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23화 (323/374)

김준은 돌아오는 길에 상가 골목에 멈췄다.

끼익-

“지금 시간이 오후 4시고… 요새는 7시 지나도 깜깜해지지 않으니까….”

“터는 거야?”

에밀리는 그 좀비 무리를 보고서도 물건을 턴다는 사실에 설레했다.

김준 역시도 얘는 왜 저렇게 가게 물건 터는 걸 좋아하냐면서 피식 웃고는 먼저 찾을 곳부터 살폈다.

일단 편의점이 하나 보이고, 그 옆으로는 공인중개사, 팬시점 등이 보였다.

그리고 뒤에 있던 가야도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반대쪽 골목을 바라봤다.

“오빠! 저기도 갈 수 있나요!”

“응?”

가야가 가리킨 골목을 보니 거기에는 [주방용품백화점]이라 쓰인 간판이 보였다.

바깥에 1년 동안 배치된 얼룩과 피에 젖은 플라스틱 용기와 스테인레스 그릇이 널브러진 곳.

하지만 안에 들어가면 꽤 괜찮은 그릇과 다른 주방용품도 잔뜩 챙길 수 있을 거다.

“안 그래도 인아가 가위랑 칼 같은 거 많이 필요하다고 했지.”

“네. 맞아요.”

그 와중에 본인이 챙길게 아니라 가져가서 다른 애들 쓸 것을 루팅으로 생각하는 맏언니 가야.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단 편의점으로 차를 댔다.

“차례대로 가자. 2시간 정도 있으니까 일단 바깥에 보고, 살핀다음에 천천히 해도 돼.”

김준은 양 옆구리에 두 자루의 권총을 각각 차고, 벨린저 대령에게 받았던 20발 소총 탄창을 M4에 결합했다.

그동안 가지고 만 다녀서 장식품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드디어 쓸 수 있게 됐다.

철컥-

리볼버 한 자루에 콜트 45 한 자루, 거기에 주 무장이 M4 소총이니 이제까지 공기총이나 사냥이나 클레이 사격에 쓰는 산탄총 들고 다닐 때보다 훨씬 더 무서워 보이는 김준이었다.

김준 역시도 무기에 대한 자신이 생겼는지 곧바로 나가서 편의점 문을 열고 겨눴다.

타앙!!

쿠당탕탕탕-

“꺄앗!?”

“오 쉣!”

안에 들어가자마자 한 발의 총성.

그 뒤로 조용해진 편의점에서 김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나왔다.

“젠장! 안에 한 마리 짱박혀 있었어.”

“히이잉-”

“미안한데 여기 편의점은 텄다. 피가 이렇게 쫙- 튀어서….”

김준이 문을 열고 안을 보이자 편의점 안에서 유니폼을 입고 있는 전생에 편의점 알바생으로 추정되는 좀비가 매장 안에 피를 흩뿌린 채로 쓰러져 있었다.

정확하게 머리를 꿰뚫려서 미동 하나 없는 녀석이었지만, 놈이 매대로 쓰러지면서 피가 뿜어진게 저건 닦아도 못 쓸 것 같았다.

“하아~ 너무해.”

“나중에 다른 데 찾으면 돼지.”

그동안 편의점은 오랜 기간 방치된 걸 제외하고 좀비를 유인해서 잡았는데, 안에서 좀비가 튀어나온 건 김준도 조금 놀랬다.

다행히 오늘의 김준은 풀무장 상태였고, 본인 역시도 그걸 알고서 그냥 한 방 쏴버려서 빠르게 제압했다.

“후우- 잠깐만.”

김준은 발치에 있는 것 중에서 제법 크기가 있는 돌멩이 하나를 가지고 옆옆에 있는 팬시점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여기도 혹시 좀비가 튀어나올지 몰라 유리 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쩍-

“….”

돌에 맞은 유리문이 사정 없이 쪼개졌을 때, 김준이 총을 겨누고 지켜봤다.

그리고 여지없이 좀비가 튀어나왔다.

쨍강!

캬아아아악-

탕- 탕- 탕!!!

금이 간 유리를 몸으로 밀어붙여서 날뛰는 좀비들은 김준이 총으로 모두 잡아버렸다.

총 세 마리가 나왔는데 김준의 총앞에 모두 쓰러졌고, 상대를 한 뒤로 황급히 차 안으로 들어왔다.

덜컥-

“좀 까다롭네.”

김준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뒤늦게 클락션을 울렸고, 네 마리의 좀비를 잡은 뒤로 울린 클락션에서는 더 이상 좀비가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네 마리가 이 골목에 전부라고 확인한 김준은 다시 차에서 내렸다.

아까 명국의 집에서 나올 때 불에 타버린 좀비의 시체조각을 쓸어낸 밀대가 있었는데, 그걸 꺼내서 자신이 잡은 세 마리의 좀비를 폭설의 눈을 치우듯이 밀쳐서 벽돌 담벼락에 밀어 버렸다.

그러고는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편의점 라이타 기름통을 꺼내서 세 마리의 좀비 시체에 뿌리고는 담뱃불을 붙여 한 모금 빨고는 주저 없이 던졌다.

화르륵-

결국 낮에도 다시 한번 좀비를 태우는 불벼락이 내려졌고, 신나에 적셔져 맹렬하게 타오르는 좀비를 두고 김준은 조용히 기다렸다.

좀비 무리의 썩은 살이 타들어 가면서 숯덩이가 되 갈 때, 김준은 뒤이어 에밀리와 가야에게 나오라고 손짓 했다.

덜컥-

“으으으- 냄새.”

시취와 탄내가 풍기는 자리에서 에밀리가 마스크를 썼고, 가야 역시도 마스크 끝을 약간 적셔셔 호흡이 편하게 만들었다.

좀비를 잡은 건 잡은 거고 다시 루팅의 시작이었다.

“이거! 이거!”

안에 들어오자마자 난장판이 된 팬시점 안에서 매캐한 냄새가 났지만, 에밀리는 그런 거 신경 없이 딱 하나를 찾아서 박스를 들었다.

“드라이기? 아니, 저거 그… 머리 마는 거.”

“고데기요.”

“맞아. 고데기.”

가야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을 때, 에밀 리가 팬시점에 비치된 고데기 박스를 몇 개 챙기며 가져 왔다.

“집에 있는 거 고장 나서 머리 봐봐. 말아 올리질 못하잖아.”

요새 금발의 웨이브 진 머리가 점점 갈라지면서, 빳빳해진다고 투덜대는 에밀리.

하필 그 말을 개털머리라고 놀림받아 자기 곱슬머리 싫어하는가야한테 하니까 묘했다.

어쨌건 김준 역시도 카트를 들고 와서 이것저것 챙기는 시간이 되었다.

“많이 챙기지 마. 캠핑카가 아니라서 공간 좁아.”

“흐으응, 그럼 이것만 더….”

굳이 왜 챙기는지 모르겠지만, 색색들이 형광펜에, 스티커에, 머리핀, 빗, 다이어리, 곰 인형 같은 소녀소녀한 물건들을 가방에 한가득 챙기는 에밀리였다.

반면 가야는 팬시점 내에서도 애들이 쓸 만한 물건으로 검은색 펜과, 빗, 챕스틱, 바셀린 로션, 수첩이나 공책, 목걸이형 스마트 선풍기나 탁상용 선풍기 등을 챙겼다.

다행히 부피가 적은 물건들이라 가방 두 개 분으로 넉넉하게 챙겨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외에 남은 것이라고 해야 이어폰이나 헤드셋, 스마트용품, USB잭 같은 것들만 남았다.

“나중에 또 필요하면 다시 오기로 하고… 가자.”

물론 그것들을 내려놓고서 다시 갈 곳은 맞은편의 주방용품 상가였다.

여기는 가야가 오자고 했지만, 김준이 더 챙길 만한 게 많아 보였다.

“스테인레스 김치통 챙기고… 석쇠… 이거 당연히 챙기고, 오! 화덕도 있어?”

캠핑용품으로 쓰이는 쟁반만한 사이즈의 스테인레스 화덕과 화로대를 본 김준의 눈이 돌아갔다.

아까만 하더라도 본인이 ‘오늘은 차가 험비니 적당히 챙겨라.’ 라고 했지만, 부피가 큰 캠핑용품들을 보고 본인이 더 챙기게 됐다.

그 외에도 5L, 10L 단위로 있는 플라스틱 반찬통에, 찜을 할 때 좋은 압력냄비.

라면 끓이기 좋은 황냄비와 주전자까지 하나하나 집다 보니 카트에 한가득이 모였다.

촤라라락-

그 와중에 가야가 스테인레스 젓가락과 수저, 포크 등의 기본 식기도 냄비 안에 집어넣어 한 곳에 포장했다.

언제봐도 책임감이 강한 애였고, 저기 있는 모든 게 가져가서 또 물자 관리로 표시할 거다.

“준! 이거 봐!”

“야! 너 뭐 해?”

에밀리는 어디서 뽑아온 건지 날이 시퍼렇게 선 곡도 두 자루를 들고 쌍검술을 하듯이 휘둘렀다.

“얌전히 가져와!”

“흐응~ 나이프 파이팅도 가르쳐 줄 거야?”

“식칼로?”

에밀리는 포장된 그 상태로 담아서 얌전히 가져와 김준에게 건넸다.

주방용 식칼 세트였는데, 흔히 ‘사시미’라 불리는 회칼부터 뼈를 잘라 내는 톱날의 쇠칼, 네모난 중식칼 등이 다양했다.

“칼은 함부로 잡는 거 아니야.”

“저기 잔뜩 있어. 저것도 챙길거지?”

“…에휴.”

김준은 에밀리와 가야를 직접 데리고 칼이 있는 코너로 향했다.

이렇게 촐삭대는 에밀리를 두고 일단 챙킬 칼부터 하나하나 설명하며 말해줬다.

“오, 이건 무슨 칼이야? 무슨 판타지에 나오는 거 같아.”

보통의 직도가 아닌 언월도 모양의 커다란 곡도를 보고 에밀리가 신기해했다.

“발골칼이야. 원래 뼈랑 살 긁어내는 거는 이걸로 하는 건데.”

그동안 일반 식칼로 하니까 금방 날이 상했지만, 전문 발골육 칼을 챙긴 김준이 에밀리에게 건네줬다.

그걸 또 잡고서 판타지 작품에 나오는 이도류처럼 거꾸로 잡아서 휘둘러보고 싶다는 에밀리였지만, 진짜 그거 했다간 엉덩이 두들겨 맞고 쫓겨날 거다.

“이게 내장칼. 안에 배 가르고 내장 따내는 거.”

“흐응~ 닭잡을 때 나무에 박는 그 커다란 칼이 이거구나.”

“이건 꼭지칼. 야채나 과일 심지랑 꼭지 따내는 거야.”

“와 무슨 쿠크리 나이프처럼 생겼어.”

김준은 하나하나 설명해주고서 그 칼들을 모두 챙긴 다음 혹시 몰라 아까 챙긴 박스 중에 대용량 플라스틱 김치통에 넣고 단단이 묶어서 절대 튀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주방용품점은 무척이나 규모가 컸고, 여기에 있는 물건의 1%도 못 챙겼지만, 이미 차에 가득 찬 상황이었다.

어쨌건 거래를 마치고, 루팅까지 성공한 김준은 오늘의 성과 역시도 엄청난 성공으로 끝냈다.

그리고 애들이 각각 가져온 물건을 챙길 동안 방에 들어가 무기 손질하고는 거실로 나와 애들에게 말했다.

“다들 잘 들어.”

“!?”

“응?”

“준, 무슨 일 있어?”

김준은 어제와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결심한 듯 외쳤다.

“지금부터 딱 일주일 동안은 어디 안나가고 집에만 있는 거야. 그리고 일주일 지나면 바로 나갈 거야. 좀 멀리.”

“오~”

“장거리 원정 준비해.”

“아산으로 가시는 거예요?”

오늘 김준이 가져온 칼을 에밀리와 같이 하나하나 분류하던 은지가 넌지시 물었다.

김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결심한 듯 말했다.

“더 멀리 내려갈 수도 있어. 아마 최대 나흘까지.”

“!”

“어!”

“흐음~”

그동안 길어야 1박 2일인데, 3박 4일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장거리 원정을 간다는 말에 모두 놀라 하면서도 좋은 일상은 일주일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녀들에겐 또 새로운 루트가 만들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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