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탑! 사격 중지!!!”
험비 조수석에 타고 있던 매튜 리 대위의 외침에 기관총 사수 둘이 멈춰 섰다.
대전차 로켓을 발사한 미군 두 명도 빠르게 MRAP 차량으로 돌아갔다.
김준은 매캐한 화약 냄새와 수백마리 좀비의 썩은 피 냄새에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수백 마리의 좀비를 기관총과 대전차 로켓으로 전부 날려 버린 미군의 불꽃 화력.
그 덕분에 지금 4차선 도로에는 좀비들의 어육과 뼈가 쌓여 있어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 엄청난 수의 좀비를 미군 1개 분대가 남김없이 처리한 것이다.
“그래도 뒤처리는 해야지….”
김준이 중얼거리면서 차에서 나왔고, 뒷좌석 문을 열었을 때, 매튜가 황급히 나왔다.
“헤이! 헤이! 킴!”
“?”
“위험하니까 차로 돌아가요.”
매튜 대위가 만류했지만, 김준은 눈앞에 쌓여 있는 좀비 무더기를 가리켰다.
“저걸 밟고 가겠다고? 적어도 처리는 하고 가야지!”
김준은 그러면서 준비한 화염병을 보였다.
“이거면 1시간만 지나면 얼추 다 타들어요.”
“아~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차 안에 있어요.”
“!?”
“Look at This!”
구구구구구구- 구구구구구-
끼이익- 끼릭- 끼이이이이-
“!?”
험비 차량이 자리를 빠지자, MRAP 맥스프로가 움직였다.
MRAP은 어마어마한 차고의 장갑차였다.
원래 목적은 중동 전장에서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만든 차량으로 하부에 엄청난 장갑으로 웬만한 폭발에도 견딜수 있었다.
물론 그런 차량이라 해도 무턱대고 지뢰밭을 다니는 건 아니었다.
정확히는 차량 앞에 달려 있는 블레이드가 내려가더니 쭈욱 펴졌다.
마치 공사용 불도저처럼 블레이드가 펼쳐지고 MRAP 차량이 앞서가자 가장 먼저 죽어 나간 뛰는 좀비의 시체부터 서서히 밀어냈다.
“!!!”
나무나 자갈을 밀어내듯이 수백 구가 쌓여 있는 좀비들을 한데 모아서 쭈욱 밀어내는 MRAP 장갑차.
김준은 보고도 허탈한지 쓴웃음을 지으면서 담배를 물었다.
“이걸 일일이 태워요? 이 파이어밤은 한데 다 쌓아 놓으면 그때 쓰세요.”
“하- 그래야겠네….”
그렇게 수백구의 시체가 도로 사이드의 논밭으로 떨어지고 좀비 무리의 산이 만들어졌다.
아스팔트 바닥이 피와 뇌수 등으로 물들었고 악취가 가득했지만, 그것은 미군들이 방독면을 차고 나가 소화기를 메고 피와 좀비 바이러스에 젖은 도로에 흩뿌렸다.
촤아아아악- 촤악-
“….”
“포이즌 가스 세척제예요. 저게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김준도 아는 거였다.
예비군 강의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독가스에 대비하는 작전.
훈련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 미군들은 빠르게 처리했다.
“가죠.”
“후-”
김준은 뒤에 있는 양근태에게 손짓했고, 그 역시도 상황을 확인하고는 바로 시동을 걸었다.
그렇게 수 백 마리의 좀비 무리를 잡은 뒤에 다시 출발했다.
양근태가 앞장서고, 그 뒤를 김준이 따라가고 뒤에서는 미군 차량들이 탄을 재장전하고, 방독면을 벗으면서 다음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
끼이익-
중간에 멈춰 선 양근태의 차량.
그리고 신릉면 외곽에 있는 유흥 단지가 보였다.
[노래방],[노래클럽],[노래주점]등 보도방에서 온 아가씨들과 노는 노래방 여러 곳이 수십 미터가 깔렸었다.
“여기도 진짜 오랜만이네….”
아예 대놓고 ‘소사벌시 노래방상인협의회’ 라는 건물이 있었고, 그걸 관리하는 곳이 그 옆에 있는 회사인 ‘제일주류유통’이었다.
군부대와 공단 노동자들이 애용하는 유흥단지였으나 지금은 좀비들과 그와 다를 바 없는 짐승 같은 깡패놈들이 숨어 있는 곳이다.
[치직- 김 사장. 저 빨간 빌딩이야.]
“빨간 벽돌로 만들어서 딱 보이네요?”
생긴 거는 강남의 오피스 빌딩 같이 생겼지만, 그 안에는 제일파 깡패들과 안마시술소 아가씨들과 억류된 의사, 약사 등등 수많은 사람이 있는 마굴이었다.
김준은 그것을 보고서 벨린저와 연결된 무전기도 들었다.
“벨린저 대령! 저기 있는 빨간 건물이요. 저 안에 있다고 합니다.”
[치직- 롸잇! 가만히 있어요. 우리가 처리할게요.]
“처리요? 저기다 총을 어떻게….”
그때였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뭐야?!”
차 주변에서 무슨 날파리들 날아다니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서 창문을 열어본 김준.
그 순간 그의 눈앞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게 있었다.
“헬기?”
위이잉- 위잉-
그건 분명 헬리콥터였다.
사이즈는 김준의 손바닥 밖에 안 되지만 말이다.
그 미니 헬리콥터들은 앞에 빨간 레이저가 깜빡였고, 위에는 스마트폰 카메라 크기 수준의 렌즈가 있었다.
“드론!?”
김준은 양근태가 쓰던 드론보다 훨씬 작고서 정밀한 그 기계들을 보고 미군 차량을 바라봤다.
그사이 미군 몇몇이 차량 위로 다시 올라와 스코프가 착용된 M4 소총으로 건물 창가를 겨누고 있었다.
“철저하네….”
드론으로 내부를 살펴본 다음에 주의를 끌고서 들어오는 제일파 깡패들을 저격하겠다는 작전.
정말 이대로만 간다면 김준은 길 안내만 해준채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미군들이 알아서 처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철컥-
김준 역시도 그냥 볼 수가 없어서 공기총을 꺼내고 창밖으로 그 건물을 이리저리 살폈다.
스코프를 통해 비친 창문은 전부 장롱 같은 걸로 막혀 있었지만, 그 최상층은 뚫려 있었다.
“나와봐라, 나와 봐….”
만약 제일파 깡패들이 창가로 얼굴을 들이밀면 미군들보다 더 빨리 쏴 맞추겠다는 자신감으로 방아쇠를 걸었다.
그렇게 내부에서 드론이 비치고 있을 때, 갑자기 큰 소란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콰앙-
“어우, 씨!?”
건물 안에서 폭발음이 들리더니 불길이 치솟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싶어 그 창가 주변을 봤을 때, 문이 덜컥 열렸다.
“어떤 새끼야!!!!”
띵-
김준은 주저 없이 사시미 칼을 들고 창밖에 몸을 내밀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놈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쿠당탕탕- 콰직-
머리에 공기총 연지탄을 맞은 제일파 깡패 하나가 그대로 창가에서 추락했을 때 내부가 벌집을 들쑤신 것처럼 움직였다.
“나와! 이 새끼들아!!!”
쨍그랑!!! 화르르르륵-
다른 창가에서 자기 아지트를 들쑤시자 튀어나오는 제일파 깡패들이 화염병을 던지고 주변에 불을 일으키면서 날뛰었다.
물론 그것들은 김준과 더불어 바깥에서 저격하는 미군들에게 하나하나 쓰러졌다.
탕- 탕-
“크어어억!!!”
이마와 목에 바람구멍이 나고 피를 뿜어대다가 비틀거리면서 쓰러진다.
순식간에 깡패 셋을 잡았을 때, 미군들이 나섰다.
“Go! Go! Go!!!”
매튜 대위가 소총을 들고 나와서 손짓하자 험비와 MRAP에서 내린 미군 분대가 빠르게 돌입했다.
거기에 맞춰 김준도 조용히 나와서 엽총을 든 채로 돌입했다.
“킴!”
“같이 가요! 안쪽 보게!”
“… 오케이! 고! 고!”
일단은 안으로 들어가서 같이 싸우게 되었다.
폐차와 고철 등으로 만든 바리케이드를 미군들이 속칭 빠루라 불리는 대지렛대로 끌어내 길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숙련된 대테러부대 같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1층부터 제일파 깡패들이 보였다.
“이런 쓰벌 놈들!”
“야이 새끼….”
타탕- 타타타탕-
인간이라 하더라도 자비가 없었다.
미군들은 기계같이 소총으로 제일파 깡패들을 쓰러트렸고, 김준 역시도 총을 들고는 주변을 살폈다.
엘리베이터는 예전에 문이 닫혀 있었고, 비상구를 통해 올라가려고 했지만, 화재방지 철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쿵- 쿵- 쿵-!!!
그걸 미군들이 강제로 뜯어내려고 문고리를 두들기는 순간 김준이 외쳤다.
“스탑! 멈춰! 멈춰!”
“!?”
“왓?”
미군들은 갑자기 난입한 한국인 청년의 외침에 어리둥절했고, 매튜가 중지시켰다.
“킴! 뭐예요?”
“이거, 이렇게 안 열려요. 안에서만 나올 수 있게 짐으로 막아놓은 거야.”
아예 자신들의 성채를 만들고 농성을 하는 것이었다.
각 층마다 있는 화재방지 철문으로 잠가놓고 안에서 각종 짐을 놓아서 자신들이 원할 때만 나갈 수 있고, 안에 억류된 사람들이 탈출을 못 하게 만든 거다.
김준은 계단에서 대기하는 미군들을 둘러보고는 결심한 듯 말했다.
“내가 바깥에서 창문을 타고 올라가 열게요.”
“킴, 되겠어요?”
“올라갈 발판만 있으면 돼. 여기서 계속 두들겨봤자 바깥에서 밀어도 못 들어가.”
“흐음… 헤이, 르네어! 스미스!”
매튜 대위는 두 명의 기관총 사수를 불러 영어로 명령했다.
“이 둘을 데리고 가요! 여기서 기다릴게!”
“오케이! 갑시다.”
“얍!”
미군과 히스패닉 병사는 뜻밖에 김준을 순순히 따랐다.
“나… 한국말… 조금 해.”
흑인 병사 르네어가 더듬거리면서 김준에게 말하자 그는 피식 웃으면서 엄지를 올렸다.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와 아까 총에 맞고 떨어져 죽은 제일파 깡패 시체를 발견한 셋은 그걸 질질 끌고 가 쓰레기더미에 있는 곳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피에 젖어 있는 에어컨 실외기를 보고는 김준이 먼저 올라갔다.
“내가 타고 올라갈게. 따라 올라와.”
“나, 벽… 잘 타! 내가 먼저 갈까?”
“아냐, 내가 할게.”
장비가 문제여서 그렇지 이렇게 안에 들어가 싸우는 건 김준 본인이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이 들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미군들의 도움만 받는다면, 나중에 분명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적어도 나도 뭘 할 수 있다는 걸 봐야지. 나중에 총알이라도 몇 개 더 받으려면 말이야.’
김준은 결심한 듯 바로 2층 파이프를 타고 올라갔다.
이제부터는 침투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