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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 Oxogan The Little Mermaid
그렇게 만전을 기한 후에 로그아웃 버튼을 누르자 정신이 아득해지고 내 신형이 무너지고 있다는걸 멀어지는 천장을 통해 확인했다. 아주 잠시 암전된 시야가 다시 밝아지자 나는 깊은 숨을 토해내며 VOT(Vaccine Of Things) 접속 캡슐의 좌석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좌선 손잡이에 달린 캡슐의 개폐버튼을 누르자 화랑대학교 캠퍼스와 5분 거리에에 있는 6평짜리 원룸이 자리 하고 있었다. VOT(Vaccine Of Things) 게임에 접속하기 전과 다를바 없는 내 자취방이였지만 마치 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느낌이다.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에서 새 인생을 시작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생명공학과 3학년생 김사건으로서의 인생을 다시 살게 될줄은 몰랐다. 안도의 감정과 아쉬움이 동시에 교차하며 묘한 감정이 심장을 두드린다. 두 주먹을 쥐었다 폈다하며 내 몸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나를 시험하는데 마치 내 몸이 아닌것처럼 삐그덕거리는 묘한 느낌이 있다. 천천히 몸을 스트레칭할때마다 조금씩 감각이 돌아오곤 있었지만 회복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릴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운신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몸의 감각이 회복되었을때 나는 캡슐에서 걸어나와 원룸 구석에 있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편히 쉴려는 찰나 보통 맥을 짚는 팔목 부위에 위화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뭐야 이거?
-디파일러 폰(1 VP) * 437
-디파일러 나이트(200 VP) * 3
-1037 VP
800 VP라고? 아하 이게 용린은리 사저가 말하던 그 Vaccine Point인가? 디파일러들을 잡으면 VOT(Vaccine Of Things)에서 보상으로 주는 일종의 화폐같은거구나. 무슨 낙동강 주변의 괴물쥐 뉴트리아 잡으면 구청에서 2만원씩 주는것 같네. 나는 무척이나 피곤했지만 새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를 만지작 거렸다. 트리플 크라운씨 몸값이 600 VP나 됬구나.
거대화된 어보미네이션의 한입거리 간식이 되는걸 보고 잡졸인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한끗발 하는 디파일러였나보다. 정말 신기한 기능이 많았지만 그 무엇보다 내 관심을 끌고 있는것은 백신 마켓(Vaccine Market)이라는 홈페이지 였다. 진짜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처럼 구성되어서 판매자도 될 수 있고 구매자도 될 수 있었다.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 자체를 식별 아이디처럼 사용하는지 회원가입같은 귀찮은 과정도 필요 없었다. 일단 시험삼아 사이트 메인에 떠있는 리퀴드 피지컬 트레이닝 머신이라는걸 구입해보려 했는데 배송지를 선택하게 되어 있었다. 배송지 자체도 VOT(Vaccine Of Things)에 의해 디폴트 설정이 되어 있는지 본체인 내가 있는 지구와 아바타가 있는 수왕성을 선택할 수 있는 리스트가 출력됬다.
일단 지구를 선택해볼까?
-해당 행성으로 향하는 정규 배송 함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흐음 마치 그런 산간벽지로는 택배를 보낼 수 없다는 택배기사 아저씨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기분이다. 지구는 내 모행성이라고 할 수 있고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인지하고 있는 세계관의 전부였지만 우주 스케일로 따지면 굉장히 외지에 있는 시골인 모양이다. 다행히도 정규 배송 함선의 항로에 위치 하지 않은 고객을 위해 전이술식을 통해 물건을 직접 워프시키는 방법도 있는 모양이다.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시겠습니까?'라는 메시지에 예스를 누르니 워프를 시전할 전이술사에 대한 간단한 신상명세서와 신뢰도 평점 및 지금까지 워프시킨 물건들에 대한 통계가 뜬다. 아하 누가봐도 이 사람은 믿을만해라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워프 서비스 요금 부분에서 나는 기도가 막혀 컼컼거릴 수 밖에 없었다.
-행성간 거리 및 배송 물건의 부피와 질량을 분석한 결과 워프 서비스 이용시 1000 VP가 요금으로 책정되었습니다.
정말이지 기절초풍할만한 가격이다. 배송 물건보다 비싼 배송비라니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속담이 정말 잘 맞아 떨어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팔목에 있는 VOT 단말기를 톡톡 두드리면서 생각해보니 행성과 행성간의 워프가 1000 VP라면 오히려 싼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사실 가격이 얼마가 들던 그런 오버테크놀로지가 가능하다는 사실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나는 처음 리퀴드 피지컬 트레이닝 머신 배너를 클릭했을때 눈여겨보았던 판매자측 고객센터와의 실시간 채팅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구매과정을 취소시켰다. 제대로 물어보지 않고 구입을 했다간 독박을 쓸지도 모른다. 나는 독수리 타법을 사용한 혁 영감과는 다르게 홀로그램 키보드 모듈을 키고 본격적으로 타이핑을 준비했다.
-저기 지금 계신가요?
-......예 지금 받았습니다. 고객님의 문자 체계가 저희 사측의 데이터베이스 등록되어 있지 않아서 응답하는데 잠시 시간이 소요된 점 죄송합니다. 무슨 일을 도와드릴까요?
-제가 솔직히 말해서 VOT 시스템 단말기를 이용하는거 자체가 처음이라서요. 백신 마켓이라는게 재미있어 보여서 리퀴드 피지컬 트레이닝 머신을 시험삼아 구입해볼려고 했는데요. 정규 배송 함선의 항로에 제 모행성이 있지 않아서 전이술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했는데 너무 비싸서요. 원래 이렇게 비싼가요?
-예 고객님, VOT 시스템 단말기를 처음 이용하신다고요. 본 사의 전이술 서비스는 유능한 전이술사분이 대규모 전이술 증폭 건축물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타 사의 전이술 서비스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가격을 자랑합니다. 원하신다면 판매자별 전이술 서비스 가격 비교 차트를 고객님의 VOT 단말기로 전송해드릴 수 있습니다.
-아 그게 비싼게 아니라 싼거였군요. 제가 잘 몰라서요. 그런데 리퀴드 피지컬 트레이닝 머신이라는게 정확히 뭐하는건가요? 저는 그냥 메인에 있어서 클릭해서 들어왔거든요.
-리퀴드 피지컬 트레이닝 머신은 산소가 녹아 있는 특수 액체 안에서 사용자가 육체를 단련할 수 있는 획기적인 단련 기구입니다. 각종 무공연마 커뮤니티에서 그 실용성을 극찬 받았고 VOT 시스템 최다 규모 연금술 커뮤니티에서 그 안정성을 인정 받았습니다. 보통의 일반인이 리퀴드 피지컬 트레이닝 머신의 30일 프로그램을 통해 디파일러 폰을 맨몹으로 제압하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동영상이 한때 백신 옵저버에서 가장 핫한 영상 순위권에 오르기도 했지요.
그 뿐만 아니라 아까 말씀하셨다싶이 백신 마켓 사이트의 메인에 올랐다는 사실자체가 사용자들의 굉장히 뜨거운 반응과 신뢰성을 얻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듣고보니까 굉장히 좋은 물건 같네요. 500 VP에 그런 물건을 살 수 있다는게 행운인것 같아요. VP를 조금더 모은다음에 다시 올게요.
-잠깐만요 고객님. 정말로 VOT 단말기 자체를 처음 사용하시는 거라면 VOT 시스템에서 배송 무료 쿠폰 하나를 넣어드렸을 겁니다. 한번 확인해 보세요.
-어 그래요? 잠깐만요 확인해볼게요. 와우 정말이네요. 감사합니다. 이걸로 저도 몸짱이 될 수 있는거군요.
-고객님의 종족이 지닌 육체 한계값에 맞게 현명한 사용 부탁립니다. 그리고 서비스로 육체 피로 회복에 도움이되는 적하수오환 10정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나는 뭔가에 홀린듯 배송 무료 쿠폰을 사용해 리퀴드 피지컬 트레이닝 머신을 구입했다. 티피 프로를 보다보면 홈쇼핑에 중독되서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주문하는 사람들이 나오곤 했는데 나는 이제야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객의 안전을 위해서 전이술 서비스가 VOT 단말기로 워프될 장소를 홀로그램으로 지정하게 하였다. 워프될 물건의 부피와 전이술식의 오차범위에 따라 6평 원룸을 반에 가까운 면적이 리퀴드 피지컬 트레이닝 머신의 홀로그램으로 가득찼다.
워프 위치 지정을 완료하자 곧이어 독득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지더니 캡슐형 수족관같은 물건이 VOT(Vaccine Of Things) 게임 접속 캡슐 옆에 나란히 자리했다. 오호옷 이걸로 나도 식스펙을 가질 수 있는건가? 상의를 노출시키고 당당히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게 된거다. 뿐만아니라 강의실에서 은근슬쩍 기지개를 펴는척하고 복부를 노출시키면 여학우들이 자지러지겠지?
그렇게 아직 트레이닝은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꿈속에서 거닐고 있던 나는 발딛을 틈도 없이 가득찬 6평 원룸의 현실을 자각했다. 아 빌어먹을 안그래도 좁아터진 장소에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저런 거대한 물건을 주문했지? 나는 풀이죽은채 침대 위에서 노트북을 절전상태에서 회복시키고 중고장터 사이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요즘 인기절정을 찍고 있는 VOT(Vaccine Of Things) 게임 접속 캡슐이라 그런지 정가에서 5장만 뺐는데도 금새 구입하겠다는 댓글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