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15화 (315/374)

“어우- 이걸 진짜….”

“아, 좀 꽉 잡아봐!”

김준은 절 안에 있던 은기 일행까지 불러서 멧돼지를 손질하고 있었다.

손도끼로 내리쳐서 총에 맞고도 버르적거리던 수컷 멧돼지의 숨통을 아예 끊어 버렸고, 야산 바닥에 피가 누린내를 풍기며 쏟아져 내렸다.

“냄새… 진짜 독하네.”

“야생 멧돼지가 다 그러지. 거기 손 꽉 잡아! 자를 거야.”

“!!!”

김준이 피에 젖은 도끼를 번쩍 들어 올리자 움찔하는 은기.

하지만 그런 친구를 향해 확실히 안심시켜줬다.

“절~대 네 손 안찍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 그래….”

김준은 친구를 안정시킨다음 바로 도끼로 내리쳤다.

퍽- 짝- 짝-

육중하게 내리친 도끼질이 멧돼지의 다리뼈를 부러트리고, 힘줄을 끊고 근육을 잘라 냈다.

이미 아포칼립스 시대에만 성체 멧돼지를 세 마리나 잡은 김준이었다.

멧돼지 손질은 익숙했고, 차에 있는 굵은 소금을 푼 물로 잘 씻어낸 것을 하나하나 담았다.

“아미타불, 고기를 손질하십니까?”

“어머! 스님?”

“아, 왔어요?”

에밀리랑 도경이 일어나서 인사하자 조용히 합장하며 인사하는 성정 스님.

그는 김준과 은기가 해체하는 멧돼지를 보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으나 사람이 죽을 뻔한 상황이었으니 넘어갔다.

“어떻게, 고기 시주도 됩니까?”

“저희는 먹지 않아도 아이들과 불자들이 먹을 테니 상관없습니다.”

“그렇군요….”

“아이들의 영양을 생각해서는 크게 상관없습니다.”

적어도 애들에게까지 강제로 사찰방식의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래서 김준이 여기에 물자를 주면서 간간이 런천미트나 참치 통조림을 주곤 했다.

이번 역시도 절 근처에서 살생을 한 것은 우려할 일이나 정토사의 승려들은 목숨 앞에서 교리를 엄격하게 요청하는 그런 성직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김준의 그런 모습을 보고서 다른 스님들과 다른 곳으로 향했다.

“채소를 좀… 캐오겠습니다.”

“에밀리!”

“응?”

“아까 보니까 총 잘 쏘더라.”

“어… 으응~ 그렇지?”

자신을 칭찬해주자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커다란 가슴을 탕탕 치는 에밀리.

김준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스님들을 가리켰다.

“비닐하우스 근처에서 엄호해 줄래?”

“엄호? 오케이!”

에밀리는 가만히 돼지 해체 쇼를 보느니 김준이 시킨 대로 연지탄이 장전된 공기총을 메고서 스님들을 따라 흥얼거리며 다가 갔다.

그렇게 스님들을 따라 비닐하우스로 간 에밀리를 두고, 김준이 큼지막한 갈빗대 살을 뜯어냈다.

“여기다 놓으면 폭립 만들 수 있나?”

“어우, 이걸 다?”

“집에 고기 많아.”

냉장고에 있는 멧돼지 고기도 아직 다 못 먹었는데, 이번에 잡은 녀석도 수 백kg는 나가는 커다란 수컷이었다.

김준은 멧돼지의 다리를 전부 잘라 내고, 가죽을 따로 뜯어내고, 안에 살코기와 뼈가 붙은 것들을 잘라 내자 묵직하게 나왔다.

“어우, 100kg는 넘겠다.”

절간에서 가져온 수레에 소금물과 소주로 씻어낸 고기를 하나하나 담던 은기가 혀를 내둘렀다.

“원래 돼지가 고기 수율이 높지. 보통 100kg짜리 하나 잡으면 60kg는 나오거든.”

뼈와 못 먹는 털, 가죽, 내장 등을 전부 빼 버리고도 그 정도가 나왔다.

물론 이건 야생 멧돼지라 내장을 전부 빼내고, 가죽도 뜯어내서 그만큼의 수율은 안 나오겠지만 그래도 100kg가 넘는 건 확실했다.

“여기는 보관도 힘든데 어떻게….”

“소금물로 푹 담갔다가 말려. 김치 독 묻는데 가져다 놓으면 그게 하몽이야.”

“아하하….”

김준은 그렇게 잡은 멧돼지를 전부 처리했다.

그러는 사이 에밀리는 의기양양하게 다가오며 그 뒤에 스님들이 가져온 광주리를 보여줬다.

“애석하게도 짐승이 들어와 이곳을 다 헤집었습니다.”

스님들이 내놓은 야채들을 보니 확실히 여기저기가 뜯기거나 반쯤 파먹힌 것들이 보였다.

양파, 쑥, 시금치와 콩 등.

절에서 직접 재배한 것들 중에서도 그나마 멀쩡한 것들을 캐왔고 거기서도 또 엄선해서 김준 일행에게 줄 준비했다.

“집 수리에 쳐들어온 짐승까지 잡아주셨는데 약소합니다만….”

“아뇨아뇨, 이거면 충분합니다. 단지 그것 좀 부탁해도 될까요?”

“말씀하십시오.”

“오늘 잡아 온 멧돼지 고기 가지고 여기서 먹어도 됩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큰스님!”

노스님이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김준에게 말했다.

“부처님도 충격에 잠들어계실 겁니다. 그사이에 구워 드십시오.”

멧돼지가 대웅전을 헤집어서 부처상의 머리에 금이 간 것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노스님의 말에 김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멧돼지가 잡혔다는 말에 하나둘씩 나온 사찰의 사람들.

“어떻게 물이라도 올릴까?”

“어, 그러자.”

그렇게 은기 부인과 하준 엄마, 그리고 간호사 보살까지 안에 있는 여성들이 모두 모여서 솥에 우물물을 붓고 물을 끓였다.

그렇게 절간에서 돼지를 잡아다가 먹는 식사 자리가 되었다.

솥뚜껑까지 가져와서 장작에 불을 올리고 그걸로 구워 먹을 때, 여중생 희수부터 하준이나 은기 딸 소율이까지 오물오물 씹어먹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스님들이 흐뭇하게 바라봤다.

절간에 삼겹살 굽는 냄새가 풍겼지만, 스님들은 조용히 법당으로 돌아가 참선의 시간을 가졌고, 밤이 되어 피비린내가 나는 곳에서 혹시 몰라 야간 경계를 선 김준이었다.

“교대해 줄까?”

“됐어.”

오늘 사냥 표적인 멧돼지 눈을 맞춘 에밀리가 의기양양하게 김준에게 다가왔다.

“다음 사냥은 언제야?”

“아~ 오버하지 마.”

“흐으응~”

에밀리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늦은 밤 김준의 몸에 착 기댔다.

등에 총을 맨 두 남녀가 오붓하게 절의 마루에 앉아 기대자 꽃이 피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시킨 대로 했으니까♥”

“하지만 앞으로는 공기총 들었을 때, 저런 큰 놈 상대로는 피해. 멧돼지는 연지탄으로 못 잡아.”

근처에 있던 김준이 바로 발견해서 망정이었지, 만약 정면에서 에밀 리가 쏘고 머뭇거렸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함이었다.

과거에 은지가 그랬고, 마리가 그랬으며, 에밀리도 이러고 있다.

좀비가 아닌 야생의 맹수가 나타나서 위험했던 상황이었지만 모두 김준이 잡아버렸고, 거기서 고기 이야기하지 크게 신경도 안 썼다.

“준, 우리 있잖아.”

“응?”

“만약에 진짜 좀비 시대가 끝나면, 우리 둘이서 사냥 다니면서 살자.”

“…?”

“이거 은근히 재밌더라고, 옛날에는 할아버지랑 아빠가 곰 잡으러 간다고 샷건 보여줬는데, 딱 그 느낌이었어. 베어나 보어나.”

애가 총을 다룰 줄 알게 되니 피 보는 거에 대해 더 거리낌이 없어진 것 같았다.

“사격은 재미로 하는 게 아니야.”

“알아~ 그래서 같이 헌터 하면서 살자는 거야.”

에밀리는 아예 김준네 집에서 눌러살면서 자신이 뭘 할지도 스스로 정한 것 같았다.

김준은 조용히 에밀리를 향해 들어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좀 더 같이 있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내일 아침 일찍 떠날 거니 그때 교대하자면서 보냈다.

“후우-”

늦은 밤.

조명이라고는 담뱃불 하나밖에 없는 곳에서 야간 경계는 매우 적막했다.

늦은 밤 벌레 우는 소리만 들리는 곳에서 김준의 귀는 더욱 틔였다.

‘저기였나?’

절에 올 때마다 하룻밤을 새고 경계근무를 서곤 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해도 김준이 계속 밤을 새는 것은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이곳에서 처음 머물고, 이후로도 계속 경계를 서면서 김준 본인은 겪어본 적 없지만, 저 소사벌 너머로 사람의 소리와 빛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구만….”

은기가 그랬고, 스님들도 그랬는데 대체 산에서 저 밑을 내려보면 보인다는 불빛이 뭔지 모르겠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가 보겠는데 김준 눈에는 절대 안 보였다.

간간이 담배를 태울 때 외에는 불빛 하나 볼 수 없는 칠흙 같은 어둠.

그렇게 그날의 밤도 아침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확인 못한 김준이었다.

아침이 되자 스님들이 먼저 일어나 청소를 하고, 불자인 부인들이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상황이 되자 김준도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

“흐아암-”

“피곤하지 않으세요?”

“엄청! 집에 들어가면 샤워하고 푹 잘 거야.”

김준은 졸린 눈으로 운전하면서 얼마 걸리지 않는 집까지 서행으로 달렸다.

그때, 차 앞으로 좀비들이 달려오고 덕분에 김준의 잠이 확 달아났다.

빠아아아앙-

“아, 씹!”

졸음운전으로 좀비를 들이받아 버릴뻔한 김준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바로 기어를 돌려 후진했다.

캬아아악- 캬악!

“준! 앞에 좀비!”

“봤어!”

“뒤에는 아무것도 없어!”

에밀리의 말에 김준은 사이드미러로 확인해 본다음 바로 차를 틀었다.

그리고 차를 돌렸을 때 에밀 리가 벽을 톡톡 쳤다.

“준! 내가 쏠까?”

“….”

“오빠, 이쪽은 확실히 없어요.”

도경이가 그것을 상기시켜 주자 김준은 주변을 살펴보고 달려오는 좀비 무리를 보고 결심한 듯 외쳤다.

“에밀리! 먼저 쏴!”

“오케이!”

김준의 승낙을 받았을 때, 에밀리가 연지탄을 장전하고, 창문 너머로 총구를 들이밀었다.

주변에 보이는 좀비는 4-5마리 정도였고, 에밀리는 달려드는 좀비들 중에서 한 놈을 표적삼아서 방아쇠를 당겼다.

투웅-

김준이 쓰는 소음기 공기총이 아니어서 바람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연지탄이 좀비의 미간을 찢어발겼다.

타앙- 철컥-

김준은 에밀리가 좀비 하나를 쏴서 쓰러트리는 것을 보고서 자신도 질 수 없다는 듯이 엽총을 발사해 좀비 하나를 쓰러트렸다.

단발형 공기총이라 에밀리가 장전하고서 겨눌때까지 김준이 남은 둘을 더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좀비가 비틀거릴 때, 에밀리는 공기총으로 막타를 날렸다.

파앙-

하지만 한 방 맞고서 바로 쓰러지지 않아 비틀거리는 좀비를 향해 김준이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타앙-

공기총 탄으로는 확실하게 못 쓰러트린 것을 김준이 확인 사살로 처리했다.

“후우….”

잠이 확 달아나는 사냥이었고, 숨을 겨우 돌린 김준이 콘솔박스에 있는 생수병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다시 핸들을 잡았다.

그렇게 멧돼지와 절에서 재배한 각종 채소를 가지고 돌아온 김준이었다.

안 그래도 냉동고가 꽉꽉 찰 정도로 고기가 쌓였는데, 김준이 새로 가지고 온 것을 보고 거실에서 애들이 소금물을 준비하고 훈제 햄과 육포를 준비했다.

김준은 좋은 냄새를 맡다가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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