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어린 처녀들이 닭 잡을 수는 있간?”
할머니가 무릎을 연신 두들기면서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으나 에밀리가 손을 뻗어 제지했다.
“놉! 이거 무척 재밌어 보여요.”
“세상에, 노랑머리 아가씨가 한국말 잘하네?”
“혼혈이라서요.”
“아, 그 튀기….”
“엄마!”
무심코 혼혈 비하 용어를 나온 순간 영주가 황급히 제지했다.
“노인네가 못 하는 말이 없어!”
“아니, 저 그거… 혼혈!”
“아유, 들어가기나 하셔! 쫌!”
강제로 밀어서 어머니를 집으로 모신 영주는 멋쩍은 얼굴로 에밀리에게 사과했다.
“아가씨, 미안 해요. 우리 어머니가 옛날 사람이라 좀 말을 막해요.”
“흐응~ 어차피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 상관없어요.”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쿨하게 넘기는 에밀리.
김준이 다가와 조용히 등을 토닥이자 언제 그랬냐는 등, 그의 몸을 확 끌어안으면서 그릉거렸다.
집안의 암사자가 바깥에서도 애정행각을 거리낌 없이 해대는 모습에 은지는 그저 말없이 지켜봤다.
“그래서 닭을 어떻게 잡으려고?”
“이거로요.”
에밀리가 새총을 꺼내자 영주 아저씨는 바로 어디론가 달렸다.
“기다려 봐! 베어링 구슬 있으니까 그걸로 쏴!”
위험하니 집 안에 가족들을 모두 들어가게 한 다음 시작하는 닭 사냥.
잡은 만큼 가져갈 수 있다고 하니 신이 난 에밀리가 영주 아저씨에게 새총을 받고 준비했다.
“아가씨, 잡아본 적 있어?”
“토끼도 이걸로 잡아봤어요.”
“어유, 그래?”
김준은 에밀리의 사냥 실력을 아니 고개를 끄덕이며 영주에게 말했다.
“잡을 줄은 알아도 털뽑거나 손질 같은 건 전혀 못해요. 여기서 가르쳐 줄 수 있나요?”
“그래, 그건 내가 할게!”
그렇게 새총을 든 미소녀 아이돌들의 닭 사냥이 시작됐다.
빠캉-
꿰엑! 푸드드득-
에밀리가 먼저 새끼손톱보다 작은 베어링 구슬로 수탉 한 마리를 맞췄고, 푸드득거리다가 숨이 끊어진 걸 확인했다.
“다음은 은지.”
“….”
김준의 말에 맞춰 빠르게 날린 은지의 새총 쇠구슬.
꼬꼬댁!!! 꿰엑!
“아~ 잘못 맞았다.”
맞추긴 했는데, 닭털이 허공에 맴돌다가 미친 듯이 날뛰며 주변 닭들까지 패닉에 빠트린 녀석이었다.
뒤에 있던 영주 아저씨가 바로 새총을 당겨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 닭의 머리를 쏴서 맞춰줬다.
“마구잡이로 쏘면 안 돼. 특히 알밴 암탉 무리 있는데 맞추면 그것들 날뛰다가 계란 다 상한다.”
“네.”
“조~기 있지? 혼자 끄트머리 있는 놈들이나, 땅 헤집는 거. 저런 거 잡아.”
“오케이!”
의기양양하게 에밀리가 두 번째 새총을 발사해서 울타리 근처에서 잡초를 쪼아대던 닭 한 마리를 맞췄고, 뒤이어 은지가 뒤에 있는 닭을 맞췄다.
“이번엔 한 방?”
“….”
“내가 더 잘쏜다니까~”
에밀리는 좀비 때부터 계속 은지 상대로 도발했고, 차가운 얼음 여왕 같은 표정의 은지도 슬슬 짜증이 나는지 바로 세 번째 닭을 맞췄다.
첫발 빗나간 거 빼고는 계속해서 닭을 맞춰 원 샷 원킬로 끝내는 은지.
하지만 그 옆에서 에밀리가 또 한 번 긁었다.
빠캉-
꿰에엑!!
은지가 노리던 닭을 에밀리가 뒤에서 쏴 목을 뚫어 버리고 푸드득거리다 쓰러트렸다.
“!?”
“이렇게 쏘는 거야.”
오늘 여러 번 깐족거리는 상황에 은지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진짜 안 멈추네….”
“으응? 으으응?”
아까처럼 일부러 듣고도 못 들은 척 귀를 내미는 에밀리.
뒤에 있던 김준이 보다 못 해 그녀의 엉덩이를 찼다.
“그만 좀 해.”
“꺄아~”
은지는 새총으로 닭을 노리다가 계속되는 방해에 한숨을 내쉬면서 내려놨다.
***
“이거는 이렇게 칼로 목을 치고, 피를 쭉 패낸 다음에….”
영주 아저씨가 새총으로 쏴 죽인 닭들을 잡아 와서 머리를 잘라 내고, 털 뽑는걸 가르쳐 줬다.
에밀리나 은지나 이런 거 가지고 놀랄 애는 아니었고, 유심히 지켜봤다.
“원랜 기계로 돌려서 빼면 되는데, 그게 안 되니 이렇게 손으로 다 뜯어 버리고, 남은 잔털은 끓는 물에 담그면 돼. 너무 담그면 익어 버리니까 한 1분 정도로.”
털이 뽑힌 닭을 끓는 물에 이리저리 담근 다음 도마를 가져와 깔아 놓고 칼을 가져와 배를 땄다.
“이렇게 피가 쭉- 나오면 안에 있는 내장 긁어내고 갈빗대를 짤라서 확 벌리면 되는 거야.”
“한번 해 볼게요.”
은지가 칼을 받고서 서투르지만, 닭을 손질하는 모습을 보자 영주 아저씨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거 못 해봤을 아가씨 같은데 잘하네?”
리얼버라이어티 프로에도 못 할 살아 있는 닭을 잡아 털을 손으로 뽑고 칼질로 내장을 뜯어내는 닭 손질.
그래도 두 아가씨는 잘 따라줬고,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김준도 닭 한 마리를 잡고 품에 차고 있던 손도끼를 꺼냈다.
“자 봐바! 빨리하려면 이렇게 딱! 치고!”
주저 없이 도끼로 닭 목을 친 다음에 배를 가르고 손질하는 모습에 에밀리가 박수쳤다.
“이렇게!”
“잘하네? 나한테 가르쳐달라고 안 해도 되잖아?”
“저 없을 때도 손질하는 모습 알아야죠.”
그렇게 손질이 끝난 생닭들은 영주 아저씨가 부인과 아버지를 데려와 커다란 솥에 물을 붓고 닭을 앉혀서 야채를 넣고 푹푹 삶았다.
“저녁은 이걸로 하고, 이제 소도 잡아야지?”
“그래야죠.”
김준은 저 멀리 있는 소들 중 수컷으로 하나 타겟을 잡고 엽총을 준비했다.
지난번처럼 소를 손질하기 위해 각종 칼과 머리를 잘라낼 전기톱 등 무시무시한 무기들이 가득했다.
은지와 에밀리가 닭백숙을 만드는 동안 김준은 엽총을 들고 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총성과 함께 소 한 마리가 쓰러졌을 때, 모두가 달려가서 황소를 통째로 손질했다.
***
그날 밤.
닭과 소고기, 계란으로 육식으로 즐긴 김준 일행이 사랑방을 안내받고 푹 쉬고 있을 때였다.
치익-
담배를 태우면서 야간 경계를 서고 있을 때, 저 멀리에 앉아 있는 은지가 있었다.
“언제 또 나왔대?”
김준이 슬며시 다가갔을 때, 그녀는 우수에 찬 눈으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의 초미녀였다.
“안 자?”
“….”
김준을 보고도 그냥 가만히 있는 은지를 향해 김준은 옆에 조용히 앉았다.
“오늘 에밀리가 좀 많이 깐죽거렸지?”
“하아~ 다시는 쟤랑 안 나가요.”
“이해해~ 한두 번 저러냐?”
“일부러 저러는 게 너무 티 나.”
“….”
은지의 말에 김준은 에밀 리가 세상 모르게 편히 자고 있을 방을 바라봤다.
강철 멘탈의 아가씨는 세상만사 두려울 게 없어 보였다.
이 집에 처음 8명의 톱스타들이 들어왔을 때부터, 에밀리가 굉장히 유별난 성격으로 다른 애들과 트러블이 있는 건 봤다.
처음엔 도경이하고 냉장고 음식 꺼내먹는 거로 투닥거리다가 감정이 상해서 김준이 둘 붙잡아 놓고 술을 따르면서 해결시켜줬다.
그 뒤로도 은지의 흉터를 가지고 유난 떤다면서 기 싸움을 하다가 그런 이야기할 때마다 엉덩이를 때려 줘서 못하게 만들었다.
그 뒤로는 김준이 라나 같은 애들하고 오붓한 밤을 보내니 그걸 또 질투하면서 트러블을 일으켰다.
“에밀리 걔가 왜 그러는 지 알 거 같아서 더 난감하네.”
“저도 알 거 같아요. 그년 집착 엄청 심해. 우리 견제 한다고 그러는 거.”
은지 입에서 욕 나올 정도면 진짜 참을 만큼 참았다는 거다.
“에휴~ 그렇다고 따로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냥 앞으로는 쟤하고 같이 바깥 안 뛰면 돼요.”
“어, 그건 내가 신경 쓸게.”
“쟤만 아니면 누구든 상관없어요.”
“알았어. 신경 쓸게.”
김준은 이번 트러블에 대해서 확실히 하기로 했다.
단순히 사격이나 물건 챙기는 실력이 좋다고 데리고 다니면, 애들끼리의 사이를 생각 못 하고 이렇게 티격태격대는 꼴을 볼 수 있다.
“자고 일어나면 내일 사격장 가서 무기만 챙기고 얼른 가자.”
“그래요. 돌아가면 그냥 푹 자고 싶어요.”
“나랑?”
김준이 슬며시 손을 뻗어 은지의 등에 대자 그녀는 흠칫하다가 이내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등의 화상이 트라우마고 손만 대도 질색하는 아이였지만, 김준의 손질은 이제 참을 수 있었다.
등을 만지면서 옷 위에 까슬까슬한 브라끈 감촉을 즐기는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오빠는 이런 감촉 엄청나게 좋아하는 거 같아.”
“흐음~ 그런가?”
“가야 언니 머리가지고 노는 거나 그 거기도….”
여자들이 제일 질색할 ‘나쁜 손’이 습관이라 자연스럽게 주물거리며 손끝의 까슬거림을 좋아한다고 말한 은지.
김준 역시 그건 공감해서 멋쩍게 손을 뗐다.
그렇게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던 은지는 김준이 이렇게 달래줘서야 겨우 기분을 풀 수 있었다.
***
이튿날이 되어 소다 닭이다 달걀이다, 우유와 버터다 정말 풍족한 농산물을 받아 든 김준 일행은 차에 있던 소금과 밀가루, 각종 양념장과 담배, 의약품을 교환했다.
“다음에 올땐 필요한 거 말해주시면 미리 챙길게요.”
“그… 책 좀 많이 챙겨 주게. 우리 아들놈 여기 있으면서 바보 될 거 같아.”
“애들 교과서나 문제 집 있으면 챙길게요.”
“그래, 애들이 뭘 배워야 앞으로 살아갈 텐데… 에휴.”
그나마 정토사는 치과의사나 공무원이었던 은기가 애들 가르쳐 준다고 해도, 여기는 농가에서 대가족이 전부이니 뭐 가르칠게 부족했다.
김준은 그것도 약속하고 캠핑카 캐리어박스에 수백 kg의 고기를 넉넉하게 담아 놓고는 손을 흔들며 떠났다.
“여기서 2시간만 가면 사격장이거든? 진짜 조심해라! 뭐 튀어나올지 몰라!”
“오케이~”
“아침부터 기운 넘치네.”
“난 원래 그래~”
조수석에 에밀리가 흥얼거리면서 석궁을 들고 있을 때, 김준은 그래도 남은 시간 좀비 잘 잡고, 물건 잘 챙긴다음에 빨리 집에 가기로 했다.
아마 뒤풀이도 엄청 심할 것 같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