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20화 (320/374)

타앙-

콰직-

엽총에서 발사된 산탄이 터지면서 달려든 좀비의 몸을 사정 없이 찢었다.

수많은 쇠구슬이 썩어 문드러진 좀비의 몸 이곳저곳을 뚫고 나가면서 걸음을 멈추게 했고, 얼마 남지 않은 장기인 뇌를 헤집었다.

크어어어-

털썩!

휘이이익- 퍽!

거기에 맞춰 빠르게 날아온 화살 하나가 좀비의 머리를 꿰뚫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공기총 연지탄도 그 옆에 있는 좀비를 맞췄다.

산탄, 화살, 공기총 연지탄까지 다양한 원거리 무기로 옥상에서 농성하자 수많은 수의 좀비도 접근하지 못하고 픽픽 쓰러져갔다.

그리고 좁은 골목에서 들이미는 좀비 무리들을 향해 김준이 발치에 있는 소주 병을 힐끗 바라봤다.

“명국아!”

“네, 형님!”

“던진다!”

“!?”

김준은 발치에 화염병을 집어 들고 라이타를 꺼냈다.

“불나면 내가 끌테니까 던진다?”

“…하세요!”

점점 더 늘어나는 좀비들을 보고 김준이 화염병에 불을 당겼고, 각을 잡은 다음 녀석들을 향해 힘차게 던졌다.

우아한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간 화염병이 좀비 하나의 머리에 떨어졌다.

파각-

화르르르르륵-

뜨거운 불벼락이 좀비 무리에게 내렸다.

신나가 섞인 화염병이 깨지면서 빠르게 불길이 치솟았고, 밀착한 상태로 철장을 넘으려던 좀비들의 몸이 하나둘씩 타들어 갔다.

우우우- 우으어어어어-

캬아악! 캬악!!!

뛰는 놈, 걷는 놈, 기어 다니는 놈 할 것 없이 불길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했다.

거기에 화력을 위해서 캐러맬을 섞어서 끈적하게 달라붙은 불덩이가 좀비의 몸에서 타들어 가서 매캐한 검은 연기가 사방에 퍼졌다.

“콜록! 콜록! 준! 너무 세!”

“빠져 있어!”

“히잉-”

에밀리는 계속 기침을 하다가 연기를 피해 뒤로 슬쩍 빠졌고, 새하얀 얼굴에 입가와 코 부분에 그을음이 묻어나 울먹였다.

김준은 그 뒤로 다른 화염병을 꺼내서 라이타에 불을 붙였다.

“하나 더 간다!”

파각- 화르르르르르륵-

김준이 연달아 던진 화염병이 꺼져가는 불길에 다시 붙으면서 수류탄처럼 터졌다.

명국이네 집 앞에서 맹렬한 불길이 치솟았고, 그 상황에서 마스크를 쓴 김준이 외쳤다.

“명국아! 내려가서 내 차에 가 있어! 에어컨 키고!”

“형님!”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와이프하고 애 데리고 피해 있으라고!”

“네… 넷!!”

생각 이상으로 강한 불길에 연기가 명국의 집까지 퍼졌고, 여기서 머뭇거렸다간 큰일 날수 있었다.

지금도 매캐한 연기로 앞이 안 보일 정도였는데, 더 있다간 밑에 집에서 조용히 있던 애들이 숨을 못 쉴 수도 있었다.

명국은 황급히 내려갔고, 김준은 에밀리에게도 말했다.

“가서 가야 챙겨!”

“콜록! 콜록! 쉿!”

에밀리도 후다닥 달려가서 밑에 사람들을 챙겼고,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계속 쿨럭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김준이 말한 대로 험비 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휴대용 선풍기와 에어컨을 틀어서 매연을 차단하고 호흡했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물을 꺼내 마스크를 적신채 웅크렸다.

화재현장에서 살아남는 법으로 익힌 거였는데, 이 상황에서 아주 큰 도움됐다.

그렇게 5분 동안 좀비들의 괴성이 연기에 묻히면서 거대한 화재현장이 되어 버린 골목.

안개처럼 뭉쳐서 한 치 앞도 바라보기 힘든 상황에서 기어이 김준 마저도 내려왔다.

딱-

플래시라이트를 켜고 앞을 보면서 소방대원처럼 명국의 집 안을 살핀 김준은 냉장고를 열고 그들이 보관한 생수를 꺼냈다.

일단 한 모금 들이켜고 쭉 뱉은 다음 혹시 집에 불이 닿을까 베란다를 통해서 물을 마구 뿌려댔다.

눈앞에 불씨가 보이는 상황에 김준이 페트병에 담긴 물을 이리저리 뿌려대자 치직- 거리면서 불씨가 빠르게 꺼졌다.

집 주변에 물을 쫙 뿌려놔서 더 이상 불길이 퍼지지 않게 한 김준.

그러고는 명국의 집 마당으로 향해, 관정을 뚫어놓은 펌프를 보고 바로 호스를 가져 왔다.

호스를 연결하고 라인을 쭉 늘인 다음에 베란다까지 끌어와 물 밸브를튼 순간 지하 깊숙이 잠들어 있던 지하수가 끌어올려져 밖으로 나왔다.

촤아악- 촤아아아아아아악-

치지직- 치이이이이익-

좀비를 태우던 불길에 물이 닿는 순간 새카만 그을음만 남기면서 마지막 남은 연기가 뿜어졌다.

김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지하수를 뽑아내 주변에 뿌려댔고, 몇십 분이 지나서야 겨우 뿌연 연기가 슬슬 사라져갔다.

“허억…허억….”

온몸은 땀에 절어 있고, 마스크 틈으로도 비집고 들어온 연기에 숨이 가파르고, 눈이 따가워 죽을 것 같았다.

김준의 노출된 피부 쪽에 그을음이 새카맣게 꼈고, 따끔거렸다.

김준은 다스 베이더가 된 것처럼 마스크 너머로 힘겹게 호흡했고, 드디어 연기가 좀 걷혔을 때, 옥상으로 올라와 다시 확인했다.

“완전 숯덩이가 됐구만….”

연기가 걷히면서 보인 상황은 참혹한 화마(火魔)의 흔적이었다.

김준이 연달아 던진 두 개의 화염병은 스무 마리가 넘는 좀비들을 전부 불태워 새까만 숯덩이로 만들어 버렸고, 아스팔트 도로부터 명국의 집과 맞은편에 폐가까지 번져서 주변에 난 잡초와 벽까지 그을음이 끼었다.

골목에 몰아넣고 불을 당겼으니 아직도 바닥의 열기가 여기까지 올라왔고, 물로 식힌다는 게 오히려 더 땅을 단단하게 굳혔다.

치익-

김준은 그 와중에 담배 한 대를 물고 불을 붙였고, 밤하늘을 바라봤다.

그동안 몰랐는데, 오늘은 보름달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담배 한 대를 태우고 슬슬 정리가 되는 상황에서 꽁초 불까지 확실히 처리한 김준이 내려오면서 험비를 두들겼다.

똑똑-

“상황 끝났어.”

끼이익-

문이 열리면서 물티슈로 얼굴을 닦은 에밀리가 히죽 웃었다.

“다 잡았어?”

“그래, 다 숯덩이로 만들었어.”

쪽-♥

“!?”

그을음이 묻어난 얼굴에 에밀리가 새빨간 입술을 내밀어 키스해줬다.

그러고는 배시시 웃는 모습에 김준은 말없이 그녀의 금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문을 열었다.

“가야야! 안에 방향제 좀 챙기자.”

“방향제요? 네, 잠깐만요.”

오늘은 캠핑카가 아니라 험비를 타고 와서 물자가 좀 부족했지만, 최소한의 장비에서 있는 걸 챙겼다.

짐칸에서 박스를 뒤적거려 페브리즈를 몇 개 챙겼을 때, 명국 가족의 옷에도 뿌리고 젖은 수건에도 살짝 뿌려 코와 입을 가리고서 나오게 했다.

“나와! 정리하자.”

“예~”

김준이 명국이에게 한 말인데 에밀리가 먼저 뛰쳐나와 김준의 몸에 안겼다.

김준 역시 불장난 이후 다시 만나는 에밀리의 애교가 싫지만은 않은지 자신에게 착 달라붙은 그녀의 엉덩이로 손이 가면서 마구 주물렀다.

까끌거리는 청바지 너머로 찰진 살결이 손에 꽉 찼다.

가야는 김준과 에밀리의 서로 끌어안고 주무르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는 말이 없었다.

***

치익- 칙- 칙-

“으아아앙-”

“은영아 잠깐만.”

품 안에 아이가 막 울어대자 수영이 애써 달랬고, 방 안에 매캐한 냄새를 지우기 위해 김준과 에밀리가 곳곳에 페브리즈를 뿌려댔다.

그사이 명국이 슬며시 선풍기를 하나 가져 왔고, 그것을 틀면서 나쁜 공기와 냄새를 싹 밀어 버렸다.

30분 정도 지나서야 냄새가 조금 빠졌고, 페브리즈 향이 방 안을 가득 채웠을 때, 겨우 들어올 수 있었다.

“형님, 진짜 감사합니다. 저거 저 혼자 못 잡았어요.”

“내일 아침에 집 앞 한 번 싹 치우자. 밀대 있어?”

“아, 만들까요?”

“없으면 그냥 물만 뿌리고.”

김준은 상황이 끝난 뒤에 안도하면서 이부자리를 펴고 아기를 눕혀 재우는 수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 초보 엄마, 아빠가 이 상황에서 아이를 낳고 잘 지내는 걸 보니 자신이 다 행복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에밀리 역시도 슬며시 눈웃음을 지으며 김준의 옆에 껌딱지처럼 짝 달라붙었다.

“씻어야 돼. 냄새 나.”

“응? 나 냄새나?”

“아니, 내가….”

땀에 절은 작업복에 그을음까지 뒤집어썼으니 정말 말도 못 할 정도였고, 명국이 조용히 서랍장에서 자기 옷을 꺼내줬다.

“형님, 이게 맞을지 모르겠는데….”

“오, 땡큐. 속옷이랑 반바지만 있으면 돼.”

“뭐, 야식이라도 준비할까요?”

“냉장고에 있는 거면 뭐든.”

그렇게 모두가 좀비 무리를 막아 낸 뒤로 조촐하게 야식을 곁들이면서 하루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김준은 작은방에서 자는 아가씨와 달리 차박을 하고 있었다.

“으음-”

캠핑카가 아니라 딱딱한 험비의 뒷좌석이라 모포를 여러 장 깔아야 겨우 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에어컨도 달려 있고, 발 뻗는덴 전혀 문제가 없는지라 혼자 뒤척이면서 자는덴 문제없었다.

오늘 하루 화염병만 여러 개 던져서 열기 때문에 아직도 몸이 후끈거리는 걸 찬물로 식혔었다.

원래 날씨의 열대야에 불까지 당겼으니 몸이 늘어지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닭 잡아다가 거래할 일정을 머릿속으로 그려 나갔다.

오늘 일에 대한 영상을 찍었으니 그걸 보여주고 바깥이 이렇게 위험하고, 힘들게 가져온 거니 소총탄을 내놓으라고 협상카드로 쓸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똑똑-

아직 잠이 안 들어 뒤척이는데 누가 밖에서 차 창문을 두들겼다.

설마 이 시간에 몰래 이곳에 찾아온 게 에밀리인가 싶어 고개를 드니 새하얀 손이 보였다.

“아, 저거… 상황을 안 가리고….”

남의 집에 와서 묵는데, 갑자기 아랫배가 두근거리기라도 하나보다.

김준은 그냥 들어가 자라고 하려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똑똑-

드르륵-

“아, 왜? 이 시간에 뭘 하자…?”

“…오빠?”

에밀리가 아니라 가야였다.

자다 일어나서 샤워라도 했는지 곱슬거리는 머릿결에 물기가 살짝 남아 촉촉한 모습.

거기에 차갑게 식힌 손을 뻗어서 김준의 손을 꽉 잡고, 애처로운 눈을 하면서 무언의 요청을 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데리고 다니면서 무기 가져다 달라는 보조 외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었는데, 그게 서운했는지 아니면 아까 에밀리하고는 전투 이후로 낮간지럽게 서로를 주무르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없던게 신경쓰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

김준은 말없이 차 문을 열어줬다.

불장난이 끝난 날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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