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49화 (349/374)

최근 생활은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언제나처럼 집안일 하다가 간간이 회식도 하고, 조만간 생일이 되는 나니카고 챙겨줄 준비를 하면서 미리 양념갈비를 재우거나, 유화제로 식용유 치즈를 만드는 등 파티 준비가 한창이었다.

김준 역시도 욕망에 충실하게 간간이 한 명씩 방으로 불러서 섹스도 맘껏 했고, 스테미너 소비하는 나날을 계속 보냈다.

그날 역시도 전날 밤 격하게 한 뒤로 소파에서 자고 있을 때, 무전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쉘터입니다~”

라나가 장난스런 목소리로 무전기를 받았다.

[치직- 아, 받는 사람 누구에요?]

“차나라입니다~”

라나의 통화에 무전기 너머의 여성 목소리가 들렸다.

[아, 라나씨구나. 여기 공단면 노래방이에요.]

“어머, 언니 오랜만이에요!”

라나는 옛날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받으면서 무전기로 수다를 떨었다.

김준은 그 소리에 슬며시 눈을 떴고, 라나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와서 무전기를 댔다.

[치직- 우리 요새 안 본 지 좀 됐죠?]

“아, 은별 누나구나?”

[준이도 있네? 이번에 우리 옥상에 밭 가꿨는데 야채 가지러 올래?]

“물물교환이야?”

[뭐, 그것도 있고. 만나면 할 말도 많고, 다른 사람들 좀 보고 싶어.]

“뭐, 알았어. 내일 갈게.”

[치직-그래? 내일? 고마워! 준비할게!!]

은별은 내일 김준 일행이 온다는 말에 무전기 너머로 연신감사를 표하고 무전을 마쳤다.

라나는 김준을 보고서 눈을 반짝였다.

“오빠! 이번엔 나도 나갈래요!”

“음~ 그럼 준비해. 다른 파트너는 뭐…”

“순번대로 치면 인아 언니일텐데.”

“그래, 걔한테 말해봐야겠다.”

공교롭게도 공단면에 갈때는 인아와 라나가 같이 움직인 적이 있었다.

그날 저녁 김준은 내일 황여사네 나간다는 것을 정했고, 은지와 가야가 최근에 필요한 물건들의 리스트를 적어나갔다.

***

다음날.

김준은 무기와 각종 더블백, 빈 박스를 준비하고서 원정 떠날 준비를 했다.

“좀비 군락만 안 발견하면 금방 올수 있을 거야.”

“진짜 좀비 없으니까 당일치기가 되는구나….”

“원래 이 동네 시내버스로 40분이면 가는 거리였어.”

그동안 많은 시간이 걸리면서 갔지만, 실제로는 좀비와 찻길에 널브러진 각종 장애물만 없으면 언제든지 갈수 있는곳.

예전에 누가 말했던것처럼 불도저로 도로에 있는 폐차들만 싹 밀어내서 쌩쌩 달리면 언제든지 당일치기로 움직일수 있었다.

김준은 그렇게 라나와 인아에게 무장을 시킨다음, 차에 태웠다.

“내가 조수석!”

“그래, 그렇게 해.”

인아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좀비를 잡는 새총이나 각종 무기들을 다루는 게 서투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수석을 라나에게 양보했다.

그렇게 이제 떠나면 되는 순간인데… 갑자기 뜻 밖에 손님이 왔다.

빵- 빵- 빠아아앙-

“어?”

“어머!”

“왓?”

“트럭이 왔네요.”

밖에서 마중나온 아이들이 전부 한 곳에 집중했다.

김준은 담벼락 너머로 클락션을 울리는 트럭을 보고는 조용히 애들에게 손짓했고, 오늘 나가기로 한 애들 빼고 가야랑 은지만 남기고 나머지를 전부 안에 들어가게 했다.

“김 사장~ 나 왔어~ 오늘 우럭이 아주 싱싱해~”

만물상 아재가 이번에도 생선을 한가득 들고와서 힘차게 말하자 김준은 이걸 어떻게 해야 생각했다.

“하필 황 여사네 가려고 하는데 저 양반이….”

생각해보면 명국이네나 절을 제외하고 양근태가 다른 동네로 가본 적은 없었다.

김준은 어떻게 할까 고민했고, 조수석에 있던 라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일단 차에서 에어컨 쐬고 있어. 나가서 얘기하고 올게.”

“네~네~”

라나는 잘 다녀오라고 해맑은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차에서 내리자 은지와 가야는 자기들이 거래를 하겠다고 했지만, 김준은 조용히 문을 열어줬다.

“김 사장~ 잘 지냈어?”

“얼른 안으로 들어오세요.”

“잠깐만, 이거좀 꺼내고.”

“아니, 그냥 들어오시라고요.”

“으, 으응?”

양근태는 물건도 확인안하고 그냥 들어라는 말에 어리둥절하면서도 맨몸으로 그냥 김준의 집 마당까지 들어왔다.

전혀 김준에 대한 경계를 하지 않았고, 초미녀 아이돌이 네 명이나 있는데 딱히 눈길도 안 줬다.

‘이 사람은 진짜 나 믿나보구만.’

무방비 상태로 들어온 양근태를 보고 김준은 한번 도박수를 던져보기로 했다.

“안 그래도 막 나가려고 했어요.”

“물건 구하러 가는 길? 필요한게 있으면 내 트럭에서 교환해도 되는데?”

“그건 됐고… 담배 좀 태우면서 이야기 하시오.”

“아, 그래.”

두 남자는 담배를 물고서 불을 붙였다.

“양 사장님.”

“왜? 무슨 일인데 그래?”

“저희 지금 공단면 가는 길이거든요?”

“공단면? 거기 내 쉘터 근처에 있잖아.”

“거기에 생존자가 10명 넘게 있는 곳이 있어요.”

“어우, 그랬어? 근처인데 왜 몰랐지? 누가 사는데?”

“사장님도 다즐링 술집 알아요?”

“다즐링? 흠…”

“와와 노래클럽, 오메가 노래방, 향토 가든 가지고 있는 분인데, 황 사장님이라고…”

“뭐?!”

양근태는 순간 놀라서 크게 소리쳤다.

“지금 누구라고 했어? 황 사장? 황세희 사장 말하는 거 맞아?”

“아, 네….”

“허 참! 그 양반 살아있었구만!”

양근태는 감회에 찬 얼굴로 탄성을 내뱉더니 바로 김준의 손을 붙잡았다.

“공단면이라고 했지? 앞장 서 줄 수 있어? 나도 같이 갈게.”

“원래 아시는 분이였어요?”

“아, 그걸 말이라고!”

김준은 양근태에게 소사벌 황 여사 일행이 살아있다고 알려주고, 바로 그와 같이 가기로 했다.

일단 그걸 알려준 보답이라면서 트럭 안에 있는 도마와 채, 국자 등의 각종 주방용품을 은지와 가야에게 건네줘 김준이 돌아올때까지 그걸로 요리나 만들겠다고 들갔다.

그렇게 두 차가 같이 움직였다.

***

빵- 빵- 빠앙-

중간에 좀비 몇 마리를 발견했지만, 군락으로 모인채 저 너머에 보이는지라 무시하고 지나쳐서 여기까지 왔다.

공단면에서 바로 클락션을 울리자 바리케이트를 걷으려고 동남아와 조선족 아가씨들이 나왔고, 차에서 그걸 확인한 양 사장이 탄식하는게 보였다.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살아있었다는 것에 대한 감탄인가보다.

“오셨어…어어?”

“저 트럭 뭐에요?”

탁-

“마리아! 영휘!”

“어? 저 사람….”

“농협 아저씨?!”

놀랍게도 양근태는 소사벌 보도 아가씨들의 이름까지 알았고, 그녀들 역시 농협 아저씨라며 바로 알아봤다.

“야이씨! 진짜 다들 살아있었네? 공단면에서!”

“어머, 어떻게 여기….”

“들어가서 얘기 하자. 안 그래도 먹을 거 많아.”

양근태는 모두를 위해서 기꺼이 박스에 있는 생선들을 꺼내왔다.

호수에 있는 민물고기를 잡아먹거나, 옥상 텃밭을 가꾸면서 어찌저찌 살아간 여성들에게 있어 엄청난 선물이었다.

안에 들어갔을 때, 몸이 안 좋다는 황 사장도 양근태를 보고 놀랐다.

“어머, 양 과장!? 어머머머!”

“살아있었네!”

두 중년 남녀는 서로를 알아보고서 확 끌어안았고, 옆에서 보던 은별이나 나미 같은 한국인 바텐더들도 놀란 얼굴이었다.

“준아! 어떻게 양 과장님까지 데려온거야?”

“농협 조합원이라더니 과장이었구나… 양 사장이라 계속 불렀는데.”

뭐 호칭이야 상관은 없고, 그들이 재회한 상황에서 양근태가 바로 광어를 회치고, 꽃게를 매운탕으로 끓여서 푸짐한 해산물 정식을 만들었다.

“준이 애들하고 잠깐 올라와봐.”

은별이 김준 일행을 데리고 옥상에 올라왔을 때, 그곳은 푸른 초원이 펼쳐져있었다.

“옥상 텃밭 제대로 가꿨구만.”

“이거 만드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벌레도 많이 꼬였고.”

물탱크가 있는 옥상에는 수많은 간이 화분에 쑥, 쪽파, 시금치, 치커리, 토마토, 버섯 등이 가득했다.

“먹을 만큼 가져가도 돼. 가져온 거 생각하면 당연히 부족하겠지만.”

“생야채는 많으면 좋지.”

김준의 말에 라나와 인아는 재빨리 꽃삽하고 호미를 들고 비닐봉지를 꺼내 야채를 하나하나 캤다.

자켓은 벗고 헤드캡을 쓴 채 농사를 짓는 아이돌 소녀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김준.

은별은 김준을 보고 넌지시 말했다.

“농협 아저씨 어떻게 알았어?”

“거래 많이 했어. 그 양반이 돌아다니면서 물건 교환하러 많이 다녔거든.”

“하- 우리쪽도 먼저 알았으면… 아니다. 준이를 먼저 만났으니 상관 없겠구나.”

“다들 잘 아나보네.”

“얼마나 큰 손인데~ 맨날 바에 와서 달마다 위스키 까고, 맥주도 한 20병 사서 애들하고 나눠마시고.”

“그랬구만.”

김준은 그 이야기를 하니 역시 진작에 알려주는게 나았을지도 몰랐단 생각이 들었다.

작은 공단 동네에서 웬만한 유흥가는 서로서로 잘 아는 사이였으니 그럴만도 했다.

야채를 챙긴 뒤로 내려왔을 때, 안에서는 꽃게탕이 자글자글 끓고 있었다.

그 옆에는 양근태가 직접 도마에 펄떡거리는 우럭을 썰어서 회를 뜨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공단면 생존자들은 비린 민물고기 말고 제대로 뜬 광어회에 꽃게탕을 보고서 신이나서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라나 역시도 잽싸게 젓가락으로 회 한 점을 집어서 오물거렸다.

일단은 먹으면서 평화롭게 지내는 상황인데… 또다시 일이 터졌다.

“꺄아악!”

“!?”

“마마! 마마! 박에 좀비!”

필리핀 아가씨 하나가 혼비백산한 얼굴로 달려와서 창문을 가리켰다.

그 순간 김준과 양근태가 동시에 일어나서 바깥을 살폈고, 정말 엄청난 수의 좀비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썅….”

“군락 하나가 오네요. 수는 한 100마리 되나?”

“100마리….”

그 수를 듣고서 화들짝 놀라는 여자들이 덜덜 떨고 있었다.

“라나랑 인아도 여기 있어. 금방 가서 무기 가져올게.”

“오빠! 저 새총 갖고 있어요.”

“응, 잘 가지고 있어.”

김준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좀비들을 잡기 위해 바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김 사장! 같이 가!”

그리고 양근태 역시도 황 여사네 쉘터에서 본격적으로 싸우기 위해 자기 무기를 챙기러 내려갔다.

다시 좀비와의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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