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70화 (370/374)

치익-

김준은 담배 한 대를 태우면서 야간 경계를 서고 있었다.

앞에서는 좀비들을 몰살 시키고 그 시쳇더미를 태우고 있고, 안에서는 랜턴의 작은 조명 아래서 기타를 연주하며 즉석에서 위문공연을 하는 인아가 있었다.

[한참뒤에 별빛이 내리면~ 난 다시 잠들순 없겠죠~]

“쟤가 저런 노래도 불렀었나?”

물론 다른 가수의 노래이긴 하지만 클래식 기타에서 퍼지는 은은한 음악은 굉장히 좋았다.

잔뜩 날이 서 있던 김준의 마음도 움직일 정도의 노래.

김준은 그러면서 담배 한 대를 태우면서 느긋하게 창고 안을 살폈다.

그때 김준이 있는 곳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에밀리였고, 다른 한쪽은 이 중사였다.

“준~”

“왜 또 나와?”

“여기 아미가 교대해준대.”

“?”

이 중사는 자기 소총을 들고 김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중사님. 교대하시죠. 제가 맡고 있을게요.”

“아, 그래 주실래요?”

이 중사는 교대를 받고서 불타는 시체 산을 바라봤고, 김준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암구어도 안 말하고?”

“…?”

“암구어는 에밀리-인아였죠?”

“야간에 할 겁니다.”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에밀리와 같이 들어갔다.

에밀리는 수많은 생존자가 있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김준의 팔짱을 꼈다.

“!?”

“왜? 싫어?”

“아니, 뭐.”

에밀리가 김준의 팔짱을 끼면서 흥얼거리자 그걸 보고 있던 군인들의 눈이 한순간에 부러움으로 변했다.

전생에 나라를 얼마나 구하면 멸망한 세상 속에서도 저런 초미녀를 데리고 다니는 걸까? 하는 생각들이었다.

“샤인이 진짜 인기 많나 봐?”

“너도 악기 한 번 연주해 봐.”

“음~ 피아노는 잘 치는데, 기타는 못 쳐. 들고서 컨셉 사진은 많이 찍었지만.”

“진짜?”

“아, 이거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핸드 싱크.”

“….”

에밀리는 자기 손으로 기타를 치는 시늉을 하고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다시 김준의 옆에 붙었다.

“뭐, 나는 기타 안 쳐도 준한테 뭐든지 다 해주잖아?”

“후우, 그래.”

김준은 옆에 착 달라붙은 에밀리의 금발 머리카락을 쓰담 쓰담해주고는 플래시를 비춰 주변을 살폈다.

창고 안에는 수많은 컨테이너가 있었고, 이걸 다 뜯으면 굉장한 양의 쌀과 보리, 밀 등의 각종 곡물이 튀어나올 거다.

김준은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른 상황에 흐뭇했다.

“왜 웃어? 좋아서?”

“그래, 좋은 일이지.”

딱- 딱- 딱-

위이이이이잉!!

“야, 깊게 박아! 깊게!”

“아, 김뱀! 이 정도면 된 다니까? 벌써 두 겹째야!”

“윤 상병 너 이 새끼! 말이 짧다?”

“에헤이~ 병일이형! 내가 상말에서 1년차인데!”

“아 시끄러! 새끼들아!”

뭔가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 가 보니 병사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톱과 판자, 전동드릴을 가지고 아까 좀비들이 뚫고 들어왔던 창문을 막고 있었다.

창문에 판자를 덧대고 못질을 해대서 튼튼하게 막아놨는데, 그걸 하사 한 명이 감독하고 있었다.

“아, 충….”

“쉬어쉬어쉬어쉬… 아!”

순간 자신은 예비역인데, 현역 군인 경례를 받을 때 편하게 쉬라고 말하고 아차 싶었던 김준이었다.

“흠흠, 여기 잘 막히고 있어요?”

“아, 네. 정문 쪽은 어떻습니까?”

“이 중사? 그 분이 막고 있어요.”

명찰에 ‘정윤일’이라 써진 하사는 김준 수준의 다부진 체구에 병사들 사이에서 군기를 엄청나게 잡는 간부였다.

“오늘은 저도 밤새 순찰 다닐 거예요. 조금 힘들겠지만, 내일 아침 다 같이 떠나자고요.”

“알겠습니다. 저 그리고… 잠시 드릴 말씀이….”

“?”

정 하사가 할 말이 있다고 하자 김준도 에밀리도 귀가 쫑긋했다.

“너 잠깐 여기 있어라.”

“흐응, 나도 들을래.”

“아, 네. 같이 가셔도 됩니다.”

정 하사는 병사 둘한테 확실히 창문 막으라고 한 다음에 어둠 속의 컨테이너 사이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헛기침하는 정 하사는 고개를 돌려 아까와는 다른 나약한 얼굴을 보였다.

“저기 말입니다. 그… 에밀리한테 부탁드리고 싶은데.”

“으응?”

“애들은 다 받았는데, 싸인하고 악수 좀….”

병사들 다 싸인 받는데, 혼자서 엄숙하게 있던 간부가 숨어서 몰래 에밀리에게 팬서비스를 요구했다.

그는 품 안에서 군복색과 똑같은 군용 수첩과 펜을 꺼냈다.

“Right! 해줄게!”

“저기 세 장만….”

“열장도 해 줄 수 있어.”

에밀리는 오랜만에 해 보는 싸인에 흥얼거리면서 볼펜의 잉크를 다 쓸 기세로 수첩마다 싸인을 해 줬다.

그러고는 싸인을 마치고 수첩을 접어서 그 첫 페이지에 입을 맞췄다.

쪽-

“오오옷?!”

수첩에 키스한번 해준걸로 자기 얼굴에 맞은 것처럼 가슴을 부여잡는 정 하사.

에밀리는 빙긋- 웃으면서 어둠 속에서도 새하얀 손을 내밀며 악수까지 해줬다.

정말 그들에겐 잊을 수 없는 팬서비스일 거다.

그렇게 김준은 애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잘 때는 차 안에 태웠다.

“오늘은 여기서 자는 거야.”

“앞에서 준이 지키는 거야?”

“그래. 편히 자.”

“오빠, 괜찮으시겠어요? 정 아니면 제가 교대를….”

“응, 됐어요.”

김준은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인아에게 엄지를 올리고는 캠핑카 문을 닫았다.

양근태 역시도 펑크가 난 차를 두고서 내친김에 새벽에 수리하려고 불을 피운 상태에서 그 조명만으로 차 바퀴를 꺼냈다.

“형님. 도와드려요?”

“괜찮아! 이거 장비 많아!”

“캐리어 박스에 유압리프트 있어요! 꺼내드릴게요.”

김준은 새벽에 차량용 수리 장비를 가지고서 양근태의 차를 고치기로 했다.

그 사이 안에서 곤히 자고 있는 캠핑카를 향해 수많은 시선이 보였다.

저 안에 천사 같은 아이돌들이 있다는 것을 보고 병사들이 얼굴도 안 내미는데 계속 보고 있었다.

“야! 니들 뭐 해?”

“아, 행보관님!”

“충성!”

임 상사는 그 병사들을 보고는 모포를 던졌다.

“들어가 자! 불침번 준비하고!”

혹시라도 누가 눈독을 들일까 봐 임 상사 역시도 엄격하게 군기를 잡아 안 자는 병사들을 다 안으로 보내버렸다.

***

이튿날.

부글부글부글-

“아, 이거 꾹 눌러야 하는데 잘되려나?”

새벽이 되어서 인아가 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먼저 양근태의 트럭에서 곰탕 끓이는데 쓰는 대형 냄비를 꺼내 왔다.

그러고는 곤히 잠든 에밀리를 두고서 캠핑카 욕실 안에서 물을 잔뜩 받고, 차 안에 있는 쌀을 푹 담가놨다.

“그리고 또… 아, 있다!”

비상식량으로 준비한 참치캔, 그리고 건미역을 본 인아는 빙긋 웃으면서 건미역을 아주 잘게 가루로 만들고 불린 쌀에 뿌렸다.

잘게 다져서 쌀알만한 미역조각은 물을 먹자마자 엄지손톱만 한 사이즈로 탱탱하게 자랐고, 인아가 그것을 낑낑거리면서 들어서 곰솥 냄비에 넣었다.

“인아야.”

“아, 오빠!”

“화덕 만들었다!”

“잠깐만요!”

불을 피우기 위한 화덕을 차 앞에 붙여놨다.

밤사이 피비린내가 어느 정도 빠지고 바닥에 핏물과 어우러진 소화기 분말로 질척거리는 자리에 방화용 모래를 잔뜩 뿌려 둔 참이었다.

인아는 그 상황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곤히 자는 생존자 장병들을 위해 직접 밥을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차에 있는 버너에 냄비에 물을 잔뜩 붓고 미역과 참치를 풀어서 국도 끓이고 있었다.

“진짜 정성이야.”

“그래도 착한 사람들이잖아요?”

인아는 자기하고 몇 살 차이 안나 보이는 피끓는 병사들을 보고서 미소를 지었다.

“오빠, 이거 간 맞나 봐주세요.”

인아가 수저로 국 한술 떠서 주자 김준은 먹어보고는 엄지를 올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기상 나팔을 불었다.

***

“진짜 최곱니다!”

“미친! 이게 샤인이 해준 주먹밥이야!”

“개쩔어 시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2개 분대의 병력은 아이돌 서인아가 만들어 준 주먹밥에 미역국을 받고서 허겁지겁 먹어댔다.

“음~ 김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 옆에서 주먹밥을 미역국에 찍어먹으면서 우물거리는 에밀리의 말에 김준은 피식 웃었다.

“장병들 식사까지 다 챙겨 주시고… 어떻게 감사를 표할지 모르겠습니다.”

임 상사가 직접 와서 김준과 인아에게 감사를 표하자 김준은 탑차와 캠핑카 둘을 보고 말했다.

“밥 먹고 후딱 쌀 나르죠. 남은 건 이 담에 올 때 다시 푸면 되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종자 따로 빼놓은거는….”

“아 그거는 양 사장님인가? 그 분이 가져오신다고 하셔서 제가 애들 보냈습니다.”

“네. 그러네요.”

김준은 종자도 챙기고 도정 안 된 쌀과 보리, 밀도 가득 챙기는 푸짐한 날이 될 것 같아 미소를 지었다.

집에 돌아가면 잠부터 늘어지게 잔 다음에 보리 비빔밥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다.

식사 이후에는 드디어 병사들이 총을 내리고 쌀가마니를 들었다.

끼기긱! 끽!

“야! 운전 잘해라! 구르마 첨 모냐?”

“아, 이거 장난 아닙니다! 뭐 이렇게 무거워….”

“새끼, 미는 시늉만 하네? 야!”

“아닙니다! 힘껏 밀겠습니다!”

병사들끼리 서로 갈구고 시정을 하고 이러면서 탑차에 곡식이 차곡차곡 쌓였다.

수 만 명이 있다고 하니 천 톤은 넘게 필요하겠는데, 저거 가져가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뭐, 종자까지 챙기고, 농사도 짓는다고 했으니….”

김준은 차가 못 갈 정도로 꽉꽉 채워진 곡식을 보고서 자신이 다 흐뭇했다.

양근태의 GMC에도, 김준의 캠핑카에도 밀과 쌀, 보리를 넉넉하게 챙겼고, 현미나 흑미 등의 잡곡도 담아서 돌아가면 밥은 배터지게 먹을 수 있을 거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곡식 한 번 푸짐히 가져갑니다.”

“저거 과적으로 멈추지나 않을까 모르겠네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하하, 네. 감사합니다.”

40kg 쌀가마니를 몇 톤 단위로 챙긴 51사단 장병들은 임 상사의 지휘 아래 먼저 떠나갔다.

“에휴~ 농기계 엔진은 나중에나 가져가야겠구만.”

“오늘만 날입니까? 딱 보니까 저 양반들 며칠 있다 또 올 거 같더만.”

“그때 되면 내가 얘기할게. 아, 그리고 황 여사 얘기 들었지?”

“네~ 네~ 무슨 포획틀 깔았다면서요?”

“멧돼지도 들어갈 사이즈로 만들었어! 가자고! 고기도 챙겨야지.”

김준은 캠핑카를 보고 과연 더 들어갈 게 있을까 싶었지만, 일단 차를 몰고서 공단면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밤샘이후 운전에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공단면에서 한두 시간 잔 다음에 야생 동물 사냥까지 끝내면 1박2일 동안 엄청난 성과를 가지고 돌아가는 거다.

“자, 가자!”

“오!”

“가죠!”

김준 일행은 오히려 지칠 수록 더 힘을 내며 힘차게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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