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잡기로 뛰는 좀비들을 잡아낸 김준은 확인 사살까지 끝낸 뒤로 천천히 차를 돌렸다.
“어우, 바닥에 스키드마크 봐.”
“타이어 갈아야겠다. 그죠?”
“집에 가면 할 거야.”
김준은 먼저 상설매장 타운에 있는 편의점에 차를 세웠다.
“일단 저 안에서 쓸 만한 거 전부 가져오는 거야.”
“편의점!”
“안에 보니까 간장, 소금, 감치미… 있을 건 다 있네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소주, 물, 라면, 통조림, 담배 딱 이것들만 챙긴 뒤로 다시 안 왔던 곳이었다.
김준이 먼저 총을 들고 안에 들어와 편의점 안쪽의 창고를 연 순간 그 안에 잘 숨어 있던 담배와 음료수, 생수통 등이 나왔다.
“아, 다행이다! 여기는 멀쩡하구나.”
그동안 문을 열었다가 좀비가 튀어나올 위험성이나 아예 열린 상태에서 좀비와 인간의 피가 흩뿌려져 오염된 상태를 본 편의점 내부창고였다.
김준을 뒤따라온마리와 라나는 각각 나와서 물건을 챙기려고 했다.
“라나 왜 더블백 안 챙겼어?”
“아! 죄송해요!”
그냥 무기만 들고 좋다고 나왔다가 김준이 한 소리 하자 후다닥 뒷문으로 가서 가방 두 개를 챙겨 온 라나.
“마리도 가방 그거 하나 가지고 안 될 걸? 구르마 가져와야지.”
“어, 음… 잠시만요!”
우왕좌왕하다가 다시 챙기는 애들을 보고 김준이 한숨을 내쉬며 엽총을 들고 주변을 살폈다.
‘얘네들은 좀비는 잘 잡는데, 은근히 어설퍼.’
마리가 실수 잘 안 하다가 간간이 작은 거 터진다면, 라나는 좀비는 잘 잡는데 그 뒤로 루팅을 해야 하는데 가방을 잊는다던지, 구르마 없이 그냥 들려고 하다가 낑낑거린다든지 여러모로 어설픈 모습을 보여줬다.
물자 챙기는 건 도경이나 은지가 잘해줬는데, 확실히 누구를 데리고 나가냐에 따라 이런 게 확 느껴졌다.
그렇게 엄호를 해주고서 안에서 루팅이 나올 때, 마리가 먼저 가방을 열고 소금과 미원, 다시다를 있는 대로 챙겼다.
“이거 한데 모으면 꽤 많이 나올거예요.”
“그럼 전 이거를…”
라나는 한 번 털고서 얼마 안 남은 통조림을 하나하나 챙겼다.
저 당시에 참치랑 스팸, 파인애플 챙긴다고 등한시했던 깻잎, 마늘쫑, 골뱅이, 완두콩 등의 호불호 심할 것 같은 통조림들이 담겼다.
가방 세 개 분으로 가득 담긴 식량과 조미료를 구르마에 담고 차에 실은 아이들.
김준이 경계를 서는 동안 다른 것들 역시도 챙겨댔다.
“사실 설탕보단 꿀이 더 편할 텐데.”
공식적으로 유통기한 자체가 없는 식품인 꿀을 챙기는 마리가 단맛이 필요하다면 이거만한 게 없다면서 하나하나 담고 있었다.
그사이 라나는 음식과 조미료를 챙긴 뒤로 바로 의약품 코너로 향했다.
타이레놀, 마데카솔, 베아제, 훼스탈, 키토산, 포비돈까지 기본적인 상비약들을 전부 챙긴 라나는 그 옆에 있는 콘돔 뭉치를 보면서 묘한 미소를 지었다.
“초박형 많이 있네요.”
김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 피식 웃었다.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편의점 털다가 콘돔을 챙기는 게 기본돼버린 상황이었다.
더 웃긴 건 콘돔까지 챙긴 다음에 그 후 순위가 생리대였다.
“여기 탐폰하고 위스퍼도 많이 있네요.”
“그걸 더 먼저 챙겨야 하는 거 아니냐?”
“아직 필이 많이 있어서요.”
“근데 그거 계속 먹으면 나중에 진짜 안 오는 거 아니야?”
“부작용이 좀 있긴 한데… 그래도 견뎌야죠.”
그러면서 에밀리는 ‘그날’ 이후로 이상 필 안 먹는다고 선언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어 버린 김준.
일단 편의점에서 짐을 다 넣은 다음에 좀 쉬기로 했다.
“푸하~ 더워!”
마리도, 라나도 편의점에서 한가득 짐을 챙기고 꽉꽉 채워 넣자 마자 바로 차 안에서 웃옷을 벗고 후끈거리는 몸을 식혔다.
땀에 젖은 몸을 이리저리 손짓으로 흔들어댈 때, 김준이 바로 에어컨을 틀었다.
“안 그래도 인아가 시원한 거 준비했어.”
무더위 속에서 프로텍터에, 재킷에, 부츠까지 신고 있어서 땀이 줄줄 흐르던 아이들이 씻고 나왔고, 김준도 물수건으로 몸 이곳저곳을 닦으면서 냄비에 물을 올려 소면을 삶았다.
냉장고를 열자 그 안에는 인아가 담근 물김치가 있었고, 얼음을 동동 띄워서 소면에 말아서 세 그릇을 만들어 늦은 점심을 차 안에서 해결했다.
“후~ 시원하다.”
“여기서 먹는 게 진짜 별미예요.”
요새는 나갈 때마다 컵라면이나 쌀국수, 주먹밥등을 만들어 먹는걸 집에서 차려 먹는 것보다 좋아했다.
김준 역시도 얼음이 동동 뜬 냉국수 그릇을 비우면서 에어컨 바람을 쐬는 지금의 휴식에 만족했다.
점심 식사에 샤워에 에어컨 바람까지 쐰 김준 일행은 다시 옷을 챙겨입고, 무기를 점검한 다음에 움직일 준비했다.
“자, 가 보자.”
“상설매장 여러 개 있는데, 어디부터 갈 거예요?”
마리의 물음에 김준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가 에밀리랑 한 번 털었던 곳이거든? 안에 좀비 없는 건 확인했으니까 저기로 가자.”
“네, 오빠!”
“라나는 뒤에서 가방 많이 챙겨 놔! 구르마도 가지고!”
“이번엔 잘 챙길게요!”
김준은 3개 동에 있는 상설매장 중 A동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리면서 주변을 살피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딸깍-
“와-”
손전등을 켜고 비치자 그 안에서 먼지가 쌓인 채 바깥에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옷들이 드러났다.
등산웨어부터, 등산화, 스포츠웨어 등 다양한 옷이 있는 곳에서 김준은 쇼핑 카트를 챙기면서 옷가지를 담았다.
“남녀 옷, 사이즈,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있는 대로 다 담아.”
“저는 이쪽부터 담을게요!”
각각의 매장에 있는 옷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담는 김준 일행.
패션쇼를 할 것도 아니고, 물자교환용으로 쓸 거였지만, 그래도 여자애들이라 그런지 눈에 들어오는 건 전부 담았다.
“어머, 이거 레깅스 예쁘다.”
“이런 건 집에서 입어도 되겠다. 그죠?”
자기 몸에 대 보고서 맘에 드는 건 가방에 따로 담아 놓고 나머지는 카트에 담는 두 아가씨들.
김준 역시도 티셔츠를 박스채로 들어 올려서 카트와 구르마에 담았다.
2시간 정도밖에 안 됐는데, 차 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꽉꽉 들어찼고, 김준은 그것을 보고는 담배를 물면서 마리에게 물었다.
“이거 다 챙겼고, 그냥 갈까?”
“오늘은 여기까지? 다시 왔다 갈 필요 없겠죠?”
“여기 있는 것만 분류해도 몇십 벌은 되잖아?”
김준의 말에 마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구르마에 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차에 담았다.
“뒤에 안 보이긴 하는데….”
“됐어. 오늘은 그냥 이대로 가도 될 거 같아.”
“집에 가는 거예요? 와! 루팅 엄청 빠르다!”
“돌아가면 저거 다 정리해야 해. 시간 좀 걸릴 거다.”
뭐 안에 있는 애들하고 합치면 8명이 빠르게 분류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오늘의 루팅은 빠르게 끝이 났고, 집에 오자마자 편의점 물자와 가득 쌓인 아웃도어 의류를 보고서 하나하나 정리했다.
“와! 이건 내가 입어야겠다!”
“레깅스 딱 맞는다. 이거 챙겨야지.”
“야, 야! 니들 입을 거 적당히 챙겨!”
에밀리나 도경이 옷을 정리하면서 자신이 슬쩍 입어 보다가 하나둘씩 챙기는 걸 보고서 김준이 한 소리 하자 머쓱해진 얼굴했다.
“안 그래도 옷장 터질 거 같은데 정리 잘해.”
빨래를 널어놓고서 루팅한 옷들 분류를 시작한 은지도 한 소리 하자 다들 눈치를 보면서 안 보이게 옷 한 벌씩 뒤로 빼돌렸다.
물론 그렇게 해도 확실히 많은 양이었고, 그것을 이삿짐 나를 때 쓰는 비닐 압축팩으로 5벌씩 담아서 박스에 담았다.
다음으로는 편의점에 있는 물자를 물물교환용으로 따로 분류했다.
그동안 김준이 심심하면 합판을 잘라다 만든 나무 상자를 가지고, 폐의류를 깔아서 타카로 고정시킨 다음에 설탕, 식초, 소금 등을 차곡차곡 담았다.
그렇게 내일 되면 바로 미군부대에서 물물교환 용도로 정리한 김준은 저녁 식사 이후로 편히 쉴 수 있었다.
그날 밤.
김준은 안방에서 노트를 펼치고 물물교환 리스트를 정했다.
“일단 총알은 확실히 챙겨둬야 할 것 같고, 만약 그게 안 된다고 하면 여기 있는 거 반쯤 줄인 다음에….”
미군 부대에서 바로 쓰일 수 있는 건 여러 개가 있을 거다.
기름도 충분하고, 자가 발전기도 있으며, 어쩌면 군용 공구나 자동차 엔진을 가져다가 공작기계를 만들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간에 미군과의 거래는 충분히 이득이 될 거로 생각했고, 내일이 기대되는 김준이었다.
이틀에 걸친 거래를 준비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던 김준은 자기 전에 가볍게 뭐라도 먹을 생각으로 안방을 나왔다.
그때 집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보글보글거리는 소리를 듣고서 주방에 가자 마리가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어? 오빠!”
“라면?”
“하나 끓여 봤어요.”
“먹을 수 있어?”
“나니카가 유탕면 만들어놓은 게 있더라고요. 스프만 넣었어요.”
“어디, 오-”
봉지라면에서 스프만 빼낸 다음에 유탕면을 튀겨 놓은 것으로 만드는 라면.
계란까지 두 개 가져와서 풀자 마리는 빙긋 웃으면서 넌지시 말했다.
“하나 더 끓여요?”
“응, 그래.”
“방에 가지고 갈 거예요?”
“어, 어?”
마리는 발그레해진 얼굴은 한 채 안방으로 라면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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