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은 반대쪽 차선을 선택해서 역주행으로 쭉 달렸다.
중앙분리대 너머로 좀비 무리가 하나둘씩 넘어왔지만, 좀 더 속도를 높여 빽점으로 만들어 버렸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도경이 마치 사파리에 온 것같이 차 너머로 보이는 좀비 무리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진짜 끝이 없네요?”
“지난번엔 더 했어.”
“얘기 들었을 때, 그렇게 심한가 했는데….”
“야, 저기 고가다리 타고 기어 올라와서 양 사이드에서 좀비가 튀어나왔다니까?”
“으으으-”
도경은 그 이야기를 듣고 오싹했는지 부르르 떨었다.
한편 캠핑카 방에 있던 은지는 양 사이드와 뒷문을 살피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돌아갈 때가 문제겠는데….”
은지는 뒤에서 멀리 보이는 좀비를 보고 앞좌석 쪽으로 달려가 칸막이 너머로 김준에게 말했다.
“돌아갈 때가 문제겠어요. 좀비들이 이쪽으로도 넘어와요.”
“어, 그것도 대비해야지.”
“총알 넉넉해요?”
“충분해.”
김준은 거기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면서 좀 더 속도를 높였다.
사실 시속 100km도 못 밟는 상황에 간간이 보이는 장애물을 피하느라 속도가 이리저리 움직여서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기름일 거다.
총알도 총알이지만, 짐도 가득채운 이 캠핑카의 연비를 염두에둔 김준은 60km대를 유지하면서 달렸다.
그렇게 길을 쭉 가다가 중간쯤에서 다시 차선을 변경할 수 있는 박살 난 중앙 분리대를 발견한 김준이 그곳으로 핸들을 틀었다.
다시 원래 차선으로 돌아와서 저 멀리 보이는 농장.
근데 그곳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어? 오빠! 저기 불났어요.”
“?!”
농장 너머로 매캐한 연기가 쏟아지는 모습에 김준 역시도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했는데, 좀비 무리의 대규모 군락이 생긴 뒤로 저곳 역시도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김준은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다급하게 기어를 바꾸고 안으로 들어갔다.
“은지야! 안에 물통 꺼내!”
“꺼내 놨어요.”
생수병 몇 개를 꺼내 놓은 은지는 창문 너머로 던지기 위해 뚜껑을 하나하나 돌려놨다.
차가 점점 다가올 수록 눈앞에 매캐한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왔고, 창문을 꽉 닫은 상태에서 에어컨을 최대로 틀었다.
그때 연기가 자욱해진 안에서 움직이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물벼락이 쏟아졌다.
촤아아악-
“어우 씨발! 뭐야?”
“으으윽-”
앞유리 창문으로 물이 쫙 뿌려지면서 주변 잔불씨가 확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김준이 바로 라이트와 깜빡이를 켰을 때 천천히 다가온 그림자가 창문을 두들겼다.
똑똑-
“아!”
문을 두들긴 주인공은 영주 아저씨였다.
빈 양동이를 들고서 마스크를 쓴 영주는 김준의 차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짓 했다.
“김준씨! 나 좀 태워줘!”
“아저씨! 이거 뭐예요?”
“시체 태운 거야! 들어가서 말할게!”
“음….”
“뒷문 열까요?”
은지의 말에 김준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열리면서 그을음과 땀에 절은 옷차림으로 들어온 영주.
“어우! 살 것 같다. 후! 에어컨… 어후!”
들어오자마자 옷소매를 이리저리 털면서 헐떡거리는 영주.
은지는 조용히 생수병 하나를 건네줬고, 영주가 그걸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우- 아가씨 고마워.”
“무슨 일이예요?”
“가서 말하자! 우리 뒈질 뻔했어. 진짜!”
김준은 연기를 벗어나면서 겨우 벗어났다.
꿰에엑- 푸드드득-
꼬꼬-
“준씨! 거기 닭 조심해!”
“어우, 뭐가 보여야….”
사이드로 빠지려고 했는데, 여기저기에서 닭들이 푸드득 거려서 서행으로 빵빵 거리면서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집으로 들어왔을 때,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깐만 기다려.”
“?”
영주 아저씨는 집 안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어서 갈아입고는 작대기 하나를 들고 바닥을 쳤다.
바닥 한 곳이 비어 있는지 콩콩- 거리는 소리가 났고, 거기에 맞춰서 집문 근처에 창고 문이 열렸다.
끼이이-
“민규 아범아! 다 잡았냐?”
“엄니! 다들 올라오라고 해요.”
할머니가 나오면서 김준 일행을 보고는 반갑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아이고, 윗동네 사람들 왔구먼.”
“아, 네.”
그 뒤로하나둘씩 올라오는 영주 가족이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냉장고 대신에 김장과 장류를 보관하는지하 토굴을 팠다고 했는데, 좀비가 날뛰니 저 안에서 쉬고 있었나보다.
“근데 오늘은 그 노랑 머리 아가씨가 안 보이네?”
“아, 집에 있어요.”
“츠녀들이 다 같이 사남?”
“네.”
“윗동네 총각도 고생이겠네. 몇 집 살림이여?”
“….”
김준이 머쓱해하자 영주가 바로 제지했다.
“아따 노인네. 씨잘대기 없는 소리 좀 하지 마쇼.”
나이 지긋한 어머니에게 노인네니, 씨잘대기니 하면서 툴툴거리는 시골 가장은 방으로 부모님을 모시고는 냉장고에 우유를 꺼내 일행에게 나누줬다.
“준이 씨. 담배 한 대 좀 피자.”
“여기서요? 연기 마시고?”
“아, 그거하곤 다르지.”
영주 아저씨가 한 대 태우자는 말에 일단 같이 나갔다.
집 밖으로 나와 다른 곳에서 서로 불을 붙인 영주와 김준.
그리고 그간 있었던 일을 꺼내놨다.
“한 나흘 됐나? 별안간에 저기서 미친놈들이 막~ 튀어나와!”
“규모가 얼마나 됐어요?”
“몰라, 씨벌. 개떼같이 오는데 저번에 준 석궁 가지고 다 쏴죽였어.”
영주 아저씨도 수십 년간 농삿일로 단련된 강골에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었다.
“이거 보여?”
“와… 전 이거 만들까 하다 못했는데.”
김준은 영주가 만든 투석기를 보고서 감탄했다.
농사짓는데 쓰는 대형 러버밴드에 쇠 파이프 용접해서 만든 대형 슬링 투석기였다.
“탄은 뭐 썼어요?”
“빈 병하고, 철망 뭉쳐서 투석구로.”
“완전 농성무기네요.”
수십 마리의 좀비가 달려들었는데, 영주가 투석기를 만들어서 그걸로 쏘아 맞췄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에 그것들 한데 싹 몰아다가 불 당긴 거야.”
“안 그러셨어도 되는데… 이것들은 죽으면 사나흘 있다가 서서히 땅에 녹아요.”
“그걸 개하고, 닭이 쪼아먹는다니까?”
“아, 그거는 좀….”
아직 동물이 좀비의 시체를 뜯어먹고 감염 여부는 안 나왔지만, 확실히 키우면서 잡아먹는 농부들 처지에선 굉장히 신경 쓰일 것이다.
김준은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불길이 완전히 잡혀서 언덕 한 곳이 화전처럼 새까맣게 탄 곳을 살폈다.
“근데 저렇게 태우면 들불 안 생겨요?”
“그래서 아까 엄청 뿌려댔잖아? 어우- 소방차나 한 대 있으면 좋겠는데.”
“….”
김준은 그 상황을 모두 이해하고서 고개를 끄덕이다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와 줘서 정말 고맙네. 진짜 요 며칠 죽는 줄 알았어.”
“사실 저희도 그랬어요. 원래 지난번에 오려고 했는데, 좀비가 너무 많아서 중간에 돌아갔거든요.”
“잉, 그래~ 그쪽도 그랬구만.”
“그래서 말인데 드릴 말씀이 있어요. 어떻게 밥이라도 먹으면서 안에서 말할게요?”
“어, 민규 엄마한테 저녁 준비하라고 할게.”
일단은 모두가 먹으면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저녁 식사는 고기와 달걀을 정말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푸짐한 식사대접을 받아 마음껏 먹고, 그 자리가 끝난 뒤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김준은 그동안의 이야기를 전부 해 줬다.
미군 부대를 만난 것부터, 갑자기 좀비 군락이 생겨서 동네별로 놈들이 뭉쳐 다닌다는 이야기.
또 앞으로도 여기 오면서 닭이나 유정란을 교환해서 미군부대에 가져다주면 무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했다.
“김 중사. 그러면 나도 총 어떻게 안 될까?”
“그냥 오늘 한 자루 드릴까요?”
“진짜?”
“여기 뒤로 실탄사격장 다녀오면서 공기총을 좀 얻었어요. 사격용이라 단발이지만, 연지탄은 충분할 겁니다.”
그때 조용히 듣던 영주의 아버지 이 노인이 넌지시 물었다.
“공기총이 있어?”
“네, 어르신. 몇 자루 있습니다.”
“거, 내가 옛날에 많이 쐈는데. 꿩잡으러 다니면서….”
“맞아. 이 영감이 옛날에 사냥꾼이었어요.”
“아… 엽사셨어요?”
“수렵 면허는 갱신 안 했지만.”
김준은 이 노인이 엽사였다는 말에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어르신. 연지탄 공기총 있으시면 쓰실수 있나요?”
“그거는 내가 탄도 만들 수 있어.”
“!”
“연지탄 그 쬐간한 거… 틀만 만들어서 인두 가지고 납조각 녹여서 찍어내면 그만 아녀?”
김준이 어린 시절에 시골 노인들이 사제 총기 만들어서 멧돼지나 너구리, 고라니 잡는다는 무용담은 들었는데 그걸 진짜로 할 수 있다며 자신만만해 하는 이 노인이었다.
“어르신, 그럼 한 번 보시겠어요?”
김준은 내친김에 차로 가서 사격시합용 공기총 한 자루를 꺼냈다.
뒷부분에 연지탄을 끼우고 장전하는 방식인데, 이 노인은 그것을 받고 이리저리 살피고는 바로 겨눴다.
능숙한 사격자세를 잡은 이 노인은 늦은 밤 떼로 몰려다니는 닭 중에 하나를 맞췄다.
퉁-
꿰액!
암탉 한 마리가 공기총을 맞고 쓰러졌고, 푸드득 거릴 움직임도 없이 멈췄다.
다른 닭들이 우르르 도망 다닐 때, 영주가 후다닥 달려가서 죽은 닭을 가져 왔다.
“와… 아부지. 실력 살아 있네.”
“!”
영주가 가져온 닭은 정확하게 눈과 뇌가 꿰뚫린 상태로 죽어 있었다.
김준이 봐도 엄청난 사격 실력이었다.
“총 맡겨도 되겠네요? 어르신이 쓰시면 되겠습니다.”
“걱정 하덜 마. 아범은 이 친구들 갈 때 고기 좀 잔뜩 챙겨 주고.”
처음 뵜을 때는 소한테 들이받힌 상처로 다리를 자르네마네 하셨던 골골거리는 노인이었는데, 다시 보였다.
이 노인은 김준에게 공기총을 돌려주고 허리를 두들기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지난번에 총 주시면 소 두 마리라고 하셨던가요?”
김준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영주도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소 한 마리에 나머지는 닭하고 병아리로 못 때울까?”
“소 한 마리면 닭을 몇십 마리 주는데요?”
“어….”
김준은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