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12화 (312/374)

격한 섹스 이후로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됐다.

그리고 늦었지만, 이 집에 살아오면서 다섯 번째 생일 파티가 또 만들어졌다.

“생일 축하해! 차나라!”

“와~ 대박!”

라나는 화려하게 차려진 식탁을 보고서 두 눈에 하트가 생겼다.

이번에도 은지랑 인아가 합작해서 파티용 요리를 만들었는데, 그동안과는 조금 달랐다.

먼저 케이크를 만들긴 했지만, 이전보다 훨씬 작은 사이즈였다.

그마저도 단 거 좋아하는 에밀리나 나니카 등이 먹는 거고, 나머지는 고기로 시작해서 고기로 끝나는 상이었다.

“미군부대 콘비프 완전 짰어.”

“그래도 잘 섞으니 먹을 만 해졌어요.”

은지는 콘비프 통조림 하나를 통째로 털어놓고서 만든 다진고기에 각종 야채를 섞고, 짜다면서 식초까지 부어 중화시킨 다음에야 햄버그 스테이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햄버그뿐만이 아니었다.

멧돼지 잡아 온 걸로 뼈를 푹 고아서 돈코츠 라멘을 만들고, 목살하고 안심을 아산 목장에서 가져온 소고기하고 같이 구워서 라드를 두른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거기에 간장불고기, 제육볶음, 치킨과 메추리까지 튀기니 이건 완전 고기로 시작해 고기였다.

“자~ 이건 입가심.”

“입가심도 튀김이야….”

김준이 기가 찬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은지가 만들어온 것은 물물교환때 얻은 생선 튀김과 감자를 썰어서 만든 피쉬 앤 칩스였다.

김준 역시 고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건 좀 과해 보여서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인 라나는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으면서 입가에 케찹과 튀김 가루를 묻힌 채 세상 행복한 모습을 보이니 그냥 귀엽게 지켜보기로 했다.

그 상황에서 와인까지 가져와서 따자 생일 파티 한 번 거하게 치러졌다.

오늘의 주인공 라나는 김준의 옆에 착 달라붙어서 난실난실한 모습을 보였고, 지난번 캠핑카 속에서 불같은 밤을 보낸 뒤로 오늘 또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술과 고기를 곁들인 자리가 되었을 때, 바깥이 슬슬 어두워졌고, 가야가 일어나서 조명을 켰다.

탁-

다이소 산 휴대용 LED 부착등이 켜지면서 빛이 돌아왔다.

그 상황에서 분위기를 위해 은지가 촛불 몇 개를 켜자,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감상에 젖었다.

“좋네요. 정말로~”

이런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김준이 와인잔을 들었을 때, 옆에 붙어 있던 라나도 한 잔 들어 잔을 부딪혔다.

“치얼스~”

그러면서 와인 한 모금을 머금고 이리저리 혀를 굴리며 음미한 라나.

“진짜 여긴 불편한 게 하나도 없어요.”

“인정!”

“SNS 못 하는 거 빼고는 세상 편해.”

에밀리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잠시 자세를 고쳤다.

다른 애들이 입어도 짧은 속옷용 원피스 차림으로 엉덩이를 빼고 다리를 편하게 벌리자 새하얀 피부에 육덕진 하체가 그대로 드러났다.

“아, 자세 쫌!”

“팬티 입었어.”

일부러 끝부분을 올려서 오늘은 제대로 속옷 입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에밀리.

검은색 트렁크에 사이즈도 적절해서 엉밑살 약간 삐져나온 거 빼고는 아주 예뻤다.

“저거는 진짜 여기서 본색 다 드러냈어.”

도경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하자 에밀리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나는 원래부터 일관적이거든.”

“만약에 저런 모습을 팬들이 봤었어봐.”

“흐응~ 시청률이나 유튜브 조회 수가 더 높아지겠지?”

세상만사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아가씨답게 노출 정도는 별로 신경도 안쓰는 에밀리.

김준은 ‘만약에’ 라는 도경이의 말을 듣고 뭔가 생각난 게 있는지 키득거렸다.

“야, 아니 얘들아! 내가 그런 이야기 나올 때마다 생각하는데 말이야.”

“?”

“!”

“네?”

모두가 고개를 휙 돌리면서 김준을 봤을 때, 그는 와인잔을 들고 물었다.

“만약 내가 너희들 못 구했으면 어떻게 됐을 거 같냐?”

“어….”

순간 그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바로 옆에 안겨 있던 라나의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이 김준의 팔에서 느껴졌다.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놀랐나보다.

김준은 말없이 뒤에서 라나를 쓰담 쓰담 해주면서 어깨에 기대게 했고 조금 안정된 거 같았다.

그리고 그 분위기 속에서 은지가 넌지시 말했다.

“다 죽었겠죠.”

“….”

그 순간 에밀리가 반박했다.

“아냐! 나 같은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가 보자고 할 거야.”

“정말?”

“좀비 튀어나온다고 그 대기실 속에서 며칠 있었는데, 거기서 굶어 죽느니 차라리 나갔겠지. 최소한 근처 편의점이라도 털던가!”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탕탕 치면서 나라면 그렇게 했을 거라고 말하는 에밀리.

이 이야기가 나온 뒤로 졸지에 김준을 포함한 9명은 ‘만약 그랬다면?’ 이라는 상황에 대해서 하나하나 이야기가 나왔다.

“만약에 내가 감염됐으면… 오빠가 바로 죽였을까?”

“아,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다 하냐.”

은지의 말에 김준이 정색했지만, 예전의 얼음 여왕 모드때와 다르게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물병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다들 알지? 물 구하러 간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 하천 보고서 내가 일부러 그걸 떠 먹었어.”

“….”

“솔직히 좀비가 안 빠져죽을 리가 없는데 그 피나 바이러스도 섞였겠지. 하지만 아니라면 먹을 수 있는 거고.”

그래서 은지는 자기 몸을 시험대 삼아 하천 물을 받아먹었고, 김준이 기겁해서 총을 겨눴다가 15분 동안 아무 문제없는 것을 확인하고 차에 태웠다.

물론 그때 김준이 정말 대노해서 은지한테 뭐라 뭐라 하고, 가야까지 따로 불러서 쟤를 어째야 하냐고 하소연 한 것까지 모두 기억났다.

“지금 생각하면 아직도 식겁했어.”

“그래도 그게 다 넘어갔잖아요?”

어깨를 으쓱거리는 은지를 보니, 마리도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었나보다.

“만약 내가 없었다면?”

“어머, 그건 진짜….”

“마리 언니 없으면 우리 큰일 나죠!”

“일단 난 죽었을 듯.”

도경은 그때가 생각났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신고 있던 양말을 벗어 그때의 흉터를 보여줬다.

아직도 발 뒤꿈치에 칼로 도려 낸 자국이 시퍼렇게 남아 있었다.

“어우, 봉와직염 수술… 이걸로 죽을 뻔했잖아요?”

“그때 진짜 위험했지. 특히 병원까지 가서….”

“으아아앗!?”

순간 김준이 당황해서 비명을 지르자 옆에 누워 있던 라나가 화들짝 놀랐다.

라나뿐만 아니라 가야, 나니카, 도경이, 인아 모두 놀라서 김준을 바라봤다.

마리는 그 상황에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더 말할까 하다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좀비가 막 오는데… 거기서 휠체어 카트 가지고….”

“어우- 그건 그만 말하자.”

분명 그때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지만, 그때는 묻어 버린 이야기.

물론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걸 말했어야 했나, 아니면 지금 같은 분위기가 아닌 패닉 상태에 빠져 아무도 움직이지 못할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마리 역할은 진짜 중요했지. 뭐 하나라도 할 수 있는 게 중요한 거야.”

가야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그녀의 눈은 약간 서글퍼 보였다.

그때 김준이 그걸 눈치채고서 넌지시 그녀에게 말했다.

“만약에 가야가 없었으면, 애들 어떻게 통제가 됐어?”

“!”

“은지가 절대 안 어울리고, 에밀리랑 도경이랑 투닥거리고, 막내 셋은 자기들끼리 눈치 보고, 마리는 뭐….”

“저 별로 그렇게 리더 아니었는데….”

“아냐, 잘해줬어.”

다른 건 몰라도 은지가 함락되기 전까지 상황을 이어 주면서, 애들끼리 똘똘뭉쳐 살아가야 한다는 용기를 만든 건 가야였다.

거기에 여기 살면서 각자 무슨 일할지 룰을 정하고, 움직이게 한 건 가야의 몫이 컸다.

그렇게 요새 들어 자존감이 많이 하락한 것 같은 가야도 달래주면서 ‘만약에?’라는 if놀이는 계속됐다.

밖에 나가서 좀비 잡으려고 거창하게 다니거나, 물물 교환을 위해서 상점을 털고 다니던 상황에 비해 생일파티로 이렇게 하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그러면서 하나둘씩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이번엔 나니카가 뭔가를 떠올렸는지 키득거렸다.

“이것도 만약인데요.”

“응?”

“나니카 뭔가 큰 거 나올 거 같다.”

다들 나니카에게 집중할 때, 그녀는 여기 있는 모두를 보고 넌지시 물었다.

“만~약에 이런 큰 집이 아니라 좁은 곳에서 다 같이 살았으면 어떻게 됐을 거 같아요?”

“응?”

“큰 집이 아니라 좁은 집이면… 오 쉣!”

에밀리는 뭔가 떠오른 게 있는지 계속 자기 몸을 손으로 부비댔다.

“그… 있잖아요? 이런 3층집이 아니라 1층짜리 작은 집 하나. 그것도 방은 하나나 둘밖에 없고, 8명이 다 같이 거실에서 자는 숙소.”

“섹스도 못하겠네. 한 명 하면 다 깨잖아.”

“아, 여기서 그걸….”

도경이 슬쩍 눈짓했지만, 오히려 그 말에 마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밤중에 깨는 순간 기본이 3-4명이 하는 건가? 완전 난교방이겠네.”

“…끔찍해서 안 해. 차라리 집 밖에서 묵지.”

은지는 다른 건 몰라도 그런 건 정말 질색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때 김준이 ‘공간은 화장실도 있으니…’라고 말할 뻔했다가 특정 페티쉬처럼 보일까 봐 아무 말도 안 했다.

애들이 참 착해서인지 일단 가능성을 두고 ‘만약에’ 라는 게 정말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 좋아. 그래도 어떻게는 살아가겠지. 근데 말이야.”

“응?”

“네?”

김준은 와인을 다시 따르고 소주처럼 쭉 들이켜고는 턱에 흘러내린 것을 슥- 닦고는 키득거렸다.

“니들 가장 무서운 if를 모르는구나.”

“?”

“아….”

그 상황에서 은지만 김준이 무슨 말하려는 지 알 것 같았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애들에게 김준은 애들을 하나씩 가리키며 말했다.

“니들… 만약 내가 진짜 인성 쓰레기였으면 어쩔 뻔했냐?”

“!”

“오우- 섹스 슬레이브인가? 아니면 통조림 캔 하나로 매춘?”

에밀리가 한 말에 순간 모두가 등골이 서늘했다.

그 분위기에서 에밀리가 자기 가슴을 주무르면서 뇌절까지 해 버렸다.

“뭐… 콘돔도 안 쓰고 막 하다가 애 생기면, 모유 짜서 준한테 갖다 바쳐야 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런 미친 짓은….”

“그럼, 트럭에 우리 태우고서 생존자들이랑 물물 교환할 때 하룻밤당 우리 화대를….”

“…그만하자.”

장난으로 한 말인데, 에밀 리가 한마디씩 할 때마다 7명이 모두 소름 돋는 눈으로 쳐다봤고, 저년 입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모였다.

물론 그러면서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모두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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