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283화 (283/374)

“하, 씨발! 진짜!”

쾅-

삐이이이이이!!!!

“히익?!”

차에 탄 김준이 별안간에 욕을 하며 주먹으로 클락션을 핸들을 내리치자 화들짝 놀란 가야였다.

“오빠! 갑자기 왜?!”

두 아가씨가 화들짝 놀라서 불안해할 때, 김준은 내리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새끼손가락 밑으로 주먹 부분에 피가 묻어나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벌레 다리가 붙어 있었다.

“가뜩이나 더워서 짜증 나는데 모기까지 있다.”

“어우!”

순간 도경이나 가야나 김준의 분노를 두고 그럴 수도 있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아까까지 잡화점에서 시원한 가전제품을 챙긴 뒤로 김준 일행은 그 옆에 있는 슈퍼와 서점까지 가서 책을 털었다.

정말로 챙길 것이 많아서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둔 루팅이었지만, 그만큼 스트레스와 피로가 극에 달한 날이기도 했다.

잡화점에서 챙긴 속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은 아가씨들이었고, 김준 역시도 가죽 재킷에 풀 프로텍트 차림으로 30분을 못 버티고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그나마 차 안에서는 에어컨이 들어왔지만, 그마저도 땀에 절은 옷이 서서히 말라가며 끈적거리는 감각을 도저히 못 참았다.

“하~ 시발! 미안하다, 진짜 오빠가 끈적거리는 걸 도저히 못 참겠다.”

“아, 아니예요!”

“그럴 수 있어! 엄청 덥긴 해요.”

“내가 이렇게 더워했던 게 짬찌 시절 유격훈련 9월 초에 했을 땐데, 지랄같이 훈련 가능 온도 아니라고 모랫바닥에서 굴렀던 게… 어우 썅!”

군 시절 유격훈련의 트라우마가 떠오를 정도의 노가다 상황에 김준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그땐 시발, 10월에도 더웠어! 11월까지 한밤에 매미 우는 소리 들어 봤냐?”

김준이 잔뜩 짜증 난 상태로 말했을 때, 가야는 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기분을 맞추려고 이야기했다.

“알 거 같아요… 저도 예전에 강남 고터 앞에서 9월에 촬영하는데, 카메라 조명에 열대야에 사람 바글바글해서 쓰러질 뻔했어요.”

“후, 그래도 아네? 그거 사람 말려죽이는 짓이야.”

그러자 눈치를 보던 도경이도 하나 이야기를 꺼냈다.

“저기, 오빠! 저도 학교 다닐 때요.”

“엉?”

“배구부 있었을 때, 체력을 넘은 정신력이라고 방독면 쓰고 학교 운동장 몇십 바퀴 뛰었어요.”

“….”

“가장 먼저 쓰러진 애가 코치한테 싸대기맞고요.”

“지랄 났다 진짜.”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이 될 만한 이야기하면서 불쾌 지수가 최고조인 상황을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었다.

김준 역시 이야기를 하던 중 자신이 아까 욕한 게 심했다고 생각한 건지 머쓱해진 얼굴이었다.

“다들 고생하는데, 오빠가 또 미안 하게….”

“아이고~ 아까도 사과했잖아요? 사람이 다 더우면 씨발 소리 좀 할 수 있죠!”

도경이 뒤에서 유쾌하게 넘기자 가야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차 안에 에어컨을 풀로 틀어 점점 달아오른 몸을 식히던 김준은 더 이상의 물자 루팅은 접고 이른 시간에 바로 절로 향했다.

지금 상황이라면, 눈앞에 좀비가 보인다면 깔아뭉개는 것을 넘어서 잘근잘근 짓밟아 납작하게 만들 기세였다.

***

빵- 빵-

“와아아아-”

차 소리를 듣고서 신나게 달려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둘 다 회색의 승복을 입고서 방방 뛰어대는 모습이 더위 속에 지치지도 않나보다.

“아빠! 사람 왔어! 사람!”

“엄마! 엄마!”

“와~ 쟤들 진짜 많이 컸다.”

남자애는 과거 도경과 에밀리가 구했던 하준이고, 여자애는 김준 친구 은기의 딸 소율이었다.

김준이 차에서 내렸을 때, 그래도 산 아래보다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아, 오셨군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허허허, 저희야 뭐 똑같죠.”

노스님과 그의 뒤를 따라오는 성정 스님이 손을 모아 인사할 때, 김준은 가져온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애들이 더워한다길래 좀 준비했습니다.”

“감사한 일이군요. 허나 이곳에 전기가 끊긴 지 오래입니다.”

“발전기 하나 시주하죠. 무소음이니 진동만 잡으면 될 겁니다.”

“그럼 제가 돕겠습니다!”

김준이 왔다는 말을 듣고 온 은기는 반갑게 인사하면서 차를 바라봤다.

“아, 왔구나?”

“시원한 거 가져 왔다. 대신 전기 설치를 해야 해.”

“나도 도울게!”

“밖에서 목공할 사람하고, 설치할 사람이 필요한데….”

“목공이라면 소승들이 하지요.”

성정스님과 명진스님이 팔을 걷어붙였고, 김준은 바닥에 놓으면 돌아갈 때 진동이 있으니 그걸 방지할 선반을 요청했다.

절 안에 합판과 나무는 많이 있었고, 두 스님이 연장을 들고 가서 금방 뚝딱거렸다.

“은기야. 멀티탭 줄 벽에 붙여야겠다.”

“어, 이건 할 수 있어!”

“도경아! 가서 앙카 가져와!”

“네! 앙카요!”

이제는 김준이 앙카라고 하면, 차 안을 뒤적거려 ‘앵커칩’과 피스를 꺼내 왔다.

이이이잉- 기기기긱-

드릴로 앵커칩을 박고 그 안에 전선을 단단이 고정시킨 김준.

혹시라도 비가 올 때를 대비해 최대한 높은 곳에 줄을 매달았고, 선반이 만들어질 때까지, 마루 위에 무소음 발전기를 가져다 놓고, 기름을 채웠다.

그러고는 잡화점에서 가져온 수많은 스마트 선풍기를 미리 충전시켜서 애들에게 나눠줬다.

“자, 써봐.”

위이이이잉-

“와! 나온다! 나와!”

소율이가 방방 뛰면서 자기 얼굴에 대고 시원한 바람을 맞다가 옆에 있는 하준이에게도 씌워주고, 달려가서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건네줬다.

“일인당 하나씩 써도 넘친다.”

“어우, 진짜 고맙다.”

“그리고 이건 탁상용인데, 그냥 잘 때 바닥에 써도 될 거 같아.”

“이것도 5핀 충전기구나… 충전은 잘되려나?”

“저거 발전기 하나면 8시각은 전기 쓸 수 있어.”

“하, 고맙다 진짜.”

“고마우면 잘 사셔. 제수씨는 좀 어때?”

“이젠 괜찮아. 그때 애 잃어 버린 트라우마 때문에 그렇지. 음식도 빨래도 잘한다.”

“그러고 보니 여긴 세탁기도 없이 죄다 손빨래겠네?”

“별수 있나, 어떻게든 살아야지.”

모든 것이 아날로그로 되어 있는 사찰의 생존자들.

그래도 서로서로 모여서 자신들의 노하우를 가지고 어떻게든 살만한 곳으로 만들고 있었다.

“근데 너도 슬슬 생각해야 되지 않아?”

“뭐가?”

“야, 저기 애들 아이돌이잖아? 동거를 거의 1년째 한 거 아니야?”

“….”

“솔직히 눈 맞은 애 있지?”

“어.”

“와씨… 누구냐?”

김준은 그건 대답 안 했다.

***

“아우, 뭘 이렇게….”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하루 일을 해주셨는데, 어찌 식사도 안 하십니까?”

김준과 가야, 도경을 한 방에 모시고, 식사를 대접하는 스님과 보살들의 미소에 도경이 먼저 그릇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이 국수 너무맛있어요.”

“최근에 채소가 잘 익어서 저번보다 맛이 괜찮을 겁니다.”

절에 간다고 하면 애들이 못 먹어서 안달 난 사찰국수와 각종 나물무침과 부침개까지 사찰음식의 한 상이었다.

김준 역시도 한 젓가락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먹고 바로 집에 가면 되겠네요.”

“그러게, 일곱 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날이 밝아요.”

“어, 그러자. 선반은 완성되는대로 설치하겠지.”

김준은 식사하면서 굳이 절에 묵고갈 필요 없이 바로 돌아가기로 했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 절의 사람들은 오늘 베푼 것에 대한 보답으로 비닐하우스와 밭에서 재배한 채소들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우~ 무슨 채소가 이렇게 많아요?”

“지난번에는 빈손으로 가시지 않았습니까? 개의치 마시고 챙겨 가십시오.”

“와~ 배추에, 쑥에, 미나리에….”

갓 따낸 것과 말린 것을 모아 놓고, 도토리 가루에 각종 무침까지 모아 놓은 것을 고맙게 받았다.

돌아가는 길에 모두가 모여서 아이들이 손을 흔들고, 어른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돌아가는 길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집에 가면 샤워부터 해야겠어.”

“샤워로 끝이 아니야. 시~원한 맥주에 치킨먹고 싶다.”

김준의 중얼거림에 뒤에 있던 도경도 눈을 반짝였다.

“맞아요! 치킨도 그냥 튀긴 거 말고 장작에 자글자글 구운 거!”

“뱃속에 찹쌀이랑 대추도 넣고?”

“응! 응! 머스타드 찍어먹으면 진짜 대박!”

“장작 구이 통닭은 소금만 찍어도 맛있어.”

세 명은 차 안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리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먹힌 것일까?

그날의 저녁은 공교롭게도 닭이었다.

튀기거나 구운 게 아니라 푹 삶은 거지만 말이다.

“어, 음….”

“닭 한 마리 싫으세요?”

생리통을 앓으면서도 밖에 나간 일행이 오늘날씨 더우니 고생했을 거라면서 원기보충용으로 닭을 삶은 은지.

칼국수면에 두툼하게 썬 감자와 파를 넣고 푹 끓인 닭한 마리를 보면서 젓가락을 든 김준이었다.

“우리 오기 전까지 더워서 치맥 이야기했는데….”

“아냐, 닭한 마리도 좋아. 은지 고생했어.”

가야와 도경이 각각 날개와 퍽살 하나씩 들고 오물거리자 옆에 있던 라나가 발목에 붕대 감은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바깥에 드럼통으로 구웠어야 했어요.”

“노~ 노~ KFC 스타일로 튀겼어야지. 내가 치킨 만든다고 했는데.”

프라이드 치킨이건, 전기구이 통닭이건, 닭한 마리건 상관없었다.

김준은 무더위 속의 보양식으로 닭 다리를 뜯으면서 소주를 찾았고, 낮에 있었던 피로가 모두 풀리는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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