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김준은 퀭한 얼굴로 밥을 먹고 있었다.
“준, 요새 많이 힘들구나.”
“뭔 소리야?”
에밀리가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집어먹다가 김준을 보고 넌지시 말했다.
“눈 밑에 다크써클 생긴거 봐. 스테미너 고갈이야.”
“!”
김준은 반사적으로 자기 얼굴에 손이 갔다.
거울도 없어서 그냥 눈 밑 여기저기 눌러봤는데, 요새들어서 다른 애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힘든 일 있으신 가봐요~”
에밀리의 말에 마리도 슬그머니 거들면서 젓가락으로 수육 고기 한 점을 집어 김준의 밥 위에 올려놨다.
“준은 또 장어 먹어야 해.”
“마리 언니, 영양제는 없어요?”
라나나 나니카도 은은한 미소를 지으면서 김준을 바라봤다.
어제 김준의 정기를 쭉쭉 빨아먹은 도경이만 애써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뭐, 이제는 아침에 그런 소리 해도 신경 안써.”
결국 은지까지 그 상황에 대해 넘어가자 하나둘씩 암사자의 눈으로 김준을 바라봤다.
식사 이후로 피로를 풀겸 푸쉬업이나, 스쿼트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김준.
그 옆에서 도경이가 런닝머신을 뛰고, 에밀리는 짐볼을 들고서 이리저리 몸을 굴렸다.
짐볼에 맞춰 눕자 커다란 가슴이 위아래로 출렁거리면서 김준의 시선을 굉장히 거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에밀리의 옆에서도 가야가 힘겹게 싸이클을 달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적당히 해. 오버트레이닝이야.”
“조, 조금만 더요.”
결국 가야는 싸이클을 타다가 다리가 잘 안움직여서 그 상태에서 멈췄다.
계속 헐떡이다가 힘겹게 싸이클에서 내려올 때 다리가 풀렸는지 비틀거리는 걸 김준이 다가가서 붙잡아줬다.
“아!”
“완전 종이야 종이!”
맏언니 가야가 약골인 몸으로 억지로 운동하다가 나가떨어진 모습.
예전부터 물건 나르는 거나, 뭐 보조 같은 걸 시키면 체력 부족으로 헥헥거리던걸 자주 봤다.
그래서 저녁마다 역기를 들거나 도경이한테 트레이닝 받으면서 체력단련을 하지만 타고난게 어쩔수가 없나보다.
“땀 냄새 나는데.”
“씻으면 돼.”
싸이클 잔뜩 하고서 땀에 젖은 가야의 몸을 끌어안으면서 조용히 안아서 소파에 앉혀주자 그걸 본 에밀리가 바로 짐볼을 타고 내려갔다.
쿵-
“아앙~♥”
짐볼 타다가 머리부터 떨어져 거꾸로 박힌 에밀리.
하반신이 공중에서 버르적거리면서 두툼한 허벅지와 새하얀 엉밑살이 드러났다.
“나도 일으켜줘.”
“혼자 일어나.”
“힝….”
일부러 바닥을 구르는 에밀리를 보고 김준은 한숨을 쉬며 일으켜주고 번쩍 들어서 역시 소파에 올려줬다.
그러자 에밀리가 기습적으로 김준의 입을 맞췄다.
쪽-♥
아기새처럼 쪽쪽 거리면서 연신 김준에게 키스해준 에밀리를 뒤로 한 채 김준은 옥탑방에 올라가서 다시 운동하기로 했다.
그날 저녁.
어느새 또 밖에 나갈 때가 되어서 김준이 준비하고 있었다.
“일단 에밀리 준비하고, 이번엔 가야도 같이 가자.”
“네~”
“준비할게요.”
미군부대에 야한 물건들을 잔뜩 준비해서 거래하러 가는 길이었다.
포르노 잡지부터 시작해서, 각종 AV DVD에 플레이어, 성인기구, 공기인형까지 준비해서 그걸 거래 물건으로 쓸 것이다.
“이번에 가면 싸인해주기로 했어.”
“인기 많네.”
“아이돌이니까~”
에밀리는 무전기를 통한 미군 부대 방송으로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게다가 미군부대 정문에서 거래를 할 때마다 오토바이 헬멧을 쓴 상태에서 눈웃음만 지어도 앞에 있던 미군들이 캣콜링을 하며 미쳐 날뛰는 걸 김준도 봤다.
“폴라로이드 카메라 있다니까 사진 찍어달라는데?”
“그걸 찍어서 뭐 할 줄 알고?”
사진 찍어서 줬다가 성욕 넘치는 미군 청년들이 뭘 할지 몰랐다.
하지만 에밀리는 피식 웃으면서 파인 오프숄더에 가슴골을 모으면서 가리켰다.
“알 바야? 원본은 여기 있는데.”
“….”
“여기는 딱 한 명 밖에 못 써♥”
가슴골에 이어 아랫도리를 가리키면서 하는 말에 김준은 순간 먹던 밥 뿜을 뻔했다.
“내가 다 찝찝하다. 그건 하지 마.”
“흐음~ 만약에 내 사진 한 장에 걔들이 총알 한 발씩 준다고 하면 어쩔거야?”
“….”
“세미 누드 같은건 한 라이플 탄 30발 준다던가?”
“그렇대?”
“아니이~ 근데 내가 말해보면 어떨까?”
김준은 말도 안될 소리라면서 에밀리 입을 막게 했다.
하지만, 의외로 괜찮다고 생각한건지 은지도 입을 열었다.
“그냥 화보집이라 생각하고 30장 규모로 총알 바꿀수 있으면 오빠한테도 이득 아니에요?”
“그랬다가 그녀석들이 뭔 짓을 할 줄 알고?”
“기껏해야 자위겠죠.”
“풉!”
기어이 먹다가 뿜은 김준이었다.
***
다음날 김준 일행은 야한 물건을 캠핑카에 가득 채운 다음에 떠났다.
조수석에 앉은 가야를 두고 김준은 생각보다 수월한 길을 보면서 점점 속도를 높였다.
“군락 쓸려나간 뒤로 국도는 괜찮아.”
“아예 한 마리도 안 보였으면 좋겠어요. 걸어다녀도 좋을 정도로.”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가야의 말대로 이놈의 좀비 세상은 언제쯤 끝날지 모르겠다.
인구가 적은 소사벌시야 그렇다 쳐도, 지금 동탄이나 아산의 도심지로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감이 안 잡혔다.
어쩌면 그쪽도 대규모 군락화가 되어서 천 단위도 아니고, 만 단위의 좀비 무리가 다닐수도 있었다.
“군대가 한 번 싹 쓸어주는게 베스트인데….”
미군부대는 만났지만, 과연 우리 국군은 어디서 뭘 할지 궁금한 김준이었다.
만약 군대 체계가 아직 남아있다면 강원도 인제, 양구, 화천, 철원 이런데부터 시작해서 수도권으로 서서히 진입했으려나?
한국 상황은 이렇고, 과연 옆의 나라들은 또 어떨지 몰랐다.
김준이 이런저런 생각으로 운전을 할 때, 뒤에 있던 에밀리는 공기총을 든 채로 좀비가 한 마리도 안나오자 김이 샌 듯, 빈둥거렸다.
“재미없어. 이래서야 그냥 드라이브잖아.”
“그냥 드라이브로 다닐순 없는 거니?”
좀비가 나왔으면 좋겠냐고 한 마디 하자 에밀리는 말이 없었다.
미군부대까지 도착한 김준 일행은 언제나처럼 폭죽을 울렸고, 그 뒤로 얼마 안있어서 온 차량이 있었다.
오늘은 평소와 같은 사다리차가 아닌 굉장히 높은 차고의 중장갑차였다.
“MRAP이네?”
“무슨 차에요?”
“저게 지뢰 밟고 지나가도 멀쩡한 장갑차야. 안에 장비도 엄청 많고, 사람들도 수용하고.”
“흐응~”
“이라크 전쟁에서 뛰던 거, 우리나라에도 많이 들어왔다더만, 그 중 하나겠지.”
어쨌건 MRAP 장갑차를 기다리며 차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을 때, 미군 1개 분대가 내리면서 벨린저 대령이 아닌 다른 젊은 장교가 김준을 불렀다.
“미스터 킴! 나오셔도 됩니다!”
“저 양반인가?”
교포 티가 물씬 나는 동양계 미국인 장교가 외치는 말에 김준이 총을 들고 천천히 나왔다.
그래도 초면이니 경계는 하는 상황에서 미군들은 반갑게 인사했다.
“미스터 김? 서전트 김준 맞나요?”
“맞아요. 혹시 그쪽이?”
“매튜 리 대위입니다. 만나뵈서 반갑군요.”
매튜 리 대위는 창살 너머로 손을 내밀었고, 김준도 그걸 잡으며 악수했다.
그 사이 다른 미군들은 ‘에밀리아’를 연신 외쳐댔고, 에밀리가 슬며시 헬멧을 반쯤 올리니 하관만 드러난 상태인데도 환호성이 넘쳤다.
하지만, 김준을 보고서 손가락을 까딱이며 보여주는 건 여기까지라면서 물러난 에밀리.
그런 상황에서 일단 물건 거래를 시작했다.
“다들 와! 너희들 딸감이 왔다!”
매튜 대위의 말에 하나둘씩 다가온 미군 분대원들은 상자에서 나오는 잡지를 황급히 집어서 여기저기 펼쳐봤다.
“오 쉿~”
“오오오~”
“저페니스 포르노? DVD 플레이어!”
그래도 미군들이 참 착한 거 같았다.
당장에 창살 문을 열고서 총으로 위협해 애들에게 다가오는 일은 없었고, 장교들이 많이 남아서인지 최소한의 통제가 되는 녀석들이었다.
“물물교환에 대해 물어볼게 좀 있는데요.”
“아, 네. 이야기 하시죠.”
“혹시 드론을 구할 수 있나요?”
“!?”
김준은 매튜 리 대위에게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말했다.
그러면서 드론이라는 새로운 정찰 장비를 피력하자 대위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군용 드론이 좀 있긴 합니다만, 그건 함부로 건네 드리기 힘듭니다.”
“뭐, 그렇겠죠?”
“정 정찰을 원하신다면 여기서 날려서 바깥을 볼 수도 있습니다.”
“!”
“기름 문제로 기다리고 있지만, 여기서 충전하고 무인기를 날리면 적어도 소사벌 시티는 실시간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도로 항속거리가 돼요?”
“위험을 감수한다면 말이죠.”
김준은 미군 부대를 보며 다시금 이들의 최신장비는 진짜 뭐든 할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우리도 조만간 나갈 수도 있습니다. 에밀리아 록허트에게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무슨 이야기요?”
“김준 중사. 당신이 슈퍼히어로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고서 각자의 쉘터를 구축하게 만들었다고 했죠? 물물교환을 하면서요.”
“그랬어요.”
“미스 록허트의 말로는 자신들 말고도 수많은 여성들이 홀로 살아가면서 구조를 원한다고 하더군요.”
“어, 그….”
“군종실장은 이 말을 굉장히 불쾌해 합니다만….”
매튜 리 대위는 자신이 말하고도 뭔가 걸리는게 있는지 김준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만약 우리가 구해서 부대 안으로 들일 여자나 기술자가 있다면 이곳에서 머물게 할 수 있습니다.”
“!”
“남녀 상관없이 생존자를 구해왔다고 하고, 좀비 감염 반응만 본 다음에 안에서 살게 할 수 있으니까요.”
김준은 그 말에 미군들이 정말로 참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상황까지 왔음에도 철저하게 군기를 지키면서 최소한의 방법을 강구하니 그저 웃음이 나왔다.
“그 이야기는 일단 생각하죠.”
“이걸 받고 생각해보세요.”
“!”
“얘기 했죠? 매거진을 주겠다고.”
매튜 리는 허리춤에 있는 20발 탄창 두 개를 김준에게 건네줬다.
M4의 5.56mm 총알 40발.
그 외에 각종 통조림과 MRE, 그리고 가솔린을 받아서 거래를 마칠 수 있었다.
다음에 올때는 ‘그 이야기’를 기억하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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