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김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뒤에서 문이 열리면서 얼굴을 부여잡은 에밀리가 들어왔다.
“흐으으- 이 아파.”
잇몸 안까지 그득그득 긁어내서 스케일링을 끝낸 에밀리.
그녀는 안으로 들어와서 자연스럽게 김준 옆에 앉아서 조용히 무릎을 벴다.
김준은 조용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더 이야기 해요?”
“설마 또 있어요?”
김준의 말에 미미 마담은 상처 가득한 몸을 주무르면서 다시 이어나갔다.
“제일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건 김 부장이에요. 회장님을 재낀것도 있지만, 그놈이 마약을 가지고서 모두를 컨트롤하고 있어요.”
“매스암페타민~”
에밀리가 그걸 언급하자 김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별다른 무기는 없고, 전부 칼이나 낫 같은 거지만 하나하나가 센 놈들이에요. 특히 김 부장 오른팔로 황선호라고 있는데… 그 놈이 정말 쎄요.”
“얼마나 센데?”
에밀리가 누워서 묻자 김준은 엉덩이를 토닥이면서 껴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사시미 칼 두자루로 좀비를 잡아요.”
“근접에서요?”
“네. 회장님 앞장서서 먼저 찌른게 그 놈이었고요.”
“흐음-”
김준은 모든 것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거지만, 김준은 들이받을 것이다.
“전부 구해볼게요. 다 살아있으면 좋겠는데.”
“부탁드립니다….”
미미 마담은 김준에게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
“시간이….”
돌아가는 길에 차 시계를 바라본 김준은 해가 질때까지 3,4시간 정도 남은 것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연신 핸들을 손으로 두들기는게 뭔가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에밀리는 조용히 김준에게 물었다.
“준, 지금 그거 생각하지?”
“뭐가?”
“다 제끼고 지금 당장 그 신릉이라는 데 가서 갱스터들 잡을 거.”
“!”
김준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자 마리 역시도 거들었다.
“정말 그거에요? 어,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제대로 된 준비도 안하고 무턱대고 간다는 것은 자살행위.
김준은 길게 한숨을 쉬며 차 안에 있는 애들에게 말했다.
“생각 같아선 바로 가고 싶지만, 그게 안된다는 건 나도 알아.”
“맞아. 좀비도 아니고 갱스터들이라고.”
“일단 혼자서 다 싸우는 건 위험하고요.”
그렇다고 좀비를 잡듯이 애들한테 새총과 석궁, 공기총을 주고는 ‘좀비랑 다를 바 없으니까 저 놈들 쏴 죽여.’ 라고 애들한테 시킬 수도 없었다.
아무리 망한 세상이라 하더라도 아이돌한테 살인 의뢰를 할 정도로 김준은 막나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이후로 김준은 애들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몇몇은 그 이야기를 듣고 마리처럼 눈물을 훔치거나, 분노해서 부들부들 떨었다.
“다 조질거야.”
“어떻게 움직일거죠?”
은지의 말에 김준은 조용히 군용 무전기를 가리켰다.
“일단 미군에게 말하고, 그들도 나와서 싸울 수 있는지 알아볼거야.”
“미군이… 도와줄까요?”
“거기에 수많은 여자들이 있고, 구해서 데려갈 수 있다면 바로 응할거야.”
“아~ 그럴수 있네.”
에밀리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말에 수긍했다.
제일파 깡패들과 상대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
김준은 그녀들을 조용히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신릉면으로 나가는건….”
“나! 나 갈래!”
“…됐어.”
김준은 에밀리를 패싱하고 다른 애들에게도 이번에 나가는 게 누가 될지 말하지 않았다.
“에밀리는 지금 미군부대에 라디오 방송 해봐.”
“응! 응!”
김준은 그 말을 마치고는 조용히 소파에 앉았고, 에밀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미군용 무전기를 가지고서 차분하게 방송을 시작했다.
영어로 시작하는 것을 옆에서 마리가 해석해줬고, 마치 라디오 드라마 대본을 읊는 것처럼 거침없이 말하는 에밀리를 두고 무전기 너머에서 미군들의 각종 욕설이 나왔다.
“인간도 아닌 새끼들이라네요.”
“그런 놈들이지.”
“준, 매튜인데 바꿔달래.”
올 것이 왔다.
김준이 조용히 다가가 무전기를 집었을 때, 도경이나 라나, 인아, 나니카 모두 긴장한 얼굴로 바라봤다.
“네 전화 받았어요.”
[미스터 킴. 이야기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쓰레기같은 놈들은 있군요.]
“어떻게, 도와주시렵니까?”
[물론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바로 가죠. 미군부대로 가겠습니다.”
[롸잇! 우리또한 차량을 준비하고 나갈 겁니다.]
그렇게 미군들까지도 나서서 도와주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내일 당장 신릉면으로 가서 그 제일파 잔당들을 싹 쓸어버리고, 여자들을 구한다.
미군들은 여자들을 데려갈테고, 김준은 그곳까지 가서 양근태가 말한 농협 창고를 차지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내일 나간다는 무전을 마치자 에밀리가 다시 김준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나 데려갈거야?”
“아니.”
“그럼 제가 같이 갈까요?”
은지가 조용히 손을 들었지만, 김준은 고개를 돌렸다.
“절에 있던 그 언니 상태를 보면, 다른 이들도 똑같은 상태일거예요. 상태 보려면 역시 제가…”
마리도 나서서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김준은 그녀 또한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내일 말할게.”
김준은 그 말만 마치고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여자들만 남게 됐고, 침묵 속에서 맏언니 가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대 사람이잖아. 난 도저히….”
“언니….”
그 말에 인아가 격하게 공감해줬다.
특히 저 둘은 처음으로 제일파 깡패들을 발견하고, 김준의 칼을 여러방 맞아서 다 죽어갈뻔했던 걸 봤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었다.
“난 상관없는데.”
“끔찍한 소리 마.”
“슈퍼 히어로가 빌런을 잡는 거잖아?”
에밀리는 자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꼬면서 내일 따라가고 싶어하는 에밀리.
하지만 김준이 누구를 데려갈 지는 아직도 몰랐다.
***
철컥- 철컥-
김준은 모처럼 안방에서 무기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공기총과 엽총, M4 소총까지 내부를 깔끔하게 청소하고 스코프 하나를 소총 레일에 달아서 저격도 가능하게 만들어줬다.
총기류를 깔끔하게 손질한 다음은 날붙이였다.
김준은 그간 유용하게 썼던 손도끼의 날을 숫돌을 가져와 갈았고, 군용 대검과 볼트 커터까지 다듬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김준은 조용히 나와서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그때 방에선 불이 켜져 있었고 애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이번엔 좀 그래요. 좀비땐 안 그랬는데 아무리 조폭이라도 사람이잖아?”
“맞아. 솔직히 석궁이나 새총 같은 거 대고 쏘라고 해도 못 할 거 같아.”
“푸씨(Pussy)~ 아, 여기 다 푸씨 맞지?”
목소리를 들어보니, 라나하고 도경, 에밀리였다.
그녀들의 반응이 백번 이해됐고, 그래서 김준 역시도 내일 누굴 데려갈지 아무에게도 말 안한 것이었다.
끼익-
김준은 조용히 문을 열고 옥탑방 집에 들어왔다.
냉장고 옆에서 충전중인 무전기를 챙겼고, 누가 볼 세라 바로 나왔다.
김준은 바깥에서 담배를 꺼내 태우면서 무전기를 준 사람에게 연락했다.
“여보세요? 근태 형님?”
[치직- 치지직- 어, 어?]
“형님, 아예 거기 살림 차리셨네.”
[하하, 오늘 옥탑방 화단에 지붕 설치했어. 다음엔 물탱크 파이프도 설치할거야.]
“네. 형님한테 얘기할게 좀 있는데요.”
[응?]
김준은 바깥에서 수십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는 조용히 집에 들어왔다.
그날 밤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
그리고 새벽이 되었을 때, 김준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더블백 안에 수많은 무기가 가득했다.
복장은 보호대와 프로텍터를 단단이 채웠고, 질긴 레이싱 슈트를 입어서 풀 무장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가기 전 김준은 미리 써놓은 편지를 의자에 올려놨다.
끼이익-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조명 하나 없이 어두운 집 안이 보였다.
“….”
김준은 집 안을 한 번 둘러보고는 내일 바로 올 것이라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안에 있는 캠핑카에 차키를 꽂으려는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럴 거 같았어요.”
“!?”
김준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거기엔 은지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조명도 없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거기서 뭐해?”
“방금 차에서 샤워하고 왔어요. 물도 채워놨고요.”
차 근처가 축축한게 물을 날라서 채우는데 걸렸나보다.
“처음부터 혼자 다녀오려고 했던거죠?”
“금방 다녀올 거니까.”
“내일 아침 되면, 다른 애들한테 그렇게 말할게요.”
“….”
“다치지 마세요. 그리고 먹고 싶으신거 있으면 내일 차려놓을게요.”
“아, 됐어. 그냥 있는대로 차려.”
김준은 은지와의 마지막 대화 이후로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은지 외에 누가 들을세라 시동을 걸고 조용히 밖으로 나섰다.
은지는 새벽에 몰래 빠져나간 김준의 뒷모습을 보고는 말이 없었다.
“…내일 반찬 많이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김준은 제일파 깡패들을 잡으러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