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38화 (338/374)

김준은 고물상을 나와 진성시까지 가는 톨게이트를 향해 달렸다.

좀비가 없으니 도로 주변에 있는 장애물만 지나다니면 되는 길이었다.

“준, 혹시 불도저 운전할 수 있어?”

“갑자기 왜?”

“언제 한 번 불도저를 루팅해서 우리 다니는 길만 한번 쫙- 쓸어버릴 수 없으려나?”

에밀리의 제안에 김준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기름은?”

“우리 기름 많잖아?”

“불도저가 얼마나 기름을 많이 먹는데… 한번 굴리는데 디젤 600리터 나가!”

“많은 거야?”

“….”

“우리 집에 드럼통으로 기름 잔뜩 쌓여 있잖아? 그거 한 통이면 충분할 줄~”

“응, 그 드럼통 하나가 200리터야. 세 개 집어넣어야 돌아가.”

“와우…”

“애초에 불도저는 만져 본 적 없고.”

김준이 웬만한 기계는 다 뜯어 봤고, 지게차나 트랙터까지는 어떻게 굴려볼 수 있어도 그 이상은 무리라고 선을 딱 그었다.

“오빠, 저건 잡아야 해요?”

조수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나니카가 가리킨 것은 논밭에서 김준 일행을 보고 도로까지 서서히 걸어오는 좀비들이었다.

여러 날 비가 오지 않아 원래라면 질척거려야 할 논밭이 딱딱하게 굳어서 새카만 피가 갈라진 땅에 떨어졌다.

“음….”

“준, 내가 쏠게! 한 방이면 돼!”

공기총을 들고서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에밀리를 보고 김준은 주변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 봐.”

“오케이!”

드르륵-

에밀리는 자신만만하게 뒷좌석 창문을 열고 공기총을 꺼냈다.

김준한테 착실히 배운 대로 자세를 잡고, 방아쇠를 손가락에 걸고 스코프를 통해 좀비의 미간을 정확히 켜눴다.

단발로 된 사격용 공기총은 좀비와의 거리는 30m 정도였다.

그 정도면 고라니도 쏴 맞출 거리였다.

그렇게 재잘거리던 애가 총을 든 순간 얼굴부터 바뀌면서 차분하게 조준했고, 마침내 방아쇠를 당겼다.

투웅-

소음기가 없는 모델이라 거친 소리를 내며 나간 연지탄이 서서히 기어 오는 좀비의 머리를 한 방에 맞춰 버렸다.

크어어어-

30미터 밖에서 비틀거리던 좀비가 풀썩 쓰러졌고, 꿈틀거리면서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 에밀리는 곧바로 두 번째 탄을 장전하고 누운 상태에서 정수리 부분을 겨눠 당겼다.

퉁!

좀비가 일어나기 전에 정수리를 뚫고 들어간 연지탄이 뇌를 헤집어 버렸다.

그 뒤로 움직임이 멈춘 좀비를 두고 에밀리는 뒤늦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잡았다!”

“가자!”

김준은 에밀리가 잡은 것을 확인하고 다시 액셀을 밟았다.

“잘했다는 말 없어?”

“응, 잘했어.”

“네가 최고야. 라고 해 줘.”

“에밀리 네가 최고야.”

“너 없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고 해 줘.”

“….”

“그거만 안 해주네?”

김준은 3절까지 하는 에밀리를 뒤로한 채 쭉 달렸다.

지난번 중고가전 상가에 갔던 곳을 살짝 지나서 대로변 가건물들이 있는 곳이 있었고, 그중에서 낡은 컨테이너 건물이 하나 있었다.

[성인용품 할인점. 남녀공용 제품 모두다!]

겉으로 드러난 거부터 굉장히 수상해 보이는 가게.

간판도 없이 현수막으로 [남녀공용],[각종 영상물 음반 다수],[수입산 구비]라고 쓰여 있는 게 있었다.

“자, 일단 도착은 했는데….”

“안에 열어봐야죠?”

“내가 할까?”

“가만히 있어!”

또 먼저 나서려는 에밀리를 뒤로하고 김준은 클락션을 울려 주변을 살폈다.

군락 이후 좀비가 주변에 안 보이는 상황이 좋긴 했지만, 이러면서 또 어디서 나올지 몰랐다.

그렇게 차 안에서 확인한 김준은 무기를 챙기고 홀로 나와 컨테이너 철문을 두들겨 봤다.

안은 굳게 잠겨 있었고,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했던 김준은 조용히 품 안에서 손도끼를 꺼냈다.

그리고 금속으로 된 문고리에 도끼날을 장전하고는 힘껏 내리쳤다.

깡- 깡- 파각!!!

안팍으로 연결된 문고리를 사정 없이 두들겨댔고, 내부가 강제로 벌어졌을 때, 근처에 보이는 쇳조각들을 가져다 틈에 붙이고 망치질을 하듯이 내리쳤다.

오랫동안 잠겨 있던 컨테이너 박스 문이 점점 균열이 일어났고 김준이 마지막으로 힘껏 쳤을 때, 문고리가 부러졌다.

빠각!

바깥 문고리가 떨어져 나간 뒤로 안쪽도 채워져 있으나 그것 역시 쇳뭉치를 가져다대로 내리쳐 내부의 문고리도 박살 내 떨어트렸다.

손가락 몇 개 들어갈 구멍이 생겼고, 그 안을 향해 플래시 라이트를 비쳤을 때, 먼지가 그득 쌓인 모습이 보였다.

악취 같은 건 없는 게 안에서 시체가 썩은 건 아닌 것 같았다.

김준은 구멍 난 문고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당겨봤다.

끼긱- 끼이이이이이이-

안에 채워진 문고리 쇳조각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드디어 내부가 드러났다.

“쿨럭! 쿨럭!!”

나온 건 먼지가 전부였고, 라이트를 켜서 내부를 보자 그냥 평범한 성인용품이었다.

김준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에밀리와 나니카를 불렀다.

그녀들이 더블백을 들고 나왔고, 하나하나 챙기기 시작했다.

“시팔, 별 게 다 있다….”

만화 여캐가 가슴 모양으로 된 실리콘 마우스 패드를 본 김준이 기가차다는 듯 말하자, 에밀리가 그것을 집어 들고는 자기 손목에 대 봤다.

“응~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일단 더블백에 하나하나 넣을 때, 다음에 바닥에 굴러다니는 딜도 같은 건 그냥 제꼈다.

“준, 이거 사이즈….”

“거기까지 해라?”

“장난감이 준 거보다 작다고 하려 했는데.”

분홍색 딜도를 들고서 이리저리 돌려보던 에밀리는 이런 건 우리 집에 필요 없다면서 저 멀리 던져 버렸다.

김준은 물자 교환을 위해 챙기는 거지만, 생전 못 보던 현란한 성인기구들을 보고 그냥 현타가 왔다.

이빨까지 구현된 펠라용 오나홀이나, 엄한 구멍에 넣어서 쓴다는 애널 비즈, 나무로 깎은 모조 남근 등을 보면 야하다기보다는 좀 추접스럽게 보였다.

일단 있는 대로 챙겨보고 집에 가져가서 분류해 보기로 했다.

그때 컨테이너 안에서 또 두 아가씨의 대화가 들렸다.

“이건 어떻게 읽는 거야?”

“으…으으… [격! 밀착취재, 그녀들의 24시간.]이라네요?”

“아, 그런 내용이구나, 그럼 이거는?”

“미색녀… OL상사의 음란한….”

김준은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바로 고개를 내밀었다.

에밀리가 성인용품점 한 곳에 있는 불법 복제 AV비디오를 가지고 음란한 포즈를 잡은 AV 배우의 모습과 일본어로 적힌 내용을 나니카한테 물어보고 있었다.

“이거는 [남자 초유발, 고속 손코키]라네요….”

“핸드잡으로 몇십 명 해주는 거구나, 포르노배우도 고생이겠다.”

김준은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면서 에밀리에게 말했다.

“그걸 일일이 물어보고 담고 있어?”

“아, 준! 이거 봐. 정장 치마에 스타킹 찢고 하는 거래!”

“아, 치워!”

“준이 좋아하는 소프랜드 황제 서비스도 있어.”

“치우라니까….”

김준은 에밀리가 내미는 촬영연도 불명의 AV비디오들을 가방에 하나하나 쑤셔 넣었다.

죄다 어디서 불법 다운으로 복사 DVD를 만든걸 텐데 종류별로 알차게도 담겨 있었다.

차라리 영상물만 있으면 모르겠는데, Comic 어쩌구 하는 일본 망가 잡지에, 그라비아 모델들 사진집까지 없는 게 없었다.

“이건 뭐지? 에로 노골쏭? 노랑말과 백마, 조개만지면 손씻어라, 팔도아가씨 품평, 야구빠따와 가죽빠따, 검은 몽둥이 참맛…”

“읽지 말라고!”

“흐응~ 카디비 노래는 별거 아니구나.”

웬 아주머니가 마이크 대신 바나나를 물고 [19금 노골쏭]이란 민망한 표지가 있는 카세트 테이프를 하나하나 읽는 에밀리.

제목 하나하나가 임팩트가 있었는지 에밀리가 얼굴이 화끈거려하는 나니카를 보고는 그 에로송 제목을 떠올렸다.

김준은 이런 거 나중에 또 챙길일이 있으면 에밀리는 다신 안 데려가겠다고 다짐했다.

이게 루팅을 나온 건지 어디 성인박람회를 나들이 나온 건지 모를 꽃밭의 상황이었다.

그렇게 다시 조용히 시키고 하나하나 챙기고 있을 때, 성인용품만 세네 박스를 챙겨 차 안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김준은 다 챙긴다음 자신이 부숴 버린 문고리를 두고 덜렁거리는 문을 향해 근처에서 주차방지판으로 설치된 콘크리트 박스를 가져다 괴었다.

혹시라도 저 안으로 좀비가 들어가면 방법이 없으니 가는 길도 문단속을 확실하게 하기로 했다.

“집에 가자.”

“벌써요?”

“오늘 챙긴 거 전부 테스트 해 봐야지.”

테스트를 한다는 말에 에밀리는 분홍색 계란 모양의 진동기를 들고서 물었다.

“이거 테스트 하는 거야?”

“아 쫌! DVD플레이어! DVD!”

“아, 영상 잘 돌아가는 거? 그럼 그거 돌려보자 [남자 초유발 손코키]”

김준은 에밀리의 말에 이젠 무시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오래 루팅한 것도 아니고, 해가 길어서인지 저녁 6시가 넘어도 바깥이 무척 밝았다.

좀비가 거의 없는 상황이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수월했고, 에밀리가 재잘대는 것도 무시하니 조용히 있었다.

한편 뒷좌석의 에밀리는 오늘 챙긴 성인용품들 박스를 열고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AV나 러브젤, 오나홀 등을 챙겨보다가 텐가 하나를 들고서 조용히 뜯어 봤다.

쭈욱-

생긴 건 도장을 크게 늘려놓은 것 같았고, 1회용 샴푸같이 뜯어 쓰는 젤을 발견한 에밀리가 조용히 찢어서 오나홀 입구에 부어 봤다.

겉보기엔 손가락 하나 들어갈 좁은 구멍에 젤이 들어가고, 에밀리가 검지부터 중지까지 서서히 넣어봐서 안의 감촉을 느껴봤다.

“흐음~”

안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돌기나, 주름 부분을 하나하나 훑어본 에밀리는 실제 오나홀 내부를 만져 본다음에 넌지시 자기 아랫배를 바라봤다.

“역시 준한테는 필요 없겠네?”

혼자 중얼거린 말이라 운전하는 김준이 신경 안쓰는 동안 에밀리는 하나하나 뜯어서 그 기구를 일일이 손가락으로 테스트해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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