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휴, 이걸 진짜….”
상황이 끝난 상황에서도 영주는 처참한 현장에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투숙객으로 왔던 김준 역시 반은 불길에, 땅은 논처럼 질척거리는 것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봐. 저놈들 날뛰는 거에 놀라서 죽은 닭들이 이래.”
진흙더미 속에서 죽은 닭을 하나하나 꺼내자 그 양이 엄청났다.
그 와중에 김준과 같이 있던 은지는 자기 발치에 닭발이 있는 걸 보고 손으로 집고 주변을 파헤쳤다.
그리고 마치 봄나물이나 산삼을 캐내듯이 땅속에서 흙투성이의 죽은 닭이 뽑혀 나왔다.
“이거 먹을 수 있나요?”
“…먹겠냐.”
직접 잡은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 최대로 오른 상황에서 날뛰다가 죽은 쇼크사로 죽은 닭들이니 전부 폐기 처분애햐 한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십 마리가 됐으니 어디 파묻어서 거름으로라도 써야 될 거다.
“손질해서 먹자.”
“네?”
“아니, 영주 아저씨! 이걸요?”
“거 먹고 뒈지기야 하겠어? 흙 털고 물끓여서 탈 뽑아서 그냥 다 삶자고.”
“이거를요….”
김준은 흙무더기에 파묻힌 닭들을 하나하나 뽑아내는 영주를 보고 한숨을 쉬며 자신도 살펴봤다.
그 와중에 저 한 곳에 좀비의 소사체들은 한 곳에 쌓여 닭을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
“어우- 이거를 어떻게.”
“일단 다라이에 물 받아 놓고 빨래하는 것처럼 쫙 씻어.”
죽은 닭들을 하나하나 꺼내니 그 수가 스무 마리가량 됐다.
영주가 부인과 어머니를 불러서 죽은 닭을 손질했고, 김준한테도 다라이를 하나 주고 물을 받아 도경과 은지 몫으로도 넘겨줬다.
“일단 흙이랑 모래 쫙 털어내고 나한테 줘. 털은 내가 뽑을게.”
“으으으….”
은근히 이런 쪽은 정말 못 해서 죽은 닭도 겨우 집어 든 도경은 눈 딱감고 물에 쏟아넣어 마구 흔들었다.
철벅-철벅-철벅-
“야채 씻는 것처럼 하면 돼.”
도경이와 달리 은지는 담담하게 죽은 닭들을 물에 담그고 시원하게 비벼대서 흙을 쫙 씻어냈다.
대야의 물이 흙탕물이 되고 그 속에서 물에 푹 젖은 닭을 김준에게 건네줬다.
김준은 은지한테 받은 죽은 닭의 털을 뽑아내고, 칼로 목을 따고, 배를 갈라 찐득하게 굳은 피와 내장을 손으로 따냈다.
“뭐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어.”
“아, 그래요?”
영주는 김준에게 도로 너머를 가리켰다.
“여기가 원래 산 깎고서 도로 뚫었잖아? 멋모르고 저쪽 산에서 내려오는 멧돼지나 족제비 같은 게 많았거든. 치어 죽은 것도 많고.”
“저기 산에서 도로 타고 여기까지 넘어오면….”
“그때는 지금처럼 풀어놓는 게 아니라 이 동네 사람들이 닭장을 여러 개 깔았지. 근데 밤에 족제비 한 마리만 들어와도 안에 있는 닭은 다 죽는 거야.”
“왜 다 죽어요? 족제비가 다 잡아먹나요?”
“잡아먹는 게 아니야. 그냥 막 헤집으면서 닭들 날뛰게 해서 죽이는 거지. 그래서 족제비 보면 바로 죽여야 돼.”
“으으으-”
시골 이야기는 전혀 모르니 그런 걸 들을 때마다 등골이 서늘한 도경.
은지는 그러려니 하면서 빨래처럼 씻어낸 죽은 닭을 건네줬다.
그렇게 20마리의 닭이 털을 다 뽑고 손질해서 흙투성이의 시체를 생닭 고기로 만들어냈다.
남은 건 영주 일가의 몫이었다.
아주머니와 할머니 두 분이 닭을 전부 가마솥에 넣어 푹푹 삶고, 야채를 준비했다.
“장거리 뛴다며, 밥은 먹고 가.”
“네, 그래야죠.”
“오는 길에 다시 한번 들려. 그때 고기랑 우유, 계란좀 준비할게.”
“어, 되겠어요? 오늘만 20마리 죽었는데.”
“닭이야 뭐, 금방 나와. 병아리 까는 암탉장은 따로 있거든.”
여기는 명국이네와 달리 부화기가 없어서 직접 암탉이 품어서 부화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래도 닭의 수가 원체 많은지라 지금도 참사 이후에 닭과 소가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들판에 노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어쨌건 하루 방값은 확실히 했고, 식사도 1인 2닭으로 엄청난 양을 먹을 수 있었다.
“일단은 이거 챙겨줄 테니까 가는 길에 다시 와. 소 잡아줄게.”
“집에 소고기 아직 다 못 먹어서 쌓여 있어요, 닭도 많으니까 다음에 올 때 받아 갈게요.”
“으, 으응? 그래도 돼?”
“대신에 달걀하고, 병아리랑 암탉좀 많이 준비해주세요. 총알 바꾸러 가야 하니까.”
“아~ 그 미군 부대 교환용? 그래, 그건 챙길게. 다음에 올 때는 뭐 줄 거 없이 우리가 소 한 마리 잡을게.”
이제는 전투 중에 신뢰로 엮인 몸.
언제든 다음에 와도 오늘 이야기한 거는 다 받을 수 있을 거다.
“그럼 반찬이라도 받아가.”
“그건 주시면 가져가죠.”
“잠깐만 기다려.”
그러면서 영주 아저씨가 가져온 건 어마어마한 양의 반찬이었다.
5리터 단위의 김치통으로 꽉꽉 채워진 내용물은 엄청났다.
“이건 닭냉채고, 요거는 닭뼈육수, 소 곰탕국물, 도가니, 장조림, 염장고기, 육포….”
“어우, 많이도 준비하셨네.”
“다 가져가. 다! 우리도 엄청 많아.”
어제오늘 대피소로 썼던 김장독 토굴 안에 장기 보관했던 보존식품을 아낌없이 건네주는 영주 일가.
덕분에 김준은 안 그래도 가득 채운 캠핑카 안에서 쌀과 밀가루를 한 포대씩 꺼내서 건네주고, 식용유도 말통 두 개를 꺼내줘 빈 공간에 채워 넣었다.
“암튼 조심해. 이거 끝날 때까지는 살아 있어야지.”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생존자들도 찾으면 얘기 드리죠.”
“두 아가씨도 조심하고.”
영주 일가는 김준을 가는 길까지 배웅해줬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차가 되었을 때, 대로에 나온 김준은 깔끔하게 쓸려 나간 도로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덕분에 가는 길은 편하겠네?”
“네? 뭐가요?”
조수석에 앉은 은지의 물음에 김준은 앞을 가리켰다.
“군락 하나 싹 태워 버리니까 길가에 좀비가 없잖아? 오히려 잘 된 거지.”
김준의 말대로 도로를 점거하던 수십, 수백 마리의 좀비 무리가 군락화되어서 영주네 농장을 치려다가 싹 다 죽어 버리니 남은 놈들이 없었다.
김준은 이대로 쭉 가서 실탄사격장까지 무사히 도착했고, 그곳에서 구석구석 흝어나가며 총포상의 산탄과 보우건 화살, 공기총 연지탄과 총기 관리를 할 수 있는 부품 키트까지 잔뜩 챙겼다.
새옹지마라고,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굉장히 원정이 편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을 개척할 때가 됐다.
“음, 여기서 쭉 가 보자고.”
“준비할게요.”
“저도 뒤에서….”
새벽부터 잔뜩 좀비를 잡은 뒤에도 각자의 무기를 챙기면서 전의를 불태우는 은지와 도경.
김준은 두 아가씨를 향해 엄지를 올려주고는 힘껏 액셀을 밟았다.
시골 2차선 길에는 간간이 논두렁에 처박히고 폭발해서 불탄 차량들은 있어도 앞을 막는 건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가게 하나만 나와도 대박인데 말이지.”
“말씀드리는 순간, 전방에 편의점이 있습니다~”
“!?”
은지는 무슨 스포츠 캐스터처럼 줄줄 읊으면서 흥얼거렸다.
“100m 정도 거리인데, 7의 간판이 여기서도 보이네요?”
원래 드립 같은 거 하나도 안 치던 애가 이러니 뭔가 웃음이 나왔지만, 덕분에 새벽에 피곤했던 기분이 싹 사라졌다.
“그래, 가자! 전방에 세븐일레븐!”
“편의점 나왔어요?”
뒤에 있던 도경도 후다닥 일어나서 앞을 살폈다.
그렇게 셋은 편의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니… 이게 뭐야?”
“와우- 싹 다 털어갔네?”
편의점을 발견하고 기분 좋게 루팅을 하려고 들어왔더니 안에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가판대에 있는 물건들은 싹 다 빠졌고, 도저히 먹지 못할 썩은 레토르트 포장식품이나, 아예 녹은 설탕덩어리가 봉인해 버린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전부였다.
“누가 이렇게 털어갔어?”
“콘돔은 있네요. 담배도.”
“….”
“여기 털어간 사람은 이런 거 싫어하나 봐요.”
웃긴 얘기였지만, 진짜 먹을 것과 생필품은 싹 털어가고 멀쩡한 게 담배 진열대와 콘돔, 몇 개 안 남은 라이터 정도만 있는 편의점이었다.
김준은 아쉬운 대로 그것도 챙기고, 혹시나 해서 편의점 안쪽으로 들어갔다.
편의점 냉장고 안쪽의 물건도 싹 털어가서 시재 점검을 할 때 쓰는 컴퓨터만 먼지가 가득 쌓였다.
“우리 같이 물건 털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구나….”
아쉽지만 그래도 담배랑 콘돔, 라이터 등은 챙겼으니 그것만 차에 담는 일행.
그때 은지가 또 뭔가를 발견했다.
“혹시 저기서 가져간 걸까요?”
“응?”
은지는 저 멀리 보이는 탑을 가리켰다.
고층 건물이라고는 하나 없는 논밭과 슬레이트 지붕집이 군데군데 있는 평범한 2차선 시골길.
멀리 있지만 여기까지 돋보이는 거대한 탑은 다름 아닌 교회의 십자가탑이었다.
“잠깐만!”
“!?”
철컥-
김준은 총을 꺼내 저 멀리 보이는 교회 탑을 스코프로 바라봤다.
맨눈으로는 잘 분간이 안 됐는데, 스코프를 통해 보니 알 수 있었다.
지금 교회 탑 위에 십자가를 두고 손질하는 존재가 있다.
처음엔 좀비라고 생각했으나, 좀비가 아니라 사람이 올라가서 그 위의 십자가를 닦고 있었다.
“!?”
그 십자가를 다루는 건 분명 좀비가 아닌 사람.
게다가 그 밑에서 누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밀대를 올리는 것을 보니 저곳에 여러 명의 생존자가 있는 것 같았다.
십자가탑 위에 한 명은 나이 좀 있어 보이는 남성, 다른 한 명은 수수한 옷차림이었지만, 20대 여성으로 보였다.
“뭐가 보여요?”
“사람 사는 거 같은데?”
“…오!”
은지나 도경이 모두 스코프를 통해 사람이 사는 게 보인다고 하자 순간 눈빛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