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팅 다녀온 것으로 저녁거리를 만들고, 나니카가 만든 그 시오라멘으로 식사를 마쳤다.
짭짤한 게 김준 입맛에 잘 맞는 다면서 칭찬하자 연신 좋아했던 일본 소녀….
그리고 식사 이후에 각각 할 일하고서 밤이 되었을 때, 김준은 모두를 불러 모았다.
“술상이라도 차리고 먹으면서 하지.”
“안 돼. 지금, 이야기는 술 먹고 들을 게 아니야.”
“흐응~”
에밀리가 투덜거렸지만, 김준은 대꾸하지 않았다.
치익-
오랜 이야기할 거라는 듯이 재떨이 놓고 담배 한 대를 태우면서 지도를 펼친 김준은 오늘 들었던 이야기를 모두에게 해 줬다.
몇몇 눈이 확 커지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고, 다른 몇몇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총을 쓰는… 대규모 생존자 일행이 진짜 있겠어요?”
그 부정적인 반응 중 한 명인 은지.
그녀는 김준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생존자를 봐 왔고, 찾아다닌 기록을 봤지만, 그 이상으로 대규모 생존자는 없을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그랬으니 그냥 어디 가지 않고 여기 평생 남는다고 했던 것일 거다.
“흐음~ 모르는 일이예요. 혹시 알아요? 진짜 영화같이 대규모로 군대가 와서 남은 좀비 확! 쓸어버릴지.”
반면 라나는 눈을 반짝이면서 어쩌면 길었던 좀비와의 싸움이 끝날 거라며 희망찬 얼굴했다.
김준은 담배를 뻐끔거리면서 다른 아이들에게도 말했다.
“다들 말해 봐? 생각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흐으응~ 조만간 아미들 만나러 갈 것도 있는데, 정반대쪽에 있는 생존자란 말이지? 진성시?”
“여기네. 톨게이트 가기 전이라고 했으니까….”
에밀리의 중얼거림에 가야가 바로 김준이 표시한 곳을 가리켰다.
그리고 인아 역시도 그걸 보고 물었다.
“오빠, 여기저기 맞죠? 고물상 물건 털다가 좀비가 집에 들어온다는 말에 급히 돌아갔던 곳.”
“어, 맞아. 거기 고물상에서 톨게이트 지나 30분만 달리면 진성시내야.”
“와… 이렇게 보니까 진짜 얼마 안 되는 거리인데….”
“옛날에는 시내버스로 두 동네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어.”
진성시는 식품공장과 각종 농장이 많은 동네라 비교적 인구가 많은 소사벌 시까지 통근하며 같은 생활권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그 미군 부대 다녀온 다음에 바로 진성시로 가는 거예요?”
“일단 미군 부대 다녀오고… 후우, 잠깐만 정리 좀 해보자.”
김준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펜이랑 노트를 펼쳤다.
“자, 10일째 될 때 다시 온다고 했으니까 미군부대쪽은 곧 갈 거야.”
“그때도 나지?”
“어, 에밀리는 어쩔 수 없이 가는 거고, 이번에도 그다음은 마리.”
“네. 저도 준비할게요.”
에밀리랑 마리가 자연스럽게 따를 때, 김준은 거기에 대고 펜으로 연신 톡톡 쳤다.
“미군부대 갈 때, 물물교환 할 법한 거도 생각해보자. 걔네들이 슈퍼 히어로처럼 그냥 도와줄 리도 없고 부대 안에도 모자란 건 있을 거잖아?”
“음~ 글쎄요? 미군이 부족한 게 뭐가 있지?”
“음식이야 통조림으로 많이 있을 테고… 무기도 뭐….”
“그 미군중령 수첩 보면, 가족들이 머무는 숙소도 있다잖아?”
모두가 한마디씩 할 때 에밀리가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군인이면 여자 필요한 게 딱일 텐데.”
“….”
“그렇다고 나는 안 되고.”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하면, 너 빼고 얘기한다?”
“아니야, 준! 이거 그냥 뻘소리가 아니라고!”
에밀리는 자기가 생각한 것을 말하기 위해 펜을 집고서 지도에 표시된 미군부대 자리를 톡톡 쳤다.
“봐바. 얘들은 여기에 있고, 저번에 샛길 가기 전에 그 공단면? 거기 댄서들 있잖아?”
“그래서?”
“여기랑 거기 미군부대랑 이어 주면, 걔네들이 여자는 데려가지 않을까?”
“우리가 무슨 그 포….”
‘포주냐?’라는 말을 할 뻔했다가 바로 멈춘 김준이었다.
다른 생존자 여성 일행을 데려다가 미군 부대에 보내는 걸로 딜을 본다니.
어디서 그런 저세상 협상 방식을 꺼냈냐며 묻고 싶은 에밀리의 멘탈이었다.
“나도 들었거든? 그 가게 외국인 댄서들 거기 계속 못 있겠다고 힘들어한다는 거.”
“그래서? 걔들은 조폭한테 시달리다가 겨우 구출된 애들이야. 얘기도 못 꺼내.”
“이야기는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됐어! 그 이야기는 본인들이 직접 안 말하면 끝!”
김준은 더 입씨름할 것 없이 여기서 딱 잘라버렸다.
그런 상황 속에서 조용히 중재를 시도한 건 가야였다.
“우리가 절을 통해서 생존자 여럿 보냈지만, 미군 부대는 이야기가 달라. 그건 진짜 미군 생존자가 있으면 그때 말하자고.”
“가야 언니 말이 맞아요. 우리가 뭐라고 그 사람들한테 그런 걸 말해?”
마리까지 거들자 에밀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 말도 안 했다.
에밀리의 제안 이후로 다시 나온 이야기는 미군 부대 탐사 이후 그다음이었다.
진성시도 이야기를 들어 보면 충분히 탐색해볼 만한 곳이었고, 설사 생존자가 없고 그때의 괴성은 그냥 잘못 들은 거라 쳐도 가 볼 가치는 있었다.
적어도 동탄 때처럼 수많은 좀비들이 달려드는 것보다는 안전할 테고, 농가가 많다고 했으니 우리를 벗어난 닭이나 돼지, 소 같은 거라도 있으면 잡을 수 있을 거다.
“미군 부대 다녀온 뒤로 한 번 중간 점검하고 움직여야겠어.”
“중간 점검?”
김준은 조용히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 올려놨다.
갑작스럽게 권총을 보고 흠칫한 몇이 있었지만, 실린더를 열자 안에는 총알이 없었다.
“슬슬 총알도 다시 채울 때가 됐어.”
“아, 맞아. 총알….”
“뭐, 권총탄은 아직 충분해. 문제는 엽총이지.”
산탄은 너무 많이 써서 슬슬 줄이고, 공기총 위주로 써야겠다고 다짐은 했으나 엽총이 문제였다.
“주변에 총알 구할 때 있어요?”
“석궁 구한데 가야지. 클레이 사격장.”
“아~ 거기 가면 그….”
마리가 뭔가 생각난 듯, 무릎을 치자 김준 역시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거기 소랑 닭키우는 대가족 있는데, 거기가서 고기 좀 구해와야지.”
결국 진성시까지 가기 전에 준비해야 될 건 총 세 가지였다.
하나는 며칠 동안 차에서 버텨도 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총알과 무기.
둘째는 김준이 그렇게 진성시까지 갔을 때, 만약을 대비해서 장기생존에 필요한 고기. 신선한 생고기 뿐만 아니라 장기 냉동보관이나 아니면 육포로 말려놓을 정도의 양.
셋째로 그 둘을 구한 다음에도 혹시나 진성 쪽에 생존자 일행을 발견시 즉시 물물교환이 가능한 물건.
“일단 총알이랑 고기 확실히 구비한 다음에 진성으로 가자. 그전까지 준비하는 시간이야.”
“찬성.”
“네, 그렇게 하죠.”
“루팅 많이 다녀야겠네….”
“아산도 내려가야 하고. 그 할아버지는 다리 괜찮으시려나.”
김준이 계획을 말하자 그곳들을 들러봤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언급하면서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계획은 결정됐다.
“좋아!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다들 들어가 쉬고.”
이야기가 끝났을 때, 도경과 나니카는 샤워하러 떠났고, 라나도 아픈 다리 계속 두들기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에밀리 역시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으면서 옥탑방으로 올라가고, 가야가 뒷정리하고 있을 때, 김준은 조용히 남아서 앞으로의 계획을 두고 시나리오를 그려 나갔다.
여러모로 할 일은 많았고, 앞으로도 나가서 좀비랑 싸울 일은 많을 거다.
“집에 있는 나무 깎아다가 화살도 잔뜩 만들고, 새총도 새삥으로 만들어야겠다. 받침대 있는 거로….”
단순히 길 가는 것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출발 전부터 철저한 준비해서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움직이는 게 목적이다.
“날도 더운데 챙길 것도 많고, 냉수건도 잔뜩 구비하고, 차도 한 번씩 손질해야 하는데….”
결국 준비는 김준이 다 해야 했다.
“후우~”
그렇게 애들이 떠난 뒤로 거실에 앉아 생각이 많은 상황의 김준.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은지가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소주 엄청 땡기죠?”
“….”
“술상은 지금 만들 수 있어요. 냉장고도 푸짐하고. 오늘 보니까 통조림도 잔뜩 챙기셨네요?”
“어, 음….”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오늘 가져온 것들을 떠올리면서 은지에게 말했다.
“은지야, 골뱅이 소면으로.”
“네~ 네~”
은지가 바로 주문받고서 거실로 갔을 때, 같이 있던 인아가 그 소리를 듣고 찬장문을 열었다.
“소면에, 식초에, 참기름에… 있을건 다 있네요.”
“냉장고에 채소도 많아. 오이는 없지만….”
“그… 언니.”
“!?”
인아가 은지를 불렀고, 그녀는 후배가 무슨 말을 하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아는 조용히 다가와 은지에게 뭔가에 대해 속삭였다.
처음에는 그 소리를 듣고 조용히 눈이 가늘어졌지만, 이후 무슨 말인지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은지.
“뭐, 그런 상황이라면….”
“이해해 주시나요?”
“쯧, 솔직히 모를 감정이야.”
김준이 기다리고 있는 동안 요리 담당이었던 두 아이돌은 뭔가를 계속 속삭였고, 그사이 김준은 담배 한 대를 더 물면서 소주에 골뱅이 소면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