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은 이 신부의 차를 따라가 20분 정도를 달렸다.
다행히 김준이 한바탕 쓸고왔던 길인지라, 좀비를 만나 중간중간 처리하느라 밍기적거리는 일은 없었다.
“오늘 마트만 털고 슬슬 집에 가야지.”
“그러게요. 그래도 생존자도 만났고, 반찬거리도 많이 구했네요?”
차 뒤에 있던 도경이 흥얼거리면서 푸짐하게 물자가 있는 차 안을 둘러봤다.
“집에 가면 욕조에 물 받아 놓고 시원하게 목욕하고 싶어요.”
“그렇게 해.”
“오빠, 바깥에 풀장은 못 만들까요?”
“!”
“아무리 풍족해도 그런데다 물은 좀….”
은지가 먼저 나서서 제지하려고 할 때,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해볼까?”
“네?”
“진짜요~?!”
풀장 만든다는 말에 눈을 반짝이는 도경이와 진심이냐는 얼굴의 은지.
김준은 에어컨을 켜면서도 아직도 땀 냄새가 나는 차 안을 이리저리 두들기면서 바깥을 가리켰다.
“안 그래도 선풍기가지고 버틸 더위가 아니야. 차라리 간이풀장 매트 구해아다 몸이라도 담그는 게 나.”
“수영복도 잔뜩 있어요.”
속옷대용으로 비키니 수영복을 잔뜩 챙긴 게 있었는데, 그거면 충분하다는 도경이.
은지는 어제 자기가 변했다고 하던 도경이 역시도 엄청 하이텐션으로 변했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차를 타고 계속 따라간 둘은 앞장서던 봉고차가 멈추자 따라 멈췄다.
“저긴가 보네?”
[온산식자재마트.]
조립식 창고형 매장으로 되어 있는 마트앞 주차장에는 수많은 차량이 불에타 뼈대만 남아 있었다.
김준이 주변을 둘러봤을 때, 이 정도 크기의 식자재마트라면 안에 있는 물건만 가져다가 100명이고 1000명이고 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완전 광산이네.”
“우리도 챙길 만큼 챙기는 거죠?”
“그래야지.”
김준은 나서기 전 루팅을 위해서 장비들을 찼다.
“후- 날 더운데, 이걸 꼭 써야 하나….”
오토바이 프로텍트에, 공사장용 분진 마스크, 거기에 오토바이 헬멧까지 쓰니 1시간만 밖에 있어도 열사병으로 죽을 것 같았다.
“에어컨 풀로 틀어놓고, 왔다 갔다 해야지. 안에 카트 많이 있을 테니까 그걸로 실어서 오가면 돼.”
“네, 그래야겠죠.”
“야리끼리 하자, 야리끼리.”
“!”
김준의 말에 풀무장한 상태로 나가려던 은지와 도경이 모두 그를 바라봤다.
요새 김준을 보면 순수 일본인인 나니카보다 더 일본어가 나오는 것 같았다.
끼익-
김준이 무기와 더블백을 챙기고 나왔을 때, 앞장선 이 신부 역시도 기본적인 무장한 채 나왔다.
어디서 구한 건지 양팔에 맹견 물림방지 훈련할 때 쓰는 방지 장갑을 팔에 칭칭 두르고, 타이벡 방호복을 수단 위에 채웠다.
저쪽 역시도 장난 아니게 더워 보였다.
“날이 더우니 빨리빨리 움직이지요.”
“네, 일단 쌀하고 통조림을 챙겨야 하는데….”
각자가 가방을 챙기고서 원하는 물자를 얻기 위해 들어갈 때였다.
갑자기 그 앞에서 괴성이 울렸다.
애애앵- 애애애애애앵-
[멈춰라!!!]
“!?”
괴성과 함께 확성기를 통해 울리는 소리.
김준이 흠칫해서 뒤에 따라오는 은지와 도경을 막아줬을 때, 그 앞에서는 마트 앞으로 바리케이드가 있었다.
[썩 꺼져! 여긴 이미 우리가 점거했다!]
“형제님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닥치고 꺼지라고! 거지새끼들 먹을 거 없으니까!]
마트 입구에서부터 모래 마대자루로 바리케이드를 친 인물들은 마스크를 쓰고, 새빨간 조끼를 두르고 있는 게 어딘가의 조합이나 같은 공장의 사람들 같아 보였다.
들고 있는 무기들도 쇠 파이프에 칼을 달아서 접근했다간 바로 찍어버릴 기세였다.
“원래 있던 사람들?”
“아닙니다. 저도 처음 보는 사람들입니다. 이곳은 예전부터 그 누구도 오지 않은 곳인데….”
이 신부는 난처한 얼굴로 마트에 있는 점령자들과 그들의 이동 수단으로 보이는 승합차들을 바라봤다.
“별수 없군요. 제가 직접가서 물물교환이 가능한지 설득을 해 봐야겠습니다.”
“안 될 거 같은데….”
그때 뒤에 있는 은지가 슬며시 오토바이 앞 페이스캡을 슬쩍 올리면서 물었다.
“더운데, 여기서 기다려야 해요?”
“이상한 놈들이 저길 점거하고 있대. 정 안 되면 다른 데 가야 해.”
“흐응~ 마트 하나 통째로 점거한 건 처음 보네.”
은지나 도경 역시 덥기는 해도 어떻게 해결은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이 신부가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천천히 다가갈 때였다.
빠캉-
슈우욱- 쨍강!!
“미친?!”
“꺄앗!”
갑자기 놈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이 신부가 다가갔을 때, 그들이 만들어 놓은 슬링 샷 쇠구슬이 여기저기에서 날아왔고, 앞에 있던 교회의 봉고차 프론트 범퍼를 찌그러트렸다.
“은지야, 도경아! 차로 가!”
“!!!”
“신부님 뒤로 빠지세요.”
“혀, 형제님! 일단 뒤로….”
그때 김준을 향해서도 시커먼 것이 아른거렸다.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을 때, 그 위로 커다란 쇠구슬이 날아와 바닥에 튕겼다.
깡!
한 방만 맞으면 진짜 뼈가 박살 날 수준의 슬링 샷이었고, 은지와 도경이 역시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김준이 말한 대로 차로 달려가려고 했다.
그때, 바리케이드를 친 마트 점거자들의 쇠구슬 슬링이 수 없이 날아왔고, 그중 하나가…
파각-
“꺄앗!? 언니!”
“…!!!”
은지가 머리에 맞았다.
차분하게 있다가 차로 들어가 숨으려던 은지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고, 김준이 바로 달려가 그녀를 붙잡았다.
“은지야!”
“….”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왔는데, 뒷부분에 커다란 쇠구슬이 반쯤 박힌 상태로 헬멧에 커다란 균열이 일어났다.
만약 헬멧을 안 썼다면 그녀의 머리가 날아갈 수 있었다.
김준은 은지를 끌어안고 황급히 차로 달려갔고, 뒷좌석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황급히 헬멧부터 벗겼다.
“은지야! 주은지!!”
“크으으….”
헬멧을 쓰고 있었지만, 그 충격으로 어질어질한지 머리를 부여잡고 인상을 찌푸리는 은지.
김준은 또 같이 나온 애를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에 은지를 꽉 끌어안았다.
“됐어요. 머리 괜찮아.”
“은지 언니! 괜찮아요?”
도경이도 눈물을 그렁거리면서 은지를 걱정스럽게 바라볼 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큰거리는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헬멧 안 썼으면 바로 죽었겠다. 그치?”
자기 뒤통수를 연신 어루만지다가 손에 피나 그런 거 묻어난 게 없다면서 안도하는 은지.
“전 괜찮은데, 어떻게 바로 갈까요?”
“…씨발. 그냥 갈 수가 있냐?”
“!”
철컥-
김준은 지금 차고 있는 엽총이 장난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기 앞에서 여자애들을 공격해 다치게 했다.
역린을 건드린 것이니 놈들을 살려 보낼 생각은 없었다.
“도경이랑 은지 여기서 쉬고 있어.”
“오빠.”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은지의 말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총알을 준비했다.
“알았어. 똑같이 대가리를….”
“아뇨, 크게 안 다쳤으니까 딱 여기까지만 하시라고요. 죽이지 말고….”
“….”
“신부님까지 있으니 말이죠.”
그 와중에 죽이진 말라는 은지의 말.
김준은 한숨을 내쉬면서 죽이진 않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팔이나 다리에 총알 구멍은 내 줄 거지만 말이다.
김준이 나오자 교회 승합차 뒤에 숨어 있던 이 신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팔로 엑스자를 만들었다.
아무래도 여긴 안 될 것 같으니 돌아가잔 뜻이었다.
“신부님. 거기 꼼짝말고 계세요.”
“!?”
철컥-
“혀, 형제님!”
“안 죽여요.”
김준은 엽총을 들고서 놈들을 겨눴다.
쇠구슬탄을 슬링 샷으로 날려단 그 마트 점령자들은 다시 확성기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계속 접근하면 진짜 죽일 수 있어! 썩 꺼져!]
“미친 새끼들 지랄한다!”
김준은 바로 엽총을 들고 놈들의 진영을 향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
탕- 탕!! 철컥!
세 발의 엽총탄이 소모됐을 때, 김준은 재장전 할 시간도 없이 허리춤의 콜트 45를 뽑아 들었다.
마트 앞 바리케이드에서는 기세등등하게 쇠구슬을 쏴대던 빨간 조끼들이 총을 보고 당황한 듯 거북이들처럼 숙이고 있었다.
“나와 이 개새끼들아!”
탕- 탕- 탕-
파각-
두 발로 놈들이 만든 슬링 샷을 박살 내버리고, 남은 한 발은 모래더미 마대에 박혀서 내용물을 쏟아 내게 했다.
김준이 총을 겨누면서 계속 쏴대자 놈들은 이곳에서 버티다간 다 죽을거로 생각했는지 목숨을 무릅쓰고 튀어나와 황급히 자기들 차로 향했다.
“개새끼들! 그냥 보낼 거 같냐?”
XX산업이라고 쓰인 붉은 조끼를 입은 네다섯 명의 사내들이 황급히 도망쳐 자기 차에 탄다.
김준은 생각같아선 저놈들 전부를 헤드샷으로 날려 버리고 싶었지만, 그 상황에서 은지가 외쳤다.
“죽이지 마요!”
“….”
“형제님! 살인은 안 됩니다!”
옆에 있던 이 신부 역시도 간곡히 요청했다.
“씨발!”
김준은 일부러 총을 비껴 조준해 차에다가 총알 자국을 남겼다.
탕-
파각-
“크악!”
그중 한 녀석이 다리를 부여잡고서 쓰러지고 바닥에 피가 뿜어졌다.
“김 씨! 일어나!”
“김 주임!”
같은 노동자들의 의리인지 쓰러진 김 씨라 불린 사내를 부축해서 차에 태우고는 황급히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부릉-
시동을 걸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는 승합차를 보고 김준은 각인을 시켜 주기 위해 차 한 곳에 총알 구멍을 만들어줬다.
탕-
“꺼져, 이 새끼들아!”
바퀴를 쏴서 차를 전복시키려다 겨우 참았다.
그리고 마트를 점령한순간… 김준은 그 안까지 직접 들어갔다.
***
모든 루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엔 침묵이 흘렀다.
“은지야, 너 정말….”
“안 자요. 머리 아파서 눈감고 있는 거예요.”
“아, 그래….”
조수석에 앉은 채 고개를 꾸벅거리는 은지.
쓰고 있던 헬멧이 박살 날 정도의 충격에 연신 불안 해서 김준이 부를 때마다 은지가 눈을 뜨고 그를 안심시켰다.
“보조 못해서 미안 해요.”
“아니야. 쉬어!”
“은지 언니! 제가 언니 몫까지 할게요!”
뒤에 있던 도경이가 은지의 석궁을 가지고서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쌓인 마트 물자 속에서 움직였다.
장거리 원정 이후로 은지가 크게 다칠뻔해서 자괴감이 장난 아닌 김준이었다.
하지만 은지는 돌아갈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고, 집에 도착했을 때 바로 마리에게 상태를 보게 했다.
한 번 다녀온 장거리 원정이었지만, 당분간은 절대 안나가고 은지 괜찮을 때까지 간병해 줄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