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벌 시 내에 위치한 주한미군부대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비록 본토의 지휘체계가 무너진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규율을 지키고 있는 하루였다.
“2대대 강습항공연대 이상 무.”
“3대대 일반지원 연대 이상 무.”
“4대대 2항공연대 이상 무.”
“5대대 17기병연대 이상 무.”
“음….”
보고받은 것은 벨린저 대령이었다.
원래 이 자리는 한미연합사 소속의 전투항공여단 여단장이 맡아야 하지만 좀비 무리 습격에 대한 사망으로 연합사 군종실장인 벨린저가 임시로 그들을 맡게 되었다.
물론 대대장들 역시도, 맥클러리 중령 이후 남아 있는 대대장급 고위 장교가 부족해서 소령급 교육대장이나 심지어 대위가 대신 대대를 맡아 보고했다.
그리고 벨린저 역시도 모든 보고받고는 부대 내에 유일한 장군인 서먼 장군에게 보고했다.
“부사단장님. 벨린저입니다.”
“쿨럭- 쿨럭-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 경례하자 안에 있던 장군이 헛기침하면서 군의관들에게 치료받고 있었다.
제복 차림으로 위엄을 갖췄지만, 그 속은 굉장히 상해 있었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좀 나아졌어. 군종실장, 자네가 고생이 많군.”
“아닙니다. 이 모든 것도 다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으실 겁니다.”
주한미군사령부에서 남은 고위 간부는 이들이 전부였다.
명목상 지휘자는 여기 있는 카스퍼 서먼 한미연합사 부사단장이었다.
좀비 사태가 일어나고 CFC가 습격당했을 때 수많은 장군들이 사망했지만, 그는 지병이 있어 군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전역 이전에 치료를 받던 중이라 참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본토로 돌아가기 전에 수술 끝내고 전역하려고 했는데 꼴이 우습게 됐어.”
“하지만 장군님이 아직 계셔서 기강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안 그랬으면 뭐….”
벨린저가 직책만 대령이지 전투병과 장교들 앞에서 ‘목사님은 예배나 준비하시라.’ 소리만 듣고 뒤로 밀렸을 거다.
“그나저나 데려온 생존자들은 어떻게 됐나?”
“군 병원에서 치료 중입니다. 대부분은 젊은 여성인데, 강제로 크리스털 매스를 주입받은 상태라 항불안제 처방을 한다고 합니다.”
“쯧, 이 상황에서도….”
“다행히 생존자 중에서 한국인 전문의 두 명과 약사 한 명이 있습니다. 그들이 돕겠다고 합니다.”
“고마운 일이군.”
“그리고 부상자 중에서 메일러 상병이 치료 중입니다. 또, 우리를 도왔던 그 한국인 청년도….”
“음, 그래. 거기에 대해서는 자네가 처리하게.”
“동료로써 인정한 친구입니다. 반드시 살려서 보내야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보고에 대한 이야기는 대략 들었고, 서먼 준장이 지팡이를 들어 침대맡에 있는 라디오와 무전기를 가리켰다.
“최근 전황이 어떻습니까?”
“나흘 전에 다시 한번 무전이 온 이야기는 들었지?”
“네, 부사단장님.”
“네이비 원이 이번에도 직접 방송을 했어.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태국 등의 부대에게도 생존자를 찾는다고 말이야.”
“그렇다면 전황은…?”
“괌을 수복했다고 하네. 다음은 하와이라고 하고.”
“신이시여….”
미국 대통령이 타고 있는 핵잠수함이 괌에 상륙해 내부 인원들과 생존한 미군들, 그 외 민간인들을 찾아내 좀비들을 몰아내고 드디어 인간의 땅을 수복했다고 한다.
“물론 괌 이후로 하와이는 그걸 쓸 수도 있어.”
“…미국 땅에 말입니까?”
“별수 없겠지.”
대통령이 타고 있는 오하이오급 잠수함에는 24발의 핵무기가 있었다.
UGM-133 트라이던트2
SLBM(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로 히로시마 원폭의 6배에 달하는 전략 핵미사일이었다.
그런 핵미사일을 24발이나 있고, 그것에 대한 발사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핵가방을 가지고 있다.
1년간 이 지옥 같은 좀비 사태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인류가 얼마나 될지 몰랐다.
이미 문명이 붕괴된 상황에서 미군은 대통령의 지휘 아래 본토에 ‘핵을 쏴서라도’ 좀비들을 잡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시간이 얼마 없어. 이대로 뒀다간 남은 생존자들이 모두 전멸하고 이 지구가 좀비 세계가 될 거야.”
“후우, 결국 위에서 어떤 결정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두 고위장교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바깥을 바라봤다.
***
후루룩- 후룩-
달그락- 달그락-
“천천히 드세요. 천천히.”
군 병원에 있는 생존자들은 미군들이 제공한 전투식량을 미친 듯이 먹어 치웠다.
레토르트로 된 신형 전투식량 MRE부터, 월남전 때나 갖고 다닐법한 C레이션 통조림까지 미군들은 아낌없이 식량을 제공했다.
그동안 뭐 제대로 먹는 게 부족해서 피골이 상접한 생존자들은 미군 군의관이 수량을 조절하지 않았다면 배 이상을 먹었을 것이다.
“자, 식사하시고 드레싱 들어갈 거니까 준비해주세요.”
미군 군의관 옆에서 번역해주는 생존자 약사가 그들에게 말해줬고, 통조림 국물까지 싹싹 비우던 안마시술소 여자들은 주사기와 메스, 가위, 거즈 등을 보고 흠칫했지만, 이내 치료를 위해 몸을 맡겼다.
그렇게 신릉면의 생존자들을 치료해준 뒤로 1인실에 있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들어갔다.
끼이익-
후우우- 푸우-
안에서는 발전기를 통해 돌리고 있는 산소호흡기로 호흡을 하는 김준이 있었다.
이미 그의 몸은 옷을 전부 벗겨 내고 환자복 차림으로 누워 있었다.
의식이 없는 김준을 보고 바이탈 체크를 한 군의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수술용 장갑을 새로 신었다.
그러고는 이불을 걷고 상처를 확인했다.
찌이익-
“후우-”
엄청난 피를 쏟아 낸 뒤로 미군 병사들의 O형 수혈을 받아 낸 뒤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김준의 몸 상태였다.
옆구리에 4방, 등에 3방을 찔린 상태에서 칼이 내장까지 들어가 소장이 찢겼던 상태였다.
미군 베타랑 군의관이 개복 이후 급하게 소장 문합을 했고, 칼에 맞은 자상을 근육과 피부까지 모두 꿰맸고, 항생제를 있는 대로 투여했다.
“그람 음성균은 없는 것 같은데….”
만약 감염이 된다면 바로 패혈증으로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군의관은 거즈를 꺼내 꿰맨 상처에 아이오딘을 바르고 센텔라아시아티카 추출물. 한국에선 ‘마데카솔’이라고 불리는 가루 연고를 뿌려 줬다.
군의관이 치료하는 동안 바깥에서는 병사들이 총 대신 삽을 들고서 작업 중이었다.
뚝- 뚝- 뚝-
“휘유~ 르네어. 잘하는데?”
“전역하면 목수 하려고 했거든.”
기관총 사수였던 흑인 일병 르네어는 망치를 들고서 능숙하게 못질했다.
그가 못질을 하는 동안 다른 병사들은 인근에서 가져온 철사를 꼬아서 우리를 만들고 있었다.
삐약- 삐약-
“병아리~ 귀여워.”
“좀 더 키워야 해. 몇 달만 더 있으면 앞으로 일요일은 프라이드 치킨이야.”
“대위님. 그러려면 저것들이 몇천마리는 돼야 할 텐데 말입니다?”
“금방 자라겠지. 저것들 벌써 몇 마리째 알을 깠는데? 부지런히 섹스하라고!”
병사 몇몇이 볏이 선 수탉과 쪼르르 쫓아다니는 암탉 무리를 보고는 빨리 번식하라고 낄낄거리는 미군 병사들.
전투 이후로 무척이나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연대급 병력에 그 가족까지 합치면 수천 명에 달하는 인구였지만, 다행히 아직는 부대 안에 쌓아 놓은 전투식량으로 어떻게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닭을 키우는 곳 옆에는 미군의 가족들이 직접 밭을 갈고,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고 작물을 심어서 대량으로 야채를 캐고 있었다.
“헤이! 스미스! 이것 좀 도와줘!”
“Shit! 감자 자루 하나를 못 들어서!”
양계장을 만들던 병사들은 다른 병사들이 감자를 잔뜩 캐고 그 자루를 나를 때 도와달라고 손짓 했다.
천하무적 미군이 하는 둔전은 좀 특별했다.
***
“에밀리?”
[예아~ 매튜, 거기 준 잘 있어?]
“지난번 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아직 눈은 못 뜨지만.”
밤이 되어서 김준이 있는 병실에 앉아 있던 매튜 리 대위는 무전기를 통해 연락한 에밀리를 달래줬다.
“의식을 차리면 바로 연락할 테니까 걱정 하지마요.”
[준한테 무슨 일 생기면 안 돼! 내 남편이야.]
“하하하, 알아요. 알아. 우리에게도 동료니까 꼭 살릴 겁니다.”
김준 쉘터의 아이돌들이 무전기를 통해 그의 상태를 계속 물어 봤다.
매튜는 자신이 직접 밤마다 살피면서 군의관들이 해준 말을 전달해줬다.
[내일은 깨겠지?]
“그래야죠. 일단 나이프 상처만 해도 최소 12주는 걸린다고 해요.”
물론 그것도 VIP병실에서 최신식 의료장비와 의사를 동원할 때고, 이런 야전병원에서는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다쳤는데… 흑.]
“에밀리아? 혹시라도 거기 견디기 힘들면 언제라도 우리가 구하러 갈게요. 부담 갖지 말고요.”
지난번 양근태를 통해 물었을 때는 모른다고 해서 넘어갔지만, 미군들은 김준 쉘터의 아가씨들도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다는 의사였다.
하지만 에밀리는 그 말을 듣고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싫어. 그냥 준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우리가 거기는 안 가.]
“아, 뭐… 정 그렇다면.”
[내일도 연락할 거야 매튜, 그 전에 깨어나면 바로 연락해.]
“네, 네~”
주소를 물어보자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바로 무전을 마친 에밀리.
매튜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그럴 만도 하지. 그럴 만도….”
그때 매튜는 보지 못했지만, 의식이 없던 김준의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