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도 애들을 데리고 사격 훈련을 할 때였다.
“에어건 완~전 편해! 크로스보우보다 낫다고!”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공기총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에밀리가 흥얼거리고 있었다.
“잘 쏘더라. 난 도저히 총은 못 잡겠는데.”
옆에 있던 마리 역시 석궁으로 백발백중의 실력을 보여줬지만, 총은 본능적으로 꺼렸다.
그 뒤에 있는 도경이나 은지 역시도 새총과 석궁만 사용하면서 총기류에 대해서는 일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다들 수고했고, 씻고 밥 먹자.”
“네~ 오늘 메뉴는 카레예요.”
인아가 미리 야채를 썰어놓고 냄비에 앉혀놓은 것을 확인하고는 하나둘씩 씻으러 들어갔다.
이제는 김준 앞에서 그냥 훌렁훌렁 벗으면서 욕실로 들어가는 아이들이었다.
김준의 안방과 2층 욕실, 그리고 옥탑방 욕실까지 8명이 나눠서 들어갔을 때, 김준 역시도 다 끝나면 씻기 위해 갈아입을 옷을 챙겼다.
그때였다.
[치직- 치직- 준아! 김준!]
“응?”
다급하게 외치는 무전기 소리에 김준이 달려가 그것을 받아들였다.
“아, 아! 누구야? 은기냐?”
[치직- 준이야! 우리 큰일 났다. 절 완전히 박살 났어.]
“뭐? 뭔 소리야? 불이라도 났냐?”
[치직- 멧돼지! 멧돼지가 절간을 싹 박살 냈어. 사람도 위험해!]
“미친!”
정토사에 멧돼지가 들어와서 건물이 박살 났다니… 김준은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거기 멧돼지가 있었어?”
[치직- 어디서 들어온 지 몰라! 갑자기 튀어나온 놈이 달려들어서…]
“지금 가야겠네, 큰 놈이야?”
[엄청 커! 무슨 트럭인 줄 알았어.]
그 정도 크기가 되는 멧돼지가 절간에서 난동을 부렸다니 자칫 사람이 크게 다칠 수 있었다.
좀비가 없는 곳이라고 그냥 넘겼는데, 웬 멧돼지가 튀어나와 헤집는다니 환장할 일이었다.
김준은 곧 가겠다고 약속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별게 다 나오네.”
그래도 좀비가 아니라 멧돼지라니 어떻게 잡아서 먹기라도 해야겠다.
그렇게 하나둘씩 목욕하고 나올 때, 연장과 무기를 챙기는 김준을 보고 모두가 놀랐다.
“어, 뭐야? 준, 어디 나가?”
“뭐예요? 헬프콜?”
에밀리와 은지가 나오면서 김준의 상태를 보고는 넌지시 물었다.
“정토사에 멧돼지가 나왔대. 그래서 잡으러 가려고.”
“오우- 보어!”
에밀리는 물에 젖은 머릿결을 연신흔들면서 김준이 챙기고 있는 무기를 바라봤다.
“나도 같이 가?”
“아, 옷이나 입어! 좀!”
“오케이~”
수건 한 장 빼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에밀리는 김준의 말에 흥얼거리면서 속옷부터 챙겼다.
지난번 잡화상에서 루팅한 새 속옷 박스를 뜯고 하나하나 입을 때, 다른 아이들도 김준이 나갈 준비하는 것을 봤다.
“어머, 지금 나가요?”
“멧돼지 잡으러 간다.”
“사냥… 어디서 나왔다는데요?”
“정토사.”
김준은 그러면서 누가 좋을지 살폈다.
“나 총쓸 거야!”
“그래, 일단 바로잡아야 하니 에밀리 짐 챙기고, 마리는….”
혹시 멧돼지에게 다친 사람이 있을까 해서 의사인 마리를 데려갈까 생각했던 김준.
그는 다시 무전기로 부상자 유무를 확인했지만,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다는 걸 확인했다.
“제가 갈게요.”
“도경이가?”
“마리 언니나 은지 언니는 많이 갔잖아요? 그리고 저도 석궁이나 새총 같은 거 쏘는 거는 자신 있고….”
김준은 도경이 자원하자 슬며시 에밀리를 바라봤다.
저 녀석이 은지 이전부터 계속 건드렸던 게 도경인데, 자칫 둘이같이 갔다가 싸움이라도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에밀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속옷 다 챙겨입고, 브라와 팬티 차림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뭔가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데려가야 했다.
***
“와 씨발….”
순간적으로 절간에서 욕이 나온 김준이었다.
“어머, 세상에….”
“와우….”
절이 완전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김준 일행이 묵었던 별채는 나무로 만든 문이 박살 나고, 흙투성이었다.
기둥도 들이받았는지 금이 크게 나서 균열이 생겨 있었고, 대웅전 안은 부처상이 쓰러지고, 안에 있는 향로까지 죄 쏟아지고 재가 흩뿌려졌다.
“나무아미타불… 시주께서 오셨습니까?”
“이건 좀 심하군요.”
“망가진 촛대를 다시 올리고, 부처님을 일으켜 올리고, 그스른 것을 치우면 될 겁니다.”
노스님은 담담하게 받아들였고, 안에선 이미 성정과 영기 두 승려가 안을 치우고 있었다.
김준은 엽총을 챙기고서 주변을 살폈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사찰 내에 있는 넓은 방 한 곳에 모여서 겨우 숨어 있었다.
“아, 아저씨!”
“소율이구나!”
김준은 품 안에서 평소 챙겨 먹던 육포를 꺼내줬고, 신이 나서 방방 뛰던 아이가 그걸 주변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와 주셔서 고마워요.”
“제수씨, 요새는 건강하시죠?”
“아, 네.”
은기와 그의 부인도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김준은 총을 맨 채로 일단 복구부터 준비했다.
“도경아! 가서 연장 꺼내와. 에밀리는 잠깐 경계좀 서.”
“편의점 털 때처럼 말이지? 오케이.”
그렇게 세 명이 합류해서 일단 무너진 절부터 수리하기로 했다.
딱- 딱- 딱-
김준은 박살 난 나무 문을 다시 조립해서 못질하고, 원래 창호지로 발라진 것이 다 찢어지자 비닐을 가져와서 임시로 그걸 채웠다.
혹시 통풍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주삿바늘로 뚫어서 숨구멍을 만들어줬다.
“도경아, 경칩!”
“여기요!”
원래 문에 달려 있던 낡은 경칩을 빼내고, 그걸 사포로 잘 문질러서 만들어 낸 도경.
이제는 목공에 프로가 되어 있어서 김준 옆의 보조로 굉장한 실력을 보여줬다.
“이거 잡고 있어 봐.”
“네.”
도경이 문을 잡자, 김준은 경칩을 덧대고 못을 박았다.
그렇게 무너진 문짝을 다시 고치고, 절에 있던 간호사와 은기 와이프, 하준 엄마가 안에 들어가 청소를 시작했다.
김준은 그 외에도 은기와 같이 나무를 받아서 수리할 수 있는 것을 위해 톱질을 하고, 합판을 잘라 내고 있었다.
그렇게 해가 완전 사라지기 전에 저녁에 급히 수리를 하는 와중에 혼자서 경계를 서고 있던 에밀리가 뭔가를 발견했다.
“!”
부스럭-
철컥-
에밀리는 반사적으로 공기총을 들었다.
그동안 김준에게 계속 PRI훈련받으면서 능숙한 사격 자세를 잡았고, 안에는 단발의 연지탄이 장전된 상태에서 부스럭거리는 존재를 막을 준비했다.
킁- 킁- 쿠르르륵-
괴상한 소리가 들리면서 잡초 더미 속에서 불쑥 나타난 존재.
멧돼지였다.
“쉣….”
엄청난 크기의 녀석이었다.
수 백 kg는 돼 보이는 곰 같은 체구에, 커다란 엄니가 삐죽 튀어나와 킁킁거리면서 달려들 준비했다.
에밀리는 반사적으로 놈의 머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퉁-
“야, 뭐야!”
총 소리를 들은 김준이 황급히 일어났을 때, 그것이 트리거가 되었다.
꾸웩- 꾸웨에에에에에에-
김준은 멧돼지의 소리를 듣고는 바로 에밀리에게 달려갔다.
공기총으로 멧돼지의 머리를 쏴 버렸으나 손톱만 한 사이즈의 연지탄으로는 헤드샷이라 해도 한 방에 멧돼지를 잡을 수 없었다.
“에밀리!”
“힉!”
김준이 에밀리의 뒷목을 잡고 확 잡아당긴 순간, 맹렬하게 달려든 멧돼지가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지나갔다.
쿠당탕탕-
꾸르르륵- 꾸이이이!!!
철컥-
“피해!”
탕- 철컥- 탕!!!
엽총에서 두 발의 벅샷이 멧돼지의 몸통에 박혔다.
머리에 연지탄 한 발, 그 뒤로 벅샷 돼지탄이 몸에 박히자 돌진 이후로 비틀거리는 멧돼지.
김준은 더블배럴 샷건을 치우고 바로 권총을 꺼냈다.
이날을 위해서 콜트 45를 받았던 거였나보다.
탕-
파각-
위력은 보통 리볼버의 배 이상.
콜트권총이 불을 뿜고, 머리에 한 방 더 맞은 멧돼지는 무시무시한 돌진 이후로 중심을 잃은 채 풀썩 쓰러졌다.
“잡았다!”
김준은 권총을 든 채로 크게 외쳤다.
그 소리를 들은 에밀리와 도경이 다시 김준 곁에 다가왔다.
“머리를 쐈는데… 아얏!”
김준은 신경질적으로 에밀리의 엉덩이를 확 꼬집고는 차로 향했다.
꾸르르륵- 꾸우- 꾸-!
여러 발의 총알을 맞고서 일어나지 못한 채 버르적거리는 수 백 kg의 수컷 멧돼지.
자세히 보니 눈 한쪽이 파열돼서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김준이 쏜 권총탄은 미간에, 그리고 엽총탄은 목에 흩뿌려져 있었으니 이건 연지탄이다.
“…눈알 맞췄어?”
“어, 노리기는 여기였는데….”
에밀리가 멧돼지 코 위의 미간부를 가리키자 화가 나다가도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까마귀 한 마리 잡은 뒤로, 가르쳐 준 공기총 사격술로 멧돼지 눈을 정확히 맞췄다니….
만약 이게 성체 멧돼지가 아니라 고라니나 꿩이었다면 바로 저녁거리를 잡았던 것일 거다.
“먼저 쏘면 어쩌냐? 일단 말했어야지.”
“말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달려들었어.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계속 들리고….”
“쯧-”
김준은 일단 품 안에서 잘 벼려진 손도끼를 꺼냈다.
그리고 여러 발 총에 맞고도 계속 버르적거리는 멧돼지의 목을 노리고 힘껏 도끼를 들었다.
쩍-
사찰에서 살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