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270화 (270/374)

험비에 탄 김준은 샛길로 뺄 것도 없이 그냥 직진으로 상수원까지 달렸다.

중간중간에 좀비가 보이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만약 찻길에 나와 앞을 막는 녀석들이 나온다면 그냥 쳐 버렸다.

콰아앙- 콰직!

캠핑카때와 마찬가지로 앞을 막는 좀비는 그냥 쳐 버렸다.

하지만 그 파괴력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수준이었다.

콰드드드드득-

배기량이 3배에 무게도 2배가 넘고 내구성은 감히 비교할 수도 없었다.

범퍼에 치인 좀비가 하늘에 떴다 멀리 날아가거나 들이받아 차 바퀴에 깔린다.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험비는 포터 베이스의 캠핑카에 비해 지상고가 높고 바퀴도 굵어서 차 밑에 시체 조각이 끼는 게 아니라 그냥 곤죽을 만들어 버리고 간다.

“와우! 파워풀해!”

조수석에 앉은 에밀리는 캠핑카때보다 우월한 파워를 보이는 험비의 위력을 보며 신나했다.

다만 비탈길을 달리면서 덜컹거리는 것은 적응이 안 되는지 연신 엉덩이를 들썩였다.

“근데 의자가 너무 딱딱해 덜컹거릴 때마다 엉덩이 찌르는 거 같고.”

“그러니까 마리를 데려올 걸 그랬나?”

“흐응~ 나도 사냥 잘했거든?”

“사냥 안 해! 차만 끌고 바로 올 거다.”

그리고 뒤에 있던 라나 역시도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석궁과 화살 다발을 꺼내지 않고 새총과 너트 위주로 무기를 바꿨다.

“오빠, 여기서 멀어요?”

“이대로만 가면 20분!”

“금방이구나.”

운전석과 뒤에 캠핑카 내부와는 다르게 손을 뻗고 몸을 기울이면 바로 운전석과 조수석을 볼 수 있는 편한 차였다.

김준은 더욱 액셀을 밟아 댔고, 신나게 달리는 험비가 육중한 몸으로 뭐든 박살 낼 기세로 달렸다.

“아~ 근데 속도 제한은 아쉽네.”

km도 아니고 마일이 우선순위로 잡힌 계기판은 액셀을 꽉꽉 밟아대도 60마일(96km)가 한계였다.

물론 그 속도만으로 소사벌시 내에 어디든 누비는 건 문제가 없지만 말이다.

빠른 속도로 좀비들을 보이는 대로 다 짓밟고 도착한 김준은 상수원에 도착해 범퍼가 망가진 캠핑카를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휘유~ 다행히 무사하….”

“엄맛!? 저거 뭐야?”

뒤에서 라나가 소스라치게 놀라자 뭔가 해서 백미러를 봤는데, 험비가 달려오는데도 뭔가를 뜯어먹고 있는 들개 무리가 있었다.

“저것들은 여기가 완전 터전이네.”

“그냥 개야. 뭘 무서워해.”

“으으으- 저거 달려들어서 무는 거 아니예요?”

“안 그러더라.”

몇 번이라도 더 나왔던 에밀리가 들개 보고 놀라 하는 라나를 다독이면서 피식 웃었다.

“담배 한 대 피고… 주변 살피다가 나와야겠다.”

“준! 그럴 필요 있어?”

“?”

에밀리는 험비의 천장 부분을 손으로 톡톡 쳤다.

그곳에 보인 금속 루프탑을 본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엽총을 챙겼다.

“맞아. 저게 있었지.”

이걸 타면 굳이 운전석 문 열고 안나가도 위로 올라가서 바깥을 맘껏 볼 수 있었다.

원래라면 기관총이 거치돼야 할 험비의 루프탑으로 올라온 김준은 엽총을 장전하면서 주변을 살폈다.

딱히 잡을 만한 사냥감은 보이지 않았고, 어제 손질하고 남은 것들을 버린 멧돼지 잔해를 뜯어 먹는 들개 무리가 보였다.

“야, 저리 가!”

쨍그랑-

깨갱- 깽!!

김준이 빈 드링크 병 하나를 집어던져 개들을 쫓아내고, 몇몇이 으르릉거릴 때 총을 겨누자 바로 도망쳤다.

아무리 야생성을 가져도 개는 개였다.

그렇게 주변을 살피고서 고개를 끄덕인 김준은 차 지붕을 타고 천천히 내려왔다.

“됐다. 나와.”

김준의 말에 에밀리와 라나가 내렸고, 일단 캠핑카 상태부터 살폈다.

“휘유~ 방전 없었고, 안에 뭐 들어온 거 없었고….”

어제 버리고 간 그 상태 그대로 있으니 일단 견인장비부터 꺼냈다.

“둘이 잡아! 이거 무거워.”

“이런 거 잡을… 어우, 진짜 무겁네.”

“장난 좀 치지 마!”

이 상황에서도 김준이 건네주는 견인장비 받으며 떨어트리려는 제스처 취하다가 한 소리 들은 에밀리.

둘이 든 장비는 범퍼가 박살 난 캠핑카 앞으로 내려놨고, 김준이 범퍼 밑의 고리를 걸었다.

“자, 이거를 험비 뒤에다가 걸면 끝이야.”

“차 견인하는 거 많이 봤는데, 우리가 이걸 하네요.”

라나는 여기 살면서 진짜 많은 거 배운다면서 쇠사슬을 늘어트려 김준에게 건네줬다.

김준이 쇠사슬을 휘감고 고리를 고정시킨다음 발로 차서 그 강도를 확인한 다음 문제없다는 걸 확인했다.

“아~ 다 됐네요.”

“라나 너는 기술자 했어도 잘했을 거다.”

“제가 좀 배우는 게 빨라요.”

김준의 칭찬을 들어 귀엽게 웃는 라나를 두고 장갑벗고 머리를 쓰담 쓰담 해줬다.

“끝난 거 아니야? 가자!”

에밀리가 계속 재촉할 때, 김준은 마지막으로 차 견인이 제대로 됐는지를 확인하고는 험비 운전석에 탔다.

그 옆으로 마치 20억짜리 오픈카를 옆에 탄 것처럼 좋아하는 에밀리를 두고 시동을 걸었다.

“좀만 시간이 있었으면 블루핸즈도 가는 건데….”

“응? 블루핸즈?”

“신릉면 근처 카센터인데… 아, 니들은 안 갔구나. 가야랑 인아가 그쪽 길을 자주 갔지.”

황 여사 일행의 지난 다방 쉘터가 있는 곳에 부품이 잔뜩 잇는 카센터가 있어 거기를 털어서 집에서 수리하면 캠핑카를 다시 쓸 수 있을 거다.

“오빠, 진짜 수리할 수 있는 거지?”

“말했잖아. 부품만 있으면 쌉가능이라고.”

자동차 정비야 대학 시절 자격증을 딴게, 8년간의 군 시절의 경험까지 겹쳐서 트럭 고치는 건 진짜 이골이 났던 김준이었다.

끼기기긱- 구구구구구구-

“어우, 비탈길!”

험비의 힘으로 캠핑카는 수월하게 끌렸지만, 거친 도로에서 이리저리 덜컹거려 애들 엉덩이만 불이 났다.

***

“와 완전 박살 났었네….”

“세차만 하고, 당분간은 이렇게 둘거야. 라나야.”

“네, 오빠.”

“캠핑카 물 채우고, 배터리 빼내야 하니까 호스 가져와.”

“네!”

라나가 후다닥 뒤쪽 텃밭의 호스를 꺼내러 갈 때, 은지는 조용히 밀대걸레와 락스를 준비했다.

“뭐든 좋은데, 일단 저 피좀 닦죠.”

“어, 어!”

은지가 망가진 캠핑카를 세차할 준비했고, 김준이 먼저 물을 채우고, 배터리를 분리해서 떼어놓고 아예 덜렁거리는 범퍼도 너트를 분해해서 분리 시켰다.

“이거는 어떻게 고친다 해도….”

금속범퍼야 구겨진 거 어떻게 두들겨 펴서 고칠 수 있다지만, 안쪽 범퍼와 배터리 케이블은 필이 갈아 끼워야 한다.

일단 지금의 캠핑카는 이동 수단이 아닌 에어컨과 화장실과 샤워장 용도의 간이 원룸으로 만들어 놨다.

작업을 모두 마친 김준은 기지개를 켜며 은지에게 물었다.

“그래서 라멘 잘 만들어졌어?”

“기대하셔도 될거예요. 나니카가 후쿠오카식으로 만들었대요.”

“오~”

모든 일과를 다 마치고 먹는 저녁 식사 만큼 좋은 건 없었다.

***

“자~ 드세요.”

“와 제대로 힘줬네?”

김준은 각각의 테이블에 놓인 일본 라멘을 보고서 흐뭇한 얼굴이었다.

핏물을 빼낸 멧돼지 등뼈를 몇 시간 동안 팔팔 끓여 고아낸 국물로 만든 라멘 육수.

거기에 은지가 하루 종일 반죽하고 국수틀로 만들어 준 면발에, 인아가 직접 재배한 숙주나물과 파, 고추.

그리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차슈를 멧돼지 살점을 삶아다가 올리고, 달걀도 노른자만 반숙으로 삶아 올리니 진짜 먹고 싶은 비주얼이었다.

“오~ 안 그래도 라멘 땡겼는데.”

“먹고 안 죽으면 된다면서 잘만 끓여먹더만.”

“라면 말고 저페니스 라!멘!”

에밀리와 도경이 투닥거리는 건 이젠 넘길 거리고, 다른 애들의 반응도 살펴봤다.

“으음~”

한젓가락식 할 때마다 행복해하는 애들의 얼굴이 보였다.

특히 오늘 만들자고 한 나니카는 자기 건 안 먹어도, 남들이 먹는 반응을 보면서 안도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나니… 아니, 나츠야!”

“네, 넷!?”

“너도 먹어. 만들어 먹자면서?”

“아, 네!”

예명이 아니라 본명 나츠야로 불러 주니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그릇을 들어 후루룩 마셔대는 나니카.

가야도 그렇고, 라나도 그렇고, 나니카도 그렇고 아이돌 예명 대신 본명으로 불러 주면 보이는 반응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자~ 교자도 왔어요.”

거실에서 자글자글 굽는 소리가 끊이질 않더니 군만두 교자를 만들어온 인아가 자랑스럽게 내밀자 테이블에 올라온 순간 젓가락들이 사방에서 튀었다.

처음 데려와서 남은 고기랑 김치 죄 쓸어넣어 만두 만들 때도 그렇고 얘들은 이것만 나오면 젓가락 전쟁이 장난 아니다.

김준은 순간 모든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온다면, 얘들 먹방 가지고 불로소득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

그렇게 라멘이랑 교자 특식으로 저녁도 든든하게 먹었고, 차도 원래대로 가져다 놔서 팔도 시큰거리겠다 일찍 잠이 들었던 김준.

“으으으-”

자다가 몸이 쑤셔서 일어났을 때 찌릿찌릿한 감각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씨발, 졸라 더워.”

슬슬 열대야 시즌이 찾아왔는지 땀이 주룩주룩 나는 상태에서 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찬물로 달궈진 몸을 식히고서 나왔지만, 수건으로 닦는 순간 땀이 날 정도로 더웠다.

“진짜….”

이젠 밤 날씨도 이 지경이어서 밖으로 나오니 선풍기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요새 애들도 덥다고 난리를 쳐서 집에 있는 선풍기 몇 대 가져다 놨는데, 미닫이방이고 작은방이고 그냥 풀로 틀어놓은 소리가 딱 들렸다.

김준이 냉장고로 가서 찬 물을 벌컥벌컥 들이켤 때, 문득 생각이 난 게 있었다.

“안 되겠다. 캠핑카 가야겠다.”

아무래도 오늘은 차량용 에어컨 틀어놓고 거기서 자야겠다.

그리고 다음은 창고에 박힌 선풍기들 다 꺼내서 자기 방에도 하나 설치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 차로 향했을 때… 같은 생각한 사람이 또 있었나 보다.

“저거… 왜 불이 켜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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