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30화 (330/374)

“잘 먹었다.”

감자빵에 토끼고기 수프는 둘 다 생소했지만, 굉장한 맛이었다.

김준이 토끼 뼈만 남기고 그릇을 싹싹 비웠고, 은지와 도경 역시도 국물까지 쭉 비웠다.

“음, 맛있네요. 집에서 만들어 볼까?”

“우리 토끼 다 먹었지?”

“네, 저번에 고추장으로 닭도리탕처럼 만들었던 거요.”

그동안 사냥하면서 토끼다, 염소다, 멧돼지다, 고라니다, 꿩이다, 오리다 있는 대로 먹었던 김준 쉘터였다.

아이돌들 데리고 각종 괴식 체험하는 것도 아니고 단백질 보충에 먹고 살려고 야생 동물을 잡아다 먹였는데, 그게 하나하나 요리가 되어 뱃속에 남았다.

“그래도 제일 맛있었던 건 오리 불고기였어요.”

“인정! 오리 불고기가 최고였어.”

“요새는 날더워서 오리도 살이 안 붙었어. 겨울에 살 올라서 잡아야 제맛인데.”

갓 저녁을 먹은 뒤로도 또 먹는 이야기가 차 안에서 오갔다.

장거리 원정을 위해서 차 안에는 쌀국수 컵이나, 영주 아저씨네서 받아온 닭냉채, 보온도시락 안에 담아 놓은 주먹밥 등 많은 양의 음식이 있었다.

“출출하면 알아서 꺼내먹고… 난 이거 그릇이나 가져다줘야겠다.”

“아, 제가 갈게요.”

“그냥 쉬고 있어. 겸사겸사 담배도 태우려고 하니까.”

“네….”

은지는 자기가 나서려다 김준의 말을 듣고 도경이와 같이 얌전히 차 안에 있었다.

김준이 나간 뒤로 도경은 은지를 보고 웃으며 넌지시 말했다.

“언니, 진짜 달라진 거 같다.”

“응?”

“예전보다 그 뭐랄까… 좀 붙임성이 좋아졌다고 해야 할까요?”

“내가?”

“원래 촬영 끝나면 거의 말도 안 하고 혼자 가셨잖아요.”

도경의 말을 들은 은지는 물끄러미 캠핑카 천장을 바라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엔 그랬지.”

“지금은 엄청 바뀌었다니까요? 좀 무서운 언니였는데.”

“그렇게 보였나….”

김준이 아니라 같이 사는 걸스 파이팅 멤버들끼리도 은지가 달라졌다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

은지는 어깨를 타고 늘어트린 땋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꼬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집에 가면 또 일해야지.”

“맞아요. 그것도!”

“응?”

“피난소나 쉘터라고 말하는데, 이젠 집에 간다고 하잖아요.”

“그건 예전에도….”

“아닌 것 같은데~”

도경은 묘한 눈으로 은지를 추궁했다.

***

한편 김준은 빈그릇을 가지고 깜깜한 밤을 플래시 라이트 하나로 비추면서 바깥을 다녔다.

“건물은 여러 개인데, 주방은 어디야….”

일단 가장 큰 교회 건물로 들어온 김준은 안에서 촛불 몇 개로 비친 내부를 보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느꼈다.

원래 작은 유리관으로 장식된 전등에 전구가 빠지고, 작은 양초가 불을 비추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1년을 버틴 건지, 바닥에는 녹아서 쌓인 양초가 그득했다.

“휘유-”

그때 지하실에서 뭔가 수많은 목소리가 들렸다.

김준은 지하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려고 천천히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수많은 아이들과 노인들이 모여 한 자리에 무릎 꿇고 눈을 감고 있었다.

“자, 기도합시다!”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먹을 수 있고, 바깥의 마귀들의 위험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낮에 봤던 그 수많은 보육원 아이들과 교회를 최후의 대피소로 삼은 노인들이 강 목사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지금 바깥에는 아직도 많은 사탄과 마귀들이 하나님의 어린양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부디 사랑의 손길로 그들을 품어 주시어 모두가 무사히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아멘….”

“오늘도 무사한 삶을 살게 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히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아멘!”

기도하는 도중에 노인들과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아멘이라는 추임새를 넣고 있는 게, 계속 있다간 김준에게도 주예수를 믿으라고 할 것 같아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어차피 저 지하에 싱크대는 없었고, 그냥 지하 예배당인 것 같았다.

“이 상황에도 예배는 하는구만.”

지하실에서 나오니 바깥까지 소리가 퍼지진 않았다.

다시 다른 길을 걸을 때, 저 멀리서 호롱불 랜턴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낮에 본 중년의 수녀님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이거 그릇 어디에 치우죠?”

“주세요. 제가 가져가서 치우죠.”

“아닙니다. 설거지는 해야죠.”

“이곳에 오신 손님입니다. 제가 치울 테니 어서 주세요.”

수녀는 쟁반과 빈 그릇을 가져가며 조용히 반대쪽 건물로 향했다.

김준은 혀를 차고 담배를 꺼내 적당히 한 대 필 곳을 찾았다.

그때 조명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는데, 그곳에서는 교회 봉고차를 앞에 두고 뭔가를 하는 신부가 있었다.

“몽키!”

“여기요.”

그 옆에는 고등학생쯤 되 보이는 학생이 신부님에게 공구를 건네줬다.

김준은 그 익숙한 장면에 피식 웃으면서 다가왔다.

“차 손질하세요?”

“아, 형제님!”

교회 지하실에서 예배를 드리는 강 목사와 다르게, 이 신부는 공구를 만지고, 차를 수리하며 밤을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좀 도와드려요?”

“괜찮습니다.”

“한 번 볼게요.”

김준은 낡은 구형 봉고를 보고서 프론트 범퍼를 열고 비친 차 내부를 슬그머니 바라봤다.

“엔진 오일은 언제 가셨어요?”

“어, 이곳에서는 구하기가 여의치 않아서….”

“냉각수는요?”

“그거는 조금 아껴서….”

“쯧-”

김준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캠핑카로 달려갔다.

그리고 캠핑카 캐리어박스에 있던 엔진오일과 냉각수를 가져와 내부에 있는 썩은 기름을 다 빼내고, 새 걸로 갈아줬다.

“이러다 엔진 붙어요.”

“여기가 그런 부품은 부족해서…”

“이게 엔진만 문제가 아니네? 아까보니까 옆부분 덜렁거리고, 카고 부분 녹슨… 에휴, 이러다 바닥 꺼지지.”

김준은 내친김에 교회에 있는 차를 손질해주기로 했다.

바닥에 녹 제거를 해주고, 드릴과 피스, 철판을 가져와서 얇아진 바닥에 덧대서 적재를 더 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거기에 타이어도 마모가 심해서 체인 스프레이까지 뿌려서 일단 응급처치는 끝내줬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옆에 있는 고등학생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김준은 별거 아니라면서 손사래를 치며, 담배를 다시 꺼내 물어 불을 붙였다.

어두운 밤 담뱃불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여기도 부족한 게 많네요?”

“없는 살림이지만, 모두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그것을 지켜보시겠지요.”

“이쪽은 하느님?”

“하하, 편하신 대로 부르셔도 됩니다. 교리의 용어 차이니까요.”

기독교나 천주교나 군시절 군종장교 일 돕고 과자 받아먹는 거 빼곤 없었던 김준의 종교관이었다.

“보육원 애들에, 인근 노인분들에, 목사님과 신부님, 수녀님 다 합쳐서 이게 먹는 것도 장난 아니겠네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죄를 짓고 사는 성직자입니다.”

“?”

“이 차를 타고 나가, 인근에 있는 가게들의 물건을 가져와 쓰고 있습니다.”

“아니, 그건 어쩔 수 없….”

“도둑질하지 말란 십계명을 보란 듯이 어기는 이 죄인을 하느님께서 어찌 보실지 모르겠습니다.”

김준은 뭐라 말을 꺼내기도 뭐 해서 머쓱한 눈으로 담배만 뻐끔거렸다.

“인근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큰 마트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먹을 것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가곤 합니다. 내일도 가겠군요.”

“루팅 전용 장소가 따로 있다는 거군요.”

“제가 직접 갑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고교생이 조용히 물었다.

“신부님, 내일은 저도 가도 될까요?”

“오, 안 돼요. 자캐오는 조용히 집에서 다른 애들을 돌보고 있으세요. 그 일은 신부님 몫입니다.”

“그… 보조 필요 없으세요?”

“죄는 한 사람만 지어야지, 여럿이 공모하면 안 됩니다.”

먹고살기 위해 비어 있는 가게를 털고 다니는 것도 죄라 생각하며 매일 회개 기도한다는 목사님과 신부님.

거기다 물자 파밍이 죄스러운 짓이니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그 악업을 받게다며 누구의 도움 없이 차를 타고 다닌단다.

김준은 뭐라 해야 될까 모를 그 상황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안 그래도 저희 역시 필요한 물건을 찾으러 다닙니다. 실례가 안 되신다면 같이 갈 수 있을까요?”

“하하하….”

“도움 많이 될 거예요. 좀비 나타나면 제가 다 잡을 수 있고요.”

“그건… 목사님에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끝내고 보육원의 남자애들은 지하강당에, 여자애들은 수녀들이 머무는 숙소로 보내 재운 목사님이 뒤늦게 찾아왔다.

이야기를 들은 강 목사는 잠시 생각했으나, 김준 일행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

“가기 전에 기도 올립시다.”

“어….”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시작할 수 있기를….”

이튿날.

아침 식사로 죽과 삶은 감자를 먹은 뒤로 인근에 있는 식자재 마트를 털러 가는 길에 차에 대고 기도하는 목사님과 신부님.

그러고는 루팅을 할 때에 한해 차량 뒷범퍼와 사이드에 붙어 있는 ‘예수님 문구’를 테이프로 붙여 가리는 강 목사였다.

굳이 저럴 필요가 있나 싶나 했지만, 저들에게 있어선 교리와 모순되는 행동이니 저런 식으로 합리화를 하는 것 같았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성경을 어기면서, 움직이는 목사와 신부.

그렇게 강 신부가 차를 타고 시동을 걸자 아이들이 우르르 나와 손을 흔들었다.

“신부님 다녀오세요!”

“신부님! 과자 가져와 주세요!!”

“안녕히 다녀오세요! 신부님!”

“아이고, 주여….”

한 손을 흔들거나, 두 손을 모아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아이들과 노인들.

김준 일행도 무기를 챙긴 다음 그 신부님의 봉고차를 뒤따라갔고, 맞은편에 있던 은지는 아침에도 애들한테 시달려서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애들이 저렇게 많이 있다는 게 다행이긴 한데….”

“은지, 기빨렸어? 애들하고 그렇게 놀아주더니.”

“팬서비스죠. 저 알아보는데, 무시할 수도 없고….”

은지는 정말 오랜만에 겪어보는 수많은 인파 속에 시선을 받은 것을 두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그 뒤에 있던 도경이 역시도 한 바탕 홍역을 치렀지만, 여유가 있는지 키득거렸다.

“진짜 오랜만에 사인해서 다 까먹은 줄 알았어요. 그 와중에 용케 종이랑 펜은 각각 챙겼네.”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 모를 아이돌의 사인.

김준은 어제부터 둘이 수고했다며 칭찬해 주고, 정신적 가치 말고 물질적 가치를 위해 식자재마트를 향해 달렸다.

아산시의 사흘 차는 맑은 날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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