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팅 한 번 다녀온 뒤로 가진 물자가지고 알차게 이용할 때였다.
“오늘도 된장찌개?”
“게는 빨리 먹어야 해. 갑각류 썩으면 무슨 냄새 나는지 알아?”
“좀비 시체 냄새만 할까~”
“그거보다 더 심할걸?”
“으엑- 밥 먹는데.”
며칠째 게딱지에 밥 말아먹고, 집게 끓여서 짬뽕이다, 된장찌개다 찜이다 만드는 나날이었다.
분명 물자 관리는 가야인데, 식자재에 대해서는 은지나 인아가 훨씬 더 꼼꼼하게 체크해서 만들어 주고 있었다.
“킹크랩 먹고 싶다.”
에밀리가 꽃게 다리를 들고 그나마 남은 살이라도 어떻게 먹으려고 두 동강내서 쪽쪽 빨며 한 말이었다.
“먹고 싶으면 잡아 와.”
“그럼 준이랑 같이 동해안 가도 되는 거야?”
“거기까지 가다가 좀비만 몇만마리 잡을 거다.”
김준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새 고기가 부족하잖아? 장조림하고 스팸이 전부야.”
“그건 고기가 아닌가?”
“언제부터 스팸을….”
에밀리의 밥투정이야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다른 애들도 다 알아서 그냥 몇 마디 핀잔으로 끝났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은지가 말했다.
“조만간 사냥 간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응, 그럴 거야.”
“그럼 이번에도 또 오리 잡아 오는 거야? 나 그거 너무너무맛있어.”
에밀리가 눈을 반짝일 때, 그 옆에 있는 도경이나 라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리고기 구워 먹는 거 너무맛있죠.”
“양파 썰어넣고, 쌈장 찍어서 깻잎에 탁! 크으으~ 삼겹살보다 맛나.”
“인아상이 오리 불고기 만들어 주는 것도 좋고요.”
평소 조용하던 나니카 역시도 한 마디 하면서 오리고기에 대한 갈망을 보였다.
그리고 그걸 듣고 있던 김준은 조용히 머릿속으로 잡을 것을 생각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9명이같이 사는데 오리 대여섯 마리 잡는다고 그때 한 번 먹고 끝이었다.
사실 제대로 잡으려면 지난번 멧돼지 같은 큼지막한 놈을 하나 잡아야 며칠은 먹을 수 있을 거다.
“뭐가 됐든 잔뜩 잡았으면 좋겠네요. 지난번에 은지가 잡은 사슴 같이.”
“고라니? 그거 좀 많이 질겼어.”
“덮밥으로 만들어 먹었으면서….”
그렇게 식사하면서 사냥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됐고, 저녁 이후에 본격적으로 그것에 대한 논의가 들어갔다.
“사냥 준비하자.”
“오! 나 갈래! 나!”
“에밀리….”
다른 아이들의 그녀의 폭주를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에밀리의 눈은 의지로 불타고 있었다.
“진짜 해 보고 싶었어. 미국에서도 할아버지따라 사냥 가 본적 많다고 했잖아!”
게다가 눈앞에서 김준이 공기총으로 여유롭게 잡는 걸 봤으니 이번엔 자신도 꼭 껴달라고 하는 에밀리.
그 외에는 이미 사냥을 여러 번 같이 갔었던 은지나 가야 등이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 보조 한 번 같이 갔었던 나니카.
아니면 같이 간 적은 없지만, 옆에 보조로는 괜찮을 것 같은 마리나 도경도 보인다.
“흐으음.”
“저도 가고 싶기는 한데… 불러 주시면요.”
“아냐, 라나는 쉬자. 인아도 요리를 하지 직접 잡는 건 아닌 것 같고.”
일단둘을 논외로 친 다음에 누구를 결정할지 생각하던 김준은 은지를 보고서는 그녀에게 말했다.
“은지는 이번에 쉬자.”
“!?”
“인아랑 같이 사냥해온 거 손질 준비좀 해 줘. 내일 일어나는 대로 바깥에 도마하고, 석쇠하고 철판 만들 거야.”
“흐으음.”
“그리고 냉동고 하나 꺼내서 그걸 아예 고기 보관하는데로 해놔야겠어. 소주도 잔뜩 준비하고.”
본격적으로 사냥을 통해 고기를 수급하겠다는 김준의 계획에 하나하나 준비해야 했다.
“에밀리, 잘할 수 있어?”
“물론! 내가 멧돼지 큰 걸로 잡을게!”
“에밀리를 데려간다고요?!”
사냥이라는 정적인 상황에서 오두방정떠는 에밀리를 데려간다고 하니 놀라는 얼굴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김준 처지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에밀리의 파트너까지 정했다.
“그리고 마리가 같이 가자.”
“아, 저도요?”
“피 빼는 거하고, 목 따는 법은 배웠지? 네가 그거 해 줘야 해.”
“네, 그거는 할 수 있는데….”
에밀리와 마리의 조합이라고 하니 뭔가 모호하면서도 그럭저럭 맞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적당히 차분하면서, 동료를 케어할 수 있는 마리와 제대로만 컨트롤 할 수 있으면 무서운 집중력을 보이는 에밀리이니 나름 대로의 캐미를 보일 것 같았다.
김준은 그녀 둘을 픽하고는 지도를 펼쳐서 사냥이 가능한 지역들을 살폈다.
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디를 가서 뭘 잡느냐가 필수다.
“내가 옛날에는 이 동네에서 까치나 까마귀 하루 평균 100마리씩 잡았는데 말이야.”
“와~ 100마리가 전부 닭이었으면… 치킨을 며칠 먹는 거야?”
그랬으면 좋겠지만, 까마귀나 까치를 먹는 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었다.
뭐 정말 극한까지 몰린다면 뭘 못 먹겠냐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니 놔두기로 했다.
“고양이나 들개도 있어. 그것도 조심해야 해.”
“어?! 그것도 잡으면 먹는 거야?”
“안 먹어.”
일단 잡아서 먹을 수 있는 것부터 분류했고, 나온 것들은 꿩, 오리, 고라니, 멧돼지, 염소, 토끼로 한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위치의 경우 지난번 은지랑 같이 갔고, 그녀가 처음으로 고라니를 잡았던 상수원 쪽으로 가기로 했다.
“이 일대에서 적어도 20마리는 잡을 거야.”
“안 되면?”
“밤에 들렸다가 이튿날 또 나간다. 사냥은 며칠 걸려서 여러 번 할 거야. 그러니까 좀 빡셀거야.”
“흐으~ 원래 헌팅은 인내싸움이긴 하지.”
에밀리는 뭐든 할 수 있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준비하면서 집에서 사냥감을 가져오는 대로 바로 해체해서 고기로 만들 테이블과 석쇠, 보관냉장고와 아이스박스도 잔뜩 준비했다.
***
며칠에 걸쳐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춘 다음에 김준 일행은 힘차게 출발했다.
“저 차는 언제 탈 수 있으려나~”
“이번 거 다 모으고, 한 번 더 다녀오면.”
“!”
이미 김준의 머릿속에는 모든 게 다 그려져 있었다.
그동안 무전기를 통해 생존자들과 정보 공유도 하고, 물물교환도 끝났으며 미군부대와 신릉면, 그리고 진성시에 대한 것도 하나하나 계획대로 정리할 셈이었다.
“그래도 한국에서 사냥이니 다행이야.”
“뭐?”
“그리즐리나 호랑이는 없잖아? 기껏 해야 보어 정도?”
“에밀리~ 멧돼지 엄청 무서워. 그건 내가 봐서 알아.”
조수석에 앉은 마리는 뒤에서 큰 맹수에 대해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에밀리를 향해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권총 두 방 맞고 안 죽는 거 보고 거기서 끝나는 줄 알았다.”
“은지가 그때 기름 뿌려서 불붙인 게 대박이었지.”
김준 처지에서도 그때는 생각할 수록 아찔한 일이어서 쓴웃음을 지었다.
“현실적으로 가자. 현실적으로.”
김준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지고 있는 무기 중에 m4 소총이 있어서 여차할 시 진짜 갈겨 버릴 생각이었다.
하천을 타고 상수원까지 쭉 올라오면서 그녀들은 다양한 동물을 봤다.
“저기 첨벙거리는 거 잉어 아니예요?”
“와~ 저렇게 떼로 다녀? 저기다 그물만 던져도 되겠다.”
오랫동안 방치된 하천은 말 그대로 대자연의 삶이 되어 허리까지 올라올 높이의 수북한 잡초 속에서 하천의 고기들이 가득했다.
간간이 고양이나 들개무리가 다니면서 물을 마시거나, 왜가리가 물 안에서 기웃기웃 거리다가 빠르게 부리로 쪼아 물고기를 잡아먹는 게 보였다.
간간이 오리 한두 마리가 헤엄치는 게 보였지만, 저거 하나 잡자고 저 풀숲을 지나가는 건 비효율적이었다.
그렇게 상수도공사까지 올라오면서 좀비 없이 안전히 왔을 때, 김준은 차를 멈추고 담배를 물었다.
“잠깐 쉬고, 주변 한 번 둘러보자.”
“흐응~ 뭐 있으려나?”
“여기가 거기구나. 은지 언니가 고라니 잡은 곳.”
몇 달 전에 온 곳이었는데, 그때 콘크리트 위에서 고라니 석궁으로 잡은 흔적이 아직도 보였다.
그동안 들개들이 이리저리 뜯어먹어서 뼛조각 몇 개가 흩뿌려지고 개미떼가 꼬인 게 보였다.
오히려 그래서 그동안의 인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담배 한 대 피고 나가서 슬슬 잡으….”
“꺄아앗! 오빠, 저기….”
“뭐야?!”
철컥!
조수석에 있던 마리가 앞을 보고 비명을 지르자 황급히 총을 들었다.
하지만 길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 뭔데?”
“뱀! 배배배배뱀!!!!”
“뱀?!”
자세히 보니 저 앞의 아스팔트로 유유히 기어가는 기다란 그림자가 있었다.
좀비도 아니고 무슨 뱀을 보고 기겁하냐 싶었는데 좀 큰 놈이긴 했다.
“에이 씨, 그냥 지나가라 놔두… 어우 씨발! 잡아야겠다.”
김준이 서행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저 뱀은 확실히 잡아야겠다고 차 문을 열었다.
“딴 것도 아니고 까치독사야.”
그냥 뱀도 아니고 까치살무사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을 때, 김준은 워커 신은 차림으로 다가가 공기총 입구로 그 뱀의 머리 부분을 쿡 찔렀다.
뚜둑-
갑자기 머리를 눌린 뱀이 마구잡이로 움직이며 총구를 휘감았을 때, 김준은 바로 도끼를 꺼내 고정시킨 독사의 머리를 내리쳤다.
짜악-
바로 머리를 잘라버린 다음에 품 안에 있는 희석 락스병을 꺼내서 마구 뿌려댔고, 고통스럽게 날뛰던 뱀이 잠잠해졌다.
만약 풀 숲에 들어가다 물렸으면 답도 없었을 상황이었을 거다.
“이게 첫 사냥인가….”
물론 애들이 베어 그릴스도 아니고 먹지는 못 하는 거고 다음 타겟을 잡기 위해 천천히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사냥 1일차가 시작됐다.