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음.”
오늘도 아침이 되었고,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은지였다.
이불을 걷고 있어난 그녀의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었다.
그녀와 같이 침대에 누워 잠든 김준은 깨어날 기미가 안 보였다.
“….”
생리통이 끝난 상태에서 은지는 김준하고 약속했던, 루팅 나가기 전이나 다녀온 후 중에 눈 맞을 때마다 자기하고만 한다는 약속을 상기시켰다.
그렇게 어젯밤은 불같은 시간을 보낸 두 남녀였고, 은지는 입과 자궁에 엄청난 아기씨를 받아 냈다.
‘찝찝해….’
아직도 입안에 정액이 붙어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욕실에 들어가 샤워부터 시원하게 한 은지였다.
그러고는 바닥에 널브러진 속옷을 챙기고, 서랍장에 있는 새것을 꺼내 갈아입고는 김준의 티셔츠를 걸친 채 오늘 아침을 위해 움직였다.
“해장거리 만들어야겠다.”
그녀는 욱신거리는 아랫배를 부여잡으면서 아침 식사 준비했다.
칼국수가 잘 끓여져 모두가 해장으로 한 젓가락씩 할 때였다.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는 거야?”
에밀리의 물음에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일과를 말해줬다.
“사흘 있다가 미군부대 가 봐야지. 뭐 답장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흐응~ 그러게?”
“오빠, 3층 세면대 또 물이 안 내려가는데 봐주세요.”
“또 머리카락 막힌 거겠지. 먹고 올라갈게.”
라나는 김준의 말에 활짝 웃으면서 머리 위로 꽃이 펼쳐졌다.
***
오전에 막힌 수도 뚫어 주고, 한 번씩 집 주변을 둘러본 김준은 런닝머신에 올라타서 달렸다.
최근 살도 좀 빠지고, 힘이 달리는 것 같아서 루팅이 없는 날에는 싸이클이랑 런닝에 매달렸다.
선풍기 하나 앞에 두고 달려달 때, 그걸 조용히 지켜보던 에밀리가 슬며시 싸이클에 올라탔다.
“!”
엉덩이를 쭉 빼면서 페달을 밟아대는데 김준의 눈높이에 맞춰진 뒷채였다.
“나도 요새 살쪘어.”
“원래 하체 비만이면서….”
그 순간 에밀리가 확 돌아보면서 쏘아봤지만, 김준은 묵묵히 런닝머신을 달렸다.
그날의 하루는 특별할게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후가 되었을 때, 갑자기 무전기가 울렸다.
“오빠, 이거!”
가야가 들고 온 무전기에는 지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김준이 런닝머신에서 내려와 받았을 때, 그 목소리는 아주 반가운 친구의 것이었다.
[치직- 준아? 나, 은기야.]
“어, 왜? 발전기 안 돌아가?”
[치직- 아, 아니야. 그거 말고 할 말이 있어서.]
“음?”
김준은 뭔 소리인가 싶어서 귀를 기울였다.
[치직- 어제 너희 간 뒤에 있잖아. 밤에 이상한 일이 생겨서 아무래도 말해야 될 거 같아서.]
“이상한 일? 좀비 변종이라도 나왔어?”
[그건 아니고, 어제 새벽까지 계속 총소리가 들렸어.]
“뭐?”
총성이라는 말에 김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총성이 아니라 폭죽? 자세히는 모르겠다. 치직- 확실한 건 밖에 나가서 살폈으면 불꽃도 봤을수 있어. 조명이 하나도 없잖아!]
“허어….”
김준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머리를 긁적이다가 결심한 듯 말했다.
“기다려. 나 지금 갈 테니까 만나서 자세히 들어볼게.”
[치직- 어, 어어?!]
“가서 듣는 게 낫겠다. 혹시 모르니 주변도 살피고.”
[아, 그래. 스님에게 말해둘게.]
김준은 계획에 없던 정토사 방문을 준비했다.
그걸 듣고 있던 가야와 에밀리는 조용히 김준을 보고 물었다.
“또 나가는 거야?”
“거기 다시 가는군요.”
“애들 다 불러봐.”
김준은 8명을 다 모은다음에 딱 한 마디 했다.
“자신이 최근에 이빨이 좀 아프거나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
서로가 보고서 어리둥절하던 와중에 나니카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기… 최근에 어금니가 아파서….”
“아, 해 봐.”
김준은 나니카 앞에 다가가 입 벌려보라 했고,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서 입안을 보여 줄 때, 오른쪽 어금니 하나가 검은 줄이 새겨졌다.
“썩었네~ 너같이 가자.”
“준, 나! 이빨 시려.”
“밤에 얼음소주 작작 먹어.”
“쳇!”
나갈 생각만 하고서 손을 들었던 에밀리는 김준의 매몰찬 대답에 혀를 찼다.
애초에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가슴골 들이댈 때부터 김준의 인상이 찌푸려져 있었다.
그때 가야가 조용히 말했다.
“작년에 그 절에서 스케일링 받고, 슬슬 다시 할 때 됐는데….”
“그럼 가야도 포함, 나니카랑 짐 챙겨라.”
“네, 오빠!”
가야랑 나니카가 움직이고 있을 때, 김준은 안방에서 엽총을 꺼내면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제 다녀온 뒤로 땀에 전 프로텍터를 섬유유연제에 담가 빡빡 밀어내고, 말린 상태였다.
김준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챙기고, 오늘날씨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되도록 나가지 말고 바로 가야지.”
***
그렇게 갑작스럽게 나간 길에 정토사까지는 다이렉트로 도착할 수 있었다.
불과 어제 좀비를 한바탕 쓸고 간 곳이라 살아 있는 녀석은 없고 총 에 맞아 땅바닥에 널브러진 존재들만 있었다.
그렇게 절에 도착한 김준 일행은 이번에도 후다닥 달려오는 아이들을 안아줬다.
“어, 다른 언니가 왔어요!”
“아하하….”
어제의 도경이 대신 나니카가 오자 바로 알아차린 소율이와 하준이.
나니카는 멋쩍게 웃으면서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조용히 절 안의 생존자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 네, 네….”
은기 역시 크래쉬 걸 센터 대신에, 헥사코어의 일본인 멤버가 인사하는 상황에 멋쩍게 인사하면서도 김준을 바라봤다.
‘여복 터진 녀석….’
“아빠, 저기는 예쁜 언니들 많아.”
딸아이가 다가와 아빠 다리 잡으면서 그 말을 하니 더 어색한 상황이었다.
***
“치익-”
따로 나와 담배를 한 대 문 김준은 불을 붙이고는 은기에게도 한 대 줬다.
두 친구가 맞담배하면서 여자애들이 치과 치료 받을 때까지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밤에 뭔 소리를 들은 건데?”
“총소리인지, 폭죽인지는 모르겠고… 새벽에 막 펑- 펑- 소리 들리더라.”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잘못 들을 상황이 되나? 누가 있든 간에 그런 소리 낼 수 있는데 어딨어?”
맞는 말이었다.
그게 총성이건 폭죽이건,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다른 쪽에서 생존자가 자신들을 알릴 만한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이거 큰데… 그래서 소리가 난 쪽은 어느 쪽인데?”
“저~ 기 저쪽.”
은기가 산 중턱에서 가리킨 곳은 김준 일행이 사는 곳과는 전혀 반대쪽인 곳이었다.
거기 한 가지 더 가능성을 가진다면, 김준같이 트럭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는 행상인 양근태인데, 그 양반도 공단면 쪽이니 굳이 저쪽까지 가서 소란을 필 리가 없었다.
“저기가 고속도로 IC있는 곳이잖아?”
“어, 톨게이트 안 타고 직진하면 진성시.”
“진성시….”
인구는 소사벌보다 적었지만, 지난번에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뭔가 묘했다.
“거기 고위공무원들 몰려 있다고 했지?”
“어, 그 양반들이 살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총이라면 그쪽에 군부대가 예비군훈련장인데, 거기라면 흐음-”
“굳이 군인만 총 쏠 리가 없잖아?”
은기의 말에 김준은 그를 바라봤다.
“경찰도 있지. 말했잖아. 신축 경찰서 준공식이라고.”
“아~ 그래, 경찰서도 있겠네.”
신릉면의 일반 파출소야 권총이 전부였지만, 경찰서라면 준공식 때 쓸 총이 분명히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런 것을 다 종합해도 아직 석연치 않은 게 있었다.
“근데 저쪽은 한 번도 안 가 봤는데, 좀비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막 군부대나 경찰서가 바리케이드라면 접근도 힘들 텐데….”
“그것도 문제네. 암튼 살아 있는 사람이 좀 많아야 할 텐데.”
수도권 외곽의 소도시인 소사벌이 이 정도고, 그 위에 동탄 올라갔다가 지옥을 볼 뻔한순간.
아직도 서울을 포함한 대도시는 어떨지 감도 안 잡혔고, 과연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씨팔, 좀비 영화도 1년 지나면 헬기 뜨고, 전차 나와서 군부대가 쓸어 버리고 살아남는데….”
“그러게 말이야.”
아등바등 사는 지금의 상황이 그저 웃음만 나오는 두 친구였다.
어쨌건 김준은 그 이야기를 들었으니 언제고 한 번 진성시로 원정을 떠날 계획을 잡았다.
“며칠 뒤에 미군부대 근처로 갈 거야. 거기에서 생존자 만나고 합류하면 좋은데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미군은 진짜 있으면 좀비 싹 다 잡을 수 있지 않나?”
“봐야겠지. 암튼 당분간은 계속 여기 지내면서 조심이 있어. 좀비 이리로 못 올라가게.”
“올라오면서 봤잖아? 여기 바리케이드 장난 아니게 설치했어.”
“그래도 새총이랑 안장 지팡이 가지고 만 버티긴 힘들지….”
김준은 은기와 같이 다시 절 안으로 돌아왔고, 스님들이 웃으며 인사했다.
“시주께서 주신 발전기가 아주 유용하게 쓰입니다.”
“오~ 이거 잘 만드셨네요?”
전문 목수가 만든 것 같은 조립식 나무 선반은 원래 참선을 하는 골방 안에 있는 발전기를 올려놓고, 바닥에 천을 깔아 진동과 소음을 최소한으로 막고 있었다.
김준은 다음번에 구하면 태양열 집열판이라도 절 지붕에 설치해주겠다고 약속해주고, 다른 아이들을 기다렸다.
잠시 후 치과 치료받은 두 아이들이 나왔고, 오늘은 딱 여기까지가 일과라며 갈 준비하는 김준.
돌아가는 길에도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