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297화 (297/374)

“준~ 이거랑 이거~”

“단 거 너무 먹으면 안 돼.”

“슈가가 이렇게 많잖아♥”

아침 이후로도 에밀리는 김준의 뒤에 껌딱지처럼 짝 달라붙어 다녔다.

커다란 가슴이 김준의 등에 딱 밀착해서 부비대는데, 언제고 아랫도리가 불끈거릴 것 같았다.

“암튼, 설탕 줄여. 꿀 안넣고 이거 한 스푼만 넣을 거야.”

“흐응~”

김준은 에밀리를 위해 커피랑 설탕, 탈지분유를 꺼내서 물을 끓였다.

그걸 보던 다른 애들은 슬금슬금 김준에게 다가왔다.

“오빠! 왜 에밀리 언니랑 계속 붙어다녀요?”

“나를 제일 사랑한다고 했으니까.”

라나가 질투심이 생겨 토라진 얼굴로 말할 때, 김준은 조용히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도 쓰다듬어줬다.

그러자 라나는 자신도 안아달라는 듯 두 팔을 벌려 달려들었고, 덕분에 앞뒤로 톱 아이돌들한테 끌어안긴 포상이 되었다.

“이거 마시고, 이젠 좀 떨어져 있자.”

“흐으응~”

어린애 달래듯이 엉덩이를 토닥거려주면서 에밀리를 주방 의자에 앉히고, 앞에서 달라붙던 라나도 번쩍 들어 올려 옆에 앉혔다.

그렇게 오전부터 일 시작을 하려고 했는데, 하나둘씩 나왔다.

“어제 에밀리랑 얼마나 하셨길래~ 저렇게 빠졌어요?”

한동안 조용했던 도경이 다가와 김준 옆을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그럴 일이 있어.”

“진짜 궁금하네~”

김준은 그녀도 어깨동무를 하며 토닥거려 줬다.

그렇게 집에서 여자애들 마주칠 때마다 하나씩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면서 밖에 나온 김준은 마당에서 뭔가하고 있는 은지를 보고 조용히 다가 갔다.

“뭐 해?”

“화살대 만들어 보려고요.”

“흐음~”

그동안 요리도, 응급처치도, 기계 수리도 어깨너머로 슬쩍 익혔던 은지가 오늘은 스스로 목공을 하고 있었다.

잘 벼린 낫으로 나무를 다듬고, 끝부분을 사포로 갈아 뾰족하게 만들었다.

“화살 깃만 붙이면 될 거예요.”

“오, 잘 깎았네?”

김준은 손을 뻗어 쓰다듬어 주려다가 그녀가 순간 움찔하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

“….”

“아, 미안.”

“새삼스럽게.”

은지는 그 모습에 여유 있게 웃으면서 자신이 머리를 내밀어 손에 닿게 해줬다.

“….”

“다음 루팅 그 고속도로 타고 소고기 받은 대로 간 다고 했죠?”

“어, 어!”

“그땐 무조건 제가 가는 거예요.”

“그래, 그러자.”

김준은 내친김에 자신도 낫과 나뭇가지를 들어 석궁에 발사할 화살을 같이 만들었다.

그날 저녁.

김준은 식사 이후에 모두를 모아 놓고, 다음 계획을 준비했다.

“아산으로 내려갈 거야.”

“오! 다시 루팅 시즌이 왔구나!”

“소고기! 소고기!”

거기로 간다면 소 한 마리 통째로 잡아다가 먹을 수 있을 거라며 흐뭇해하는 아이들.

그 속에서 은지는 조용히 차를 마시면서 아까 김준에게 말했던 걸 모두에게 알렸다.

“일단 내가 가기로 했어.”

“은지 언니요? 내가 가려고 했는데….”

마리가 아쉽다는 듯이 말할 때, 에밀리는 그런 거 없이 당당하게 손을 들었다.

“그럼 나도!”

“에밀리가 또?”

“밖에 나가는 건 순서 없어~”

에밀리가 자신만만하게 나설 때, 다른 애들은 슬며시 김준의 눈치를 봤다.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기세였고, 김준 역시도 그 시선을 알았다.

“가고 싶은 애 있어? 마리는 당분간 집 보면서 쉬고.”

절에서 수술을 하고, 바로 미군부대에 다녀온 뒤로 마리를 쉬게 했다.

그리고 가야 역시도 원래라면 자기 차례지만, 에밀리가 갈 길을 스틸했으니 자신이 그냥 양보해주기로 했다.

라나나 도경이가 좀 불만이긴 했지만, 걔들은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그럼 일단 은지는 마리한테 응급키트 받고 구급법 다시 한번 숙지하자.”

“네, 그럴게요.”

은지는 마리를 바라보면서 자기 전까지 기본 응급처치와 드레싱 등을 다시 한번 배우기로 했다.

“그리고 에밀리는 내일 입고 나갈 옷 싹 준비해. 무기는 내가 손 볼게.”

“오케이!”

“아, 그리고 남은 애들은 그동안 차에서 이거저거 빼먹고, 쓴 거 많은데 창고에서 물건 꺼내서 싹 채워 넣자. 일단 물물교환용으로 쌀이랑 소주, 소금은 필수고.”

“아, 그거 제가 애들 데리고 할게요. 안 그래도 오늘 자 물자 점검 정리해야 하니까요.”

가야가 나서서 다른 애들과 같이하겠다고 일어났고, 각자가 내일의 루팅을 위해 준비했다.

***

그렇게 아침이 되어서 떠나는 길.

무전기도 없는 장거리 길을 떠나는 자리에서 김준과 에밀리, 은지가 모두 짐을 챙기고 자리를 잡았다.

“에밀리랑 은지라….”

생각해 보니 이렇게 둘이서 움직인 건 진짜 못 본 것 같았다.

“나는 괜찮아. 은지만 신경 안 쓰면!”

“…별로 신경 안 써.”

뒷좌석에 앉은 은지는 자기 할 일만 하겠다는 듯이 석궁을 매만지고, 어제 김준이랑 같이 만든 화살 더미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한다.”

김준은 기름을 확인하고 캠핑카의 액셀을 힘껏 밟았다.

경쾌하게 나가는 오전부터 시작하는 투어링.

자주 가던 길목에서 좀비는 보이지 않았고, 사람의 손길이 끊겨 망가진 건물들은 언제봐도 을씨년스러웠다.

“준, 거기 농장은 커?”

“많이 크지. 명국이네 네 배는 될걸?”

“와우~”

에밀리가 눈을 반짝였고, 은지는 뒷좌석에서 조용히 화살을 체크하다가 넌지시 물었다.

“중간에 어디 들리거나, 루팅할 곳은 있나요?”

“어, 휴게소가 하나 있어. 소주랑 생수 같은 건 챙겼는데, 잡화상하고 이거저거 있거든? 다 썩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소금은 문제없고, 식초도 밀봉하면 2년까지는 버텨요. 식용유 같은 것도 깡통으로 된 거면 오래갈 거예요.”

“음~음~ 그래, 그건 있을 거야. 남겨 놓은 게 많거든.”

그 일대에 새로운 생존자가 나와서 다 털어가지 않았다면, 그때 이후 방치된 휴게소의 물자가 그대로 있을 거다.

절로 진입하는 덕원산 길을 지나쳐 고가도로로 진입했을 때, 에밀리와 은지 모두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졌다.

“오~”

“으음….”

“이쪽은 나니카나 마리가 많이 왔었지.”

“완전 데스 로드… 죽음의 도로네?”

“영어랑 한국어 둘 중 하나만 해.”

“예스! 그럴게!”

지금건 일부러 한 거다.

김준은 속도를 줄이면서 장애물 코스를 넘어가듯이 불에타고, 들이박아 찌그러진 차들을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이미 몇몇 차는 녹이 새빨갛게 슬어서 고철로도 못 쓸 수준이었고, 좀비화가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 죽은 시체는 이미 백골화가 된 지 오래였다.

“으스스~ 하네? 얼마나 더 가야 해?”

“1시간만 더 가면 휴게소 나와.”

“후~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좀만 참아.”

그렇게 나가고 싶다고 해서 데려온 에밀리.

근데, 오늘 하루 혼자 흥얼거리거나 옆의 경계를 안 서고 김준만 바라보거나,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는 등 영 집중을 못 했다.

“우리 놀러 나온 거 아니야. 정신 좀 차려.”

“오케이!”

김준한테 한 소리를 듣고 나서야 다시 무기를 잡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에밀리.

그사이 김준은 S자로 계속 차를 피해가면서 속도를 올렸다.

좀비 없이 그냥 장애물만 지나친 캠핑카는 예상 시간 안에 휴게소에 도착했다.

햇볕은 쨍쨍 쬐고, 디지털시계는 12시를 갓 넘겼다.

“소사벌에서 아산 가는데, 2시간이나 걸리니….”

길만 잘 뚫리면 30분이면 도착할 곳을 겨우겨우 서행으로 도착한 김준은 일단 주변부터 살피고 나왔다.

“화장시일~!!”

에밀리가 차에서 나와 뒷좌석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반면 안에 있던 은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폈다.

“조용하네요?”

“한 번 쓸었던 곳이거든.”

“저 가운데 그을린 땅은 뭐예요? 불 났었나?”

“어, 내가 미끼로 장작 태우면서 좀비 잡아댄 곳.”

“그렇군요.”

은지는 김준과 같이 바깥 경계를 서면서 주변을 살폈다.

설마 하니 마리, 도경, 나니카 등이랑 와서 세 번 넘게 쓸어 버린 곳인데 또 좀비가 나오겠냐마는…

쨍그랑- 와장창창!!!

“!?”

크어- 크어어어어어!!!!

“어?”

“씨발!”

휴게소 정문에서 얼마 남지도 않은 유리창이 깨지면서 조각들을 뒤집어쓴 좀비가 뛰쳐나왔다.

공기총을 든 김준과 석궁을 든 은지 둘 다 한 곳을 노렸고, 그 뒤로 스멀스멀 다가오는 좀비들이 보였다.

“은지야! 차 안으로!”

“네!”

에밀리가 있던 조수석을 은지가 잽싸게 점거하고 들고 있던 석궁을 창밖으로 내밀었다.

“응? 뭐야? 좀비?”

“저거는 이럴 때 화장실에… 아, 됐다!”

“나, 나왔어! 저기 보이네.”

에밀리는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자기 무기는 조수석에 있으니 다른 것을 찾았다.

근접용으로 지팡이와 락스 분사기 정도는 있었지만, 그걸 여기에 쓸 순 없었다.

“에밀리! 주변 살펴!”

“오케이!”

에밀리 대신 석궁 두 자루를 가진 은지는 유리 조각이 온몸에 박힌 채 미친 듯이 달려드는 좀비를 침착하게 겨눠다.

쌔애애애애액-

파각!!!

바람을 가르며 무서운 속도로 날아간 나무 화살은 달려든 좀비의 머리를 정통으로 꿰뚫어 버리며 쓰러트렸다.

부우우웅-

그사이 김준은 바로 차를 틀어서 자신 쪽으로 돌렸고, 공기총을 들어서 다른 좀비를 향해 머리를 겨눴다.

찰칵-

띵-

언제 들어도 청량한 압축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연지탄이 뒤이어 달려오는 좀비의 눈을 뚫어 버렸다.

얼굴을 부여잡으며 버르적거리는 좀비를 향해 한 방 더 발사해서 확실히 쓰러트렸다.

아무리 공기총이 살상력이 약하다 하더라도 제대로 맞추면 고라니까지는 잡을 수 있는 무기였다.

“캬아악! 캬악!”

“크롸아아아아악!!!”

그동안 어디 숨어 있다 이제 나온 건지 휴게소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는 좀비들을 보고 김준은 공기총 옆에 엽총과 권총까지 전부 쓸 준비했다.

빠각-

“!?”

그때 뒷좌석에서 날아간 너트 하나가 좀비 머리통을 깨부쉈다.

“새총 오랜만에 쓰네.”

기기기긱- 끼이익- 파앙!

창살 너머로 힘껏 당긴 새총은 에밀리가 쥐었던 너트를 빠르게 발사했고, 뒤이어 다른 좀비 한 놈도 머리통이 박살 났다.

“나 잘한다니까?”

은지가 석궁으로 잡은 만큼, 에밀리는 새총을 써서 똑같이 맞춰나갔다.

그사이 조수석에서 반대쪽에 선 은지는 몇 마리 더 잡고 싶었지만, 나머지는 김준과 에밀리가 전부 처리했다.

오자마자 휴게소에서 대기하고 있던 좀비를 잡고나니 순식간에 탈진할 것 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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