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73화 (373/374)

김준 일행이 돌아가는 길에 해가 점점 지고 있었다.

“해가 길긴 해. 여섯시가 넘었는데 아직 밝잖아.”

“이럴 때 빨리 가야 돼. 밤길은 아직도 답이 없어.”

가로등 하나 없이 오직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하나에 의존해서 장거리를 달리는 길은 정말로 위험했다.

“오빠, 여기 공간이 없어요! 뒤 보기가 힘들어요.”

“그래, 인아는 그거 무너지지 않게 잘 잡고 있어.”

여러 곳을 다니면서 짐들을 꾸역꾸역 담다 보니 발 디딜틈 하나 없었고, 창문까지 가려졌다.

인아는 그 안에서 수많은 냄새가 뒤섞인 캠핑카 안에서 힘겹게 심호흡했다.

한쪽에서는 갓 잡은 닭과 토끼의 비릿한 피 냄새, 다른 쪽에서는 쌀과 밀가루의 곡식냄새, 또 앉고 있는 곳만 하더라도 쇠냄새가 가득했다.

“인아는 좀만 쉬어.”

“맞아! 어차피 싹 쓸렸으니 좀비 같은 건 더 이상 안 나올….”

크르르르- 캬아아아악!!!

빠아아아아앙-!!!

김준은 반사적으로 눈앞에 뛰쳐나온 물체를 향해 클락션을 누르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쿠당탕탕-

“꺄악!”

“인아야!”

“아오… 물통 떨어졌다.”

인아는 위에 올려놨던 플라스틱 물통을 맞아 머리를 어루만졌다.

“꽉 잡아! 앞에 좀비다!”

“힉!? 뒤에 못 보는데요?”

“내가 백미러로 보면 돼!”

김준은 후방을 살핀 뒤로 총을 꺼냈다.

그때 에밀리도 공기총을 들고는 김준에게 외쳤다.

“준! 차 옆으로 돌려! 그러면 앞뒤 볼 수 있잖아!”

“혼자 되겠어?”

“앞에도 몇 놈 없네? 기껏 해야 셋이잖아?”

“젠장! 그럼 부탁한다!”

“롸잇!”

이제는 익숙하게 좀비를 사냥하는 에밀리였고, 김준은 평소에는 촐싹거려도 이럴 땐 믿어야 했다.

김준은 뒤로 후진하면서 중앙선을 넘어 차를 돌렸다.

정면에서 보이는 좀비는 총 세 마리였고, 모두 뛰는 녀석들이었다.

50m까지 거리를 벌린 상황에서 혹시나 뒤를 돌아보니 아직 보이는 건 없었다.

위이이잉-

운전석 창문이 내려간 순간 김준이 든 콜트 45 권총이 튀어나왔다.

탕- 탕- 탕!!!

세 발의 총성이 울릴 때 좀비 둘이 쓰러지고, 한 녀석은 주저앉다가 비틀거리며 다시 달려들려 했다.

김준은 침착하게 두 손으로 다시 권총을 파지한 다음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이번엔 세 번째 좀비도 확실하게 머리가 터져 나가면서 쓰러졌고, 움직이는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본 순간 에밀리는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퉁-

“!?”

저 멀리 논밭에서 서성이고 있던 좀비 하나를 맞춘 에밀리는 뒤이어 연지탄을 장전하고 바로 쐈다.

연지탄 세 발을 쏴서 좀비를 겨우 쓰러트린 에밀리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펼쳤다.

“저건 굳이 안 잡아도 되는 거잖아.”

“그래도 좀비잖아!”

“그래, 뭐….”

저 멀리서 서성이는 느린 좀비 하나를 발견하고 그걸 기어이 잡아낸 에밀리.

김준은 이미 쏜 상태이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가자. 계속 있다가 더 튀어나올지도 몰라.”

“내가 주변 살필게.”

에밀리는 총을 집어넣고 창가를 살폈다.

김준은 다시 차를 돌려 집까지 향했고, 돌아가는 길에도 계속 좀비가 한두 마리씩 튀어나왔다.

캬아아아악!!!

탕! 탕!!!

이걸로 일곱 마리째.

김준은 새 탄창을 꺼내 권총을 장전하고는 콘솔박스를 열어 봤다.

연지탄 깡통과 아직 한 탄창이 더 남은 45구경 권총탄과 꿩탄 몇 발.

어제 수백 마리의 좀비들을 잡아내느라 탄을 상당히 소모한 상태였다.

집에만 가면 총알이야 다시 채울 수 있지만, 남은 10분 거리에서 또 얼마나 튀어나올지 몰랐다.

“준, 총알 부족해?”

“됐어. 계속 간다.”

우우웅- 우우우웅-

다행인 것은 자주 오던 길이어서 정 안 되면 좀비들을 따돌려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미 지난번에 한 번 차 안에서 계속 곡예운전하면서 좀비가 제풀에 지쳐 주저앉게 했던 테스트를 한 적도 있었다.

김준은 플랜B와 플랜C까지 준비하면서 핸들을 꽉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틀 만에 돌아온 집이었다.

***

“와아아-”

“꺄아~ 이거 금괴 실제로 첨 만져 봐!”

“근데 왜 금에 죄다 이빨 자국이 있어? 이거 누가 깨물었어?”

“스마일~”

“에밀리!”

김준이 안으로 들여 온 물자를 하나하나 털어 놨다.

곡식을 창고에 담고, 도축한 고기는 냉동실에, 위스키도 각각 2층과 3층 옥탑방 찬장에 담았다.

“금괴에 은괴에 이거 엄청나네요.”

은지는 가져온 금은보화를 하나하나 보면서 수건으로 먼지를 닦아내고 있었다.

“나중에 이거 가지고 가게 만들자! 펍 만들자고 약속했어.”

“펍이라…”

가야는 멋쩍게 웃으면서 은지와 같이 가져온 금과 은의 먼지를 닦아냈다.

“준! 오늘같은 날. 위스키 30년 짜리 딱?”

“흐음-”

은지는 그 말을 듣고서 조용히 물었다.

“안줏거리 만들어 드려요?”

“됐어. 피곤하다.”

어제오늘 해서 두어시간밖에 못 잔 김준은 애들 금괴 정리하는 것만 보고서 들어가 자기로 했다.

김준은 욕실에 들어가 더운 물에 몸을 담그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피로가 가득해서 지금 당장 안방에 들어가면 바로 뻗어서 잠들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가져온 보물을 가지고 금고에 담을까 생각했지만, 어차피 다 같이 부대끼고 사는 애들 중에 그거 몰래 빼돌려 튈 애는 없을 거다.

김준은 목욕을 마치고 안방에 들어가 잠들었다.

그리고 아쉬운 김에 남은 여자애들끼리 축배를 들기로 했다.

“웩- 쿨럭! 쿨럭!”

“아씨! 더럽게.”

“Shit! 이거 썩은 거 아니야?”

“위스키 맛 맞는데? 음~ 30년은 더 부드럽네.”

마리는 발렌타인 30 위스키를 언더락으로 짤랑대면서 한 모금 쭉 들이켰다.

원래 술을 잘못 마시지만, 비싼 거라고 하니까 홀짝거리는 마리, 옆에서 한 잔씩 주니까 조심스럽게 받은 나니카, 라나, 도경.

여자들끼리의 술자리가 이어질 때, 에밀리는 도저히 못 먹겠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콜라 마시고 싶다.”

“콜라는 없고, 오렌지주스라도 먹어.”

술안주를 만들어온 은지가 튀김과 함께 주스를 건네줬다.

에밀리는 신맛이 물씬 나는 가루 주스를 쭉 들이켜고는 튀김을 몇 개 집어서 입에 잔뜩 넣고 볼을 부풀렸다.

“암튼 다들 고생했어. 둘 다 힘들었지?”

“군인들이 엄청 왔는데요. 상록시에 몇만명이 살고 있대요.”

인아는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 줬다.

그녀가 하는 말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고, 에밀리 역시도 중간중간에 껴서 추임새를 넣어 주니 박수 소리가 나왔다.

“대박~ 진짜 좀비랑 싸우는 게 끝나가나 봐!”

도경은 이제야 뭔가 희망이 생겼다면서 좋아했다.

“오래도 걸렸지. 1년 좀 넘었나?”

가야 역시 위스키 잔을 들고 이리저리 돌리면서 옛날 생각이 나서 피식 웃었다.

“맨 처음 여기 왔을 때 말이야… 죄다 눈치 보면서 낑겨 잘 때, 준이 오빠가 냉장고에서 소주 꺼내서 먹으려다가 딱 마주쳤거든.”

지금 생각하면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는지 부끄러워하는 가야.

하지만 이제는 한 가족이 되어서 그때의 일을 웃으면서 말할 수 있었다.

“근데 지금은 밤마다 위스키에, 와인에 별거를 다 먹을 수 있잖아.”

“고기도 맘껏 먹고 말이야.”

“두 달 동안 풀때기만 먹었을 땐 강제로 비건 되는 줄 알았어.”

“그래서 혼자 몰래 햄 까먹었고?”

“쫌!”

도경이랑 에밀리랑 투닥거리는 모습도 이제는 집 안에서 매일 볼 수 있는 시트콤 같은 분위기였다.

“근데 말이죠. 언니들한테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가장 막내인 라나가 위스키를 쭉 들이켜고는 은지가 튀긴 감자 하나를 우물거리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군대도 있고, 동네에 사람이 잔뜩 살아 있다고 하는 거 보면… 군대가 작정하고 내려오는 거예요?”

“어, 글쎄?”

“아직은 몰라. 그 51? 52? 하여튼 거기 사단에 있는 부대 하나래. 오면서 다른 군부대 가스 폭발이나, 좀비 사태로 전멸해서 남은 사람들만 뭉친거라고.”

인아가 김준과의 대화를 듣고 그대로 전달해주자 라나는 뺨을 긁적이다 말했다.

“제가 위문 공연 다녔을 때요. 저~기 강원도 양구, 인제, 철원, 화천 같은데.”

“거기가 왜?”

“거기 있는 군인만 하더라도 쭉 내려오면 그… 서울은 어떻게.”

여자아이돌들이 군대에 대해 잘 알 턱이 없었다.

그녀들에게 있어선 가족이나 남자 사촌이 군대 간다고 한 거 아니면, 소속사에서 스케줄로 잡은 군부대 위문공연이 전부였다.

덕분에 군부대가 어디에 있고, 거기서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도 다 기억해서인지 라나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어쩌면 지금 서울도 막 군인들하고 좀비하고 싸울 수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지.”

“다른 나라도 그러겠죠?”

“아마도?”

라나는 언니들의 대답을 듣고는 한숨을 내쉬면서 뭔가를 꺼냈다.

핑크색 젤리케이스에 각종 장신구가 붙어 있는 라나의 스마트폰.

그것을 켜자 날짜 업데이트도 안 되고, [USIM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라는 경고문만 떴다.

“요샌 매일 같이 휴대폰 켜고 이게 돌아가는지 확인한다니까요?”

“인터넷 없이 1년… 오래도 버텼어.”

도경이 고개를 끄덕이고 거들자 다른 아이들도 술잔을 들었다.

“그래도 계속 산 사람들이 보이고, 좀비도 줄어들잖아? 잘 될 거야. 자! 이것만 먹고 정리 하자!”

가야는 자신을 들어서 막잔을 마시고는 주섬주섬 정리를 시작했다.

피곤해하는 인아와 에밀리가 들어가고, 다른 애들도 옥탑방으로 올라갈 때, 남아 있는 건 은지였다.

“오늘 어디서 자게?”

“빈 방 있으면 그냥 들어가지.”

이젠 등에 상처 가지고 싸매고 있지 않으니 굳이 가야가 아니라 아무하고 나 자도 상관없다는 투의 은지였다.

“은야 언니.”

“응?”

“그 농장 부부네 가고, 또 다른 동네도 갈 거라고 하잖아?”

“응, 준이 오빠도 그랬지… 아마?”

“다른 건 몰라도 거기 갈 때는 우리 둘이 가 보자.”

“응?”

“나도 직접 가서 보고 싶어.”

계속 늘어나는 생존자.

줄어드는 좀비의 수.

그리고 풍족한 물자를 채운 집 안.

은지는 그 속에서 김준을 따라 좀비 아포칼립스의 끝을 보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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