

"......"

역시 이년을 말로 이기는건 무리다. 대신에 시장통닭을 마구잡이로 먹어치워서 이년이 계산서를 손에 쥐었을때 당황스럽게 만드는거다!라는건 역시 무리. 시장통닭 가게를 인수한다고 한들 크로스데일가의 여자가 눈하나 꿈적이나 하겠는가. 나는 아야사에게 스마트폰을 돌려받고 정우레에게 시장통닭집으로 오라는 메시지에 불청객 한 명 추가라는 추신을 남겼다. 어찌됬든간에 공짜로 통닭을 얻어 먹을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가볍기 그지없다.

*    *    *    *

"선배 여기에요 여기! 어라? ㅇ...아 아야사 선배님이 여긴 왠일이세요?"

"내가 사건에게 졸라서 같이 먹자고 했어. 오랜만에 선후배끼리 오붓하게 대화할 기회를 뺏어서 미안.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오늘 통닭은 내가 살게. 흐응 그리고 너는 분명 생명공학과 학생회장 정우레였지?"

"예...옙! 부족한 몸이지만 운좋게 학생회장이 되어서 ㅎ...하 학생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그 아야사 선배님이 학사 졸업작품으로 발표하신 내용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돼지근섬유 세포 유전자 변이 실험이라니 학사생으로서 그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게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같은건 정말이지 상상도 못할 그런..."

"한국 손담에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다라는 말이 있지? 3학년 때 생명공학 분야의 최고 저널인 케루빔에 논문을 게재한 사건 앞에서 칭찬받고 싶지 않아. 사건의 졸업논문은 새로운 길을 개척한거고 내 졸업작품은 단순히 이미 개척된 길을 따라걸은것 뿐이니까. 네가 좋은 의도로 말했다는건 알고있지만 내 입장에선 비꼬는것처럼 들리거든."

"죄...죄송합니다!"

아야사의 싸늘한 어투에 우레가 급히 사과하며 어쩔쭐을 몰라하고 있었다. 아야사 이년이 감히 신성한 시장통닭집앞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진 못할망정 분위기를 냉각시키다니. 나는 허리를 굽히곤 펼줄 모르는 우레에게 '그쯤하면 됬어'라고 말하며 강제로 시장통닭집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우레는 그녀석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며 아야사 녀석을 힘끌거리고 있었고 아야사는 특유의 시니컬한 미소를 지으며 실험복 가운의 옷매무새를 매만졌다.

내가 장님도 아니고 딱봐도 우레가 아야사한테 마음이 있다는걸 눈치챘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여자앞에서 한 마디도 못하는 후배를 위해 무슨 주제로든 두 사람이 대화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중간 매개체가 되는것이 인지상정이겠으나 통닭이 나오는 중인데 그게 다 무슨소용이겠는가?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해서인지 금새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소금구이통닭이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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