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거래로 받은 콜트45 권총을 집고 살폈다.
“이거 진짜 오랜만에 보네.”
“권총이요?”
“군 시절에 몇 번 쏴 본 적 있거든. 손질도 알고.”
김준에게 있어선 군 시절 사용한 권총이니 소총탄은 못 구했어도 대신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그렇게 안 보이던 좀비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
“이것들 이제 적응한 거 맞다니까….”
확실히 요새 들어 좀비를 만날 때마다 습성이 바뀐 것을 알아낸 김준이었다.
이전같았으면 무지성으로 가는 길을 틀어막으면서 차량에 맹렬히 달려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갈 때 안 보인디 싶다가도, 돌아올 때 하나둘씩 튀어나오는 게, 땡볕 아래에서 다니는 좀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좀비가 날씨나 낮밤을 생각해서 공격한다니… 마치 그 영화를 보는 거 같았다.
“나는 전설이다….”
“오빠, 전설 맞아요.”
“아니… 영화 이름.”
“???”
라나와 마리 모두 어리둥절한 눈으로 보고 있을 때, 김준은 오늘 받은 신무기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철컥-
“내가 잡을 테니까 돕겠다고 석궁 들이밀지 마. 신무기 테스트 해볼까요.”
“그 권총이요?”
“귀마개 대쉬보드에 있어. 끼고 있어라.”
엽총이나 공기총은 몰라도 권총은 소음 때문에 여러 번 머리를 쥐어잡았던 아이들이었다.
“귀 막으면 이야기해!”
“썼어요.”
“저도!”
귀마개를 끼운 두 톱스타의 말에 김준은 콜트권총을 장전하고서 쏠 준비했다.
크어어- 크어어어-
우우우우우우-
그저 눈앞에 살아 있는 인간에 대한 살육만이 남은 좀비들이 서서히 다가오는 순간.
김준의 운전석에서 창문이 열리면서 쇳뭉치의 권총이 튀어나왔다.
타앙- 탕!
파각!
기존에 쓰던 리볼버보다 저지력 좋은 45구경 탄이 불을 뿜은 순간, 좀비의 머리가 한 방에 박살 나며 맥없이 쓰러졌다.
“큿!”
리볼버처럼 한 손으로 쏴대기에는 은근히 반동으로 흔들리는 무게와 충격량이었고, 김준이 양손 파지로 자세를 고쳐잡아 발사했다.
탕- 탕!!!
파각-
그다지 남아 있지 않은 썩은 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쓰러지는 좀비들.
콜트 45는 오래된 모델로 요새 권총들과 다르게 장탄수 7발이 전부였다.
슬라이더를 당겨 한 발 더 넣을 수도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기존 리볼버 실린더와 다를 바 없는 장탄수였다.
하지만 그 위력은 확실해서 확인 사살도 필요 없을 정도로 좀비들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됐어! 가자!”
피바다가 된 앞을 보고 더 돌아볼 것도 없이 그냥 지나친 김준의 캠핑카.
무더운 여름에 지나가기만 해도 시체 악취가 가득해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귀에 꽂은 귀마개를 빼서 코에 꽂은 라나와 뒷좌석에서도 창문을 다 닫아버린 마리.
그렇게 겨우 도착한 집에서 김준일행이 가장 먼저 한 건 락스 푼 물을 뿌려대 시취를 지우는 세차였다.
***
“흐응~ 이게 아메리칸 무전기라고?”
“여기서 연락해서 바로 미군부대랑 이야기할 수 있어.”
김준의 말에 에밀리는 자기가 가고 싶었는데, 빠져서 토라진 얼굴이었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이렇게 누르면… 헬로? Are you with us?”
“야이 씨! 지금 뭐 하…”
그때 에밀리의 손에 있던 무전기가 울렸다.
[치직- So. hello?]
“와 된다!”
“!?”
김준은 무전기에서 다이렉트로 들리는 영어를 두고 에밀리를 바라봤다.
다른 아이들도 현란하게 나오는 영어에 어리둥절하면서, 그나마 마리 정도가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오케이- 오케이- 언더스탠.”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전기와 대화하다가 김준에게 말했다.
“지금 무전하는 사람이 37포병연대 캡틴이래.”
“캡틴? 그럼 대위라는 말인데.”
“응, 뭐 물어볼까?”
김준은 이렇게 된 이상 뭐라도 알기 위해서 하나하나 물어보기로 했다.
“거기 사람 얼마나 있냐고 물어봐 줘.”
에밀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영어로 대답했고, 거기에 대해서 플리즈~ 라는 말이 계속 나오더니 그녀가 대답했다.
“주한미군 내 2보병 사단 병력인데, 주둔지 내 절반 이상이 죽었대.”
“후….”
“처음 집결시에 좀비화가 된 병사들이 나와서 서로 총쏘고 그러다 죽었다는데?”
그건 이전에 그 미군중령 수기에도 나와 있는 거였다.
그때도 신종 마약이나 그런 건 줄 알고서 패닉 상태에 빠졌다가 뒤늦게 좀비라는 것을 알고서 서로가 서로를 쏴대다가 사분오열됐다는 미군.
미군도 이럴진데, 아마 국내에 있는 국군부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집결 시켰다가 내부에서부터 무너져서 행동 불능이 된 것일 거다.
그리고 그 피해를 감당하지 못해서 1년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어떻게 나서지 못 하는 것 같았다.
“준, 그리고 미군 가족들까지 합치면 몇천명은 되나 봐.”
“몇천명이라….”
소규모로 살아가는 생존자 일행만 만나다가 부대 안에 수 천 명이 살아 있다는 말에 김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있었고, 각자의 쉘터 안에서 생존에 급급해하고 있었다.
“앞으로 필요한 물건 있으면 주일 기준으로 3일 전에 말해 달래. 그러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해 주겠다고.”
“거기도 문제가 있나?”
“평시에는 부대 안을 돌면서 아직 사살하지 못 하는 좀비 잡는데 무기를 쓴다는데?”
김준은 그 말을 듣고서 ‘소총은 안 된다.’ 라고 말한 그 대령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브리게이더 제너럴이 총상 이후에 몸 움직이기가 힘들어서 스테판 벨린저? 그 사람이 대리를 맡았다고 하고, 고위 간부들이 많아서 통제가 된다고 하네.”
어떻게 보면 군 기밀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까지 말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밖에 나오지 못하고 폐쇄된 군부대 내에서 버티기만 하는 상황이니 그냥 할 말 다 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수천 명의 미군이라면 그 전투력만으로 소사벌은 물론이고, 그 주변에 있는 도시들까지 하나하나 밀어낼 수 있고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끝났어.”
에밀리는 교신을 마치고서 김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지막까지 살아 있으래. 같이 가자고….”
We Go Together.(같이 갑시다.)
주한미군의 슬로건이었고, 한미훈련할 때도 언제나 그들이 하던 말이었는데, 이 상황에서 들으니 굉장히 미묘한 말이었다.
“어쨌건 수고했어.”
“훗~”
요염한 미소를 지으면서 더 칭찬해 달라며 머리를 내미는 에밀리.
김준은 그녀의 더티 블론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한 가지는 경고했다.
“근데 함부로 무전 하지 마. 괜히 안 할 말 하게 돼.”
“흐응~ 알았어.”
그렇게 주한미군과의 거래도 성공적으로 마쳤고, 김준은 오늘 챙긴 것들을 가져다가 주방에 가져다주고 권총을 가지고 가서 안방에서 분해했다.
낡은 콜트45 권총이었지만, 손질이 굉장히 잘되어 있었다.
“따로 손질할 필요도 없겠네.”
그 안에 구리스 칠까지 깔끔하게 되어 있는 내부를 보니 괜히 뜯은 것 같아서 주섬주섬 조립했다.
콜트는 자신도 군시절 쏴 봤으니 손질에는 문제가 없었다.
김준은 권총 해머를 당겨서 안전장치를 확인하고 걸어서 장롱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탄창도 따로 분리해서 나갈 때만 조립해서 쓰기로 했다.
장롱 안에는 지난번 가져온 총기가 가득했고, 사격용 단발형 공기총을 본 김준은 넌지시 중얼거렸다.
“애들 총도 쓰게 해 줘야 하나?”
적어도 공기총 정도는 소음도 적고, 수렵용 연지탄이 아니면 안전사고도 최소화 할 수 있다.
단발형이라 석궁과 비교해도 그렇게 장전 문제는 있겠고, 그걸 가지고 좀비를 잡을 수 있다면 그것도 방법 중에 하나일 거다.
“언제까지 가려나….”
김준은 한숨을 내쉬면서 장롱을 잠그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저녁 준비하는 아이들 속에서도 라나가 김준을 힐끗 보면서 발그레해진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오늘 의무방어전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
그날 밤.
“자~ 오늘 하루 수고했어.”
“예이~”
오늘 밤도 열대야가 심한 날이었고, 김준은 물물교환으로 얻은 콘비프와 스팸을 계란과 같이 구워서 술안주로 만들어 캠핑카 안에서 시원한 피서를 보냈다.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있는 라나와 마리 모두 소주를 마시면서 얼굴이 금세 새빨개진 상태였다.
“진짜 이래서 밖에 나간다니까요?”
어제도 불같은 밤을 보냈던 마리가 다시 또 달아오른 얼굴로 김준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녀까지 왔으니 오늘은 어쩌면 쓰리썸의 각이었다.
피곤하지만 누구에게도 편애하지 않고 공평하게 사랑을 나누겠다고 선언한 김준.
당장에 옆에서 핫팬츠 차림으로 매끈한 다리를 자랑하는 라나의 모습에 김준은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랐다.
“미군부대도 다녀오고 거기 사람 많다는 것도 알았고~ 사람들도 친절하잖아요.”
“그렇지.”
“이러다 조만간 군대가 나와서 좀비 다~ 쓸어 버리고 상황 정리되겠죠?”
“그랬으면 좋겠네?”
김준의 말에 라나는 빙긋 웃으면서 넌지시 물었다.
“오빠-”
“응?”
“근데 나한텐 왜 그얘기 안 해줘요?”
“뭐가?”
“좀비가 끝나도 여기 남아 있을 거냐고요?”
“!”
김준은 라나의 당돌한 물음에 잠시 머뭇거렸다.
멋쩍게 웃다가 소주를 쭉 들이켜고, 그 상황에서 빠른 대답을 기다리는 상황.
김준은 그걸 묻는다면 라나가 무슨 대답할지 잘 알고 있었다.
슬며시 다리 한쪽을 들어 올려 매끈한 각선미를 보이면서 대답은 정해졌고, 질문해주기만 기다리는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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