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은 그날 먹은 장어가 소화되기도 전에 엄청난 밤을 보냈다.
장어구이에 소주를 곁들이고, 술이 모자르다고 옥탑방 올라갔다가 슬며시 따라온 도경이가 덮쳐서 기승 위로 한 발 빼내고 내려왔다.
그 상황에서 눈치를 챘는지, 에밀리 역시도 계속 꼬리를 치다가 자리 치우는 자리에서 은지가 자기 전에 샤워한다면서 김준의 방 욕실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에 담배 한 대 태우러 나왔다가 에밀리의 유혹으로 차 안에서 질펀하게 하고 나왔다.
순식간에 두 발 뺀 상태에서 방에 들어오니 은지가 본처 모드로 나와서 그날 밤을 같이 보내 연달아서 3인 릴레이로 해 버렸다.
물론 그녀들 각자는 자기 외에 다른 애들하고 했다는 건 몰랐을 거다.
누구도 편애하지 않고 공평하게 한다고 하니 생긴 일이었고, 그날 일어났을 때 김준은 거하게 코피 한 번을 쏟아 내고 하루를 시작했다.
“장어꼬리가 효과가 좋나 봐요?”
“아, 뭔 소리야~”
“오빠 혈색이 엄청 도는데요? 얼굴도 시뻘겋고.”
도경이가 양기 보충을 잔뜩 해서 반질반질해진 얼굴을 자랑하며 말할 때, 김준은 쓴 웃음을 지었다.
어제의 그 불같은 밤에 어울리지 못한 아이들은 ‘나도 어제 붙을걸….’ 이라는 아쉬움이 얼굴에 드러났다.
그래서인지 김준은 아침부터 식사를 ‘먹는다’가 입안에 아니라 ‘쑤셔 넣는다’ 식으로 처리했다.
최근들어서 연달아서 릴레이로 해대니 체력이 슬슬 한계가 왔고 왜 주색잡기에 빠지면 서서히 말라가는지 알것 같았다.
식사 이후 한숨 돌린 김준은 아침부터 밖에 나와 망가진 캠핑카 상태를 살폈다.
“일단 범퍼 교환해야 하고, 배터리 선도 갈고, 차량용 접착제랑 볼트랑, 복원 덴트랑….”
필요한 것들을 중얼거리면서 수첩에 하나하나 적는 김준.
일단 안에 있는 기름은 빼내고, 누수된 엔진오일은 다 닦아냈으니 당분간은 외장 배터리를 달아서 간이 화장실 겸 휴게소로만 쓸 생각이었다.
“흐음~ 이건 이렇게 고치고 다음에는….”
“나갈 준비 하는 거야?”
김준이 밖에서 다음 루팅을 위해 챙길 것들을 적어나갈 때 에밀리가 슬며시 다가와 김준의 옆에 붙었다.
김준은 그녀의 찰랑이는 금발을 쓰담 쓰담 해주고는 그 외에 필요한 것들도 찾아나갔다.
“앞에 달 보호대 설치해야겠다. 그럼 철물점이나 고물상 가서 설치하고, 또….”
“저건 어쩔 거야?”
에밀리가 가리킨 것은 차가 망가졌을 때, 탈출용으로 챙겼던 소사벌 상하수도사업소의 미니트럭 라보였다.
어쩌다 보니 저것도 사용 차량이 되었지만, 험비를 쓰고 있으니 딱히 어디 쓸 필요가 없었다.
“저건 뭐… 명국이 줄까?”
“어머, 닭 가지러 가는 거야?”
이제는 척하면 척이라고 김준이 어디 간다고 하면 그 주변에 대해 빠싹하게 꿰고 있는 에밀리였다.
안 그래도 저번 무전기 때 한 말도 그렇고, 요새 통화하면 화물용 삼토바이 타고 다니던 애가 그거 망가진 이후 다리도 불편해서 이동 수단 없이 자급자족으로만 버티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뭐, 라보 정도는 운전할 만 하겠지.”
“저 미니트럭이 귀엽긴 해.”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곳도 손볼게 있나 살폈다.
“요새 저 물탱크 잘 안돌아가.”
“구리스 칠 해야겠네, 점심 먹고 한 번 손 봐야겠다.”
“그리고 창고 말이야. 계속 벌레 꼬이는 데 저대로 놔둬도 돼?”
에밀리의 말대로 창문을 여니 서늘한 콘크리트 창고 조명 아래 쌀벌레가 자란 나방들이 여기저기 보여서 골칫거리였다.
그렇다고 도정 전의 쌀에다가 살충제를 뿌려댈 수도 없었고, 냉동보관도 안 되니 난감했다.
“일단 문단속 잘하고, 안에다가 식초 트랩같은 거라도 설치해야겠어.”
김준은 1층을 돌고 옥탑방까지 올라가면서 그 안에서 옷 수선하는 은지 일행과 이야기하다 내려왔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하나하나 하면서 준비한 것은 다음 루팅 계획이었다.
“한 번에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진짜요?”
“가야야, 형광펜 좀 가져와봐.”
“아, 네!”
가야가 후다닥 달려가 형광펜을 가져오자 김준은 지도에서 집이 있는 위치부터 표시하고는 일자로 쭉 그어나갔다.
“이렇게 가면 여기가 블루핸즈 자동차 공업소, 그리고 여기 샛길로 빠지면 그 명국이네 집 가는 태양아파트 단지, 이렇게 빠지거든?”
“오~ 이렇게도 갈 수 있구나.”
“잘됐네요? 안 그래도 거기 닭하고 계란 받아가고, 저거 쪼끄만 차 준다고 했죠?”
마리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머릿속으로 루팅 코스를 그려 나갔다.
1년 가까이 살면서 주변 지리를 알아서 터득하고, 바깥 물자를 구하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 길을 하나하나 숙지한 것이었다.
“그리고 공단면하고 다르게 이쪽으로 위로 빠지면 미군부대 나와.”
“오, 맞아. 거기도 챙겨야지.”
김준은 그것을 위해서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장치를 하나 만들기로 했다.
“그럼 정리하자. 차는 험비랑 뒤에 라보 견인해서 갈 거고, 1순위로 갈게 블루핸즈에서 캠핑카 부품 챙기고, 그다음으로 명국이네 가서 라보 차 주고 닭하고 계란 받아오고, 다 챙긴다음에 미군부대 가서 그 사람들하고 교류 되게 표식 하나 설치하고, 돌아오는 거야.”
“네.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하루 만에 그게 다 되려나….”
“중간에 좀비한테 안 몰리면 가능해. 깜깜해질 때 오면 하루 묵고 가면 되고.”
그러자 마리가 슬며시 일어나밖에 주차된 험비를 보며 넌지시 말했다.
“저거는 차에 쉬는데도 없고, 시트 딱딱하던데….”
“모포 깔아 놓을게.”
“아니, 뭐 된다면요.”
어차피 이번 코스로 간다면 누가 갈 지는 딱 정해졌다.
마리야 의사니까 명국이네 가서 상태 좀 돌보고, 혹시 모를 상황이니 미군부대 앞에서 에밀리 다음으로 영어 소통이 가능하니 동행이다.
그리고 에밀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나 세 번 연속이야.”
사냥부터 시작해서, 차 견인해갈 때도 동행하고, 이번에도 같이 가니 3연속으로 루팅 파트너가 되어 밖에 나간다.
김준 역시도 그걸 알아서 머리를 긁적였지만, 에밀리는 별 신경 안썼다.
“난 좋아. 대신 이만큼 해줬으니까….”
그녀는 왼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오른손 검지로 이리저리 쑤셔대는 제스처를 보이며 음흉한눈을 떴다.
“3연속이니까 이거 3번은 해 줘야 해.”
“아, 미친년!”
“그게 딜이야?”
도경이나 가야가 바로 한 소리 했지만, 에밀리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자기 가슴을 모아 부각시켰다.
이 집에 살아가면서 다른 건 몰라도 몸이 가장 큰 무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금발의 아가씨였다.
그렇게 루팅 계획에 대해서 정해지고, 날짜를 정할 때 거실에서 저녁거리 준비하던 인아가 그 모든 것을 듣고 있었다.
“그거를… 조건으로 걸 수 있구나.”
첫 경험 이후로 거의 교류가 없다 시피한 요리 잘하는 소녀가수 샤인은 착잡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물론 그걸 들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
김준은 그날 저녁 무기를 정비하면서 밤을 보냈다.
“권총은 요새 잘 안썼고, 엽총은 진짜 총탄 많이 썼네? 박스 하나 더 썼으니….”
슬슬 총포상을 찾을 때가 오긴 했다.
일단 동네 총포상의 총알은 거의 다 썼고, 마지막으로 한 번 탈탈 털면 소사벌 일대의 엽총 산탄은 앵꼬다.
물론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한번 동탄으로 가거나, 소 키우는 가족 있는 아산 일대의 실탄사격장을 가면 클레이사격용 산탄이 있으니 그걸 구하러 가면 될 거다.
“거기도 슬슬 소 한 마리 가지러 가야 하나… 쌀이랑 밀가루로 교환하려면 몇 가마 준비해야지?”
거기도 요새 안 간지가 좀 됐으니 외곽도로 탈 때 절 한 번 들리면서 아산에 내려갈 계획도 만들어야 했다.
그 옆에는 아직는 손톱만 한 사이즈로 커다란 깡통 세 개 분은 있는 공기총의 연지탄이 있었다.
공기총은 수렵용 두 자루에 스포츠 사격용 공기권총이 있지만, 다른 무기에 비해 별로 쓰지 않을 때였다.
“이번엔 아예 공기총 위주로 가 볼까?”
단발짜리 한 자루와 3발짜리 한 자루, 그리고 리볼버 대신 공기권총을 쓰는 것도 걷는 좀비 위주라면 충분히 쓸 수 있는 무기들이었다.
김준은 공기총 역시도 수입하고 연지탄용 케이스에 가득 담아 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준의 눈앞에 비치는 무기가 있었다.
“….”
철컥-
주한미군 전용 M4 카빈.
눈앞에서 생존자 미군을 봤는데 좀비에게 물어뜯기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자신들을 향해 던져 줘서 구한 것이었다.
탄창 하나에 총알은 단 8발이었지만, 이게 작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생존자 일행 중에서도 어마어마한 매리트였다.
게다가 다른 인간 적을 만났을 때도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고, 적어도 제일파 건달 같은 놈들한테는 다 쓸어버릴 수 있을 위력이었다.
M4 카빈은 향후 총알 수급 문제만 해결된다면 아마 김준의 주력 무기가 될 것이다.
김준은 그 모든 것을 손질하고는 장롱 안에 담아 루팅으로 나갈 때, 쓰기로 다짐했다.
그날 밤은 무기가 가득한 방 안에서 편히 잠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