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에엥~ 흐아아아앙~”
아침부터 서럽게 울어대는 라나를 두고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새하얀 다리는 발목부터 퉁퉁 부어서 마리가 파스를 뿌리고 붕대를 단단히 감아줬다.
“며칠만 쉬면 돼. 크게 다친 거 아니야.”
“흐으으- 히끅- 오늘 나가려고 했는데!”
루팅 계획 다 짜놓고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못 나가게 된 라나였다.
김준 역시도 이 상황이 황당한 지 혀를 찼다.
“어떻게 침대에서 떨어져서 발목이 나가냐….”
라나가 잠버릇 더럽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옆에 있는 나니카랑 늘어지게 자다가 굴러서 침대에서 떨어졌다.
그냥 떨어졌으면 그냥 깨서 일어나면 그만인데, 하필 그 밑에는 은지가 미닫이 방에 묵을 때 쓰던 재봉틀이 있었고, 잠결에 거기로 떨어져 발목이 돌아가 비명을 지르며 깬 라나였다.
“마리야, 얘 아이싱 좀 해 줘라.”
“네, 소염제도 먹이고, 아이싱도 하고… 이틀이면 나을 거예요.”
“흐윽~ 오빠, 저 못 가는 거죠?”
“가서 선풍기 좋은걸 가져올게.”
“…날개 없는 선풍기.”
훌쩍거리면서도 원하는 건 요구하는 라나를 보고 김준은 머리를 쓰담 쓰담 해주면서 방을 나섰다.
뒤따라온 도경이 역시도 같이 나갈 준비를 하다 저렇게 됐으니 한숨이 나왔다.
“오늘 그럼 누가 대신 가죠?”
“흐음, 글쎄.”
그때 거실에 있던 에밀리가 김준과 도경을 보고 손을 흔들면서 자기가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보류.”
“동감이예요.”
“쉣! 왜? 내가 라나보다 더 잘할 텐데!”
“됐어, 너도 쉬어.”
“히잉~”
“어디서 콧소리야!”
보다 못한 도경이 한 소리 하자 에밀리도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일어났다.
나이야 에밀리가 많지만, 데뷔는 도경이 먼저 했다며 둘이 티격태격하는 건 아직도 유효했다.
그렇게 라나는 아웃이고, 에밀리도 쉬고, 은지랑 인아는 아직도 생리통에 시달릴 때, 김준은 가야를 찾아갔다.
“오늘 갈 수 있겠어?”
“뭐, 저밖에 없는 거 같네요.”
가야는 고개를 돌려 은지랑 인아 대신 점심을 준비하는 나니카와 환자가 셋이나 생겨서 돌봐야 하는 마리를 보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요새 운동도 많이 해서 짐 나르는 거 문제없을 거예요.”
김준은 가야의 말에 그녀의 어깨를 집고서 지그시 힘을 줘 봤다.
“으흣!?”
“괜찮을지 모르겠네?”
옛날의 부드러운 물살에 비해 나름 탄탄해지긴 했는데, 허약체질이었던 애가 괜찮을지 모르겠다.
“일단 라나가 보호장구 챙겼으니까 그거 입고 나갈 준비 하자.”
“네, 오빠.”
그렇게 아침의 트러블 이후로 오늘의 루팅은 라나 대신에 가야와 도경이가 가기로 했다.
이틀 동안 앞부분 다 뜯어내고 블루핸즈산 부품으로 고친 캠핑카에 타고 시동을 걸 때, 경쾌한 소리가 났다.
“자~ 출발!”
다시 시동이 걸린 캠핑카가 힘차게 집을 나설 때, 안의 아이들은 손을 흔들면서 오늘도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김준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서행으로 골목길을 빠져나와 대로변으로 향했고, 바로 직진했다.
“어제 말한 대로 재래시장 안에 들어가는 건 아닌 거 같아. 소사벌대 인근으로 갈 테니까 준비해!”
“얼마나 걸리죠?”
“좀비 무시하고 그냥 직진하면 15분.”
“금방이네요~”
조수석에 앉은 가야는 석궁을 살피면서 혹시라도 생길지 모르는 좀비들을 잡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는 사이 김준은 이쪽으로는 오랜만에 와서 주변을 살폈다.
“관리가 안 되니까 건물 타일이고 뭐고 다 뜯겨나갔네.”
빌딩의 타일과 간판은 방치된 채로 색이 바래졌고, 몇몇 건물은 콘크리트가 갈라지면서 잡초가 자라 오랫동안 버려졌다는 게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4차선 대로에서 여기저기 불에 타고 찌그러진 차들을 장애물통과하듯이 빠져나온 김준은 쭉 달리면서 익숙한 논밭길로 진입했다.
2,3년만 있으면 개발 공사한다고 과수원과 논밭이었던 곳을 싹 밀어내고서 방치된 땅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비둘기나 토끼들이 뛰어다녔다.
그때 그 풀숲에서 부스럭거리더니 뭔가가 튀어나왔다.
캬아아악-
크아아아아아-
“좀비다!”
철컥-
뒤에 있던 도경이 차분하게 석궁에 화살을 장전할 때, 화들짝 놀란 가야 역시도 무기를 잡고서 싸울 준비했다.
김준은 근처 풀숲에서 자동차 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좀비들을 보면서 차를 멈췄다.
가드레일이 크게 있어서 반대쪽으로 그냥 무시하고 갈 수는 없었고, 하필 뛰는 좀비들이라 직진한다 하더라도 달라붙을 기세였다.
“뒤로 빠진다! 꽉 잡아!”
덜컥-
우우우우우웅-
R기어로 돌리고 뒤로 쭉 빠진 김준은 엽총을 들고서 교차로 쪽으로 차를 틀었다.
풀숲에서 뛰쳐나와 달려드는 좀비는 총 다섯.
수는 많지만, 못 잡을 건 아니었다.
캬아아악- 캬악!
쿵- 쿵- 쿵쿵쿵-
피거품을 물며 맹렬히 달려오는 좀비들을 향해 김준은 창문을 슬쩍 열고 엽총 총구를 겨눴다.
탄은 멧돼지탄이었고, 근접으로 다가올 수록 산탄이 터져 나오며 연달아 잡을 수 있다.
철컥-
타아앙-!!!
요란한 총성과 함께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마라톤 선수처럼 달려들던 좀비 무리 중 가장 앞에 있는 녀석이 풀썩 쓰러졌다.
김준은 주저 없이 바로 두 번째 탄을 발사했다.
타앙- 철컥- 타아앙-!!!
세 발을 다 쏜 순간 남은 좀비는 두 마리였다.
전방 20m 거리까지 달려온 좀비를 향해 김준은 침착하게 총을 변경하고 더블배럴 샷건으로 남은 좀비를 잡았다.
탕- 탕- 철컥-
원샷 원 킬.
김준은 총 두 자루로 뛰는 좀비들을 전부 쓰러트렸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차분하게 콘솔박스를 열어 다시 탄을 장전하는 김준.
그사이 가야와 도경은 황급히 다른 방향도 살펴보면서, 이 소리에 좀비가 또 튀어나오지 않을까 살폈다.
그리고 가야가 황급히 외쳤다.
“오빠! 뒤에도 있어요!”
“뭐?”
김준이 돌아섰을 때, 소리를 듣고 주변 건물에서 하나둘씩 나오는 좀비들이 보였다.
“썅-”
“아, 그래도 걷는 좀비 같은데요? 뛰는 놈은 없어요.”
도경 역시도 같은 방향을 보면서 말하자, 김준은 바로 차 기어를 바꿨다.
“돌아올 때, 다 잡기로 하고 빠진다!”
김준은 액셀을 밟아 그대로 직진했고, 널브러진 좀비 시체를 보고는 요리조리 빠지면서 지나쳤다.
한 번 사고가 난 뒤로는 그냥 들이받고 깔아뭉개고 가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 순간이었다.
“험비였다면 치고 갔다.”
“….”
만약 여기에 에밀리나 라나가 있었다면, ‘그 차면 되는 거야?’, ‘그럼 이제 범퍼카 안 해?’ 등으로 이런저런 드립을 쳤겠지만, 두 언니는 상당히 조용했다.
김준은 바로 직진해서 지난날 웨이 포인트로 지정했던 터미널 슈퍼에서 멈췄다.
맨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파트너는 라나였고, 불에 탄 슈퍼 앞에서 멈춰 길을 잡았던 것이었다.
“아~ 여긴 다 탔네요?”
“예전에 왔을 때부터 그랬어.”
김준은 그렇게 차를 멈춘 상태에서 저 멀리 보이는 대학교 건물을 보고 두 갈래의 방향을 두고 말했다.
“오른쪽으로 가면, 고물상. 전에 몇 번 뒤져댔던 곳.”
“그럼 왼쪽이 그 생필품 상가예요?”
“어, 좀 더 가면 은지랑 갔던 서점.”
“아, 서점도 책 좀 챙기러 가면 좋을 텐데….”
가야의 중얼거림에 김준은 이곳에서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상가쪽으로 가자!”
“!?”
어제 계획으로는 고물상을 먼저 가기로 했지만, 좀비들이 튀어나온 걸 보고서 탁 트인 대로변의 고물상 보다는 차라리 바로바로 좀비 상대가 가능한 코너 골목으로 가기로 했다.
여차하면 차 문 닫고 아예 버틴 다음에 하나하나 잡아가면 되고, 냉방가전 외에 챙길 것도 많은 곳이었다.
그렇게 김준이 차를 돌려 대학교 후문 쪽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은지랑 한 번 다녀오면서 길을 잘 아는 곳이었다.
골목으로 진입했을 때, 과거 은지랑 같이 털었던 미용실이 깨진 유리문 너머로 휑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아~ 저기 털었던 거구나?”
“어.”
미용실을 지나 쭉 들어갔을 때, 뒤이어 보인 것은 김준이 그렇게 말했던 생활용품 잡화상이었다.
“저기인데….”
“1층이라 문 열면 바로 들어가는 거죠?”
“안에 뭐가 있는지 봐야지.”
김준은 어떻게 할까 생각하던 중에 가야는 조용히 대쉬보드를 열었다.
그 안에는 석궁 화살 말고도 굵은 너트나 못 등이 있었다.
“새총으로 유리창 쏠까요?”
“어, 그러자!”
가야의 제안을 바로 수용한 김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석궁 대신 새총으로 무기를 바꾸고, 바로 너트 하나를 집었다.
끼긱- 끼이이익-
새총으로 너트를 쭉 당긴 다음에 만물상의 유리문을 노린 가야.
그녀는 갑작스럽게 대타로 바깥으로 나온 뒤로 한 명의 몫을 하기 위해 단호한 눈으로 새총을 당겼다.
빠캉-
쨍그랑!!!
그 순간 소리를 들은 좀비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오빠 뒤!”
“도경아, 잡을 수 있겠냐?”
“저거도 걷는 거네… 해 볼게요!”
마리와 은지가 그랬듯이 후방에서 창문을 살짝 열어 화살 끝을 댄 도경은 다가오는 좀비를 향해 그대로 발사했다.
파각-
좀비 하나가 머리가 꿰뚫린 채로 뒤로 넘어갔고, 뒤이어 오는 녀석 역시도 도경이의 사격에 머리가 뚫렸다.
기본 운동신경이 있던 아이여서 그런지 엄청난 재장전 속도로 빠르게 좀비를 잡아갔다.
반면 조수석의 가야는 상가의 문을 깨버린 뒤로 다시 움직이지 못했고, 김준은 그런 가야를 향해 아크릴 판을 톡톡 두들기며 진정시켰다.
“괜찮아. 도경이가 저거 잡으면 바로 안에 들어가자.”
“…네.”
잠시 후 도경이 튀어나온 세 마리의 좀비를 잡았을 때, 김준은 엽총을 들고서 돌입 전 차분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깨진 문 너머로 내부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로 차에서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