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292화 (292/374)

김준은 여느 때와 같이 하루를 보냈다.

그 하루라는 게 미모의 아이돌들과 노닥거리다가 끝난 밤이었다.

“그러니까~ 은지랑 하는 건 뭐가 다르냐고?”

“아, 쫌! 그런 것 좀 물어보지 마!”

에밀리는 눈웃음을 지으면서 김준에게 은지와의 섹스에 대해 계속 추궁하고 있었다.

“은지는 그런 거 절대 말 안 한단 말이야. 어떤 스타일인지 알아야 나도 좀 할 텐데.”

“경쟁하냐?”

“은지 때문에 나를 안 찾잖아.”

요새 섹무새 모터가 다시 가동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섹스섹스 이야기해대는 에밀리.

그러면서 슬금슬금 다가와 김준 옆에 착 달라붙어서는 찰랑이는 금발의 머리를 김준의 어깨에 가져다 댔다.

민트향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올라올 때, 김준은 한숨을 쉬면서 조용히 그녀를 토닥였다.

“일찍 들어가 자.”

“시러어~”

오늘 밤 끝장을 보겠다고 다짐한 에밀리를 보며, 얘를 어째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빵- 빵- 빠아앙-

“!?”

“어머, 이 시간에?”

김준의 옆에서 껌딱지처럼 붙어 있던 에밀리는 바로 일어나서 커튼을 치고 바깥을 바라봤다.

바깥에는 깜빡이를 켜고 클락션을 연신 눌러대는 트럭이 있었다.

“페들러(peddler)야.”

“페… 뭐?”

“트럭 장사라고.”

김준은 조용히 에밀리의 옆에 다가와 차를 확인하고는 조용히 나갈 준비했다.

“이 시간에 뭔 일이래. 급하게 뭐 필요한 거라도 있나?”

김준 대충 챙기고서 내려갈 때, 에밀리는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같이 물물 교환하러 향했다.

“아이고, 아직 안 잤네?”

“아니, 왜 이 시간에 오셨어요?”

“하핫, 당장에 물물교환할 게 있어서 말이야! 물건부터 확인하게.”

행상인 양근태는 밤늦게 트럭 조명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와서는 안에 있던 짐을 내려놨다.

“열어봐.”

제법 묵직한 스티로폼 박스를 하나 건네줘서 김준이 그걸 문 앞에서 뜯었을 때, 안에 있는 것은 아직 살아서 펄떡이는 우럭에, 농어에 전갱이까지 있었다.

“오우!”

“싱싱하지? 여기 꽃게 하고 쭈꾸미도 있어.”

양근태 사장이 박스 하나 더 건네주자 그건 에밀리가 받아서 바로 뜯었다.

“와~ 크랩! 옥토퍼스!”

“저 아가씨는 외국인?”

“Yes, I am!”

일부러 영어로 대화하는 에밀리는 양근태 앞에서 브이 자를 그렸고, 김준은 다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 필요한 것들이네요?”

“내가 이거 갖다 팔려고 했는데, 필요한데가 있어야지. 고기 안 먹는 스님들 드릴 수도 없고, 다리다친 그 부부네도 생선 잘 안 먹는다고 하더라고. 게나 몇 마리 계란하고 바꿨어.”

“그래서 밤중에 이거 팔려고 여기까지 왔군요.”

“필요한 게 브래지어랑 빤스, 양말, 티셔츠인데 좀 있어?”

“그거 우리 엄청 많아!”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 안으로 쪼르르 달려갔고, 김준은 피식 웃으면서 담배를 건넸다.

두 남성은 늦은 밤 담배를 나눠 피면서 현재 상황 이야기했다.

“낚시꾼이 없으니까 서해안 일대가 완전 노났어. 밀물에 전갱이떼가 바글바글 하다고 하더라.”

“우리도 바다를 가 봐야 하나….”

“안 가 봤어?”

“예~전에 한 번 갔었어요. 그 서해안 관광단지.”

김준에게는 잊고 싶은 기억 중의 하나였다.

라나를 데리고 바닷가가 있는 관광단지에 가서 횟집 거리에서 수조 다 깨부숴서 살아 있는 생선들 몇 마리 건지고, 소금과 고추장 푸대 챙기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좀비에 리얼로 죽을뻔했다.

그 뒤로 바닷가 일대는 아예 발을 끊었고, 양근태가 와서 이렇게 생선을 제공하는 것만 물물교환으로 먹곤 했다.

“나중에 통발하고, 낚싯대 챙겨줄 테니까 한 번 가 봐.”

“그러다 거기 산다는 어부 양반들 만나면 바로 직거래할 수 있겠네요.”

“찾을 수 있으면.”

“고깃배 몬다는 거 보면 대충 어촌에 있을 거 같은데….”

김준은 담배꽁초를 벽에 문질러 껐다.

그때 에밀리가 안에서 물물교환용 옷만 챙기는 게 아닌지 약간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아, 언니! 갑자기 깨워서 무슨 스시를 만들래?”

인아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거 보니 에밀리가 생선 보고서 회 떠달라고 깨웠나보다.

그렇게 소란 속에서 박스 하나를 들고 온 에밀리.

김준은 안에 있는 뜯지 않은 남녀 속옷과 티셔츠, 양말등을 확인하고는 양근태에게 건네줬다.

“적으려나요?”

“흐음~ 담배로 있으면 몇 보루 줘.”

“에밀리. 창고 가서 가져와.”

“오케이~”

에밀리가 쪼르르 달려가 1층 창고에서 담배를 보루단위로 가져 왔고, 그것까지 건네줘서 어떻게 교환을 마쳤다.

“담에 또 싱싱한 해산물 있으면 가져올게. 나도 가 봐야겠구만.”

“조심히 들어가세요. 좀비 튀어나올지도 몰라요.”

“장사 한두 번 하나? 걱정 하덜 마.”

양근태 사장은 에밀리에게 받은 옷가지와 담배를 짐칸에 싯고는 손을 흔들면서 떠났다.

그리고 해산물을 챙기는 도중에 에밀리는 싱긋 웃으면서 활어가 담긴 박스를 들었다.

“인아는 못 하는데, 은지가 스시 떠준대.”

“그걸 기어이 깨워서 요청했어?”

“다른 애들도 깨울까?”

“후우~”

김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꽃게와 쭈꾸미가 든 박스를 들었다.

***

그렇게 늦은 밤에 자던 애들 전부 깨워온 에밀리.

회 안 먹는다고 한 도경이나 몸 안 좋으니 그냥 잔다고 한 마리 등을 제외하고 다들 야식으로 모듬 회를 즐겼다.

“자~ 다 떠왔어요.”

탁-

“그레이트!”

우럭과 농어를 회친 접시가 올라오자 에밀리부터 라나와 가야 모두 눈에 하트가 생겼다.

“자, 먹자!”

“네에~”

자다 깬 보람이 있는지 접시 위에서 수많은 젓가락들이 부딪혔다.

그 와중에 은지는 밥까지 꺼내서 조용히 식초와 참기름을 넣고 비벼댔고, 손가락만한 사이즈로 올려 회 한 점을 올린 우럭 초밥을 두 점 만들었다.

“드세요.”

“어, 어!”

즉석 오마카세로 만들어진 초밥을 김준에게 먼저 건네준 은지.

그리고 스시 노래를 불렀던 에밀리 역시 눈을 반짝이며 기다렸다.

“언니 밥 조금만 주세요.”

“여기, 가져가.”

부엌에 달려갔던 인아가 가져온 그릇에는 당근부터 깻잎, 마늘, 상추, 무순을 썰어서 가져 왔고 은지가 만든 밥을 푸고 회도 몇 점 올렸다.

“회덮밥!”

“완~전 대박!”

인아가 초고추장을 넣고 싹싹 비벼대자 옆에 있던 라나와 나니카가 바로 수저를 들었다.

“크~ 좋다.”

초밥에 회까지도 한 점씩 먹으면서 소주 생각이 나는 김준이었고, 결국 오늘도 한 병 까게 되었다.

***

“내일이네?”

“네, 내일이죠.”

이튿날 아침은 어제 회를 뜨고 남은 서더리로 만든 매운탕이었다.

어제 소주의 숙취가 있던 아이들이 한 숫갈씩 먹으면서 쓰린 속을 달래는 와중에 김준과 마리는 내일의 계획을 준비했다.

“미군 부대 갈 준비하자.”

“오케이!”

에밀리는 다시 나갈 생각에 싱글벙글하면서 아침 먹은 뒤로 바로 준비하기로 했다.

김준 밥 먹고 일어나서 요 며칠 새 깎아 놓은 화살을 챙기고, 공기총에 공기도 에어 컴프레셔를 돌려 하나하나 채우고 점검했다.

“이번엔 진짜 공기총 위주로 써야지.”

산탄은 다음에 수급하러 가기 전까지 좀 아끼기로 했고, 공기총과 권총 위주로 챙기기로 했다.

김준 말고도 에밀리와 마리 역시도 각각 준비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마리가 구급 키트를 준비했고, 에밀리는 바깥에서 새총하고, 석궁 사격 훈련하면서 일격필살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김준 역시 차를 한 번씩 손보면서 내일은 험비를 쓰기 위해 차에 기름을 넣고 내부 청소를 한 번 했다.

하루 일과가 내일의 미군부대 탐사를 위해 준비하는 자리.

내일을 위해 오늘은 술도 안 마시고 일찍 자려는 순간, 밤에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치직- 치직- 준아! 김준!]

“어, 뭐야? 은기?”

[치직- 어, 그래.]

“절에 무슨 일 있어? 이 시간에 연락을 다 하고.”

정토사에 있는 은기의 연락에 김준은 무전기를 가까이 댔다.

[치직- 위급환자야! 칼 맞은 환자인데, 상처가 꽤 심하다!]

“뭐? 야, 무슨 절에 칼 맞은 환자가….”

[치직- 여기 치과의사 아저씨가 지혈하고 꿰맨다는데 손이 부족하대. 거기 의사 있다며? 좀 도와줄 수 있어?]

그걸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가야와 마리.

마리는 칼에 맞은 상처라고 하길래 황급히 내일을 위해 챙긴 응급키트를 챙겼다.

“무슨 환자인지는 모르고?”

[잘 모르겠어. 그 행상인 아저씨가 데리고 왔는데, 친구래.]

“양 사장님 친구라… 일단 기다려 봐.”

김준은 무전을 마치고서 응급키트를 가진 마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환자라네?”

“칼에 맞은 거면 엄청 위험할 텐데… 타이하고 항생제는 준비했어요.”

“은기 녀석 O형이니까 거기서 수혈하면 되겠다.”

“아, 네! 그렇군요.”

김준은 마리를 데리고 왕진 갈 준비를 마쳤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가야 역시도 거들겠다면서 나갈 준비했다.

그렇게 집은 은지가 보라고 하고, 졸지에 늦은 밤 생존자를 치료하기 위에 차에 탄 김준이었다.

상황 봐서 절에서 자고 아침에 집에 들렀다가 바로 미군부대로 향할 수도 있었다.

***

빠르게 절에 도착한 김준은 늦은 밤에 기다리고 있는 스님들의 인사를 받았다.

“환자는 어딨죠?”

“안쪽에서 치료 중입니다.”

성정 스님이 조용히 가리키자 마리는 포장된 수술 장갑을 챙기고 손을 잔뜩 씻고, 소독제까지 발라서 철저하게 체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

안에 들어간 마리가 화들짝 놀랐고, 들어갈 수 없는 가야와 김준은 누구인지 몰라도 위중한 환자라니 신경이 쓰였다.

“아, 김 사장!”

“!?”

김준은 멀리서 다가온 양근태를 보고서 인사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쩝, 면목 없구만. 갑작스럽게 그렇게 됐어.”

“어쩌다가 칼을 맞았답니까? 혹시… 물린….”

“아, 그건 절대 아니야! 2시간 동안 나랑 같이 차 타면서 확인했어. 그랬으면 나도 물렸겠지.”

아닌 게 아니라 어두운 밤에 양근태의 옷가지에도 피가 여기저기 묻어나 있었다.

모르는 곳의 생존자들끼리 칼부림이라도 있었다니, 김준 처지에선 기가 찼다.

“대체 뭐 하다가 칼을 맞고….”

“부하 새끼들이 설친거지. 큰형님 제끼겠다고.”

“…예?”

“신릉면 쪽에 있었거든. 그 제일주류유통쪽….”

“….”

“나랑은 어릴 때부터 친구였어.”

김준은 그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그러고는 허리춤에 챙긴 권총을 꺼냈다.

“어, 어엇!? 자네 왜 이러나?”

“아니, 제일파 그 깡패가 칼 맞은 걸 여기로 데려왔어요? 제정신입니까?”

“이, 이 사람! 그 총 내려놓게!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는 친구야!”

“내려놓긴 지랄!”

김준은 권총을 들고서 마리와 치과의사가 치료할 필요 없이 만들어 주기 위해 방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문고리를 잡고 바로 열어 젖혔다.

드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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