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19화 (319/374)

“형님, 여기까지 오시느라 진짜 고생하셨어요.”

“어, 고생했어.”

빼는 말도 없이 쿨하게 말하는 김준.

명국이 멋쩍게 웃을 때, 김준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 전화… 돼요!?”

“되겠냐…?”

김준은 주파수가 끊겨 사용할 수 없다는 경고문이 뜬 휴대폰에서 앨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기 전에 좀비 무리를 상대한 영상을 틀었다.

[캬아악- 캬아아악-!!!]

[은아야! 화염병!]

[크어어어어-]

[뒈져랏!!!]

[쨍그랑! 화르르르르르륵-]

영상에 찍힌 것은 영화를 방불케 하는 좀비 무리와의 전투였다.

특수 효과도 아닌 실제 상황이었고, 김준이 수많은 좀비들이 달려들 때, 화염병을 연달아 집어던져서 불벼락을 내려 전부 태워 버리는 내용이었다.

“아니, 이걸 핸드폰 영상으로 찍었어요?”

“어, 증거 물품으로.”

“증거 물품이라뇨?”

“미군부대에 보여주고 협상카드로 써야지.”

“네?”

김준은 명국을 만나 미군부대 거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했다.

미군부대에서 미군을 만났고, 물물교환용으로 살아 있는 닭과 오리를 그들의 사육하는 데 가져다준다는 말에 납득한 명국.

“그러니까, 닭하고 오리를 가져다가 총알이랑 기름하고 바꾸신다는 말이죠?”

“그래야지. 소총탄 안 주면, 거래 없는 거야. 그냥 우리가 키우고 말지.”

물론 뻥카였다.

김준은 채소 재배는 자체적으로 할 수 있어도 집에서 가축을 키우는 것은 혹시라도 좀비가 그걸 듣고서 달려들까 봐 안키운다고 선언했다.

명국이나 영주아저씨네 같이 넓은 농장에서 집이라고는 여기 하나 있는 게 아니라, 벽돌 단독주택이 가득한 주택가여서 좁기도하고, 신경 쓸 것도 많은 이유이긴 했다.

“앞으로도 고기 필요하면 이렇게 물물교환 부탁할게.”

“네, 저희도 자라는 대로 계속 닭이랑 오리 준비할게요.”

“그래, 그리고 바깥에 저거 말이야.”

김준은 오기 전에 널브러진 좀비 시체 무리를 보고서 말했다.

“몇 마리 잡은 거야?”

“열 마리는 넘는 거 같아요. 손가락 깍지까지 뜯길뻔했어요.”

명국이 오른손을 펼치자, 손가락 두 개가 찡하게 부어 있었다.

아산으로 갈 때도 그랬지만, 이곳 역시도 좀비가 다량으로 모여서 인간들을 노렸다.

“뭔가 이상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것들이 왜 갑자기 군락을 이룬거야? 컨트롤 하는 놈이라도 있나?”

김준의 말에 명국 역시도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그때, 안에 있던 에밀리가 방에서 나오더니 차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아까 인아가 챙겨 준 닭 냉채를 가지고 들어가는 게 안에서 여자들끼리 먹으려나 보다.

“형님, 잠깐만요. 안으로 들어가시죠.”

“어, 그래.”

김준은 여자들이 있는 방 말고, 반대쪽에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갔다.

명국이 오토바이 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치료했던 그곳이었다.

“여기에 적어놓은 게 있는데….”

다리 한쪽을 절면서 서재를 뒤적거렸고, 거기서 파일철 하나를 꺼내서 김준 앞에 가져 왔다.

“이게요. 여기 있으면서 좀비들이 있을 때, 하나하나 기록한 거거든요?”

“오~ 이런걸 기록 하고 있었구나.”

김준은 기록에 대해서는 별로 남긴 게 없었고, 좀비라는 건 그냥 보일 때마다 잡았었다.

반면 명국은 그걸 꼼꼼하게 기록 하고 있었고, 다이어리 방식으로 된 종이에 하나하나 기록물이 있었다.

“흐음, 첫날 2는 뭐야?”

“처음 잡은 좀비요. 숫자 이게 좀비 잡은 수예요.”

“그렇구만, 그럼 2마리… 다음에는 5마리… 3마리… 이날은 좀비가 없었고… 또…”

“처음에는 이 동네 주변 사람들이 좀비가 된 거라 하나 잡을 때도 좀 트라우마가 있었죠.”

좀비화 된 게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사람들이니 그 고충이 만만치 않았을 거다.

물론 김준의 경우야 원래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집이었고, 이웃사람들이라 해야 밭농사로 투닥거리거나, 물꼬 대는 걸로 싸우던 노인네들이라 그닥 동정이 안 들고 먼저 쏴 버렸다.

“처음에는 몇몇인데, 그 뒤로 15?!”

“네, 딱 이 생활 한 달 지났을 때 한 곳에 몰렸었어요. 단체로 달려들었을 때, 얼마나 식겁했는데요.”

“그다음 여기 있는 ‘CP’는 뭐야?”

“형님 처음 만난 날이요. 캠핑카.”

“아~”

생각해 보니 그때 화살에다가 편지를 써서 이쪽에 날려 서로의 의사를 알렸고, 그 집에서 좀비 무리가 몰려서 잡았었다.

그 뒤로 김준이 명국의 집에 올 때마다 닭이랑 오리, 계란 등을 챙기면서 가끔 하루 묵을 때가 있었는데, 절묘하게도 좀비 무리가 달려올 때가 있었다.

그리고 좀비가 평소와 다르게 20마리가 넘을 때가 몇 번 있었다.

“거의 두 달, 아니 세 달에도 한 번씩 이런 게 생기나?”

“네, 이렇게 보니 정형 패턴이 있어요.”

명국의 말대로 기록해서 직접 보니까 확실히 특이한 게 보였다.

좀비 사태가 생기고, 1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날 때, 2-3개월 단위로 좀비들이 스스로 군락을 이룬다.

그동안 여기저기에 퍼져 단독으로 움직이는 개체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그것들이 한데 뭉쳐서 시체를 뜯어먹거나 생존자를 찾아서 쫓아다니는 것 같았다.

“이상하단 말이야. 뭔가 좀비를 컨트롤 하는 대장 좀비 같은 건 못 본 거 같은데 스스로 그렇게 모인다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게 무슨 철새 무리나 개떼도 아니고 지들이 스스로 뭉쳐서 군락을 만든다? 그것도 일정 기간에 모여서?”

명국 역시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될 상황이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야생 동물들이나 하는 짓인데, 이걸 좀비가 이러니까 저놈들이 정말 지성이 있어서 하는 행동인지 몰랐다.

“암튼, 그렇게 됐으니까 오늘은 여기서 하루 묵을게. 내일 닭이랑 오리 잡아서 미군부대로 갈 거야.”

“네, 그렇게 하세요. 형님이랑 아가씨들 묵고 가실 방이야 충분히 있죠.”

“밀가루랑 설탕, 소금이 있긴 한데 좀 부족할 거야. 거기서 기름이랑 통조림 가져오면 나눠줄 테니까 이건 닭이랑 오리는 먼저 가져가도 돼?”

“그렇게 하세요. 우리가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니고.”

아포칼립스 시대에 물물교환을 외상으로 하는데, 명국은 쿨하게 받아줬다.

그렇게 그날의 저녁은 명국이네 집에서 닭 한 마리를 만들었다.

미리 잡아 두고 냉장고에 넣어 놨던 닭 네 마리를 넣고 푹푹 삶고, 감자에 대파에 양파에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칼국수 사리까지 한데 넣으니 꽤 많은 양이 나왔다.

“자, 먹자!”

저녁 한 상을 도란도란 모인 두 식구가 모여서 먹을 때, 에밀리는 재빠르게 날개랑 다리부터 젓가락으로 쑥 빼서 입에 넣었다.

“음~”

닭 다리 하나를 입에 물고서 세상 행복한 모습을 짓고 있는 에밀리의 모습이 굉장히 귀여웠다.

도란도란 모인 자리에서 닭고기에 달걀프라이도 1인 2개씩 먹을 수 있는 푸짐한 자리였다.

식사 이후 끽연의 시간을 가지고, 길어진 해로 인해 아직도 밝은 저녁 시간이 되었을 때였다.

“너희도 그거 하나 쓸래?”

“그거요?”

“화염병. 좀 만들어 놨거든?”

“형님… 여기 주변은 나무 집도 많아서 큰일 나요.”

“아, 그런가?”

안 그래도 지난번에 좀비 무리가 달려왔을 때 여기서 옥상 농성전을 하다가 화염병 하나 잘못 던져서 벽 한 곳이 새까맣게 그을린 적이 있었다.

김준은 여기도 뭔가 바리케이드 같은걸 만들어 줘야 하는 생각으로 이것저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또다시 습격이 있었다.

“어!? 어?!”

“뭐야? 저 안에서….”

쿠당탕!! 쿵-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방에서 뛰쳐나온 에밀리.

그녀는 다급하게 김준을 찾고는 외쳤다.

“준! 또 왔어!”

“뭐?”

“좀비 무리! 또 왔다고! 엄청 많아!”

“…미친?!”

김준은 바로 차에 있는 엽총과 권총을 챙기고는 황급히 옥상으로 올라갔다.

명국 역시도 자기 집에 있는 화살과 리커브 보우를 챙기고 절룩거리면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거기에 맞춰 에밀리랑 가야가 같이 올라오려고 할 때, 김준은 손을 뻗었다.

“은야야! 너는 안 올라와도 돼.”

“네?”

“명국이 와이프랑 애기 챙겨줘라. 거기도 누구 하나는 있어야지.”

“아… 네.”

가야는 김준 말대로 안에 있는 수영 모녀를 살피는 게 낫다고 판단하며 들고 있던 새총을 건넸다.

에밀리는 자기 애착품이 된 공기총과 가야가 준 새총을 들고서 옥상으로 올라와 자기가 좀비를 발견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

“하….”

원래는 고추와 고구마를 재배하던 땅이었지만, 지금은 잡초더미만 가득한 땅에 좀비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었다.

뛰어다니는 좀비는 안보였지만, 비틀거리면서 걷는 좀비의 수만 하더라도 열 대여섯은 되어 보였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은 명국이랑 같이 얘기했던 ‘일정 기간 군락화.’가 맞는 것 같았다.

“좋아! 밥값은 해야지!”

“형님, 조심하세요.”

“안 조심할게 있겠냐.”

김준은 엽총에 벅샷 탄을 장전하고, 양 옆구리에 콜트 45와 M-10 리볼버를 준비했다.

여기 있는 것을 다 쏟아부으면 다른 총알도 맘껏 사용할 참이었다.

저녁이 되어서 생존자와 좀비 무리의 2차 공방전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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