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298화 (298/374)

빠캉!

콰직!

22mm짜리 너트가 새총을 통해 날아간 순간, 표적인 좀비의 머리를 그야말로 산산조각냈다.

그냥 던져도 사람 얼굴에 맞으면 최소 이빨 몇 개는 나갈 단단함의 너트는 새총의 힘으로 달려든 좀비의 머리를 아예 빠개버렸다.

“원 샷 원킬!!!”

영화 같은 대사를 외치면서 주먹을 불끈 쥔 에밀리.

휴게소에서 튀어나온 좀비는 저 녀석이 마지막이었는지 더 이상 나오는 놈이 없었다.

“….”

초반에 잘 잡다가 김준이 차 방향을 틀어서 직접 잡자 순간적으로 사각으로 몰려 그 이상의 킬마크를 못 올린 은지는 못내 아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은지도 잘했어.”

“저도 잡을 수 있었어요.”

“그런 거로 경쟁하지 마.”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좀비만 보면 ‘꺄악! 어떡해?!’ 이러면서 김준 뒤에 숨어 부들부들 떨던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각각의 트리거가 발동했는지, 좀비를 두고 어떻게든 잡으려고 무기를 들이밀며 달려든다.

공교롭게도 은지와 에밀리 모두 처음으로 같이 타는 조합이지만, 호승심이 굉장한 애들이어서 그걸 신경 쓰고 있었다.

“보우건 두 개 가지고서 쓰지도 못 했네?”

“하….”

“바깥 필드는 내가 더 잘 싸우지. 그래도 뭐 수고했어~”

뒤에서 계속 은지를 박박 긁어대는 에밀리를 두고 김준이 슬쩍 눈짓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좀비는 화장실 갔다 와서도 잡을 수 있잖아.”

“더럽게 깐죽거리네.”

“으응~? 응? 으응!?”

못 들었으니 다시 말해 보란 투로 계속 깐죽거리는 에밀리를 보고 김준이 보다 못해 손가락을 튕겼다.

“둘 다 스톱하고! 은지야! 뒷좌석으로 같이 가자.”

“네, 오빠.”

은지와 김준이 각각의 무기를 챙기고 다시 나와 에밀리가 있는 캠핑카 뒷문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아까의 일을 숙지하면서 늦은 점심을 여기서 먹기로 했다.

쌔애애애액- 쌔애애애애애애액-

“어우, 이거 소리 그거 같아. 휘슬.”

전기포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물이 끓었다는 걸 알리자, 김준은 컵라면 쌀국수를 꺼내 에밀리와 은지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서 인아가 담근 총각김치를 꺼내 테이블을 펼치고 올려놨다.

방금 전까지 사람의 형상을 한 좀비를 무참하게 대가리 깨부수고, 눈깔을 꿰뚫고, 개박살을 내버렸지만 이미 다들 덤덤했다.

“자~ 먹자!”

“이거 가끔 먹으면 진짜 맛있는데.”

컵라면은 예전에 기름에 튀긴 유탕면이 산패해서 사냥 미끼나 명국이네 닭 사료 주는 대로 써먹었지만, 쌀국수는 그보다 좀 더 길어서 자주 먹을 수 있었다.

유통기한만 1년 이상에 한계 보관 기간까지 따지면 앞으로 6개월은 더 먹을 수 있을 거다.

군대에서는 쌓아 놓고서 밑에 짬찌 애들 주던 거였지만, 지금 상황에선 이것만 한 생존 식량이 없었다.

에밀리와 은지 역시 후루룩거리면서 총각김치도 젓가락으로 집어 우물거렸다.

“진짜 우린 복 받은 거죠.”

“맞아.”

“좀비랑 나뒹군지 1년이 지났는데, 자급자족으로 김치까지 담가 먹잖아요.”

배추가 부족해서 김치 종류가 죄다 깍두기 아니면 총각김치지만 그거라도 있다는 건 호사 중의 호사였다.

“그리고 이따 소고기도 챙기고?”

“가서 봐야지.”

김준은 점심를 마치고, 담배 한 대 태우다가 슬슬 나왔다.

일단 휴게소 근처에서 널브러진 좀비가 땡볕을 받으면서 역한 냄새가 확 올라오고 있었다.

마스크를 챙겨서 얼굴에 씌운 셋은 무기와 가방을 챙기고 휴게소 외곽에 있는 마트쪽으로 향했다.

끼이익-

“우욱!”

휴게소 마트에도 좀비들이 왔다 갔는지 핏자국과 역한 냄새가 가득해 어질어질했다.

이미 코너의 레토르트 식품과 과자들은 죄다 썩어 있었다.

그 속에서도 뭐 챙길 만한 게 있나 싶을 때 은지가 발견한 게 있었다.

“꿀.”

“!”

“꿀은 유통기한 없어요. 밀봉한 상태로는 몇 년씩 놔둬도 되죠.”

“오케이! 저거 꿀 챙기고.”

“준, 옆에 있는 고추장!”

“그래, 저거 챙기고.”

200그램에서 1킬로까지 크기별로 있는 고추장과 된장, 쌈장에 꿀 등의 보관 용품들을 하나하나 챙기는 에밀리와 은지.

김준은 두 아이가 챙길 때, 슬며시 뒤를 보며 휴게소 식당 내부를 바라봤다.

지난번 왔을 때보다 더 난장판이 된 내부는 썩은 피와 좀비들이 있던 곳 때문에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다.

이미 저 안에 있는 것들 역시도 오염됐다고 봐야 했다.

“이것들도 더위를 타나?”

분명 다 쓸어 버렸는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휴게소 안에 숨어 있다가 인간 반응을 보고 튀어나왔다.

김준은 뭔가 석연치 않은 상황에서 계속 경계를 섰고, 에밀리와 은지는 각각의 물자를 가득 채워왔다.

“이 정도면 될 거 같아요.”

“여긴 소주가 없어.”

“도로 휴게소에 소주 있으면 큰일 나지.”

에밀리와 은지는 각각의 물건들을 챙겨 김준에게 보였다.

꿀부터 시작해, 후추, 설탕, 소금, 소면등을 가득채운 은지.

고추장, 된장, 간장, 식초 등의 조미료에 생수와 바짝 말려 밀봉된 육포, 오징어, 쥐포 등의 안줏거리와 담배를 챙겨서 보이는 에밀리.

지난번 죄 쓸어가서, 조금 남아 있던 통조림마저 탈탈 털어 남은 건 거의 없었다.

“다음에 와도 남은 건 생수 몇 개가 전부겠구만.”

나머지 음료나 과자야 뜯는 순간 벌레만 꼬일 것들이니 무시하고 짐만 챙기면서 빠져나갔다.

좀비를 잡고 나니 남는 건 루팅이었고, 이제 두 번째 목적지로 향해야 했다.

“자, 가자!”

김준은 아산 외곽에 있는 영주네 일가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반갑게 맞이한 건, 완전 동물의 왕국이었다.

“어머, 저거 뭐야?”

“야~ 수 봐라 저거.”

언덕 전체가 풀어놓은 닭으로 뒤덮여 있고,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고, 그 옆으로 울타리가 쳐진 밭이 있었다.

그리고 묶여 있는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는 게 정말 동물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땅이 되었다.

빵- 빵- 빠아앙-

클락션을 울리자 후다닥 달려가는 닭떼들과 미친 듯이 짖어대는 개들.

그러거나 말거나 풀을 뜯는 소들을 보고서 슬레이트 집에서 하나둘씩 사람이 나왔다.

그들은 김준의 차를 보고서 힘껏 손을 흔들었고, 길가에 있는 닭들을 쫓아가면서 차가 멈추자 반갑게 인사하는 영주 아저씨가 있었다.

“어이구! 살아 있었구만!”

“잘 지내셨어요?”

“왔으면 통행세부터 내야지!”

김준은 그 말에 웃으면서 담배 한 갑을 창밖으로 던져 줬다.

“와~”

은지와 에밀리 모두 바깥 풍경을 보고 넋이 나가 있었다.

소사벌만 하더라도 한정된 쉘터에서 고기 한 조각, 통조림 한 캔으로 죽네마네 했는데, 여긴 완전 대규모 농장이었다.

대낮에 한가롭게 노 다니는 100마리는 넘어 보이는 닭 떼에 한가롭게 풀 뜯는 소들, 요란하게 짖지만, 밖에 나온 아주머니가 발길질하자 금방 집으로 들어가는 개들.

“명국씨네하고는 비교가 안 되네.”

“열 배는 커보여.”

“뭐야? 아가씨들이 바뀌었네? 외국인도 있었어?”

영주 아저씨는 가야나 나니카, 마리만 보다가 또 딴 애들이 나오자 어리둥절하면서 김준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윗 동네에 몇 집 살림을 하는 거야?”

“아, 그런 말하지 마시고요.”

“쟤들도 그거야? TV에 나왔던….”

“네~ 네~”

영주 일가는 김준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시원한 우유부터 건네줬다.

여기 아니면 탈지분유로 물에 타는 것만 마셨는데, 갓 쨔낸 신선한 우유를 받으니 모두가 행복해했다.

“어르신 다리는 괜찮으세요?”

“아유~ 다 나으셨어. 아침에도 소 여물 준다고 나가시고, 밭도 가신다니까?”

“그래, 이 애비 멀쩡하다!”

이야기를 들은 영주 아버지는 다짜고짜 츄리닝을 걷어서 커다랗게 났던 상처가 흉터만 남고 아문 것을 보여줬다.

김준은 그들 모두와 인사하고는 영주와 바깥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그쪽은 어때?”

“똑같이 지내죠. 근데 여긴 뭐 이리 동물들이 많아졌어요?”

“죄다 바깥에 풀어 놨지. 뭐, 좀비 그거는 개들이 짖고 소가 들이받으면 걍 죽어 버리더구만.”

“잡았어요?!”

“열 마리는 뒤졌지. 그거 땅에 파묻으니 땅이 거름이 필요 없더라.”

어떻게 보면 시체를 파묻고 그걸로 거름을 쓴다는 건데, 끔찍한 이야기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야채가 더 잘 자라 있었다.

“뭐, 먹는다고 감염되고 그러는 거 아니죠?”

“먹어보니 멀쩡했어.”

“큰일 날 짓 하셨네!”

“아, 됐어! 안 죽어!”

그야말로 자기 가족 왕국을 만든 영주 아저씨는 껄껄 웃으면서 김준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루 묵고 가려고?”

“신세 좀 질 수 있을까요?”

“뭐뭐 가져 왔는데?”

“소금하고, 밀하고 쌀, 오면서 간장이나 고추장, 된장도 챙겼는데 괜찮으세요?”

“어~ 그럼 일단 소금하고 쌀, 양념장 다 필요하지! 담배도 몇 보루 가져다 놓고.”

“좋아요. 그럼 뭐 잡나요?”

“직접 잡을래?”

“…네?”

영주의 말에 안에 있던 에밀리가 그걸 듣고 귀를 쫑긋 한 채로 슬금슬금 나와 김준 옆에 붙었다.

“저거 말이야. 닭이 너무 많아서 씨알이 좀 얇아 적당히 잡아서 수를 맞춰줘야 하는데.”

“그러네요.”

“한 2,30마리 잡아가도 한 달 지나면 금방 나와.”

스케일이 확실히 달랐다.

열 마리 정도가 한계였던 명국이네와 다르게 30마리를 잡아가도 오케이라고 한 영주 아저씨.

“소도 잡을 수 있어요?”

“그래! 안 그래도 준이 씨 오면 내가 하나 잡으려고 했어 저거 봐.”

“!”

영주가 가리킨 곳에는 소 무리가 있으면서 몇몇 황소가 송아지들을 향해 달려들어 뿔로 들이받아 쫓아내고, 암소들을 못살게 굴고 있었다.

“원래 소는 제대로 키우려면 암소만 놓고서 정액 사다가 인공수정으로 키우는 거야. 근데 수컷들이 저렇게 많으니 자기들끼리 싸우고, 대가리 찢어지고, 송아지들 잡고 어휴~ 있을 때 잡아야지.”

“그럼 저희더러 황소 하나 잡으라는 거군요.”

“아유~ 고깃값은 해야지. 잡아야 뭘 주지 않겠어?”

맞는 말이었다.

물물교환으로 주는 거라고 하지만 진짜배기는 사냥으로 잡아서 해체해야 한다.

아마 지금부터 시작해서 오늘 밤까지 엄청난 작업이 될 거고, 김준 역시 엽총부터 챙기며 은지와 에밀리에게 닭 잡을 준비를 하라고 말해줬다.

이제는 아이돌들이 농장에서 뛰어다니며 직접 살아 있는 닭을 잡아, 목을 따고, 털까지 뽑는 걸 배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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