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은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우으음- 으음~”
그의 옆에는 하루종일 몸을 끌어안고서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에밀리가 있었다.
에밀리 뿐만이 아니었다.
침대 밑에는 담요를 깔아놓고 자고 있는 라나와 나니카가 있었고, 침대 옆의 의자에는 쟁반 위에 물부터 티슈, 소염제 등 각종 의약품이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방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후우-”
김준은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와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재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내장이 뒤틀리는 충격이 조금씩 있었다.
김준은 옆구리를 두들기다가 밑에서 자고 있는 라나와 나니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일거수일투족을 책임진다면서 머리맡에 각종 물건들을 배치하고 김준이 조금만 까딱거려도 뭐 필요하냐고 간병인처럼 붙어있었다.
“읏차-”
“으으응~”
김준은 바닥에 누워있는 라나를 번쩍 안아 올려서 자신이 일어난 침대에 올려줬다.
조금 뒤척거리긴 해도 깨지 않은채 새근새근 자는 라나의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나니카도 안아서 같이 올려줘 세 명이 침대에서 자는 동안 씻으러 나갔다.
씻고서 거실로 나오자 아침일찍 일어난 은지와 인아가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 오빠!”
“좋은 아침.”
“….”
인아는 김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후다닥 달려와 그의 품에 안겼다.
“!”
아무 말도 없이 김준을 끌어안고는 그 품을 느끼는 인아.
원래 애교라고는 거의 없던 소녀였지만, 한 달만에 돌아온 뒤로는 그녀 또한 언제나 붙어다니면서 김준에게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머리 많이 자랐어.”
“거지존이예요.”
“그래도 좀만 더 길러봐.”
“네? 오빠는 긴 머리가 좋으세요?”
숏컷으로 쳐 낸뒤로 다시 자란 머리카락은 어깨를 살짝 누르는 수준이었다.
김준은 그런 인아의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고는 은지가 차리는 음식을 봤다.
“오늘 아침은 뭐야?”
“가볍게 미역국이요.”
“고기 소화가 힘들다니, 내껀 조금만 줘.”
“아, 그래요?”
은지는 냉장고에 남은 고기들을 가지고 한껏 차리려고 했지만, 김준의 몸상태를 듣고서 수수하게 차리기로 했다.
그렇게 식사 시간이 되었을 때, 에밀리는 자기 수저로 김준의 밥을 한술 뜨고는 들이밀었다.
“준, 아~ 해봐.”
“내가 손이 없냐?”
“이럴땐 그냥 받아먹는거야. 자, 아~ 해봐.”
정말 부담스러울 정도로 들이대는 에밀리를 보고 김준은 할 수 없이 입을 벌렸다.
그러자 밥 한술을 바로 넣어주는 에밀리, 그걸 보고서 반대편에서 있던 라나가 젓가락으로 계란부침 반찬을 집어서 재빨리 입에 넣어줬다.
“오빠! 이것도요!”
“나도 할래!”
“국 떠드릴까요?”
한 번 받아주니 다른애들도 바로 수저를 떠서 알아서 먹여주겠다고 한다.
김준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그걸 다 받아줬다.
치익-
“후우-”
“몸 안좋다면서 안 끊어요?”
빨랫감을 널러 나온 은지는 식후 끽연을 즐기는 김준에게 한 마디했다.
김준은 머쓱한 얼굴을 하면서 담배를 슬쩍 내렸다.
“한 달동안 고생했어.”
“그래도 오빠 무사히 오셔서 다행이에요.”
은지 역시도 김준이 돌아온 것을 기뻐했으나 겉으로는 절대 내색하질 않았다.
짧은 인사 이후로는 빨래를 탈탈 털면서 널어놓는 은지를 보고 김준은 도와주러 갔다.
“됐어요.”
“뭐 얼마나 된다고.”
8명이 살다보니 하루 빨래량만 엄청났는데, 그걸 혼자 하려니 도와주기로 했다.
그렇게 여름 태양아래 빨래를 시원하게 널어놓는 두 남녀였다.
그때, 김준은 조용히 은지를 바라봤다.
언제나 단정하게 땋아 내린 엘사 머리에, 차분한 외모.
화장기 없는 얼굴인데도, 커다란 두 눈과 긴 속눈썹, 정말 쌩얼이 이정도로 환상적인 미모였다.
김준은 반사적으로 은지의 몸에 손이 갔다.
“!?”
빨래 널리다가 별안간 등에 손 감촉이 느껴지자 휙 돌아보는 은지.
김준은 은지의 등을 이리저리 쓸다가 확 끌어안았다.
“!?”
성격 같아서는 바로 뿌리치고 달려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순히 안겼다.
하지만 그녀는 김준에게 안기면서도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다른 데는 몰라도 등은 만지지 마요.”
“아!”
“귀 깨물 거야.”
귓가에 속삭이면서 귓불에 입을 가까이 대자 김준은 등 대신에 허리쪽으로 손이 내려갔다.
“허리도 안 돼요.”
과거 화마의 흉터가 있던 곳이라 등허리는 절대 건들지 말라고 하는 은지.
그렇게 손이 내려가다보니 두 손은 츄리닝 위에 있는 엉덩이로 갔다.
김준이 푹신한 엉덩이를 두 손으로 꽉 잡았고, 과거 그녀랑 섹스할 때 떠올랐던 엉덩이에 점이 떠올랐다.
의외로 순순히 안기는 은지.
그때였다.
“흐아암- 옥탑방에 있을거야.”
“빨리 찾아줘요! 무슨 물건 가져가면 돌려주질 않아?”
두 소녀의 목소리와 함께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리자 은지는 김준을 확 밀쳐버렸다.
그리고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화끈거리는 얼굴을 휙 돌리고는 빨래바구니를 들었다.
“….”
“어머, 오빠! 은지 언니!”
“빨래 다 널었어.”
도경이랑 인아가 보고서 반갑게 인사했지만, 은지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빈 바구니를 들고 후다닥 내려갔다.
“요새도 까칠해.”
인사를 했는데 휙 지나가는 은지를 보고 투덜거리는 라나였다.
***
“나가야겠어.”
“네? 언제요? 어디를요?”
“지금.”
“!”
“오랜만에 정토사 한 번 가 보려고.”
“아… 거기.”
절에 간다는 말에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오랜만에 돌아온 김준인데, 몸 상태도 안좋은데 다시 밖에 나간다는 말.
그 속에서 가야가 손을 들었다.
“저 갈게요!”
“저도! 저도!”
“이젠 나 좀 데려가! 준!”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을 때, 김준은 선착순으로 가야랑 마리를 선택했다.
“쳇!”
이번에도 못 나가서 토라진 에밀리를 두고서 김준은 그녀도 토닥거렸다.
“정토사 다녀온 뒤로 다음주는 명국이네도 갈 거야. 거기 갈때는 에밀리 데려갈게.”
“진짜지?”
“그래.”
에밀리는 그 말에 토라졌던 얼굴이 다시 활짝 펴면서 엉덩이를 살랑거렸다.
만약 꼬리가 있었다면 미친 듯이 흔들어댔을 것이다.
그렇게 장롱에 잘 들어있던 엽총하고, 공기총, 권총들을 잘 챙긴 다음에 나갈 준비를 했다.
미군한테 새로 선물을 받은 M4 소총이 있었지만, 절까지 가는데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달 만에 하는 타 쉘터 방문에 조수석엔 마리, 뒷좌석엔 가야가 타서 떠날 준비를 했다.
시동을 걸고 밖으로 나갔을 때, 한 달 사이에 참 많은게 바뀌어 있었다.
“완전 건물 숲이구만.”
“진짜요. 동네가 완전 잡초밭이에요.”
1년이 지나 방치된 도로, 인적이 끊여서 갈라진 콘크리트 틈 사이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뒤덮인 건물들.
김준은 씁쓸한 얼굴로 그것들을 바라봤다.
“오빠, 할 말이 있는데요.”
“응?”
“사실 오빠 없을 때, 좀비가 몇 번 집 근처를 서성여서 잡은적이 있었어요.”
“!”
마리의 뜬금없는 말에 김준은 흠칫해서 바라봤다.
물론 이제는 각자 무기를 쓸 수 있는 애들이니 좀비를 잡는 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게 있었다.
“다 잡은거야?”
“네, 근데 예전과 달라졌어요.”
“?”
“군락으로 막 집단으로 다니던 애들이 다시 흩어졌나봐요. 한두마리씩 알음알음 나왔어요.”
“흐음-”
김준은 그 말을 듣고서 주변을 둘러봤다.
운전대를 잡은 상태에서 아직 좀비가 보이진 않았지만,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랐다.
“군락이 흩어지고, 예전처럼 따로따로 다닌다는 거지?”
“네.”
“됐어. 그러면 오히려 더 잡기 편하지. 알려줘서 고맙다!”
김준은 복귀 이후로 못 본 좀비들을 두고서 피식 웃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 것일까?
정토사까지 올라가는 골목에서 그 안내 표지판 앞에 떡하니 있는 좀비들이 보였다.
크어어어어-
캬아악- 캬악!
“좀비!”
“어, 봤어!”
김준은 엽총을 들고서 조용히 창문을 열었다.
마치 들개 새끼들 마냥 차 소리와 기름 냄새를 맡고 컹컹 거리는 좀비 무리.
김준은 오랜만에 잡아보는 엽총의 감촉을 느끼면서 좀비의 머리를 겨눴다.
키이이- 캬아아아악!!!
두 좀비 중 하나가 미친 듯이 달려왔고, 김준은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철컥!
오랜만에 발사된 멧돼지 탄은 달려드는 좀비의 머리를 갈갈이 찢어버리면서 풀썩 쓰러졌다.
그 뒤로 서서히 다가오는 걷는 좀비 하나를 두고서 김준은 여유롭게 총을 쏴서 맞췄다.
타앙!
두 번째 좀비 역시도 풀썩 쓰러지고는 그 뒤로 움직임이 서서히 멈춰갔다.
“후우-”
“어떻게 올라가죠?”
마리가 걱정스럽게 물었을 때, 김준은 차에서 내려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절에 올라가면서 겸사겸사 은행이나 도토리도 줍고, 쑥도 캐서 올라가려는데 별 수 없었다.
“별 수 없지. 돌아가자. 차를 타고 올라갈거야.”
“네!”
김준은 핸들을 돌려서 정토사로 갈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그 상황에서 또 좀비가 튀어나왔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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