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끼이이-
김준은 차에서 내려 풀무장 상태로 만물상 안으로 들어왔다.
대낮에도 조명이 없어 어두운 분위기에 바닥에는 오래전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흩뿌려져 있었다.
“후우~”
김준이 마스크 너머로 길게 숨을 내쉬었을 때, 코와 인중이 끈적거리는 게 찝찝해 미칠 지경이었다.
“아~ 더워.”
김준 뿐만 아니라 뒤따라온 가야와 도경도 햇볕이 쨍쨍 찌는데, 프로텍터에 가죽 재킷을 입은 상태에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움직이는 거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지만, 좀비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니 상시 방어 장비를 착용해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가야는 경계 서고, 도경이는 나 따라 들어와.”
“네, 오빠.”
“후딱 끝내자. 바깥 완전 더워.”
이 날씨에 두툼하게 입고 움직이니 속도를 내서 빨리 에어컨 있는 차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김준은 만물상 내의 다른 것보다도 가전제품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컴퓨터 키보드, 마우스, 헤드셋이 있는 코너를 지나, 탁상용 전자시계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니 그 안쪽에 선풍기들이 있었다.
“스탠딩 선풍기. 이거 다 챙기고. 넥밴드 선풍기? 이거 효과 있나?”
“아~ 그거 행사 다닐 때마다 맨날 챙긴 건데….”
“오케이. 싣자.”
선반 위에 박스 다발로 있는걸 그냥 들어서 도경이에게 건네준 김준.
그 위에 6핀으로 쓰는 휴대용 선풍기도 통째로 챙겼다.
도경은 주변을 살펴보다가 손수레 카트를 보고는 김준이 건네준 것들을 차곡차곡 담았다.
“끄응~ 이건 뭐 이리 구석에… 됐다!”
안쪽으로 들어가서 나온 것은 조립식으로 된 선풍기였다.
집에 있는 모델보다 커다란 걸 여러 개 집어 올린 것이 집에 가져다 놓으면 1인 1선풍기가 가능할 것이다.
“후, 일단 이거 싣고 좀 쉬다 다시 나오자.”
“네~ 완전 더워요.”
밖에 나온 지 15분 정도밖에 안 됐는데, 전신이 땀에 절어 있는 두 남녀였다.
일단 카트 하나분을 들고 차로 가려는 순간, 별안간 가야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오빠! 좀비! 좀비!”
“?!”
이미 화살 한 발을 쏘고 황급히 달려온 가야의 뒤로 어느새 뛰는 좀비가 쫓아오고 있었다.
캬아악- 캬아아아아아-
“숙여!!!!”
김준이 매장 안이 울릴 정도로 크게 외쳤고, 반사적으로 가야가 엎드린 순간 바로 허리춤의 권총을 집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파각-
캬아아아아아악!!!
탕-!!!
팔을 뻗어 가야의 등을 내리찍으려는 순간 피를 뿜으면서 뒤로 물러난 뛰는 좀비.
딱 손바닥 하나 차이로 가까스로 도망친 가야는 기어서 김준에게 달라붙었다.
김준 역시 그 상황에서 리볼버를 난사해댔고, 도경 역시 등에 멘 석궁을 들어 좀비를 향해 주저 없이 당겼다.
파아아앙-
파각!
“씨발! 몇이나 있는 거야?”
리볼버를 다 쏘고서, 엽총을 다시 든 김준.
세 발짜리인데, 여차하면 비상 무기인 공기권총까지 꺼내 써야했다.
캬아아아- 타앙!!!
마지막으로 이빨을 앞세워 날린 좀비까지 처리.
매캐한 화약 냄새가 매장 안을 가득 메웠다.
“후우… 후우….”
안 그래도 찜통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좀비까지 잡으니 움직이는 게 힘들 정도로 몸이 물에 푹 잠긴 인형 같았다.
“뭐가 이렇게 많아….”
“도, 도저히 혼자 상대 못하겠어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가야를 보고 김준이 어깨를 집어 쭉 들어 올렸다.
그녀 역시도 긴장해서 온몸이 축축했고, 트레이드 마크인 곱슬 장발이 또다시 개털처럼 푹 젖어 있었다.
“일단 이거 챙기고 들어가야 하는데… 여기 있어 봐.”
김준은 축축해져 호흡을 방해하는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고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만물상 주변을 둘러봤다.
그가 찾은 것은 사무실 바닥을 닦는 널찍한 대걸레였고, 그걸 가지고 문 앞에 널브러져 있는 좀비 떼를 밀어냈다.
잔뜩 힘을 줘서 좀비들을 서서히 밀어냈고, 한 곳에 썩은 시체들을 겹쳐 대는 김준.
도경이 먼저 일어나 거들려고 다른 대걸레를 잡았고, 가야가 둘이 챙겼던 선풍기 카트를 들고 따라갔다.
“그냥 있지.”
“치우고 빨리 차로 가죠, 이러다 열사병으로 쓰러지겠어요.”
“아, 그래.”
가뜩이나 더위로 어질어질한데, 좀비 무리의 시체 썩는 냄새까지 풍기자 도저히 버티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김준은 가야와 같이 카트를 집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오자마자 미리 틀어놓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더위에 지친 셋을 감쌌다.
정말 천국이 여기인가 싶었다.
“하악! 하! 더워!”
견디다 못한 도경이 마스크부터 재킷을 벗었을 때, 푹 젖은 티셔츠에 안의 속살이 비칠 정도였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팔꿈치와 등에 채운 프로텍터까지 전부 벗으면서 주저앉아 연신 칼라를 털어댔다.
가야 역시도 재킷을 벗자마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몸이었고, 땀 냄새가 가득했지만, 셋 중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니네들 여기서 바로 샤워할래?”
“으응, 진짜 그래야 할 거 같기는 한데… 팬티까지 다 젖었어요.”
이제는 볼 장 다 본 사이였고, 도경이 먼저 티셔츠를 벗으며 푹 젖은 몸을 드러냈다.
하필 브래지어도 면으로 된 재질이라 안이 다 비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나저나 속옷은 어쩌냐….”
“기다려. 니들 먼저 씻고 있어라.”
“아, 같이 갈게요.”
“됐어.”
가야가 따라가려는 것을 김준이 만류하며 혼자 나갔다.
그녀 역시도 더위 먹은 상태에 좀비가 나왔던 것에 패닉이 왔지만, 그래도 발목은 안 잡으려고 계속 움직이려 했다.
“언니, 먼저 씻을래?”
“아니, 괜찮아.”
도경은 모든 옷을 탈의하고 캠핑카 샤워장 안에 들어갔다.
시원하게 씻은 상태에서 차 안을 뒤적거렸을 때, 김준이 비상용으로 구비해 둔 아디다스 트레이닝 복이 있었다.
“이거 사이즈가 맞으… 아, 작잖아.”
마리나 은지 정도 되는 애들이 입을 만한 걸 도경이 입으니 발목이 훤히 드러났다.
속옷이 없는 상태에서 노팬티에 노브라가 좀 찝찝했지만, 다시 나갈 걸 생각하니 차라리 이게 나을 것 같았다.
도경이 나오고 가야도 천천히 옷을 벗으며 안으로 들어가 씻을 때, 뒤에서 차 문이 열렸다.
덜컥-
“끼얏?!”
샤워부스 안에 있다가 화들짝 놀란 가야가 몸을 움츠렸을 때, 안에 들어온 건 김준이었다.
“후우- 이걸로 갈아입어.”
“어머?”
김준이 애들 샤워하는 동안 가져온 것은 잡화점에서 팔던 속옷 박스였다.
어디 재래시장에서 3장 만 원에 팔 법한 아줌마 속옷이었지만, 그래도 노팬티, 노브라보단 나을 거다.
“어떻게? 난 나가 있어?”
“아니, 뭐… 딱히.”
부끄러울 것도 없다는 듯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나온 도경은 김준 앞에서 다시 벗으면서 속옷을 맞춰 입었다.
자연스럽게 갈아입는 분위기였고, 그걸 지켜보던 가야도 수건 한 장으로 몸을 가린 채 김준 앞에서 조용히 속옷을 챙겨입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준 역시 샤워부스 안으로 들어가 시원하게 몸을 식혔다.
1시간도 안 된 루팅을 두고서 2시간의 휴식이 들어갔다.
땀에 젖은 기존의 옷들은 캠핑카 꼭대기의 캐리어박스에 널어 놨고, 하얗게 소금기가 배어났지만, 방도가 없었다.
“더우니까 입맛도 없어….”
“그래도 은지가 센스가 있네.”
캠핑카 소형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건, 은지가 갈 때 챙기라고 준 볶은 미숫가루였다.
거기에 꿀을 타고, 얼음을 띄워서 먹으면 세상 행복한 맛이 난다.
“자~ 마셔봐.”
사발로 담아서 내밀자 도경이 한 모금 마시고는 눈이 부릅 떠졌다.
“와! 존나 시원해!”
“그래도 말을 좀….”
가야가 뭐라 하려다가 도경이 내민 얼음 미숫가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그녀의 눈도 확 커졌다.
“와~ 진짜… 와~”
“좀 쉬고 있어라. 안에 가서 쉬엄쉬엄 꺼내올게.”
“같이 가요!”
“쉬고 있어. 너희 둘 교대로 움직일 거니까.”
“!?”
김준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서 다시 잡화점 루팅을 시작하러 나갔다.
20분 정도 걸려서 안에 들어왔을 때, 땀에 푹 젖은 몸으로 가져온 것들은 물에 적시면 세상 시원하다는 쿨링타월 박스, 앞으로도 자주 쓰일 면 마스크, 각종 세제와 섬유유연제, 비누, 바디워시 등이었다.
“아~ 죽겠네.”
“빨리 들어오세요.”
도경과 가야가 김준을 안으로 끌어당기고, 추가로 만든 미숫가루를 먹였다.
그렇게밖에서 달궈진 몸을 캠핑카 안에서 확 식힌다음에 이번엔 김준과 도경이같이 나갔다.
홀로 남은 가야가 차 안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공간에 맞춰 차곡차곡 담았을 때, 30분 있다가 다시 문이 열렸다.
“파하~ 더워!!”
“와 쪄죽겠어요. 진짜!”
다시 들어온 이들이 박스를 나르면서 후다닥 차 안으로 들어왔다.
“지난 주까지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더워졌어.”
“그러게요. 저번 주는 그냥 문 열고 자도 괜찮았는데.”
갑작스럽게 더워진 날씨에 앞으로 루팅 시각은 점점 줄어들고, 장비 상태가 고역이었다.
예전같이 여유 넘치게 이거저거 쇼핑하듯이 짐을 나르는 건 당분간 무리다.
김준은 오늘 가져온 물건 중에서 목에 걸고 턱 밑 부분에 바람이 나오는 넥밴드 선풍기를 걸었다.
“이거 잘 돌아가나?”
딸깍-
위이이이잉-
“오, 시원해.”
넥밴드 선풍기가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는 동안 도경 역시 스마트 선풍기 하나를 꺼내서 틀어 봤다.
그녀 역시도 시원한 바람에 눈을 감았고, 그렇게 잡화점 하나 터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18시가 넘었는데도 날이 떨어지지 않았고, 기온은 조금 내려갔지만, 아직도 습한 날씨였다.
“여기서 제안 둘.”
“?!”
“서점까지 털고 오늘 밤은 절에서 묵는다, 아니면 그냥 집에 가고 내일 다시 온다.”
김준의 제안에 두 아가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같아선 에어컨 빵빵한 차 안에서 어디에도 움직이기 싫은 불쾌지수가 가득했지만, 그래도 결정은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