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이잉- 위이이이잉-
4층 건물로 올라가고, 내부를 담아온 드론은 그 임무를 마치고 양근태의 품 안에 무사히 안착했다.
김준 일행과 치과 김원장이 그것을 확인하고 위로 올라갈 때 은지가 넌지시 말했다.
“드론은 생각도 못 했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왜 그걸 못 떠올렸죠? 촬영할 때, 맨날 날아다니던 건데.”
그녀들이 예능 촬영할때마다 지미집과 더불어 가장 활약한 장비인데, 가장 젊은 아가씨들이 50대 아재의 최신기술 응용력보다 떨어진 상황에 쓴웃음을 지었다.
“뭐, 나도 생각 못했으니까.”
김준 역시도 내부를 수색할 때는 셀카봉에 스마트폰을 달아 쓰거나, 바깥에서 클락션 소리로 살피는 등의 아이디어를 짰지만, 저걸 보니 뭔가 허탈했다.
끼이익- 끼긱-
“?!”
양근태는 올라갈 때마다 방화문을 점검하고 그것들을 일일이 닫았다.
“내가 살면서 좀비가 문 열고 나온다는 말은 못 들었어.”
“뭐, 그렇긴 하죠.”
그렇게 4층까지 도착한 일행은 그 위로 올라오면서 주변을 살폈다.
4층에 있는 김앤박 치과 외에는 [상가임대]라는 팻말이 핏자국이 남아 을씨년스러웠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서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내부에서 악취가 확 올라왔다.
“욱-”
“시취구만….”
창문이 닫힌 채로 안에서 사람이 죽었는지 역한 시체 냄새가 가득했다.
김준이 바로 깨진 창문 옆으로 전부 열었지만, 오늘날씨는 무척이나 더워 후끈한 열기만 올라왔다.
“후- 후-”
마스크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토했을 그 악취 속에서 어떻게든 챙길 물자를 찾기 위해 움직이는 일행이었다.
“일단 여기가 진료실인데….”
“잠깐만요!”
“!?”
김준은 김 원장을 뒤로한 채, 진료실 의자가 있는 곳 옆에 있는 문을 향했다.
그곳은 치과 내에 각종 의약품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다들 물러나 있어요.”
“….”
김준은 문에 대고서 곧바로 경칩을 노려 엽총을 발사했다.
탕- 철컥- 탕!
콰쾅!
나무 문에 경칩이 떨어지고 김준이 발로 차버리자 맥없이 무너진다.
그리고 드러난 내부는 이미 새까맣게 변색된 의약품들과 그 속에서 사람의 손목 뼈가 보였다.
“으으으-”
김준 뒤에 있던 마리나 나니카가 뒷걸음질 쳤고, 양 사장이 말없이 그 나무 문을 끄집어내자 구석에서 죽어 있는 백골화된 사체가 나왔다.
살아 있던 시절 격한 공격을 받았는지 몸 여기저기에 골절된 흔적이 있었고, 바닥에는 새까맣게 눌어붙은 핏자국이 있었다.
백골화된 그 시체가 싯누렇게 변한 곰팡이 투성이의 의사 가운을 입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서야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에휴… 박 원장… 이렇게 갔구만.”
김 원장에게는 옛날 동업자인데, 이렇게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니 씁쓸했다/
“그래서 저 안에 뭐 챙길 건 없겠죠.”
“다른 곳을 봐야지.”
죽은 건 죽은 거고, 일단 사람이 살기 위한 도구를 찾기 위해 수색하는 일행.
김 원장은 그 속에서 진료대 위에 오랫동안 방치된 도구 중에서 쓸 만한 걸 찾았다.
“여기건 못써. 시체 썩은 상황에서 바이러스가 둥둥 떠다니는 걸꺼다.”
“그… 삶아서 쓰면요?”
“그럴건 이미 절에도 많지.”
김 원장이 한숨을 쉬며 이것저것 찾아볼 때, 서랍을 열고서 크게 외쳤다.
“찾았다!”
“음?”
김 원장의 외침에 김준과 양근태, 그리고 아이들까지 모두 달려왔다.
그 안에 있던 것은 낡은 에어 컴프레셔였다.
“에어?”
“치과용 콤프레샤. 이걸 돌려서 핸들 같은 거 돌아가는 거야.”
“이게 전기가 아니었구나….”
이제까지 전동 드릴인 줄 알았는데, 에어컴프레셔로 움직인다는 걸 안 김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서랍장 안에 아직 뜯지 않은 핀셋, 탐침, 조각도, 스피출라 등이 나왔다.
“여기 것만 잘 챙겨도 충치는 잡을 수 있어.”
“아~ 그건 다행이네요. 앞으로 치과 진료는 문제 없겠어요.”
“저기, 원장님.”
“음?”
“이거 챙겨도 되나요?”
그 와중에 마리는 치과에 관련된 의학서적들을 챙겨 놓고 김 원장에게 보여줬다.
[근관치료학],[구강보건학],[치의생리학],[목 해부학],[구강안면외과학],[구강안면병리학]등의 낡은 책들을 본 김 원장은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가 그거 봐도 이해가 되려나?”
“그래도 기본 서적은 읽어보려고요.”
“가져 가. 막히는 거 있으면, 무전기나 직접 와서 배우고.”
“아, 네. 감사합니다.”
이 와중에 치과 전공 서적을 챙긴 마리는 그것을 근처 노끈으로 묶어 챙겨 가려고 했다.
“김 중사! 이것 좀 도와주게!”
“네!”
김준이 다가가자 김원장은 구석에 박혀 있는 박스를 낑낑거리면서 힘겹게 들어 올렸다.
“그래, 거기 잡아서! 됐어! 이제 뜯으면 돼.”
“?”
김준이 그 박스를 옮겨 놓고 뜯어보자 안에는 무슨 파우더 같은 게 가득이었다.
“이거야. 이거.”
“이게 뭔데요?”
“알지네이트.”
“뭐 하는데 쓰는 건데요?”
김 원장은 빙긋 웃으면서 그 가루에 대해 설명해줬다.
“이걸 물로 풀어서 입에 앙- 하고 물면 그게 치아 자국이 남지? 그걸로 본을 뜨는 거야.”
흔히 치과에서 물어보라고 한 다음 그 자국으로 본을 뜨는 기구.
김 원장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챙기면서 자신이 못 드는걸 김준에게 맡겼다.
“얼추 다 챙겼어. 내려가세나.”
“그러죠.”
김준은 자신이 직접 챙긴 물건들을 들었고, 마리는 책을, 나니카와 은지는 주변을 보다가 포장된 채로 꽂힌 1회용 칫솔이나 치실을 박스채로 가져와 내려왔다.
“근데 이빨 만드는 건 치과기공사가 하는 거 아니예요?”
“옛날엔 다 치과의사가 만들었어. 내가 치과하면서 금니를 얼마나 만들었는데~”
거기에 오래됐지만, 안 뜯은 충전재 재료까지 한가득 있으니 절 안에서 아예 치과병원을 만들어도 된다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김 원장이었다.
그렇게 내려온 김준 일행은 가져온 짐을 각자의 차에 실었다.
다음은 마리의 차례였다.
“자~ 그럼 저 드럭스토어 가서… 약 좀 챙기죠?”
마리가 의기야양하게 묻자 김준은 더블백을 챙기고 진입할 준비했다.
***
그렇게 의료장비를 잔뜩 가져와 절로 돌아왔을 때, 그 여성이 깨어나 있었다.
“으득- 으드드득- 감사해요. 으으윽-”
“약 기운 빠지려면 한참 걸릴 거요. 일단은 뜨신 물 계속 마시고, 괴롭겠지만 견뎌요.”
이불을 몇 겹이나 감싸고서 부들부들 떠는 여성을 간호사 보살이 계속 달래면서 돌보고 있었다.
“어우, 몸은 괜찮아요?”
마리와 김 원장이 다가와 살폈을 때, 그녀는 갑자기 손을 뿌리쳤다.
“씨발! 내 몸에 손대지 마!”
“!?”
“아흑… 으드득- 이안 해요. 어우, 나 그냥… 욕이 저절로 나와…흐윽….”
이가 여러 개 빠져 바람이 새는 소리가 났지만, 이 상황에서 웃을 수도 없었다.
마리는 갑작스럽게 손을 뿌리쳐져 당황스러워하다가도 그 상태를 보고서 쓴웃음을 지었다.
“매스 빠져나가는 과정이네요. 곧 있으면 막 긁어대고 피부 갈라지는데….”
“안 그래도 계속 긁고 발진 나오길래 손가락 덮었어요.”
자세히 보니 대일밴드로 손톱을 전부 칭칭 휘감은 게 보였다.
김준은 대체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만드냐면서 혀를 찼다.
“나, 나나나… 구해흐신…으드득- 어디 계시?”
이야기를 듣고 나온 양근태와 그 앞에 김준이 슬며시 앉을 때, 그녀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죄송해요. 씨발! 아 죽을 거 같… 하으윽….”
중간중간 욕이 나왔지만, 필로폰 약 기운이 빠지면서 폭력적으로 변하는 거라니 모두가 넘어가기로 했다.
“에휴- 치료 잘해요.”
“김 사장, 내가 주 마다 찾아올게.”
김준이 돌아갈 준비하고, 양근태 역시도 저 여성을 맡긴 뒤로 자신도 좀 있다 떠날 셈이었다.
“스님, 갈수록 식구가 느네요?”
옆에계신 노스님께 넌지시 말한 김준을 두고 그는 빙긋 웃으면서 합장했다.
“이게 다 부처님의 은덕 아닙니까? 갈수록 살아남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언제나 자비로운 얼굴로 인사하는 노스님을 두고 김준은 가는 길에 쌀 두가마를 내려놨다.
그리고 양 사장과의 거래를 통해서 챙길 것을 하나하나 챙겼다.
“식칼은 많이 있고, 대나무 찜기! 이거하고, 어포 얼마나 된 거예요?”
“그거 이틀 전에 받아온 반건조 우럭이야! 지금 가져가면 맛있어.”
치료해주면 트럭에 있는 거 맘껏 가져가도 좋다는 말에 은지가 직접 물건을 하나하나 챙겼다.
만두 찔 때 쓴다는 대나무 찜기에, 채칼, 강판, 말린 우럭, 조개, 말린 야채등 알차게 챙겼다.
평소 같았다면 기둥뿌리 다 뽑아간다고 한 소리 했겠지만, 양근태 역시도 그냥 맘껏 가져가라고 오픈했다.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김준 옆에서 그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거, 잘 생각해 봐. 신릉면 깡패 새끼들은 언제고 쓸어야 하고, 거 가서 물건들… 응, 알지?”
“생각은 해 보죠. 안 그래도 저 누님 치료하는 건 봐야 하니까요.”
치과치료 하는 것을 보고 효과 괜찮으면 요새 충치 있는 애들 하나하나 데려가서 인레이랑 스케일링을 해 줄 셈이었다.
‘라나도 사랑니 때문에 앓던데….’
어찌 됐건 치과치료에 의약품도 든든하게 구했으니 그날의 루팅은 끝이었다.
“필은 정말 줄어들질 않아~♥”
그 와중에 조수석에 앉은 마리는 드럭스토어에서 가져온 경구피임약 뭉치를 가지고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요새는 그런 거 없이 진짜로 아기 가질 생각으로 아예 안 먹는 애들도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