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55화 (355/374)

김준은 해가 뜨지 않은 새벽길을 조용히 달렸다.

말라붙은 논밭 샛길에, 빛은 헤드라이트 조명이 전부인 곳.

담배 한 대를 물고 차분하게 액셀을 밟았을 때, 적막감만 있었다.

“….”

김준이 선택한 것이었다.

이번에 가는 길은 좀비가 아닌 인간을 상대할 수 있는 자리.

게다가 눈 앞에서 좀비 퇴치도 아니고, 살인을 할 수 있으니 애들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겠다고 몰래 빠져나갔다.

원래는 편지만 남기고 다녀오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은지가 그걸 봤다.

“금방 다녀와야지, 금방….”

김준은 논길을 통해 쭉 달린 다음, 미군부대가 있는 타운으로 향했다.

철길 위의 고가차로를 한 번 지나면 그 일대부터는 한국 땅이지만, 영어 간판이 훨씬 더 많은 곳이 나온다.

혹시 주변에 좀비가 없을까 살피던 주변 상황은 지난 번과 똑같았다.

유리창이 깨진채 오랬동안 방치된 피자집.

한국인들 체형엔 도저히 안 맞을 것 같은 초 빅사이즈의 마네킹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가게.

그 외 미군 전용 부동산이나 샌드위치 가게 등이 있는 곳에서 김준은 미군부대 일대를 크게 한바퀴 돌다가 오랫동안 방치된 카센터로 들어가 차를 멈추고 조용히 시동을 껐다.

딸깍-

치익-

시동을 끄고서 차 안에서 담배 타임을 가지고 있는 김준.

그는 차 안에서 담배 한 대 태우다가 살짝 눈을 붙였다.

카센터 차고 안에 있으니 정면을 제외하면 좀비가 들어올 곳이 없었고, 설사 여기까지 다가왔다 하더라도 이놈들의 손아귀 힘으로 차 유리창을 깰 수 있을 순 없었다.

***

삐빅- 삐빅-

“으으음.”

손목시계의 알람이 울리고, 김준이 눈을 떴을 때, 어두컴컴하던 차고 안에서 한 줄기 빛이 비췄다.

“어우, 몇 시야?”

차 시동을 걸고 확인해보니 오전 7시 반.

김준은 조용히 차에서 나와 뒷좌석으로 들어갔다.

캠핑카 안에는 항시 먹을 것을 구비해 뒀었는데, 서랍을 여니 멸치 쌀국수 컵이 나왔다.

커피포트로 물을 끓이고, 냉장고에서 김치와 참치캔을 꺼내서 조촐한 아침 식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다 먹은 그릇을 치운 다음에 식후 연초 한 대.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딱 아침 8시가 됐다.

“가 보자.”

다시 차에 시동을 걸고, 언제나 그랬듯이 미군부대 앞에 있는 폭죽을 터트렸다.

폭죽 소리와 함께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때, 얼마 안 있어서 저 멀리에 차 소리가 들렸다.

“흠, 슬슬 오나보구만.”

김준이 기다리고 있을 때, 얼마ㅣ 안 있어서 거대한 장갑차와 험비가 달려오고 있었다.

“오우-”

과연 미군은 미군이었다.

보급이 끊긴지 1년의 상태인데, 내부에 있는 기름만으로 이정도의 규모를 운용할 수 있었다.

“험비 두 대에, 저건 MRAP이야? 기름이 남아도는 구만.”

김준이 피식 웃으면서 그들을 기다렸고, 철창 너머로 차가 멈추면서 미군들이 바로 내렸다.

김준 역시 천천히 나와 손을 흔들자, 그를 찾아온 것은 벨린저 대령이었다.

“미스터 킴! 오랜만에 봐요!”

“아, 벨린저 대령님?”

“바깥에 나간다는 걸 내가 직접 나왔소. 안에는 뭐… 부사단장님이 계시니까.”

부상중이지만, 벨린저 대령 위에 장성이 몇 있다고 들었다.

“매튜가 나올 줄 알았는데….”

“매튜! 컴 히얼!”

벨린저가 바로 매튜 리 대위를 불렀고, 황급히 달려온 그가 벨린저와 김준에게 인사했다.

“미스터 킴! 결국 이렇게 같이 싸우게 되는 군요!”

“인원은 얼마나 되나요?”

“험비에 넷씩, 므랍(MRAP)에 여섯이요.”

1개 분대 정도 되는 규모인데, 분대장이랑 부분대장이 대령이랑 대위다.

어쨌건 1개 분대라도 이들은 풀무장한 미군이다.

“담배라도 피면서 한 대 기다리죠. 올 사람 한 명 더 있어요.”

“아, 길안내?”

“옙.”

김준이 담배 한 대를 물자, 매튜 역시도 뉴포트를 한 갑 꺼내서 한 대 물었다.

“킴, 물어볼게 있어요.”

“음?”

“혼자 몰래 왔어요?”

“어, 여자들은 못 데려오죠.”

“아침부터 에밀리아가 울고불고 하면서 무전기로 보냈어요. 미스터 킴을 가만 안 놔두겠대요.”

“….”

“우리한테 자기 남편 무사히 못 데려오면, 방송 없다고….”

그 순간 김준을 본 사병들이 실실 웃으면서 휘파람을 불어줬다.

이래서 몰래 나온건데 에밀리 그 망할것이 대놓고 미군부대에 무전 날려서 난장을 깠나보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을 때, 양근태의 픽업트럭이 저 멀리서 오고 있었다.

“호~ 또 다른 생존자?”

“네.”

“트럭 호커구나.”

매튜는 또 다른 생존자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고, 양근태는 내리자마자 눈 앞에 미군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님 오셨어요?”

“어이구~ 이거 봐라. 아주 미군애들 잔뜩 있구만?”

“신릉면은 금방 털죠.”

“옘병, 우리나라 군대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원~”

“강원도나 포천에서 서울 수복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차차 내려오겠죠.”

한국 땅에서 미군들이 이렇게 다니는데 국군은 뭐하냐고 투덜거렸지만, 그 ‘전직 국군’ 출신의 김준은 다 사정이 있을 거라면서 그런 소리 못 나오게 딱 막았다.

“자, 그럼 가 볼까요?”

“알겠소. 헤이! 스타트!”

벨린저 대령의 우렁찬 외침에 노닥거리던 병사들이 일제히 각자의 차량에 탑승했다.

그리고 미군부대의 문이 서서히 열린 순간 김준도 탈 준비를 했다.

“근태 형님이 앞장서세요. 무전기로 말할게요.”

“그래. 가자.”

양근태는 무전기를 가지고 트럭에 올라타 곧바로 출발했다.

1년만에 소사벌시의 대로에서 여러 차량의 행렬이 생겼다.

양근태의 픽업트럭과 그 뒤를 따라가는 김준의 캠핑카, 이후 MRAP 장갑차가 따라가며, 양 옆으로 험비가 차선 상관없이 달렸다.

지금, 이 순간에는 좀비가 몇백 마리가 달려든다고 하더라도, 그냥 깔아뭉개서 전멸시킬 수 있을 거다.

신릉면은 미군부대에서 출발하면 30분 정도 될 거리.

김준은 장갑차들 속도에 맞춰 60km 정도로 서서히 달려갔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과거 황 여사 일행을 구했던 로터리 일대에서 군락화된 좀비를 마주할 수 있었다.

크으으- 크어어어어-

크르륵- 크륵-

“!?”

빠아아앙- 빵- 빵!!!

앞장서서 달려가던 양근태의 픽업 트럭이 급브레이크를 밟고 미친 듯이 클락션을 눌렀다.

끼이이익- 끼익!!!

그 상황에 김준도 황급히 차를 돌려 브레이크를 밟았고, 뒤따라오던 장갑차 세 대도 뒤에서 들이받을뻔 한 것을 겨우 멈춰섰다.

“왓! 왓?!”

“앞에 좀비!!”

김준이 창문을 열고 앞을 가리키자, 미군들 역시도 좀비를 발견하고, 움직일 준비를 했다.

“헤이! 스미스! 르네어!!!”

차 안에서 외치는 소리에 험비 두 대가 좀비 무리를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각각 험비 안에서 뭔가를 준비하다 루프탑으로 올라가는 두 명의 미군 병사.

“르네어!!”

“롸잇!!”

르네어라 불린 삭발한 흑인 병사는 그 덩치만큼이나 육중한 루프탑 기관총을 붙잡았다.

다른 험비에도 히스패닉 병사가 기관총을 들었다.

M249 기관총.

흔히 분대지원화기 용도로 쓰이는 경기관총을 거치대에 설치하는 두 병사였다.

좀비 무리는 그 상황을 보고서 서서히 인간들에게 다가왔다.

“미친… 그래도 너무 많은데….”

군락화된 좀비인걸 보고 만만치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수는 지난번 공단면에 배 이상이었다.

수 백마리의 좀비 무리가 군락화되어서 움직인다.

불과 100m 앞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물결은 그동안 수많은 좀비를 잡아왔던 김준도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

캬아아악- 캬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아!!!!!

크롸아악- 아악!!!!!!

앞장선 좀비무리들이 달려든다.

뛰는 좀비만 백 마리 가량 됐고, 놈들은 단거리 마라토너처럼 피거품을 뿜어대면서 미친 듯이 돌진했다.

눈 앞에 보는 대규모의 사람들을 물어뜯고, 배를 찢고, 안에 있는 내장을 뜯어먹은 다음 감염시켜서 모두를 좀비화 시켜버릴 것이다.

김준이 엽총을 들고서 놈들을 겨누고 가장 먼저 달려드는 좀비 한 마리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탕-!!!!

엽총탄이 좀비 한 마리의 머리를 터트리면서 쓰러트리고, 남은 놈들은…

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 투웅-!!!!

“!?!?!?!?!”

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퉁!!!!

캬아악!!!

쩌저저저적-

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퉁!!!

전방에서 수 십마리의 뛰는 좀비?

그것들은 모두 험비 위에서 미친 듯이 난사하는 M249 경기관총 앞에서 어육이 되고 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그동안 김준 일행이 잡는 좀비라고 쳐 봐야 2~3마리 정도가 다니는 것, 그것도 걷는 좀비 위주인 녀석들을 멀리서 석궁하고 엽총으로 겨우 잡아나갈 때였다.

게다가 정면에서 수십마리만 발견해도 그냥 피하는 길로 향했고, 거리나 각이 보일때나 화염병 같은 것을 써서 아주 서서히 태워나갔었다.

하지만, 험비 두 대에서 나오는 기관총 두 자루는 그동안 김준이 잡아갔던 좀비 그 이상의 수를 상대로 아주 갈가리 찢어발겼다.

“Woooooo!!!!! Yeah!!!!!!!!!!!”

투투투투투투투투퉁- 투투투투투투투투투!!!

고래고래 소리치며 기관총을 미친 듯이 난사하는 흑인 병사는 인간의 형상을 한 좀비들을 죽여나가면서 희열을 느끼는지 방아쇠를 절대 떼지 않았다.

덕분에 앞장서있는 뛰는 좀비들은 바닥을 피로 물들이며 쓰러져나갔고, 그 뒤에서 다가오는 걷는 좀비 무리는 10m도 걸어가지 못하고 사방에서 죽어나갔다.

“….”

김준은 조용히 귀마개를 꺼내 찼고, 그 옆에서 차를 같이 댄 양근태도 어디서 구해온 무선 헤드셋을 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우, 양키놈들은 진짜….”

기관총 난사로 다 잡아가던 도중, MRAP의 문도 열렸다.

회색과 연두색이 뒤섞인 방탄복을 입고 나온 두 명의 미군이 들고 있는 것은 큼지막한 파이프 같은 것이었다.

“어?!”

“야, 김 사장! 저놈들 저거 바주카를….”

정확히는 바주카가 아니라 LAW라고 불리는 대전차 로켓이었다.

그들은 험비 사이에서 달려가 저 멀리서 다가오는 좀비들의 골목길을 두고서 그것을 겨눴다.

그리고는 크게 외치면서 발사했다.

퍼어어어엉-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거대한 후폭풍은 아니었고, 연기 조금 나오는 수준.

그리고 원래 상가였던 건물이 폭발하면서 그 골목에 좀비들은 갑작스럽게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를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아메리칸 스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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