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쿵!!
“음?!”
김준은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눈을 떴다.
머리맡에 있는 엽총을 잡았을 때, 여긴 조명이 없어서 플래시로 비춰야 했다.
“일어나셨어요?”
“!”
어둠 속에서 나지막이 들리는 은지의 목소리.
그녀는 김준이 깬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가리켰다.
“아까 두들겼는데, 오빠 깰때까지 기다렸어요.”
쾅쾅쾅- 쾅-
“아이고! 안에 군인 총각! 문 좀 열어봐!”
다급하게 외치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김준이 문을 열었다.
덜컥-
“아이고! 군인 총각 큰일 났어! 지금 밖에 귀신이 나오고 난리도 아니야!”
좀비를 두고 말하는 것 같은데, 연신 할머니가 김준의 손을 붙잡으면서 부탁했다.
“지금 며느리하고 손주는 들어갔는데, 총각도 나와서 좀 잡아줘.”
김준이 할머니의 뒤로 바깥을 보자 영주가 대형 조명으로 한 곳을 비추고 있었다.
“!!!”
콘서트장 같은 곳에서 쓰일 법한 대형 조명을 도로쪽으로 비추자 그곳에 좀비 무리가 보였다.
철컥-
“젠장!”
김준은 황급히 달려가 캠핑카의 문을 열었다.
반만 시동을 걸어서 헤드라이트를 켜 그 앞을 더욱 비추게 했다.
푸드득- 푸드득-
꿰엑- 꼬꼬꼬!!
얌전히 잠들어야 할 닭들이 갑자기 터진 빛에 이리저리 도망다녔고, 줄에 묶인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댔다.
월- 워월!! 으르르르릉!
으어어어어-
움머- 무어어어-
개 짖는 소리에, 소 우는 소리에, 좀비들이 뭉쳐서 비틀거리는 소리에 한 밤 중에 이런 개난장판도 없었다.
“후….”
철컥-
대쉬보드에서 연지탄과 산탄 박스를 꺼낸 김준은 총 두 자루를 가지고 조명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저기!”
“봤어.”
파각-
영주가 좀비를 비추고, 이 노인이 새총을 크게 날려 좀비 하나를 맞췄다.
그리고 옆에 있는 석궁도 집어서 그걸로 조준해 추가로 한 마리 더 잡았다.
김준 역시 조명이 비춘 곳을 향해 총을 겨눴다.
어디에 들이밀어도 보이는 게 전부 좀비였고, 머리를 노리고 주저 없이 발사했다.
타앙-
산탄총의 총성과 함께 연기가 치솟았고, 좀비 하나가 빠르게 쓰러졌다.
“김준씨! 아부지에게 총알 좀 주쇼.”
아까 공기총을 능숙하게 사용하던 것을 봤던 김준이 주머니를 뒤적거려 구두약 깡통 사이즈의 연지탄 박스를 테이블에 올려놨다.
그것을 열자 새끼손톱만 한 연지탄이 가득했고, 이 노인이 빈 공기총을 받고 단발로 장전한 다음 바로 발사했다.
퉁- 철컥-
타앙-!!
연지탄과 산탄이 저 멀리 다가오는 좀비를 하나하나 쓰러트려 나갔다.
“이 새벽에 뭘 저렇게….”
“미치겠어! 100마리는 넘는 거 같은데!”
50여미터 밖에서 총으로 쏴대도 겨우 한두 마리였고, 화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만약 험비 차량이었다면, 그냥 차를 타고 돌진해서 유일한 진입로를 틀어막고 탱크처럼 깔아뭉개버리면 되겠는데, 그게 안 됐다.
꿰에에엑- 푸드드득-
그 와중에 닭도 놀라서 여기저기 날뛰다가 자기들끼리 부딪치고, 싸워대서 닭털까지 사방에 날렸다.
“아이고! 저… 닭들 다 죽네!”
“아버지! 그거 신경 쓸 때가 아니야! 좀만 버텨요! 이것만 고정하고…”
세 명은 집으로 침범하려는 좀비를 막기 위해서 집에 있는 무기들을 탈탈 털어야 했다.
그때 은지가 프로텍터 외투를 걸치고 황급히 달려왔다.
“아저씨, 제가 잡을게요.”
“어, 어?!”
“저거 가져오려는 거죠?”
은지가 턱으로 가리킨 곳에는 소란 속에 일어난 도경이가 바퀴 달린 투석기를 낑낑거리면서 끌어내고 있었다.
“가만! 이것 좀 잡고 있어 봐! 거 그렇게 끄는 거 아니야!!”
어둠 속에서 좀 소란스럽지만,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모였다.
도경이 영주 아저씨와 같이 투석기의 고정핀부터 뽑고 옮길 준비했다.
은지는 영주가 잡고 있던 대형 플래시 핸들을 잡고 김준과 이 노인이 겨누는 곳으로 비춰줬다.
“은지야! 그대로 있어!”
김준은 무거운 핸들을 잡고서 온몸을 쓰는 은지를 응원하며, 탄을 벅 샷으로 바꿨다.
그러고는 앞에서 닭털이 날뛰는 길에 바로 돌멩이 하나를 던져 주변에서 날뛰는 것들을 다 한곳으로 쫓아냈다.
그냥 마당에 깔아 놓은 상태였던 닭떼가 모두 빛이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겨우 시야가 트였을 때, 김준이 엽총을 난사했다.
탕- 탕!!! 철컥- 탕!!!
오히려 좀비 무리에게 가까이 다가가 근접으로 쏘는 김준을 보고 모두가 경악했지만, 덕분에 흩뿌려진 쇠조각 산탄이 좀비들을 사정 없이 찢어발겼다.
크어어어어- 우어어어-
“…씨발.”
10m 정도 되는 거리에서 가까이 보니 진짜 많아도 너무 많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총알을 다 쓴다면 어떻게 막아 낼 수는 있어도, 그 뒤로 남은 게 없으니 장거리 원정은 포기하고 돌아가야 할 거다.
김준이 다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고, 그가 오기까지 기다리던 이 노인이 그제야 연지탄을 새로 장전하고 발사했다.
투웅- 파각!
“아버지, 그리고 준씨도 옆으로 빠져.”
“!?”
김준의 뒤에는 영주가 끌고 온 투석기가 있었다.
탄으로는 사제로 만든 각종 유리 조각과 쇳조각이 가득한 구체.
그리고 유리병 등이 있었다.
“잠깐만요!”
“?!”
김준은 그것을 보고 떠오른 게 있어 급히 차로 달려갔다.
그리고 박카스 박스 하나를 들고 나와 올려놨다.
“이거 던집시다!”
“뭐야, 박카스… 화염병이야?!”
“네, 직접 만들거요.”
“허, 참….”
“빈 병 이리 주세요. 여기 있는 거 큰 병에다 담아서 한 번에 쏠 수 있어요.”
“아범아! 그렇게 해라!”
이 노인 역시도 총만으로는 도저히 저 좀비떼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으어어어어-
저게 전부 걷는 좀비들이어서 다행이지, 만약 저 군락에서 뛰는 좀비가 열 마리 정도만 있어도 이거저거 움직이다가 눈앞에서 물어뜯겼을 것이다.
남은 거리는 30m 정도였고, 목초와 소란 속에 죽은 닭들이 있었지만,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됐어요.”
“당긴다!”
화르르륵-
김준이 신나를 큰 유리병에 옮겨담고 심지에 불을 당겼다.
그것을 영주와 도경, 이 노인까지 와서 셋이 힘껏 줄을 당겼다 놓았다.
파아아앙-
초거대 새총과도 같은 그 투석기가 화염병을 싯고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좀비 무리 앞에 떨어졌다.
쨍강- 화르르르륵-
좀비 무리 앞에 떨어져 불길이 치솟자, 김준은 바로 두 번째 것을 꺼냈다.
“좀 더 각도 잡고요!”
“그래, 나도 봤어!”
딱 2,3m 정도만 더 멀리갈수 있게 각도를 조절해 힘껏 당기고 발사했다.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간 화염병이 이번에는 제대로 명중했다.
화르르르륵-
크어억- 어어어어어-
크으으으으- 우우우-
백 마리가 넘는 좀비 무리 한가운데 떨어진 화염병이 불바다를 만들었다.
김준이 공들여서 만든 화염병 두 개로 더 이상 조명장비나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비출 필요도 없이 주변에 커다란빛이 생겼다.
“됐어! 다음!”
“아니요! 일단 두 개로 끝내고 물 준비해야 해요. 주변에 뿌려야 해!”
김준의 말에 영주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곳을 가리켰다.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관정에 호스가 붙어 있었다.
주로 고추밭 같은 데서 물을 뿌릴 때 쓰는 고압 분무 호스였고, 은지가 재빨리 달려가 그걸 풀고서 가져 왔다.
“아범아 줘라, 내가 가서 뿌리마!”
“아니예요! 아버지 그만 물러나 계세요!”
영주는 자신이 고압분무기를 잡고 물을 틀었다.
돌돌 말려 있던 쪼그라든 호스가 빵빵해지면서 세찬 물이 뿜어졌다.
“김준씨도 거기 있어. 내가 주변에 싹 뿌릴 테니까!”
“조심하세요! 엄호할게요!”
김준은 혹시라도 저 불길 속에서 좀비가 튀어나올지 몰라 엽총으로 불지옥이 된 골목에 겨눴다.
수십 미터 밖인데도 여기까지 그 열기가 올라오는 느낌이었고, 새벽에 깨서 좀비 습격을 막아 냈던 은지와 도경은 조용히 김준의 등 뒤에 서면서 상황을 지켜봤다.
쏴아- 쏴아아아아아-
불이 더 퍼지지 못하게 주변으로 물을 연신 뿌려대는 영주.
마스크에 바이저 캡 하나 쓰고서 이곳은 자기의 땅이라는 듯이 세찬 물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100여 마리 분의 인체 연로로 타들어 가는 좀비들이 하나둘씩 숯덩이가 되어 힘없이 주저앉았다.
좁은 길목에 자기들끼리 낀 상태로 불벼락을 맞았는데, 어떻게 피할 수도 없이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서 아주 서서히 타들어가고 있었다.
불길은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계속 됐고, 흰 연기의 색이 점점 새카매지고 있었다.
“허억… 허억…”
“됐어요! 이제 가만히 놔둬도 될 것 같아요.”
한가롭게 풀을 뜯을수 있는 목초지가 가장자리는 좀비 시체와 신나의 불길로 타들어갔고, 남은 자리는 물을 하도 뿌려대서 물꼬를 댄 논처럼 질척이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지하수를 뿌려대 불길은 더 이상 이곳까지 오지 못하고 서서히 사그라졌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서 수탉들이 하나둘씩 울어댈 때, 김준 일행이나 영주 일가나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도 좀비 군락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