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16화 (316/374)

집에 돌아온 뒤로 늘어지게 잤던 김준.

“오빠 일어나요.”

“으으으-”

소파에서 종일 잠들어 있던 김준이 눈을 뜨자 그 앞에는 은지가 그의 몸을 흔들고 있었다.

“으으- 몇 시냐?”

“저녁 시간 됐어요.”

“후우-”

아침에 오자마자 소파에 누워 뻗은 뒤로 점심도 안 먹고 푹 잤다.

요새 무리한 밤일에, 잠도 안 자고 경계근무를 서서 쌓인 피로였다.

김준은 아직도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두들겨댔고, 애들이 차린 밥상에 앉았다.

“오빠 위해서 곰탕 끓였어요.”

“오!”

“어젯밤부터 사골 담가놨거든요.”

인아가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곰탕을 건네주자 김준은 바로 한숟갈 떴다.

다른 애들이 봐도 기력이 팍 떨어졌다는 것을 보고서 내린 특식이었다.

김준은 그릇 바닥까지 긁을 정도로 싹싹 비웠고, 밥상위에 올라온 각종 고기를 남김없이 먹어 치우면서 단백질 보충했다.

“많이 먹고 스테미너 보충해야지.”

다른 애도 아니고 에밀리가 그 말하면서 요염한 미소를 짓자 김준이 반사적으로 흠칫했다.

그렇게 저녁을 먹은 뒤로도 김준은 씻고 방으로 들어가 다시 잠들었다.

간간이 밤에 문 긁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그냥 자라고 넘겨 버렸다.

***

그렇게 기력 보충을 하고, 집안 일하고 있을 때였다.

“준! 통화!”

“뭐?”

“미군부대!”

에밀리가 손을 흔들어대면서 부르자 못질을 하던 김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X자 표시한 거 있지? 거기에 맞춰서 못 박으면 돼.”

“아, 네! 제가 해볼게요.”

도경이는 김준에게 망치를 받고서 그가 시킨 대로 못질을 준비했다.

작업을 중단하고서 2층으로 올라오자 거기에는 마리와 에밀리, 은지가 미군부대 무전기를 가지고 그쪽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또, 멋대로 거기 연락했어? 그거 전화기 아니라니까….”

“아니야, 이쪽에서 연락 온거야.”

“응?”

“맞아요. 저쪽에서 연락와서요.”

마리와 은지도 에밀리가 건 게 아니라, 직접 연락했다는 말에 일단 무전기를 받았다.

“여보세요? 헬로?”

[치직- 오우- 익숙한 목소리. 우리 친구 준입니까?]

“…누구?”

[스테판 벨린저 입니다! 마이 프렌드!]

“아, 벨린저 대령님!”

무전기 너머로 억양이 독특한 한국어가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그 주인공이 벨린저 대령이었다.

[치직- 별일 없죠? 이 무전기를 통해 아가씨들과 우리 부하들이 많은 이야기한 거 들었어요.]

김준은 그 말을 듣고 에밀리를 슬짝 바라봤다.

다른 곳과 다르게 미군부대 무전기는 그쪽과 다이렉트 통화를 할 수 있으면서 무전기를 가진 미군들과 영어로 많은 대화를 하던 에밀리였다.

그러면서 내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고, 심한 경우에는 무전기를 대고 반주 없이 노래를 불러서 저 너머에 있는 미군부대의 미군들이 에밀리의 목소리를 듣고서 푹 빠진 상태라고 한다.

[에밀리아 양에 대해서 팬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만난적은 없지만, 정말로 궁금해하는 녀석들이 많아요.]

“하하… 저 녀석이 이상한 짓해서요.”

[오우- 아닙니다.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에게 용기를 주는 행동입니다. 할 수 있다면 제가 계속 요청하고 싶네요.]

“!”

김준이 흠칫하자 에밀리는 새하얀 두 손가락으로 양손 브이하면서 마디를 까딱거렸다.

그래도 아이돌이라고, 라디오 진행처럼 무전기를 써서 저쪽에 인기를 많이 얻었다고 하니 쓴웃음이 나왔다.

벨린저 대령까지도 그것에 관해 긍정적인 반응이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치직- 준. 다른 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도움이요? 미군이?”

[우리도 필요한 게 많아요. 기름과 무기만 좀 있을 뿐이죠.]

부대 안에서 군 숙소와 무기, 기름, 차량 등에 관해서는 완벽할지 몰라도 기본적인 물자를 필요하는 미군이었다.

[지난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준이 에밀리아와 함께 헌팅을 다니면서 맹수를 사냥해 먹는다죠?]

“아, 그… 멧돼지를….”

[와일드 보어! 고기를 그렇게 수급하는군요.]

그리고 벨린저 대령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원래는 우리도 닭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모두 죽어 버리고, 통조림과 부대 안에 있는 채소 재배를 통해서 음식을 해결합니다.]

“그렇군요.”

[혹시 고기를 구할 수 있을까요?]

김준은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히 제안 했다.

“그럼 혹시….”

[으흠?]

“살아 있는 닭을 가져다주면, 그걸 키울 수 있나요?”

[치직- 오우! 그건 됩니다. 이미 한 번 했던 거고. 사고만 아니었다면 계속 키워서 에그와 치킨을 먹었을 거요.]

“아, 좋습니다. 한 번 구해 오죠. 대신 우리 쪽도 교환할 게 많을 겁니다.”

[가솔린, 디젤, 콜트 불릿을 드릴수 있소.]

“소총탄은요?”

[으음…]

아직도 소총탄은 건네주기 힘들다는 투로 말하는 벨린저 대령.

무슨 상황인지 알긴 했지만, 이 자리에서는 좀 튕겨도 될 것 같았다.

“그러지 마시고, 이번엔 몇 발이라도 주시죠. 총은 이쪽도 있다고요.”

[치직- 흐음. 그것은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좋아요. 생각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김준은 그렇게 세부 조율하면서 물물교환할 것을 서로 정했다.

미군쪽에서는 통조림과 군용 물자, 기름 등을 건네주겠다고 했고, 이쪽은 고기와 채소 씨앗을 제공해서 교환하는 것이다.

거래 날짜는 지난번과 똑같이 주일로 정했고, 시간도 정오가 지나서 폭죽을 터트리는 걸로 신호를 주기로 했다.

김준은 무전을 마친 다음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휘유-”

“나 잘했지?”

긴 금발을 꼬리처럼 찰랑거리면서 다가오는 에밀리를 보고 머리 대신 엉덩이를 토닥여주자 더 해 달라는 듯이 내미는 에밀리였다.

“저녁에 이거 얘기 좀 해야겠다.”

“준비해야겠네요.”

“나! 나 가는 거지?”

에밀리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물어 봤을 때, 김준은 일단 저녁에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테이블 위에 지도를 펼쳐 놓은 김준,

김준은 그동안 많이 다녔던 곳들과 함께, 미군부대까지의 거리를 두고서 계획을 하나씩 준비했다.

“이번엔 산 닭을 가져오는 거야.”

“으음-”

그동안 사냥으로 잡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닭을 잡아 오는 거란 말에 에밀리를 제외하고 섣불리 나서는 애들이 없었다.

“미군부대에 가져다줄거니까 수도 많을 거야. 오리나 메추리도 가져다줘야겠다.”

가야의 물음에 김준은 두 곳을 보고는 거리를 가늠했다.

저렇게 직접 길러서 잡아먹는 농가는 딱 둘이었는데 거리가 꽤 되는 상황이었다.

김준은 그것을 보고 생각하다가 결심했다.

“둘 다 가자.”

“네?”

“어, 아산으로 가고… 거기서 또 명국씨네로요?”

“그렇게 해야 될 거 같아.”

가야나 은지 등이 놀라 했을 때, 김준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했다.

“일단 차에 최소 물자만 비워 놓은 다음에 바로 아산으로 갈 거야.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점심 이전에 거기서 닭 구해 오고 바로 명국이네로 갈 거야.”

“그리고 거기서 또 닭을?”

은지의 물음에 김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원래 식물도 그치만, 가축은 더 심해. 한 대에서 계속 교배하면 꼬여.”

“하긴….”

“그래서 명국이네랑 영주 아저씨네서 각각 수탉 3-4마리 정도 구하고 나머지는 암탉으로 잔뜩. 할 수 있다면 오리나 메추리도 가져다가 키워 보라고 주는 거지.”

“미군부대가 완전 동물농장 되겠다~”

마리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을 거다.

부대 안에 천 단위의 생존자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통조림만 먹으면서 앞으로도 살아간다?

100% 탈이 나서 하나둘씩 질병에 쓰러질 수 있었고, 그 동네는 과연 신선한 고기를 수급못하고 어떻게 버텼나 싶었다.

“이렇게 퍼 주는데 인간적으로 총알은 잔뜩 줘야 한다.”

“권총탄이라면 줄 거 같은데, 소총에 대해는 깐깐해 보이긴 했어요.”

마리의 말대로 소총은 안 되지만 권총은 그 자리에서 총알 50발까지 건네준 걸 보면 무기 유출 자체를 꺼려하는 건 아니었다.

이건 그저 신뢰의 문제…

결국 신뢰를 얻으려면 저쪽이 원하는 것을 100% 충족해서 가져와 앞으로도 계속 교류하면서 그들의 신뢰를 통해 무기를 계속 얻어내야 했다.

수백 발까지는 아니어도 탄창 하나분은 받아야겠다고 다짐한 김준이었다.

“라나야. 우리 계속 만들던 나무 박스 있잖아. 그것 좀 많이 챙기자.”

“아, 네! 그거 챙길게요.”

“그리고 철망 준비해야겠고, 명국이네나 영주 아저씨네나 필요한 건 쌀하고 조미료일 테니까… 그걸 루프박스에다가 담고….”

김준은 하나한 준비하면서 떠날 준비했다.

출발은 모레 아침에 떠나기로 했고, 옆에서 계속 따라가겠다는 에밀리를 동행시키고, 그다음으로는 누구를 데려갈까 생각했다.

“닭 잡을 수 있는 사람?”

“….”

“죽이는 거 아니야. 살짝 잡아서 나무 우리에 넣어놓는 거야.”

머뭇거리는 애들을 보고 은지가 결국 이런 거 할 건 자기밖에 없다며 손을 들려는 순간…

“제가 갈게요.”

가야가 곱슬곱슬한 포니테일을 휘날리며 힘껏 손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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