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51화 (351/374)

파각!

화르르르르륵-

크어어어!

불지옥이라는 게 딱 이런 상황일 거다.

옥상에서 끊임없이 던져대는 화염병에 밑에서 피와 시체를 갈구하며 뭉쳐 있는 좀비들이 떨어지는 불에 맞고 날뛰고 있었다.

피해량을 더욱 늘리기 위해 신나 안에 캬라멜과 설탕까지 섞었으니 더욱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불길이 치솟으면서 끈적한 점액이 좀비들의 피부에 치솟고 그것이 타들어 갈때까지 불길이 꺼지지 않아 좀비들은 서로 날뛰다가 살점 하나하나 타오르고, 뼈만 남을 때까지 발버둥 치다 죽는다.

김준 역시 눈앞에 좀비들을 잡겠다고 화염병을 던져댔지만, 11번째 병을 들었을 때는 순간 머뭇거렸다.

“후우, 후우….”

“쿨럭! 쿨럭!”

좀비를 불길로 태우니 그 시체 타는 연기가 곧바로 하늘로 치솟아 푸른 하늘을 더럽히고 있었다.

라나가 연신 기침하다가 입가가 새까매지며 울먹이자 김준은 라나한테 품 안의 새 마스크를 주고, 그녀를 피하게 했다.

그때 양근태가 가방에서 뭔가를 또 꺼냈다.

“김 사장!”

“!”

“나머지는 내가 할게.”

양근태는 좀비 시체가 타들어 가 매캐한 연기가 뿜어지는 곳에서 조용히 방독면을 꺼냈다.

“아가씨도 하나.”

“네, 넷?! 저요?”

“이거 써! 방독면 많으니께.”

양근태는 라나에게 다가가 방독면을 하나 씌워줬고, 자신도 찬 다음에 김준에게 건네줬다.

“김 사장. 나와. 내가 해결할게.”

“아저씨가 어떻게요?”

“가방에 투척방화수 있어. 그거 뿌리고 연기 빠질 때까지 놔둬도 돼.”

“!?”

김준은 그의 말에 양근태에게 준 방독면을 쓰고 조용히 물러났다.

라나는 무더위 속에도 김준의 품에 꼭 안겨서 그을음이 묻은 작은 손으로 그를 붙잡았다.

“물 내려간다, 이놈들아!”

양근태는 투명한 원통 막대를 연기가 가득한 곳에 내던졌다.

파각- 취이이이이익-

펑- 펑!!! 촤아아아악-

양근태가 원통 막대를 던질 때마다 불길 속에 떨어지면 그것들이 하나하나 터지면서 매연 속에서 새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면서 불길이 빠르게 잡혀나갔다.

“투척용 소화기구나….”

김준도 초반에 집 앞에 불지를 일이 많아 몇 개 가지고 있던걸였다.

주로 기차역이나 민방위대피소 같은 공공장소에서 갑작스러운 불길이 치솟을 시, 그냥 집어서 던지면 그게 열기에 터지면서 소화액이나 소화 분말이 튀어나와 불을 끄는 장비였다.

양근태가 여러 개의 투척 소화기를 던지자 여기저기서 분말 가루와 연기가 뒤섞인 거였고, 몇몇 모델은 물과 비슷한 소화액이 터져서 잔뜩 달궈진 아스팔트 바닥을 적셨다.

그렇게 30분 동안 여기저기 뿌려댔던 양근태도 무더위 속에 화공을 쓰니 지쳤는지 땀에 푹 젖은 몸으로 풀썩 주저앉았다.

“아저씨!”

“후우… 이게 물탱크인가?”

양근태가 파란색의 커다란 물탱크 옆에서 중간에 꽂혀 있던 꼭지를 돌리자 호스를 타고 물이 졸졸 흘렀다.

그는 방독면을 벗고 주저 없이 머리부터 얼굴 여기저기에 물을 뿌려 달궈진 머리를 식혔다.

김준은 그 모습에 안도하면서 품 안에서 화염병 드링크 말고, 진짜 물이 담긴걸 꺼내 땄다.

그리고 라나의 방독면을 벗겨 그녀 먼저 먹여줬다.

100마리를 어떻게 잡긴 잡았다.

***

덜컥-

“김 중사!”

“준아!”

“오빠!”

좀비들을 불구덩이에 빠트렸지만, 그 이후로도 직접 내려가 정찰까지 하고 올라온 김준이었다.

“마지막까지 다 쓸고 왔어요.”

김준은 그 한마디를 하고, 자신에게 달려온 인아와 라나를 각각 끌어안아 줬다.

오빠가 아니라 아빠를 보듯이 달려온 두 소녀.

“여기요.”

“고마워.”

인아가 갓 쨔낸 물수건을 건네주자 김준은 그걸로 얼굴과 손 여기저기를 닦고는 갑옷처럼 맨 프로텍트를 다시 벗어 던졌다.

“오빠, 물도요.”

“응, 라나도 땡큐.”

갓 담아온 물병을 보고 벌컥벌컥 들이켠 김준.

“밖에 나가려면 이거 입고 벗는데 진짜 죽겠어. 타이벡을 차라리 준비할까?”

“타이벡이요?”

“그 TV에서 안 봤어? 공장이나 기계 안에 들어갈 때 쓰는 일체형 방진복.”

“아! 그게 타이백이구나.”

정확히는 그런 방진복 전문 업체 이름이 타이백이지만, 김준은 그냥 입에 붙는 대로 말했다.

“에휴~ 우리 공주님. 얼굴 봐바.”

“아….”

김준은 옆에서 자기 보조하면서 시체 타는 연기를 직빵으로 맞아 여기저기 그을음이 묻어난 라나 얼굴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세수 했는데, 아직도 남아 있어요?”

“봐바.”

김준은 물수건으로 라나의 귀 밑이나, 콧잔등까지 구석구석 닦아줬다.

그리고 인아가 그 모습을 묘하게 바라보다가 반사적으로 자기 얼굴을 어루만졌다.

‘진짜 남매같아….’

밤에는 살을 섞는 사이이긴 하지만 말이다.

‘김 사장. 진짜 고생했어.’

“황사장님, 야채 저거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매연을 직빵으로 맞았으니.”

“아유, 그런 소리 하지 마. 우린 바깥에 저놈들 다 잡은 걸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그러면서 냉장고에 시원한 물을 맘껏 마시라며 건네줬다.

이후 김준 일행은 노래방 안에서 가장 큰 회식용 홀에 들어왔다.

12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노래홀 안에서 황 사장, 은별, 동남아 아가씨 하나, 양근태, 김준, 인아와 라나가 다 같이 앉아 있었다.

“언니 이름은 뭐?”

“앙헬! 앙헬! 필리핀에서 왔써요!”

한국말로 자기 이름을 앙헬이라고 말한 보도 아가씨.

황사장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얘가 한국에 가장 오래 있던 애야. 나한테 맨날 엄마라고 하고.”

“마마랑 나 오래 있었어.”

김준은 그녀의 소개까지 받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 어떻게 이렇게 다 모였어요. 양근태 형님과는 예전부터 물물교환으로 알게 됐거든요. 근데 황 사장님하고 이렇게 또 아는 사이일지 몰랐고요.”

“글쎄 말이야. 나도 양 과장 보니까 너무 반가운 거 있지?”

“하하하, 나도 황 여사 오랜만에 보니 좋네요?”

훈훈한 두 중년 남녀의 분위기 속에서 김준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말했다.

“자, 이렇게 따로따로 사는 쉘터들이 꽤 돼요. 지금까지는 제가 무전기를 드리면서 물물교환을 할 때마다 오갔는데, 앞으로 가 이제 문제겠네요.”

‘앞으로’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모두가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양근태는 황여사를 보면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난 지금 사는 곳이 농협 창고야. 거기가 혼자 살기에는 엄~ 청 넓거든? 먼지가 좀 쌓여서 그렇지.”

김준 역시 거길 알고 있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농기계 수리와 직불금 처리하기 전에 쌀 수매를 하는 창고 두 개를 양근태 혼자서 쓰고 있고, 거기를 임시 피난소로 개조한다면 수백명이 들어가 살 수 있을 거다.

“황 여사, 어떻게 여기는 계속 살기 좋아요?”

“화장실 문제가 좀 있죠. 애들 똥치우는 게 아주….”

“마마….”

“아유~ 여기서 옛날처럼 물내리는 화장실 쓰는 사람이 어딨겠어? 대충 요강같은데 싸고 닦은 다음에 내다 버리는 거지.”

양근태와 황 여사의 말에 순간 라나가 흠칫했다.

그녀는 순간 ‘저흰 아직도 변기 물내리는데요?’ 라고 말할 뻔했다.

“먹는 것도 문제예요. 우리 몇 달 전까지 저수지에다가 바케스로 붕어랑 미꾸라지 잡아다 먹었어요.”

“어유, 그걸로 애들 어떻게 먹여?”

“그래도 김중사 삼촌이 접때 방앗간 털어서 밀가루다 쌀이다 해서 묵은 거지만 그걸로 어떻게 먹었지. 빗물 받은 거랑 생수 쌓아 놓고서요.”

“샤워가 제일 괴로웠어요~ 우리 뭘로 닦는 줄 알아요? 수건에다가 이렇게 물을 적셔서….”

안 그래도 황 여사 일행들은 냄새는 좀 감췄어도, 얼굴이 개기름에 번들거리고, 머리도 떡진 것을 비누 몇 개 가지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아 댔으니 푸석푸석한 게 보였다.

그래도 다들 여자들인데 그 상황에서 안쓰럽기까지 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 진짜 다 포기하고 싶었는데… 흑.”

황 여사가 갑자기 마음이 약해졌는지 눈물을 보였고, 그 옆에 앙헬이 토닥이자 은별은 김준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나 보다.

김준 일행을 포함해 이들은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대재앙에서 남은 생존자들.

김준 일행이 지금까지 지나치게 호사를 부리며 살아왔고, 나머지들은 물 한 방울, 쌀 한톨가지고 어떻게든 아껴가며 진짜 숨만 붙은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황 여사. 그래도 잘 버텼네. 좀만 참어. 그래도 좋은 날 올 거야.”

“좋은 날이요? 무슨 군대라도 와요? 아니면 뭐가 있어요? 이게 무슨 625 전쟁도 아니고, 사람 사는 꼴이 아닌데….”

“그, 미군이 있거든. 걔네들도 알아서 움직이지 않을까?”

“어머, 뭐요?”

“아…!”

김준은 순간 자신이 말하기 애매했던 주한미군의 존재를 양근태가 먼저 말한 것을 보고 그를 바라봤다.

양근태는 김준의 눈길에 ‘내가 말실수를 했나?’하는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라나가 뒤에서 작게 속삭였다.

“오빠, 어떻게 저희도 말해요?”

그녀 역시 에밀리나 가야, 마리처럼 미군부대에 다녀와 무장한 미군들의 존재를 아는 소녀였고, 김준은 지난날 매튜 리 대위의 말도 떠올랐다.

“미군부대가 있어요? 그럼 거기 미국애들도 있는 거야?”

“있긴 한데….”

“있어요.”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엽스럽게 말하기로 했다.

“여기 근태 형님이 말한 것처럼 주한미군 부대가 일부 살아 있어요. 거기 군종장교부터 해서 간부들에 총든 미군들이 1개 연대는 될 겁니다.”

“어머, 어머머머! 진짜 좀만 버티면 되나보다.”

“미군이 있었어? 근데 왜 우리나란….”

“강원도나 수도권 최전방 가면 국군도 있겠지. 일단 여긴 미군들이 있어.”

김준은 미군에 대한 존재를 알렸고, 그 순간 생기라고는 전혀 없던 황 여사 일행의 눈이 번득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보인 건 황 여사 외 한국인들이 아닌 동남아와 중국의 보도 아가씨들이었다.

어쩌면 그녀들은 미군부대가 있고 무장한 젊은 병사들이 있다는 것에 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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