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존자 일행을 찾았다.
인근 편의점도 털고, 교회 탑에서 십자가를 청소하는 것을 보니 꽤 여러 명이 사는 것 같았다.
“바로 갈 거예요?”
은지의 물음에 김준은 머뭇거리다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치익-
대답하지 않고, 말없이 담배만 태우고 있는 김준.
그는 어딘가 모를 경계심이 있었다.
“오빠, 왜 그러세요?”
뒤에 있던 도경이도 사람을 발견했다는 게 머뭇거리는 김준을 보고 넌지시 물었다.
“가도 되려나?”
“네?”
“갑자기?”
“상황을 좀 보긴 해야될 텐데 말이야.”
그러자 은지가 넌지시 물었다.
“교회라서요?”
“뭔 소리야?”
“그냥 편견 있으신가 해서요.”
은지는 담담하게 석궁을 준비하면서 저 멀리 보이는 교회 탑을 바라봤다.
“뭐, 종교 단체가 한데 뭉쳐 지금까지 살고 있으면 편견 보일 법 하죠. 안에 몇 명이 있는지도 모르고요.”
“….”
“아, 그래도 저 교회는 다녔어요. 연습생 시절에 예배하러 가면 1시간 듣고 국수 삶아주거든요.”
교회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말해주는 은지.
김준은 담배를 문채로 차 기어를 바꿔 서행으로 조금 더 다가 갔다.
그리고 비상 깜빡이를 켠 상태에서 애들에게 말했다.
“찝찝하면 그쪽에서 오게 해야지.”
“!”
김준은 곧바로 클락션을 울렸다.
빠아앙- 빵- 빵- 빠아아아아아아앙!!!!
클락션을 있는 대로 눌러대며, 은지나 도경이 모두 귀를 틀어막았다.
총소리에, 클락션 소리에 요새 나갈 때마다 귀마개를 써도 안쪽까지 얼얼했다.
김준이 좀비를 부르듯이 클락션을 연신 두들겼을 때, 안에서 반응이 일어났다.
“어, 나온다?”
“차를 끌고 나왔네.”
낡은 스타렉스 차량 한 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앞에는 새카만 핏자국이 묻어 있는데 그 가운데 붉은 십자가가 있는 게 굉장히 미묘했다.
좀비를 많이 들이받았는지, 차가 올 때마다 덜컹거렸고, 옆에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스티커 맵핑 옆으로 녹이 새카맣게 슬어 있었다.
그들의 차량은 김준의 캠핑카를 보고는 따라서 불을 깜빡깜빡 거렸다.
위이잉-
김준이 창문을 열고 팔을 내밀어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하자 서서히 다가오는 차량.
그러면서 김준은 콘솔박스를 열어 각종 총알과 허리춤의 권총의 존재를 상기시켰다.
가까이 다가온 두 차량이 마주했을 때, 창문이 열리면서 운전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는 50대 중반쯤 되 보이고, 여기저기 뜯어진 걸 얼기설기 꿰맨 양복을 입은 남성이 있었다.
“아이고! 진짜 산 사람들 맞구만! 할렐루야!”
김준 일행을 보고 일단 하나님부터 부른 다음에 반갑게 맞이하는 남성.
그 옆으로는 비슷한 나잇대로 보이는 중년 부인이 김준에게 인사했다.
“어디서 오신 분들인가요? 혹시 군인이신가요?”
“아, 그건 아니고… 생존자 찾아왔는데, 안에 사람 많이 있나요?”
“어린양들이 많이 있죠. 신앙활동 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어린양… 신앙 활동….”
“어떻게, 안에서 이야기하시죠. 여기 계속 있다간 그 마귀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안에 들어가서 문을 닫아야 해요.”
“흐음-”
김준은 그들의 제안을 받고 생각했고, 은지나 도경이는 그가 선택하는 대로 따를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좀 신세 좀 지죠. 잠깐 들어가겠습니다.”
“네, 그래요. 이게 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신 겁니다.”
초면에 연신 하나님을 부르짖는 게, 조금 걸리긴 했지만 일단 그들을 따라 들어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절대 방심하지 않고 달려들면 머리부터 쏠 거다.
***
“와! 누나! 그거 진짜 보우건이예요?”
“좀비 그걸로 잡아요? 얼마나 세요?”
“이거 레이저 스코프도 있어요?”
“어, 음….”
은지는 자기 주변으로 달려드는 아이들이 이거저거 묻는 상황에 난감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도경이쪽은 역으로 여자애들이 마구 달라붙어 있었다.
“언니, 진짜 크러쉬 걸의 도경 언니맞아요?”
“대박~ 언니! 싸인 해줄 수 있어요?”
“어, 저기 얘들아?”
사실 저기 석궁든 언니가 에잇틴의 리더 주은지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안 그래도 저연령층 학생들이 가득한 곳에서 그 말까지 했다간 저리로 다 몰릴 것 같았다.
그렇게 잔뜩 경계하고 간 두 아가씨는 애들만 잔뜩 있는 교회 안에서 정신이 빠질 것 같았다.
그동안 수많은 생존자를 봤지만, 이곳은 안에 있는 사람을 다 합치면 100명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수였다.
“자~ 자~ 이제 그만! 여기 오신 손님들이예요.”
베일을 쓴 수녀님이 인자한 미소로 박수치며 다가오자 그렇게 날뛰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수녀님에게 달려왔다.
“아이들이 많이 시끄럽죠? 못 보던 손님들 와서 그래요.”
“아, 네.”
은지는 위험할 것 같아 석궁ㅇ의 화살을 다 빼내고 메고 있던 가방에 넣었다.
한편 김준은 애들이 가득있는 이 교회를 둘러보면서 이야기했다.
“그… 여기는 교회입니까, 성당입니까?”
“둘 다지요. 하나님 믿는 사람들끼리 합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주께서 지켜 주시는 겁니다.”
김준을 찾아 차를 대동하고 바깥에 나왔던 중년의 목사.
그는 교회 별채에 있는 숙소로 김준을 안내했다.
안에는 목사님의 집무실 겸 숙소였는데, 수많은 성경책과 사진, 컴퓨터 등이 있었다.
수많은 목회 사진 중에서 김준의 눈에 띈 건 군 정복을 입은 목사님이었다.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못 했군요. 여기 목장을 개척하는 강은호라고 합니다.”
“아, 김준입니다. 만나뵈서 반갑습니다. 목사님.”
“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혹시, 군 출신이신가요?”
“신앙생활을 위해 군목을 지원했었죠. 중령까지 하고 민간 목회활동하고 있습니다. 허허-”
군 정복을 입은 사진이 많다 싶었는데 군종장교, 그것도 중령 전역의 목사라고 하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김준이었다.
그리고 수녀들의 이야기를 들은 신부님 역시도 외부인이 왔다는 말에 강 목사의 집무실로 왔다.
“목사님, 손님이 오셨다고….”
“아, 이 신부! 들어와요!”
검은 수단을 입고 온 3-40대 정도의 신부님은 김준을 보고서 역시 자비 넘치는 미소로 인사했다.
“김준입니다.”
“이은규라고 합니다.”
이은규 나자로 신부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으로, 옆에 있는 강 목사와는 군종장교 시절부터 알았던 선후배 관계라고 한다.
목사님과 신부님이 힘을 합쳐 종교시설 안에 아이들을 돌보면서 살아가는 쉘터라니…
김준은 뭔가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종교시설을 생각했다가 자기가 얼마나 편견에 찬 인물인지 돌아보게 되어 머쓱했다.
그들은 외부인인 김준에게 교회 안을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원래 이곳은 강 목사님이 시립 보육원과 함께 운영하시던 곳이었습니다. 머지않은 곳에 저희 성당 역시도 있었으나….”
성당과 교회, 보육원이 한 데 붙어 있는 곳이었지만 좀비 사태 이후 성당으로 대피했던 신도들이 하나둘씩 좀비화가 되어 초토화.
살아남은 신부와 수녀, 그리고 교우들이 다급히 도망쳤을 때, 역시나 아이들을 지키고 있던 강 목사가 기꺼이 문을 열어 모두를 받아들여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무기 같은 거는 있습니까?”
“저기 십자가가 있는 탑 보이지요?”
“아, 네.”
김준이 처음 스코프로 본 곳이었다.
“저곳에 슬링을 잔뜩 설치했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시는 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 있지 않습니까? 그 다윗이 쓰는 돌팔매가 여러 대 설치해서 마귀들이 올 때마다 던져서 막아 내지요.”
이제 보니 교회의 십자가탑이 공성 병기였다.
영주 아저씨네처럼 슬링을 만들어서 돌팔매로 좀비들을 쏴서 쫓아낸다니, 아까 저 목사가 위에 올라가서 손보던 게 십자가 관리가 아니라 무기를 점검하는 거였나보다.
“먹을 거는요?”
“농장을 보여드리죠.”
“!?”
좀 더 안쪽으로 가니 뒤쪽에 농수로가 흐르고 있고, 거기에 각종 철장이 있었다.
“토끼?”
“옆에 염소도 키웁니다.”
결국 기르는 농업이 최고였다.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다루나 했더니 한쪽에 텃밭과 토끼와 염소를 기르고, 원래 논농사 지으려고 설치한 콘크리트 수로가 김준의 무릎 정도의 수심으로 쭉 흐르고 있었다.
“아이고, 목사님! 신부님도 오셨네요.”
텃밭을 매던 노인 여러 명이 두 분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 일어나 인사했다.
강 목사의 말에 의하면 개척교회시절부터 이 일대 거주하던 성도님과 집사님들이라고 한다.
“어이구, 옆에 총각은 누구예요? 등치 엄청 크네?”
“다른 곳에서 온 생존자입니다.”
“잉, 단 동네도 사람이 살았구만! 그래, 잘 왔어요.”
김준을 꽉 잡으며 잘 왔다는 흙투성이의 손을 보고서 김준은 멋쩍게 웃으면서 그들의 농산물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셋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하게 됐다.
“저희는 소사벌에서 왔습니다.”
“어이구- 그 먼 길을….”
“소사벌 일대에도 소수지만 생존자들이 각자의 쉘터를 만들고 살고 있어요. 근데 여긴… 정말 대규모군요.”
“처음 그 일이 터진 뒤로도 많은 수의 마귀를 막아 내느라 돌아가신분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키워야 되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도 영세하지만 매일 밤 기도드립니다.”
“아, 네. 정말 그래 보이네요.”
김준은 그래도 100여명 단위의 생존자를 미군부대에 이어 두 번째로 보게 되니 한 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혹시 목사님이나 신부님이 주변에 다른 곳 가보신적은 있나요?”
“제가 차를 끌고 부족한 물건을 찾기 위해 움직이지만… 그 이상 나가지를 못합니다.”
“시내는 가 보셨나요?”
“말도 마십시오. 그곳은 완전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케합니다.”
목사님이 모든 말을 성경으로 인용하지만 김준은 대충 아산시내가 얼마나 헬게이트인지 알 것 같았다.
“여기서 조금만 넘어가면 당천시 공단인데 그쪽은 어떨지….”
“거기까지는 무리예요. 서해대교를 못 건너갑니다. 다리 앞부터 사고로 탄 차들로 꽉 막혀 있어서 아예 진입을 못 해요.”
“으음….”
김준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교통 문제로 인해 서로서로가 꽉 막힌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간 다음에 가려고 했던 당천 공단의 계획은 접기로 했다.
“어떻게, 오늘 하루 묵으면서 가지고 온 물건들로 물물교환이 될까요?”
“머무시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같이 오신 아가씨들은 수녀님 방을 쓰시면 될 테고, 김준씨는… 제 방을 드리죠.”
강 목사는 선뜻 자기 집무실을 양보하겠다면서 통 큰 양보를 해 줬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희는 차 안에 숙박이 가능하니 거기서 묵겠습니다.”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목사와 신부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
김준은 일단 이곳에서 하루를 묵고 앞으로 루트를 어떻게 정할지에 대해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돌아와서 은지와 도경이와 같이 캠핑카에 들어왔을 때, 그녀들은 애들 상대하느라 진이 쭉 빠진 상태에서 바깥을 넌지시 바라봤다.
오늘도 하루는 끝나가고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면서 교회와 성당 사람들이 들어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누가 차를 노크했다.
“누구시죠?”
창문을 여니 강 목사가 보였다.
“아, 형제님들. 밥을 준비하는 동안 이것을….”
“!?”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믿고 마음을 안정해야 합니다. 성경책 넣어 드릴 테니 한번 읽어보시지요. 좋은 말씀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아, 네….”
남는 시간 성경을 읽으면서 기다리라는 목사의 배려에 김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은지와 도경이에게 넘겨 줬다.
“그, 좋으신 분들은 맞는 거 같은데….”
“이틀만 더 있으면 세례랑 영접까지 하고 가라고 하겠네요.”
은지는 자기 무릎 위에 놓인 성경책을 어루만지며 넌지시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이 좀비 아포칼립스가 하나님 계시라면서 막 종말론 퍼트리고 날뛰는 분은 아니어서...”
“큰일 날 소리….”
그리고 그날 저녁, 교회에서 대접한 것은 감자로 만든 빵에 토끼를 삶은 스튜였고, 캠핑카안에서 그걸 먹으며 교회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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