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25화 (325/374)

김준은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차 안을 살폈다.

접이식 침대 밑에는 밀가루와 쌀이 40kg 포대로 깔려있었다.

그리고 침대 위로는 물물교환용으로 쓰일 수 있는 말통에 담긴 식용유와 간장, 소금, 설탕, 물엿 등의 조미료.

반대편에는 김준이 만든 나무 궤짝 안에 통조림이 차곡차곡 담겼고, 그 위에는 휴지와 물, 로션, 담배, 소주 등의 기본 생필품이 가득했다.

그 모든 것을 밧줄로 단단하게 묶어서 아무리 거칠게 운전해도 넘어가지 않게 고정했다.

“흠, 웬만한 건 다 실었는데….”

김준은 물물교환을 할 수 있는 물건들을 한 곳에 다 담아놓고, 부족한게 없는지 살폈다.

일단 캠핑카 내부는 완벽했고, 물도 가득 차 있었다.

김준이 안을 살필 때, 은지는 사다리를 타고 캠핑카 위의 캐리어 박스를 살폈다.

“오빠 말대로 스페어 타이어랑, 차량 정비 키트 다 담아놨어요.”

“어, 그래!”

“근데 앞유리 이거는 괜찮겠어요? 굳이 들고 갈 필요가….”

“모르는 거야. 난 닷새 채우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어.”

김준은 혹시 몰라 블루핸즈에서 털어온 차량용 앞 유리까지 커버에 담아서 캠핑카 캐리어 위에 담았다.

그럴 일이 생겨서는 안 되지만, 만약 좀비 로드 킬로 앞 유리가 박살 나면 바로 갈아낄 수 있게, 공구까지 두둑이 준비하고 말이다.

그리고 조수석에서는 도경이가 대쉬보드 안을 살폈다.

그 안에는 지도, 배터리, 새총과 너트, 석궁 화살 등이 가지런하게 담겨 있었다.

그것도 부족해서 조수석 밑에 무기 상자를 추가로 구비했다.

과적이란 말이 나올 만큼 캠핑카를 꽉꽉 채웠고, 모든 준비를 마친 김준이 마지막으로 무기를 챙겼다.

에밀리가 쓰는 공기총 한 자루와 연지탄 한 깡통을 남기고, 나머지는 김준이 직접 챙겼다.

“에밀리, 너 진짜 조심해야 해.”

“응, 사고 안 나.”

“나면 때릴 거야.”

“히~”

김준은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 에밀리를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면서 집 잘 보라고 말했다.

에밀리뿐만 아니라 그 뒤에서 따라오는 라나, 가야, 마리, 나니카, 인아까지 여섯 명에게 모두 부탁한다면서 한 번씩 안아줬다.

프리허그처럼 공주님들을 모두를 안아준 김준은 총을 메고 나갈 준비를 했다.

모두가 배웅해주는 자리에서 김준은 차에 타고 손을 흔들며 드디어 장거리 원정을 위해 첫발을 내디뎠다.

오늘은 굉장히 푸른 하늘이었다.

***

“에어컨 바람 잘 나와?”

“잘 나와요.”

뒷좌석에 앉은 은지는 더운 여름에 방호복을 입은채 흐르는 땀을 에어컨 바람으로 식혔다.

조수석에 도경 역시 바깥 온도가 30도가 넘는데 긴 팔에 자켓이 무척 불편했지만, 에어컨으로 버티고 있었다.

“여름용 방호복은 없으니까 불편해도 좀만 참자.”

이미 무더위 루팅으로 여러 번 고생했던 김준이 은지와 도경이를 위로하면서 속도를 높였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장거리 원정을 위해 며칠 전부터 준비한 코스로 향했다.

먼저 김준이 향한 곳은 지난번 아산으로 넘어가려다가 돌아온 죽음의 고가도로였다.

지금도 군락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에 대비해서 무기를 잔뜩 챙겼다.

덜컥-

콘솔박스를 열자 그 안에는 김준이 공들여 만든 나무 상자가 있었다.

시가를 담는 상자처럼 생긴 그 안에는 박카스나 판피린 드링크 사이즈의 화염병이 가득했다.

총 20병 들이의 미니 사이즈의 화염병은 김준이 직접 화력을 확인하고 기대한 신무기였다.

그 밑으로도 사냥용 신형 연지탄과 멧돼지탄과 45구경 권총탄까지 아주 종합 선물 세트였다.

뭐든 나오면 곱게는 안 죽이겠다는 각오로 준비하고 나온 길이었다.

“일단은 지난번 그 아산 가는 길로 갈거야. 중간 지점은 영주 아저씨네 길이야.”

“네. 거기까지요.”

회의 끝에 이번엔 중간에 휴게소에 들리지 않기로 했다.

안에 물이나 소주 등을 챙길 수는 있지만, 거기에서 보내는 것 보다는 지나쳐서 영주 아저씨네를 웨이포인트로 삼고 더 깊이 들어가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김준은 그것을 위해 옛날 아재들이나 쓰던 지도책을 달달 외우고, 업데이트 못 한 내비게이션도 켜면서 다양한 길을 찾았다.

고가를 타고 진입했을 때, 김준은 준비를 잔뜩한 만큼 긴장한 얼굴로 천천히 서행했다.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콰직- 콰드드득-

쿠우웅- 쿵-

크어어어어어!!!!

놈들이 움직인다.

땡볕 아래 아지랑이가 치솟는데, 포효를 내지르면서 맨발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좀비들.

이놈들의 피와 뇌수는 폭염에 익지도 않는지 엄청난 기세로 김준의 캠핑카를 향해 다가왔다.

“오빠, 저거….”

철컥-

“봤어.”

기세도 좋고, 그 수도 확실히 많다.

하지만, 뭔가 한 가지 달라진 게 있었다.

끼긱-

기어를 전환하고 핸들을 돌려 김준이 맘껏 쏠 수 있게 방향을 틀었다.

저벅- 저벅-

크어어어- 어어어-

걷는 좀비와 뛰는 좀비의 무리.

하지만, 놈들이 이전에 비해 굉장히 느려진게 보였다.

뛰는 좀비들 역시도 옛날같이 육상선수같은 폼이 아니라 달아오른 아스팔트를 달리며 몸이 무거운 게 확 보였다.

작년 겨울 때도 느낀거지만, 사람 만큼이나 좀비도 기후 변화에 따라 상태가 달라진다.

그것을 안 김준은 엽총 총구를 창 밖으로 내밀고는 차분하게 조준했다.

지난번에 비해 반도 안 되는 속도로 달리는 좀비를 향해 김준은 머리를 노리며 탄을 발사했다.

탕- 탕-!!!

두 발의 샷건이 먼저 달려드는 좀비들을 쓰러트렸고, 아지랑이가 지는 달아오른 아스팔트가 좀비가 쓰러질 때, 속에서 펄펄 끓은 피로 젖어갔다.

총구를 내미는 그 창문 틈으로 엄청난 열기가 직빵으로 쏟아졌지만, 김준은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철컥!

엽총의 총알이 동났을 때, 바로 옆의 더블배럴 샷건을 꺼내서 연달아서 발사했다.

순식간에 여섯 발을 발사하고, 수십 마리의 좀비들에게 혼란이 찾아왔다.

달리는 앞에서부터 쓰러져나가자 걷는 좀비들이 밟고 지나가 김준의 차량에 오려다가 주저앉거나 넘어졌다.

김준은 걷는 좀비들을 좀더 가까이 접근하게 한 다음 이중으로 박스에 담긴 드링크 화염병 하나를 꺼냈다.

딱 수류탄만한 사이즈의 박카스 병에 담긴 신나가 찰랑거렸다.

딱- 딱- 치익-

김준은 전기 라이터로 미니 화염병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창문을 최대한으로 틀고 열기 가득한 폭염을 달리는 좀비 떼를 향해 힘껏 던졌다.

“뒈져!”

파각-

화르르르르륵-

소주병이 아닌 작은 드링크 병으로 만든 화염병이었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좀비 무리의 발치에 불길이 치솟자 좀비들의 몸에 불이 붙어갔다.

끈적한 설탕이 담겨 있어 좀비의 썩은 피부에 늘어 붙은 순간 끝까지 파고들어 뼛속까지 태울 열기가 치솟았다.

우우우우- 으어어어어-

크어어어어어-

옛날에 디아블로2나 바이오하자드 게임 할 때 언데드 쓰러트리면 나오는 괴성이 실시간으로 울려퍼졌다.

미니 화염병은 소지하기도 간편하고, 화력도 좋았지만, 안에 담긴 인화물질이 적어 불길이 빨리 사그라졌다.

김준은 열기를 직빵으로 맞아 땀이 잔뜩 맺힌 상태에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두 번째 화염병을 던졌다.

두 번째 역시도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좀비들의 발모가지를 새까맣게 태워갔다.

발 부분만 태워버려도 중심을 잃고 쓰러져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것 밖에 못하는 좀비.

공포스러웠던 좀비 군락이 화염병과 엽총 난사에 하나둘씩 쓰러져 갔고, 세 병째 던졌을 때, 열사병 올 것 같은 기온에 김준이 창문을 닫았다.

“후우- 후!!!”

“오빠! 에어컨 최대로!”

도경이가 칸막이 사이에 있는 에어컨 레버를 확 돌려서 최대로 틀었다.

이미 옷 안은 땀에 절었고, 두피부터 줄줄 흘러서 얼굴도 흥건한 김준의 상태였다.

“후- 됐어.”

김준은 콘솔박스에 있는 생수 하나를 들고 이빨로 뚜껑을 돌려 딴 다음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차를 완전히 돌려서 원래 목적지인 아산이 아닌 반대편 서해안 고속도로로 가는 길로 달렸다.

갑작스럽게 계획 변경을 한 건 아니었다.

단지 지난번 이 대로를 달리면서 한 가지를 알았었다.

고가대로는 중앙선 침범을 못하게 가운데가 철제 중앙분리대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1년 동안 방치되면서 차 안에서 운전하던 사람이 좀비가 되거나 동행자의 습격으로 중심을 잃고 난간을 들이받아 추락하거나, 분리대를 들이받아 박살난 곳이 가득했다.

김준은 그중 한 곳을 찾아 중앙분리대의 빈 곳을 찾았다.

트럭 한 대가 중앙 분리대를 싹 밀어버리고 저 반대편 난간을 들이받고 박살난 곳이 있었다.

김준은 그곳을 찾아 바로 U턴을 하고는 역주행 길로 달렸다.

그리고 다시 아산 쪽으로 향하자 중앙분리대 사이로 불길에 허우적거리는 좀비 군락이 보였다.

“와….”

조수석에 앉아있던 도경이는 창 밖에서 중앙분리대라는 벽을 두고 못 따라오는 좀비들을 보고 탄성을 내뱉었다.

위험 리스크를 가지기 싫어서 그냥 빠져서 그렇지, 그때도 조금만 머리를 썼으면 이렇게 탈출할 수 있었을거다.

“설마하니 반대편에서 차가 오진 않겠지.”

만약 그렇다고 해도 여기는 4차선 고가도로,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김준은 반대편 차선에서 역주행을 하면서 힘차게 달렸다.

물론 이곳 역시도 곳곳에 널브러진 폐차가 있어서 장애물 코스를 피하는 건 똑같았지만, 적어도 달라붙는 좀비의 수는 현저히 적었다.

“저기 옆에 넘어오려는 애들 있는데….”

“붙어?”

“아뇨, 이 속도면 절대 못 따라 올 거에요.”

“그럼 됐어.”

뒤에서 은지가 하는 말을 들은 김준은 좀 더 속도를 냈다.

이대로 쭉 가서 영주 아저씨네 농장까지 바로 도착할 예정이었고, 내비게이션에서 연신 과속 주의나 역주행 경고를 하지만, 소리를 꺼버리고 액셀을 힘껏 밟았다.

일단 첫 번째 코스는 통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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